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만들어진 영웅의 시대 (1)
전쟁 규모의 마법전을 보다 더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음유시인들은 이를 ‘고요의 전투’라고 부른다. 대단히 직설적인 방식이다. 페르난데스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저게 어떻게 고요하다는 말인가.
기병이 보병의 악몽이라 불리듯이, 마법은 모든 병사들의 악몽이 될 수 있다. 아주 기초적인 화염구 한 번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불러낸 마법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효율적인 비대칭 전력의 탄생이다. 모든 국가에서 마법 전력에 막대한 황금을 투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보병의 조밀한 방진, 기병의 아름다운 축차 돌격. 이러한 지휘관의 기술적 역량이 순식간에 거세되어 버린다.
그러니 지휘관과 현장 장교들은 다른 방식을 생각했다. ‘마법사를 전장에서 제외시키는 방법.’ 적에게 정중하게 부탁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방법은 아군 마법사의 기용이다.
-쿠르르릉!
하늘 위에서 마력 흐름이 오색 소용돌이를 이룬다. 각 진영의 마법사가 마법을 준비하고, 다른 진영의 마법사가 그 마법을 방해하는 흐름이다.
고요의 전투. 실질적으로 전장에 떨어지는 마법은 단 한 조각에 불과하다. 각 진영의 마법사들은 사력을 다해 하늘 위에서, 마법과 마법으로 싸운다. 실패의 판돈을 병사들의 목숨으로 걸고.
‘마법 전력은 아슬아슬하게 동률을 이루고 있군.’
-라비라타의 매장 사제들이 생각보다 더 나약한데?
‘아니. 제국 마법사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더 훌륭한 거겠지.’
개인의 단위에서 마법은 신비지만, 국가 규모의 마법은 황금의 총량에 비례한다. 제국은 인류 문명 그 어떤 국가보다 거대한 마법 전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것이 서부 왕국들과 제국의 군사력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반적인 개념의 마법사들. 신비를 증명하고 세상을 탐구하는 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제국 필라인네일 대학은 오직 단 두 가지 마법 역량만을 추구한다.
상대 마법의 파훼와, 군단 규모 마법의 실현. 그래서 붙은 멸칭. 제국 폭발 학파. 대규모 파괴 마법에 모든 것을 집중한…….
-콰아아아앙!!
해골 군단의 일부가 폭발에 휩싸이며 붕괴한다. 뼈와 먼지가 구름처럼 올라오고, 폭발로 인한 화염이 피해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하늘 위의 치열한 마법전 도중, 한 조각의 마력이 지상으로 떨어지며 매듭이 맺혀 마법으로 치환된 결과다. 오직 파괴, 오로지 더 큰 폭발만을 추구하는 마법이.
-쿠구구구구!!
대황야의 드넓은 초원. 라비라타 왕조의 군대가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 개체, 한 개체의 질량이 거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전체가 극소수의 의지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땅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매장 사제들과 왕조 귀족들의 마력으로 일어난 해골들은, 주인의 의사에 따라 걷고, 칼을 들고, 전진한다. 이들의 제식은 아름다울 만큼 완벽하다. 일말의 오차도 없이 한 발자국.
-쿵!
아무런 신호도 없이 선두가 멈춰 선다. 그런 갑작스런 움직임에도 어떤 소요조차 없이, 군단 전체가 정지했다. 페르난데스는 말 위에 탄 채로 그 광경을 내려 보며 감탄했다.
-저들에게 마법전의 진수를 보여 주자, 빨리!
‘안달 내지 마. 페이자쉬. 우린 우리를 증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페르난데스는 페이자쉬를 다독이며 구릉지 아래, 제국 군단의 전열을 바라보았다. 황제는 약속대로 병력을 보냈다. 예상보다 빠르고, 예상만큼 강대하게. 다만, 다른 선제후들의 병력은 이들 사이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욕심이 과하군.’
-탈 나겠어.
황제는 자신의 명성과 대황야의 이권을 다른 선제후들과 나누어 갖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선제후들의 지원을 포기하고, 중앙 군단의 전력을 파견한 것이다.
필라인네일 대학의 교수진과 전투 마법사 군단이 후방에서 마법전을 준비하고 있다. 저들 중 2할 정도는 그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제국 출신 마법사들, 개중에 뛰어난 이들을 모조리 긁어 온 것이다.
