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19화 (220/388)

219. 성가신 모기떼 (4)

“은공……. 아무도, 아무도 없습니다.”

키르하스는 사방을 훑으며 낮게 속삭였다. 그녀의 청각은 어떤 분야에서는 디모니카의 그것을 뛰어넘을 때가 있다. 페르난데스는 어둠 속을 점점이 밝히는 은백색 불똥과, 사방에서 이글거리는 횃불들 사이로 걸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또다시, 아무도 없었다. 이 야영지는 완전히 버려져 있었다. 마치 다른 정착지들처럼. 사람의 흔적은 모든 곳에 널려 있었다. 아직까지 모닥불 위에서 끓고 있는 냄비와 펼쳐진 채로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팔랑거리는 책들이 보였다.

반쯤 빈 술병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차가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단 하나, 이 야영지가 다른 정착지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냄새가 난다.”

베이타서스의 전투 사제들. 특히 이단심문관들의 본능적인 후각이 흑마법과 악마의 냄새를 감지하고 있었다. 코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진득하게.

“나와라. 맨더슨.”

페르난데스는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칼자루를 쥔 손등에서 힘줄이 꿈틀거렸다. 분노가 점점 더 진하게 그의 심장을 물어뜯었다.

‘알베르가 아니야.’

알베르 백작이 미치지 않고서야, 고작 함정을 위해 자신의 병력을 흑마법 실험용 제물로 터트렸을 리가 없다. 득보다 실이 많은 것을 넘어서, 오직 실책뿐인 선택일 테니까.

공작에게 무슨 불구대천의 원한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 식솔과 가신들 전체를 흑마법사에게 바치고 오직 공작의 정치적 실각을 위해 행동할 리가 없었다. 변경 귀족의 정치 감각은 그렇게 감정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이 모든 짓거리는 알베르와 맨더슨의 계략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제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런 감각이 끔찍하리만큼 혐오스럽다. 페르난데스는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거대한 막사 정면에 섰다. 페르난데스가 다른 흑마법사들이나, 이단들, 또는 악마들보다 나은 점은 미래에 대한 정보 독점에 있다.

그리고 미래와 다른 선택을 할수록, 정보 우위로 인한 이점은 희미해져 간다. 당장 50년 전쟁의 여파만 해도 그랬다. 이 사건의 단초는 데인 왕국의 네크로폴리스 사태였다.

메를린포트의 워커 사태, 이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발발한 인퍼머르 사태. 데인 왕가의 해상권 수복과 페이른 왕국의 견제.

동부 연맹의 정세 안정을 위해 데인 왕가에 개입했다가 휘말린 네크로폴리스의 음모. 이어서 뭄토의 계략을 파괴하고, 50년 전쟁이 끝나고, 대황야가 초원이 되더니, 아시트 제국 시절 망령 군주들이 도래했다.

그 결과는 어땠나. 페르난데스는 결단코, 칠흑의 에리크가 그렇게 빨리 군세를 확장하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미래를 바꾸는 과정에서 통제 불가능한 변인이 난립하고 있었다.

모든 사건을 계획에 따라 정리하고, 수 싸움을 통해 흐름을 확보해 가는 치밀한 성격. 그것이 페르난데스의 모든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페르난데스는 또다시 발생하는 변인에 대해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성가시다.’

페르난데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외쳤다.

“맨더슨, 시체탑의 맨더슨! 나와라. 더 이상 도주할 곳 따윈 없다!”

“오만하군.”

막사가 저 스스로 열렸다. 막사 내부엔 거대한 나무 의자가 있었다. 한 사내가 막사의 그림자 아래에서 비스듬히 기대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는 누구냐? 누구기에 나를 알고 있느냐?”

“알베르 백작……. 아니. 아니군. 그 몸에 씌어 있는 것이로구나.”

페르난데스는 칼자루를 뽑아 올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회담장에서 만났던 얼굴이다. 알베르 백작. 그러나 그 창백한 얼굴과 새파란 눈동자 아래에서 마력의 잔존물이 느껴졌다.

“그래. 수인 대족장 계집과 그 애첩이로구나. 제법 전사처럼 싸우는 녀석. 마법에도 조예가 있을 줄은 내 미처 몰랐거니와, 날 알고 있을 줄은 더욱 몰랐다.”

“마법사!! 더 이상 무고한 이들의 피를 흘리게 하진 않겠다!!”

키르하스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소리 지르고는 막사를 향해 달려 나갔다. 페르난데스가 붙잡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알베르 백작의 지척에 다가가 칼을 휘둘렀다.

-챙!

“큿!”

전신 갑주를 걸친 한 기사가 막사 내부의 그림자 아래에서 나타나, 키르하스의 칼을 튕겨 냈다. 키르하스는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나 몸을 도사렸다. 알베르는 변함없는 자세로 앉아서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

“내 살다 살다, 짐승 잡것들의 두령이 이런 같잖은 소리를 하는 꼴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진심이냐? 진심으로 무고한 피를 운운했느냐?”

