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35화 (236/388)

235. 불씨 던지기 (1)

맑은 하늘에 까마귀와 매가 맴돌고 있었다. 저들은 종전의 사자들이다. 전투가 할퀴고 간 상흔 위에 얹는 딱지들이다. 페르난데스는 퍽 감상적인 기분으로 전장을 내려보고 있었다.

구릉지 아래, 저 먼 곳에선 시체를 태우는 불길로 검은 연기가 실선처럼 오르고 있었다. 전쟁은, 시작처럼 갑작스럽게 종언을 맞이하고 있었다. 라비라타가 멀지 않은 이 지점까지 그들은 단 한 차례의 교전도 패배하지 않았다.

-다각, 다각, 다각.

기마 한 필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두꺼운 모직으로 몸을 둘러싼 사내가 바람을 거스르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곧, 사내는 페르난데스의 곁에 서서 함께 전장을 내려보았다.

“강녕하셨습니까.”

“네가 고생이 많았다.”

페르난데스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서로의 안부는 이미 먼발치에서 확인했었다. 마법사가 마법사의 영역에 들어갈 때에, 적의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마력 회로의 흐름을 동조하는 식으로.

그는 천천히 후드를 젖혔다. 늙은 수인이 검은 이빨을 드러내며 킬킬거리고 있었다.

“수인 호족들의 불만이 상당합니다. 이번 전투에서, 그리고 지난 전쟁에서 제국 것들은 몸을 보신하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어찌하고 싶다더냐?”

“다음 전투엔 직접 나서지 않겠다는 족장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전선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군벌들인바, 전력 누수가 심각합니다.”

“그리하라 하거라.”

수인들의 피는 충분할 정도로 흘렀다. 그들의 저력을 완전히 꺾어 두는 것은 페르난데스의 계획이 아니었다. 수인에겐 추후, 머지않은 미래에 맞서 싸워야 할 적이 남았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체라드의 병력을 해소시키는 것은 충분했습니다만, 이제 곧 라비라타의 본대와 마주할 겁니다. 그때의 전력에 제국 것들의 힘으로 충분할는지요.”

파르탁의 의문은 타당했다.

제국군은 전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일정 이상의 피해가 누적되면 지체 없이 퇴각해 수성에 전념했다.

황야 동부에서 남부로 이어지는 기나긴 전선은 오직 에르브 공작과 수인 호족들의 힘으로 구축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마주한 군세는 체라드의 수인 반군들이 모인 군벌에 소수의 망령 군단이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따라서 체라드를 이용할 수 있는 페르난데스는 전투의 승리를 쉽사리 조작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체라드의 병력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이용 가치가 다한 체라드는 파르탁에 의해 제거되었다.

남은 것은 라비라타의 본대이며, 이는 에르브 공작 홀로 결코 이겨낼 수 없는 상대였다.

“제국군은 이제,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할 것이다.”

“제국 귀족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셨습니까?”

“고작 놈들을 충동하는 데에 손을 쓸 필요까진 없지. 놈들은 이제 애가 탈 것이니.”

* * *

그 즈음, 제국 귀족들의 막사에는 혼란이 감돌고 있었다.

라비라타까지 하루 거리에서 일어난 대규모 회전은 제국군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체라드의 수인 병력은 갑작스레 소실된 지휘부의 공백에 흔들려 뿔뿔이 흩어졌다.

대립 대족장이 실종되었다. 아마도, 암살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라비라타는 당연히, 지휘의 혼란을 힘으로 억누르고자 했다.

실책이었다. 라비라타의 강압적인 정책으로 그녀의 휘하에 들어온 수인들은 자신의 우두머리를 암살한 흉수가 라비라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적들의 내분이 격해지고 있었다.

라비라타의 본대는 아직 건재하다. 그녀는 자신의 궁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방어 진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 말은, 그 외부의 모든 영토를 포기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지금의 대황야는, 과거와는 달리 비옥한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보급선도 확보되었고, 이 인근에 전초 기지들이 하나둘 건설되고 있소. 평원 동부에서 남부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토양에 제국의 군기가 흩날리고 있단 말이오!”

“누가 그걸 모른다 하오? 지금 궁금한 것은, 대체 우리가 왜 이기고 있냐는 것이오!”

제국의 지휘부 또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의 전술 기조는 최대한 피해 없는 퇴각이었고, 퇴각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병력 소모를 수인과 공작에게 전담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국군은 전쟁에 있어서 어떤 호전성도 없이, 제 자리를 지키다가 눈치를 보며 퇴각하기만 하고 있었다.

“이미 에르브 공왕의 군공이 압도적이오. 우리가 손쓸 틈조차 없단 말이오! 말해 보시오. 대체 이게 어찌 된 노릇이오?”

“우리 서로를 탓할 이유가 있소? 에르브 그 머저리는 대체 저 스스로도 이길 수 있는 전쟁에 왜 중앙의 지원을 요청한 것인지나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소?”