한편 전선. 리뷔에의 병력과 수인 호족들의 병력이 나뉘어 있고, 그 사이에 제국 군단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광명성창회, 레반스 기사단, 서약 기사단, 귀르의 불타는 성채 기사단. 황제의 주력이라 부를 수 있는 병력이 모여 있었다.
‘리뷔에가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겠는걸.’
-반나절? 글쎄, 그만큼이라도 버틴다면 요행이지.
지금 저들은 라비라타 왕조와 수인 호족 연합의 반란군들을 대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전쟁이 끝나는 즉시, 저들의 검과 창은 곧장 리뷔에로 돌려질 것이다.
이 전쟁으로 리뷔에는 확실하게 멸망한다. 선제후들이 황제의 탐욕을 알고도 침묵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리뷔에의 멸망은 결코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국을 다스리는 데에 선제후 여덟 명은 너무 많다. 모든 선제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이권에 민감한 짐승들이고, 선제후 하나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이권의 확대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명분을 황제가 직접 만들어내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전열이 부딪쳤다. 페르난데스는 고삐를 틀어쥐고 당장 날뛰려 투레질하는 말을 다스렸다. 그의 등 뒤로 수인 호족의 정예병들이 모여 있었다.
전쟁은 병사들의 피로 영웅을 담금질한다. 선두에서 해골들의 창칼에 쓰러지는 인간들 사이로, 영웅의 시대가 밝아올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렇게 만들리라. 페르난데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전선에 돌출된 방면을 바라보았다. 에르브 대공과 그 기사들이 분전하고 있는 지역을.
* * *
“물러서지 마라! 앞으로! 앞으로!!”
키르하스는 칼을 휘둘러 해골을 으스러트렸다. 하나하나 별 볼 일 없는 병력임에도, 망령 군단의 무서운 점은 그들의 수가 거의 무한에 수렴한다는 것에 있었다.
한계가 없다. 말 그대로, 이 사토 아래 묻힌 해골들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와 전선을 어그러트리고 있었다.
드넓은 평야에서 일어나는 기습이다. 치명적이기 이를 데 없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이 황무지엔, 시체가 없는 땅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정면의 군세뿐만 아니라, 지저에서 튀어나오는 병력 또한 예상하며 움직여야 했다. 모든 지역에 함정이 깔려 있는 셈이고, 병사들의 혼란과 사기의 저하는 필연적이다.
“끄아아아악!”
바닥에서 솟구친 창이 바로 옆에서 날뛰던 수인의 심장을 정확히 찔렀다.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발밑에 잠들어 있던 해골이 든 무기가 창이어서, 피할 겨를이 없었다. 수인은 잠시 꿈틀거리다가, 이윽고 눈을 감고 쓰러졌다.
“칫!”
키르하스는 재빨리 쓰러진 수인의 목을 쳤다. 시체를 능멸하기 위함이 아니다. 적의 손에 들어간 시체는 고스란히 적의 병사가 된다. 망령 군단과의 전투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영원한 복무의 시작이 된다.
이런 광경이 모든 전선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술탄과 제국이 대황야를 지배한 망령 군단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가 실시간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수인 호족 연합. 하나 된 종족이 갖는 강대한 힘이 대황야를 통일하지 못한 이유도 이것이다. 망령 군단은 일종의 벌집이나 다름없었다. 건드리는 순간 폭발하는 벌집.
“물러서지 마라!! 연합의 전사들이여. 승리는, 정면에 있다!”
“하트테이커! 하트테이커! 하트테이커!”
“적의 심장을 물어뜯어라! 너희의 대족장이 너희와 함께 싸우고 있다!”
“영광을!!”
“명예를!”
“승리르으으으으을!!!”
키르하스의 외침에 수인 호족들이 일제히 고함을 내질렀다. 적어도 이쪽 전선의 붕괴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키르하스의 명성은 이미 수인들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황야의 불패자, 잊혀진 신의 선지자. 한 줌의 병력으로 수인 호족을 무력 통일하고, 그 와중에 당한 라비라타 왕조의 기습을 온전히 물리쳐 황무지를 하나로 통일한 업적을 세운, 위대한 영웅.
그러나, 모든 전선이 이와 같이 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 *
“후퇴해야 하오!!”
“초전에 퇴각을 논하다니! 그러고도 제국의 기사라 할 수 있나!”
“이건 개짓거리요! 병사들의 피해가 극심하오!”