캉! 챙! 하고, 날붙이가 휘둘러 튕겨 나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키르하스는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서, 페르난데스의 곁에 선 채로 헐떡였다.

“은공, 저자들. 보통이 아닙니다.”

“죽음의 기사다. 혼자 덤비지 마.”

“예, 은공.”

알트베르트에서 마주했던 죽음의 기사들처럼, 생전의 기술과 정신을 유지한 채로 만들어진 죽음의 기사는 대단히 위협적인 언데드 개체다.

죽음에 대한 위협이나, 생존을 위한 방어 따위를 도외시한 채로 온전히 공격에만 자신의 모든 기량을 투사할 수 있는 기사들. 기본적으로 검술이란 방어술이 7할을 넘어가는 법이니. 10할 전력을 공격에만 사용하는 이들은 범상한 기량의 족히 두어 배는 강력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칼을 빙글 돌려 자세를 잡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가 많았다. 적어도 일곱. 아니, 열 기의 기사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산 자가 아니었으니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사방에 자욱한 흑마법의 잔향 탓에 미처 깨닫지 못했다. 막사의 구석에서 몸을 일으키며 흉흉한 기세를 뿜어 대는 기사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으, 은공.”

“하찮다.”

페르난데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알베르를 노려보았다. 알베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허세를 죽는 순간에도 간직하는지 보겠다. 네 마지막 표정은 반드시 내가 박제를 떠 보관하마.”

“궁금한 게 많다, 맨더슨. 네 뒤에 도대체 누가 있기에 이렇게 과감하게 일을 저지르는 건지. 아주, 아주 궁금해.”

-스르릉.

페르난데스는 한 손으로 대검을 움켜쥐고, 다른 손을 돌려 다른 칼 한 자루를 더 뽑았다. 한 손에 다인 왕의 검, 다른 손에 열쇠검을 쥔 채로 그는 싸늘하게 알베르를 노려보았다.

변경의 소작농들과 몇몇 개척 마을에 작업을 하는 것은, 허용 범위 안의 과단성이다. 그러나 귀족에게 직접 손을 대는 것은 궤가 다른 종류의 광기를 필요로 한다.

흑마법사는 결코 귀족을 쉽게 건드리지 않는다. 귀족들은 자신만의 사회망을 가지고 있었고, 귀족을 건드린 흑마법사는 반드시 추적 대상이 되고 말 테니.

당장 귀족 중 하나가 이단심문청에 조사를 의뢰하기라도 한다면 일이 매우 복잡해진다. 이단 조사를 위해 파견된 헤레티카는 마을 촌장이 고용한 용병들과는 달리, 정말 전문가들이니까.

그러므로, 맨더슨의 뒤엔 적어도 알베르 백작보다 큰 배후가 있다고 봐야 한다. 페르난데스는 그자가 궁금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견제하려 드는 귀족이, 적어도 대귀족이 있다는 소리였으므로.

“그러니까 잘 보고 있어라. 그 자리에서 가만히 기도하면서.”

-콰직!

충분히 다가온 기사 하나가 칼을 휘둘렀다. 짧은 공방 사이, 눈부신 섬광과 함께 페르난데스의 검이 기사의 투구 아래를 으스러트리고 지나갔다. 그 사이에도, 알베르 백작을. 아니, 그 몸에 씌어 있는 흑마법사를 눈에 담으면서.

* * *

대검이 하늘을 가른다. 한 손으로 펼치는 대검 검술은, 일반적인 대검 기교와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움직여야 한다. 대검은 본디 양손을 지렛대 삼아 회전력을 더해 후려치는 검술이다.

그러나 회전력, 날과 폼멜의 무게중심을 이용한 그 힘을, 팔 힘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결과는 같다.

-으적!

기사의 견갑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대검이 치고 지나간 자리, 그 궤적을 따라 곧게 그으면 파괴로 치환된다. 페르난데스의 반백 머리칼이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카앙!

누군가는 검을 가로막는다. 그 자체로도 놀라운 기교다. 본디 기술이란 힘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것. 디모니카의 힘과 속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곧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수련하는 한 사람의 기사라는 의미였으므로.

그러나—

-콰드드득!

검신이 비틀리며 으스러진다. 쇠 비늘이 흐드러지듯 피어오르고, 그 사이를 묵빛 대검이 스쳐 지나간다. 베어낸다 표현하기보다는 후려친다 말해야 할 강격. 공간이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이 기사를 덮친다.

-카앙! 쾅!

허용 범위 이상으로 다가온 기사, 칼을 휘두를 거리보다 가깝게, 칼 끝을 곧게 세운 채로 몸을 던지는 기사를 향해 페르난데스는 주먹을 후려 갈겼다. 철퇴로 찍어내는 듯한 충격과 함께 기사가 그 자세 그대로 무릎을 꿇고 무너졌다.

-스겅.

