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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18화 (219/388)

218. 성가신 모기떼 (3)

-푸르르륵.

황량한 마을 어귀에서, 말이 투레질하며 뒤로 물러섰다. 더 나아가기 싫다는 듯이. 어느새 저녁놀이 완전히 저물고, 하늘은 남청색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혀를 차고는 말에서 내렸다.

“은공. 여기는…….”

본능의 영역이라면 말보다 더 예리한 그녀 또한 인상을 찌푸리며 하마했다. 그들이 말에서 완전히 내리자마자, 말들은 투레질을 하고는 왔던 길을 거슬러 뛰어갔다.

“앗!”

“놔둬. 군마들이니 제 막사를 찾아갈 거야.”

이 근방에 도적들은 이미 씨가 말랐다. 수인 호족 연합의 전사들이 대족장의 명에 따라 이 잡듯 뒤지고 다닌 탓이다. 소작농으로 위장해 살아남은 몇몇 잔당은 있을 테지만, 그런 간담 작은 소규모 도적들은 감히 공작의 인장이 박힌 군마를 훔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군마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페르난데스는 영지의 끄트머리에 있는 이 이름 없는 작은 정착지를 바라보았다. 낮에 왔을 때도 황량했지만, 밤에 보는 정착지는 음산했다.

“냄새가 납니다.”

“그건 신기한데.”

베이타서스의 사제가 아닌 키르하스가 흑마법의 냄새를 감지할 수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슬쩍 웃고는 마을 초입으로 들어섰다. 예민한 청각에 소음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황무지의 밤은, 낮보다 소란스럽다. 인간은 주행성 동물이지만 대부분의 황무지 생물들은 야행성에 가깝다. 황무지의 낮은 과도하게 뜨겁고, 메말랐으니까. 그건 황무지가 한순간에 습윤한 평원으로 바뀐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밤이 시작되는 이 시점, 페르난데스는 수많은 생물들이 몸을 일으키며 내보내는 백색 소음의 한복판에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찍찍대는 울음, 이따금 들리는 파열음과 단말마. 생물이 창생하는 소리들.

그리고.

“밤에 망령과 해골이 거닌다지.”

살가죽 없는 뼛조각이 부딪치는, 메마른 소리들까지.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마을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 * *

키르하스의 장검이 달빛을 반사해 반짝거렸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쩐지 유쾌한 목소리였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옛날?”

“프란츠리트의 흡혈귀들을 처음 잡으러 갔을 때도 이랬지요. 황량한 마을, 수십 구의 구울들, 어딘가 숨어 있는 흡혈귀.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좋은?”

“둘이어서 좋은.”

키르하스는 싱긋 웃고는, 그대로 칼을 뻗어 벽 한구석을 내려찍었다. 찍! 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칼끝에 묻어 나왔다. 그녀는 혀를 차고는 소매에 피를 닦았다.

“들쥐였군요. 기척이 수상해서 괴물일 줄 알았습니다.”

“소리로 들으려 하지 마, 키르하스. 공방 안에 함정을 파고 도사린 흑마법사는 결코 그런 허술한 단서를 남기지 않아.”

“그럼 어떻게 찾아야 되겠습니까?”

“나는 마법으로.”

-스륵.

페르난데스는 허리를 숙이고 바닥을 짚었다. 손끝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듯. 화륵. 곧 자그마한 은색 불똥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 바닥에 흘렀다.

현대 마법의 삼 원칙은 주문, 의식, 그리고 마력이다. 엄밀히 따지면 조금 더 복잡할 여지가 있지만, 주문과 의식은 때에 따라 어느 정도 가감이 가능하다.

전투 마법사나 방랑 마법사들이 의식을 대신해 수인을 짚듯이. 충분히 숙련된 마법사들에겐 간단한 스펠에 굳이 주문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굳이 서둘러 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없을 때라면. 그리고 추적 대상 또한 마법사라면. 보다 주의 깊게—

-화르륵!

은색 마법진이 그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잠시 손을 교차해 얽고는 고개를 숙인 페르난데스가, 이윽고 길의 한복판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드러나라.”

-푸스스…….

그 말과 함께 은백색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화륵. 화르륵. 길을 따라 자그마한 점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이. 빼곡히…….

“은공, 이건……?”

“특정 조건에 맞는 흔적을 밝혀 주는 마법이지.”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나아갔다. 특정 조건. 피와 언데드, 그리고 주문 시전자의 마력 회로 특질과 같은, 아주 정밀한 조건식을 짜 넣어야 하는 주문이다.

-시체탑의 맨더슨…….