제국의 잠재적 적국들은 키르자트 술탄국, 대황야의 호족 군벌, 이따금씩 난립하는 반군과 도적들, 그리고 동부의 왕국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인간이란 것이었고, 상식 내의 전쟁을 상정하며 전략을 짜도 먹히는 이들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전장은 비상식적이다. 모든 전선이 방진을 구축하고 버티는 와중에 방진 아래에서 적들이 기습하는 상황. 즉, 모든 전선에 적 기병대의 망치가 틀어박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란 뜻이었다.
진형의 구축이 불가능하다. 전선은 하나였지만, 그들은 포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적들이 모든 병력을 일거에 일으켜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하에서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습은 병사들의 사기를 실시간으로 좀먹고 있었다.
-콰지지직!
막사의 한 귀퉁이를 무너트리며 해골 병사 하나가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던 기사가 단숨에 해골의 머리를 내려찍어 으스러트렸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지휘부에서도 이런 꼴이다. 혼란이 가득한 전장에서 병사들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버티는 것도 지난하오. 라비라타의 망령 군단은 끊임없이 보충되고 있소! 우리들의 병사로! 미친 싸움이야!”
“황제께서 직접 명하신 전쟁이다. 그 입을 다물라!”
“마법사들은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적들의 부활 주문을 막아내지도, 감지하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적들의 마법이 병사들 머리 위에 쏟아지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오!”
제국의 지휘부는 하나의 사령관을 중심으로 뭉치지 못했다. 제국의 기사단과 원수부의 귀족들은 각자 황제의 총애를 위해 난립했고, 이들에겐 에르브 공작과 같이 중심이 될 수 있는 대귀족이 없었다.
지휘부의 언쟁과 혼란은 곧장 병사들의 사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제국 군단은 분명 적수 없을 정도의 강군들이었지만, 칼은 칼자루를 쥔 검사의 능력에 따라 움직이는 법.
그러나, 모든 병사들에게 지휘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로 연대할 수 있는 대귀족이 직접 친정하는 장소에선, 해골 병사들은 그저 힘 약한,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 * *
“으하하하! 이 나약한 것들! 이게 전부더냐!”
“보르아, 병사를 지켜라!”
“예, 주군!”
불곰 보르아, 어지간한 사람의 팔뚝만큼 굵은 대검을 사방으로 휘둘러 해골 병사들을 후려쳐 날리던 거대한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왔다.
전선의 가장 돌출된 지역. 에르브 공작의 리뷔에군과 키르하스의 수인 호족 군단이 지휘하는 두 지역이 전선의 양익에서부터 천천히 망령 군단의 종심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진격은 좋다. 그러나 돌출부라는 점은 반드시 적 병력의 밀도가 높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에르브와 키르하스의 분전은 고스란히 아군의 피해 확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피해가 곧장 적군의 충원이 되고 마는 이 비현실적인 전장에서, 그것은 대단히 치명적인 일이었다.
“주군! 너무 깊게 들어왔습니다! 물러나야 합니다!”
“그럴 수는 없다! 병력을 최대한 지켜내!”
“대족장의 애첩이 우릴 속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내가 고작 우리의 피해를 늘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단 말이냐? 보르아, 날 믿고 전진해라. 그 사내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쾅!
제국의 군단이 전선 아래에서 지지부진하게 방진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때가 바로 절호의 기회가 되리라. 점점 더 높은 질량으로 밀도 있게 압박해 오는 해골 병력의 군사들을 바라보며, 에르브는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이거 전장에 직접 나서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에르브는 투덜거렸다. 사람 다루는 것이 거칠다. 그러나 동시에 피가 끓었다. 젊었던 시절. 청년기의 에르브는 50년 전쟁의 전장에서 가장 앞서 날뛰는 기사였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전진하라!!”
병사들이 하나 되어 움직인다. 에르브의 군사들은 수십 년간 그의 지휘 아래에서 함께 먹고 함께 싸우고 함께 잠들던 끈끈한 전우애로 뭉쳐 있었다.
전쟁의 가장 격전지에서 담금질된 강병들이다. 에르브는 이들을 믿었다. 그리고, 병사들 또한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 * *
전장의 혼란을 내려 보고 있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병들. 앞으로.”
사내는 한 손으로 대검을 들어 정면을 가리켰다. 영웅을 만들 시간이다.
“죽은 자들에게 죽음을 알려 주자.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