그 자리를, 키르하스가 치고 들어와 칼을 휘둘렀다. 페르난데스의 것과는 전혀 다른, 깔끔한 반원 베기. 정교하게 갑주의 틈을 파고들어 그대로 그어 올렸다. 깨끗하게 베여 올라간 투구가 허공을 잠시 부유하고는, 바닥에 굴렀다.

기사들의 움직임은 무미건조하고 치명적이었다. 목숨을 잃거나 신체가 상하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공격, 공격, 공격 일변도!

-캉!

칼이 교차한다. 그 사이를 키르하스의 장검이 파고들고, 그걸로 기사 하나가 쓰러졌다. 죽음의 기사는 분명, 동 실력대 기사 둘에서 셋보다 강한 수준의 강적이다.

그러나 디모니카는, 단순히 그 육신의 능력으로만 정점에 도달한 기사와 자웅을 겨룰 수 있으며—

-쾅!!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는, 검사들이 일컫는 ‘정점’. 그 어떤 희미한 경계에 발 하나 이상을 담고 있는 경지에 있다!

장내에 일어선 죽음의 기사들이 모두 허물어졌다. 설령 다리안이 온다 하더라도, 또는 제피스가 직접 온다 하더라도 부상 없이 이겨 낼 수 있는 수준의 함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길 수 없는 함정 또한 아니었다.

다만 규격을 넘었을 뿐이다. 쥐덫을 곰이 밟은 격이다. 페르난데스는 검게 죽은 피를 쿨럭이며 스러지는 기사를 잠시 바라보았다. 청각에 집중하면, 바람 빠진 소리가 쉭쉭거리며 들렸다.

[고맙다.]

대부분의 모든 언데드가 그렇듯, 이 기사들 또한 그저 이용당하고 죽임당했을 뿐이다. 이 기사들에게 있었던 비극은 거기에 더해서, 본신의 능력이 출중했다는 점이다.

강력한 언데드를 축성하기 위해선 그 신체 또한 중요하지만, 그보다 혼백과 영성에 얽힌 재능과 힘이 더욱 크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강대한 언데드는 필연적으로 생전의 기억과 기교를 지니도록 만들어진다.

기사들의 영혼이 육신의 파괴로 인해 속박에서 풀려나며 단말마를 흘렸다. 해골 병사와 구울, 워커들과는 달리 이들에겐 영혼이 있다. 그리고 타락한 영혼은 결코 만신전의 품으로 갈 수 없다. 그것이 자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페르난데스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이들을 위한 기도나 축복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이들의 영혼은 만신전의 전당이 아니라, 저 지옥의 깊은 나락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원인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스르릉.

잠시 바닥을 짚고 있던 칼을 들어 올렸다. 거친 격검에도 칼날엔 상흔 하나 없이 매끈했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놈의 표정이 당황으로 얼룩지는 것이 보였다.

“너, 네놈. 그 검. 수인이 들 수 있는 검이 아니다. 열쇠검……!!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것이라 여겼거늘! 베이타서스의 사도……? 이단, 이단심문관!!”

놈은 부들거리며 소리질렀다. 페르난데스는 아무 말 없이 놈에게 한 발자국 옮겼다. 강철 장화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짓밟았다.

“그랬나. 그랬군! 그래서 그 이단심문관이 재판을 미뤘군! 그리고, 그리고…… 교황이군……!! 교황이 리뷔에에 영향력을……? 어째서……? 커헉!!!”

-콰직!

페르난데스의 건틀릿이 놈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놈은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둥거렸다. 강철 건틀릿 아래에서 놈의 목젖 아래로 동맥이 펄떡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산 자로군.’

죽은 자의 몸에 영혼을 덧씌워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수한 종류의 사역 저주가 이 백작의 육신에 쓰여 있는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혀를 차고는 놈을 들어 눈 가까이 끌어왔다.

“내가 이단심문관이라는 것을 알아챘다면, 네가 해야 할 일도 깨달았겠지. 흑마법사.”

“커흑……!! 그, 그게 무슨……!”

“기도하고 있어라. 아무 신에게나, 어떤 말이든. 간절히. 내가 널 찾아갈 테니.”

“너, 너는. 이미 늦었어! 수, 수인 대족장을…… 빼돌리려 했건만…… 뜻밖의 훼방이었군!! 하지만, 결과는 같다…… 너는 늦었다!!”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강렬한 지진이 막사를 덮쳤다. 페르난데스는 두 발로 균형을 잡으며 손 아래에서 꺽꺽거리는 흑마법사를 바라보았다. 놈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미 의식이 시작되었도다!! 이 상황을 어찌 뒤집을 수 있겠느냐, 이단심문관!!”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다.”

-콰직!

페르난데스는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곧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백작의 몸이 축 늘어졌다.

사역 저주 도중에 사역물이 죽었으니 영혼에 사소한 타격이라도 받았을 터였다. 페르난데스는 늘어진 백작의 시체를 내려놓고는 막사를 빠져나왔다.

-콰아아앙!!!

“으, 은공. 저 방향은…….”

“그래. 리뷔에다.”

리뷔에 방향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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