놈은 페이자쉬와 같은 학회 출신 흑마법사다. 제국 동부 지역에서 악명을 떨쳤던, 아니. 떨칠 예정인 사령술사다. 칼름부르크 마법 학회의 수장이었던 페이자쉬로서는, 맨더슨의 마력 회로가 어떤 식으로 조성되어 있는지 선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마법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 또한 수월한 일이다. 은색 점들이 나침반처럼 한 방향을 향해 줄지어 이어졌다. 페르난데스는 왼손을 꼬아 만든 수인을 유지한 채로 길 위를 걸었다.

-화르륵!

곧, 마을 어귀. 한 방향에서 불똥이 멈췄다. 고양이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놈의 눈에는 자신 주위에 엉겨 붙은 은색 불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맨더슨. 대비는 잘 하고 있나?”

-샤아아앗!!

“그래선 안 되지. 내 친히, 네게 날 대비하라 말하지 않았나.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페르난데스는 고양이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고양이는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고는 몸을 빳빳하게 세우다가, 곧 축 늘어졌다. 그 몸 위로 찍혀 있던 은색 불똥이 곧 화살처럼 어디론가 쏘아져 날아가며 긴 궤적을 그렸다.

“저게…… 음. 흑마법사의 영혼 같은 겁니까?”

“패밀리어다. 하수인 주문 중에서도 저급이군. 놈의 마력이 만들어 낸 흔적을, 내 마법이 타고 들어간 거야. 저 길을 따라가면 놈이 나타날 거야.”

“은공. 손님이 온 것 같습니다.”

“그래. 이래야지.”

-철컥.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칼자루를 잡았다. 곧 마을 어귀와 어귀, 담벼락 위와 틈새, 지붕 위와 처마 밑에서 해골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해골들은 푸른 안광을 일렁이며 턱을 딱, 딱 부딪쳤다. 페르난데스는 칼을 뽑아 빙글 돌려 고쳐 쥐고는 앞으로 나섰다.

“어디서 이 정도로 많은 시체들을…….”

키르하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사라진 마을 주민들, 주문과 함께 나타난 언데드들. 유기된 마을. 이런 소규모 정착지들이 이 영지엔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서부 전쟁의 개척촌들은 공왕의 행정부에서도 미처 모두 집계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므로, 이 마법사의 희생자들을 헤아릴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마법사의 손에 의해 희생되었겠는가. 키르하스는 어금니를 물며 뛰어나갔다. 페르난데스는 이따금씩 덤벼드는 해골들을 쳐내며 웃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한데.’

-시간벌이를 하는군.

‘시간을 번다 한들 놈에게 다른 수가 있나?’

-글쎄, 맨더슨은 아주 멍청한 놈은 아니었어. 무슨 다른 계획이 있을 수도 있지.

‘있었다고 하지. 누구에게나 좋은 계획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

이단심문관을 만나기 전까지는.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는 달려드는 해골과 시체들을 분쇄하며 마을을 벗어났다.

* * *

한때 흙뿐이던 황무지는 이제 푸른 잔디가 펼쳐져, 밤이슬과 함께 달빛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적막한 바람이 불었다.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는 발아래로 점점이 찍힌 은색 불똥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이 방향은……. 페르난데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영지와 너무 멀다. 리뷔에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정착지, 그리고 거기에서 또다시 황무지 방향으로 수 킬로미터 거리다.

-맨더슨의 작품치고는 이상한데.

‘하지만 마력 구성은 맨더슨의 것이 맞았어.’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하다는 거야.

맨더슨은 도심이나 마을 내부에 파고들어 공방을 만드는 녀석이었다. 주로 납골당이나 공동묘지 인근에 자리를 펴고 앉아 진득하게 실험과 수련을 하는 음습한 녀석이었다.

시궁쥐나 시체파리 같은 녀석이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결코 인적 드문 곳에서 머물지 못한다. 그러나 이 방향은. 한참을 더 멀리 나아가야 겨우 유목 부족 몇몇이 있을 뿐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유목민들 대부분은 수인이다. 수인들은 폐쇄적인 부족 중심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인간인 맨더슨이 수인 사회에 녹아들어 암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리뷔에 영지와 이젠 거리가 너무 멀다. 키르하스와 페르난데스 둘 다 인간의 한계를 어느 정도 초월한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거리를 도보로 주파하는 것이지, 일반인이라면 어림도 없다.

가장 가까운 인간 정착지가 그들이 마지막으로 지나온 곳이라 본다면. 이건 과하다. 과하게 멀다. 마치, 유인하는 것처럼…….

‘대비책을 만들었나?’