귀르의 불타는 성채 기사단장, 에버라드가 차갑게 말했다. 그의 말에 순간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우연이라 여길 수 없다. 적의 병력은 초기에 관측된 것보다 명백히 허약해, 제국 중앙의 전 병력을 서부에 돌릴 필요조차 없었다. 공작은 자신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리뷔에를 다스리고 수인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논지가 사실이라면……. 에버라드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술잔으로 목을 축였다. 그는 천천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보급로가 안정되었다고 했소?”

“물론이오!”

전선 보급을 총괄하는 제국 중앙 원수부의 수석 재무경, 도나트가 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업무를 의심하는 것이냐고 소리 높여 말하려다가, 곧 창백하게 질리며 입을 다물었다.

에버라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보급선은 분명 인근 통상 무역으로 확보되었겠지?”

“……그렇소.”

“그리고 그 거래 전반이 리뷔에와 그 근방 영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맞소.”

“제기랄. 함정이군.”

에버라드는 이마를 감싸며 투덜거렸다.

“리뷔에의 경제 기반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중앙을 이용한 것이었어.”

“하지만 대체 왜……. 에르브 공작이 머저리가 아니라면, 이런 단순한 짓을…… 우리가 전쟁이 끝난 이후에 곱게 물러날 것이라 생각했단 말이오?”

“그럼? 이제 와서 에르브 공작을 공격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명분은? 에르브는 이 전쟁 전반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군공을 세웠소. 이미 리뷔에 주를 넘어서 제국 서부 선제후령 전체에 그 이름이 퍼져도 남았을 시간이라오.”

이제 와서 황제가 리뷔에를 공격한다면 다른 선제후들이 가만히 좌시하겠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선제후들은 제국의 선제후 직위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황실 또한 엄밀한 관점에선 ‘선제후’에 속한다.

완전히 몰락했다가 이제 막 발돋움하는 리뷔에를 견제하기보다는, 동부 왕국과의 무역항로가 활성화되며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는 귀르를 압박하는 편이 더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이런 빌어먹을. 누구 생각이지?”

“에르브 공작의 계략이…….”

“놈의 심계였다면 이제 와서 할 이유도 없거니와, 그 곰 같은 사내에겐 이런 섬세한 책략이 있을 턱이 없소. 에르브 공작은 고작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휘하 궁내귀족과 변경 귀족들의 충성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몰락하고 있었지 않소.”

누굴까? 다른 제후들과 접촉하며 짜낸 계략이 아니다. 그랬다면 황제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어떤 제후들과의 접촉 없이 제후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는 판도를 만들어낸 솜씨다.

‘수인은 아니야. 놈들은 제국의 정치 역학에 밝을 수가 없다. 공작 그 작자도 아니야. 그가 이럴 수 있었다면, 리뷔에가 몰락하기 전에 행동했을 것이다.’

에버라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그때, 베르나르가 잔을 탁, 내려 놓으며 말했다.

“지금 배후의 책략가가 누군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지 않소? 우리가 에르브 공작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먼저 보아야 하오. 이제 어쩔 생각이오? 이대로 회군이라도 하시겠소?”

“아니, 퇴각은 아니 되오, 베르나르 남작. 황제께선 승리가 필요하시오.”

50년 전쟁의 소모로 인해 황실의 위신이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실추된 상황이었다. 황제 자신의 군공이 필요한 시점에서, 라비라타를 목전에 두고 퇴각을 했다가는 이 자리 모든 이들의 머리가 황실 앞마당에서 참수될 것이 분명했다.

라비라타의 멸망은 반드시 제국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까진 어울려 주마. 에버라드는 눈을 꽉 감고 말했다.

“라비라타를 함락시키는 것엔, 우리 모두가 전력을 다해야 하오. 다행히 지난 전쟁에서 공작과 수인의 병력 소모가 극심하오. 적이 제아무리 허약하다 하더라도 우리 본대보다 더 큰 공을 세울 수는 없을 것이오.”

“라비라타를 점령한 이후엔 어찌할 생각이오?”

“공작을 암살할 것이오.”

“……공작을?!”

좌중이 충격에 휩싸였다. 제아무리 몰락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또 제아무리 중앙 귀족들의 권위가 드높다 하더라도. 공작은 선제후였으며, 그 직위는 황제의 바로 아랫줄에 위치해 있었다.

단순한 하극상의 문제가 아니다. 암살이란 행동 자체가 귀족적이지 못한 행태였을 뿐만 아니라…… 들통나기라도 한다면 무사히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중앙 귀족들이 선제후를 암살 기도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다른 선제후들이 당장에 황제를 폐위시키려 들 것이었다.

“위험하지 않겠소?”

“이대로 전쟁이 끝나고, 아무 일 없이 회군한다면 우리가 죽소. 황제 폐하께선 ‘확실한’ 군공이 필요하시지 않소.”

“끄응…….”

점령지를 공대로 분배한다면 리뷔에와 수인 호족들이 이 드넓은 황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었다.