애당초 낮에 맨더슨에게 했던 경고는 ‘혼신을 다해 대비하라’는 종류의 경고였다. 놈이 이대로 도주한다면 모르되, 애매하게 수를 남기고 처리할 수는 없었다. 한다면, 뿌리까지 뽑아내야 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라 경고했다. 허술하게 놈을 잡아내도, 놈의 은신처나 놈의 실험 도구들, 놈이 만들었을 수많은 언데드들을 단번에 분쇄하지 못한다면 그건 두고두고 후환이 되어 이 영지 어딘가에 유기될 것이다.

그리고 유기된 언데드들의 잔류 사념은 필연적으로 더 강력한 언데드나 악마, 또는 그것에 이끌리는 흑마법사들을 낳는다. 바퀴벌레처럼, 둥지를 파괴하고 일거에 소탕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시궁창 아래에 숨어들어 번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문에 페이자쉬는 고개를 저었다.

-놈의 특기는 인간의 시체로 만들어 내는 피조물들이야. 빈 공터에서 놈이 준비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없어. 놈이 최선을 다해 함정을 준비했다면 그건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인질극이었겠지.

페이른의 워커 사태를 떠올리며,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심지 한복판에서 워커 사태가 발생하거나, 이런 종류의 언데드, 또는 역병 사태가 일어난다면 대부분의 경우 흑막을 잡아내는 것보단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에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벼랑 끝에 몰린 흑마법사들은 주로 도시에서 난동을 부린다. 청동천칭단이 그랬듯. 그러니 지금 이건…….

“은공!”

“그래, 다 왔군.”

은백색으로 타오르는 불똥이 점점이 이어지다가, 곧 끊어졌다. 달빛이 낮은 구릉 위로 늘어지고 있었다. 스산한 밤바람에 구릉 위에 걸린 깃발이 펄럭였다.

“어…… 음……. 정말 저기가 맞을까요?”

“확인해 보자.”

“군사 지원을 받는 편이 나을 겁니다. 여기서 하루 정도만 더 가면 수인 부족들이 있습니다. 제가 명령하면 전사들을 보내줄 겁니다!”

“하루면 늦어. 내일 정오가 지나면 파스칼 형제가 이단 재판을 시작할 거야.”

대대적이고 공식적인 이단 재판이 시작될 것이다. 하루의 말미를 기다려 준 것만큼 더 화려하게. 그건 페르난데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기보다는, 차라리 하루 쉬었으니 더 근면하게 일하겠다는 사제 특유의 성실함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단심문관의 성실함은 필연적으로 희생자들을 낳는다. 희생자들의 비명이 공론화되면 제국의 사절은 반드시 이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상황은 너무 늦는다. 이미 파르탁과의 연계에 차질이 생기기 직전이다. 더 이상 시일을 보낼 수는 없었다. 모든 종류의 통제 불가능한 변수는 위협적일 뿐이다.

“우리끼리 접근하자.”

그래서. 저 낮은 구릉 위에 늘어진 야영지로 페르난데스는 한 발자국 앞서 걸었다. 횃불들이 이글거리는 야영지로 은백색 불똥이 점점이 이어지고 있었다.

변경 귀족의 군벌이었다. 페르난데스 또한 알고 있는 문양이다. 리뷔에에 대한 것은 철저하리만큼 완벽하게 조사했었으니까.

리뷔에 인근의 영주. 브람동 백작 알베르다. 유력한 군벌 귀족이며, 리뷔에 공왕의 가신이자, 지난 회담 이후 군사들을 이끌고 철군한 변경 귀족 중 하나였다.

‘이러면 말이 되긴 하는데.’

공왕의 몰락을 바라는 백작과 실험 재료들을 물색하는 유능한 흑마법사가 손을 잡고, 공왕의 성장 동력이 될 제국의 사절을 견제하기 위해 백작령의 권한으로 이단 재판을 미리 신청해 놓고, 타이밍 좋게 흑마법사가 뒷공작을 펼쳐서 공왕을 함정에 빠트렸다?

‘말은 되는데…….’

-불가능하군.

놀라울 만큼 치밀한 함정이지만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작과 영애,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 넷 중 하나가 저들과 한패여야 했다. 대족장과 공작 사이의 거래를 알고 있어야 성립이 가능한 함정이다.

거기에서 키르하스와 페르난데스는 빼고, 공작은 스스로 자살하기 위해 함정을 팔 리가 없으니 그것도 빼고. 영애는…….

‘그럴 리가 없어.’

영애는 그 누구보다 공작의 성공을 바라고 있는 인물이다. 페르난데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되었든. 어떻게 된 일이든 간에. 오늘 안에 결착을 본다.’

-성가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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