병력은 병력대로 소모하고, 이득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상태에서 회군한들, 황제가 그들을 살려 두겠는가.

“남작, 아이언사이드가 이 군영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 하지 않았소? 그 치들과 접촉해서 공작의 암살 계획을 수립해 보는 것이 어떻소?”

“알겠소. 내 그렇게 하리다.”

아이언사이드는 암살과 사보타주의 달인들이다. 그 말을 듣고 귀족들의 안색이 다소 밝아졌다. 베르나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폐회를 선언했다.

* * *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파르탁의 시선을 무시하며, 페르난데스는 죽은 병사의 시신을 쪼아 먹는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제국 귀족들의 욕심은 이미 정평이 나 있지. 이윤에 대한 놈들의 본능은 짐승과 같아. 굳이 내가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이, 놈들은 저들 나름대로 추측하고, 궁리하면서 진군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라비라타를 도모하려 한다면, 그래서 끝내 황야의 남부를 놈들이 차지하게 된다면 저희에게도 비극적인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와서 수인 호족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더냐?”

“어쨌건 제 수하들이니, 그 쓸모없는 짐승들이 다치고 죽게 된다면 제 자산이 사라지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생각 이상으로 파르탁은 수인 호족 연합과 깊게 연계한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다.

페르난데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배욕이든, 탐욕이든. 호족의 미래에 악영향이 가는…… 이를테면 악마와 손을 잡는 등의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갱생일까? 그가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었지만, 파르탁의 모습은 과거와는 달리 독기가 많이 빠져 있었다.

“제국 귀족들은 아마도 이렇게 추측하겠지. 에르브와 호족의 힘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투만 이어지고 있으니, 어쩌면 자신들을 불러낸 까닭이 달리 있지는 않겠는가?”

“…….”

“지금까지의 승리에 취해서, 라비라타 또한 별볼일 없는 군벌에 불과하다 여길 것이다. 그리고 군공을 에르브에게 쥐여 주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고. 여기까진 가능한 추측이다. 머저리라도 생각할 수 있겠지.”

페르난데스는 시선을 돌려 구릉지 아래에 펼쳐진 막사들을 바라보았다. 전투를 수습하고 병력을 정돈하고 있는 군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치들은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들처럼 사고하는 줄 알고 있다. 저들 나름의 논리로 기준을 세우지. 자, 놈들이 에르브 공작을 어떻게 여기겠느냐?”

“아마도, 공국의 발전을 위해 전투와 보급선을 확보하려 한다고 여기겠지요.”

“정답이다. 그렇다면 놈들의 향후 대처는 어찌 되겠느냐?”

“전쟁이 끝난다 하더라도 놈들에겐 이제 공작을 직접 공략할 명분이 없습니다. 아마도, 다른 수를 강구하겠지요.”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파르탁의 심계가 마음에 들었다. 고작해야 수인 호족 내부의 정치판에서 구르던 녀석은, 이제 제국 귀족처럼 사고하는 방법도 익히고 있었다.

배움이 빨랐다. 그것은 어쩌면 생존 본능에 근거했을 수 있다. 적응하지 못하면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 흑마법사, 사회 뒤에 스며든 흑마법사들의 운명이었으니까.

“그래, 맞다. 놈들에겐 두 가지 수단이 남아 있지. 공작을 암살하거나, 공작을 회유하거나.”

“어떤 방식이 되더라도, 주군께선 제국군을 공격하시겠군요.”

“그래. 라비라타와의 전투에서 소모된 병력으론, 수인 호족들을 저지할 수 없지.”

페르난데스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의 뒤로 파르탁이 따랐다. 그의 태도는 한결 더 공손해져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군 막사를 향해 말을 몰며 말했다.

“네 수하들에게 일러라. 더 이상의 피를 볼 필요는 없다. 모든 군세를 후방으로 돌리고, 전쟁이 끝난 즉시 제국군을 공격해라.”

“에르브 공작은 어찌하오리까?”

“공작은 영웅이 될 것이다. 영웅이 태어나기 위해서라면 악역이 필요한 법. 제국인들은 악마를 소환할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그렇게 말하며 픽 웃었다. 이번 전투를 기점으로 공왕은 독립을 주장할 것이다. 카르벨리에 왕조의 탄생이다. 이는 당연히, 뭇 선제후들을 자극할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든,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든.

그리고 그 흐름은 곧 그의 손에 들어오리라. 북쪽의 귀르. 카르벨리에 영애와 로베르 황자가 향한 방향. 그리고 동쪽의 데인까지.

제국은 무너질 것이다. 완전히 허물어진 이후에, 새롭게 건설되리라.

“저희는 황야의 주권을 확립하는 선에서 끝나게 될는지요?”

파르탁의 말은, 더 큰 이득은 없냐는 뜻이었다.

암묵적으로 술탄과 황제가 황무지의 주권 쟁탈을 포기하면서, 황야는 수인의 손에 넘어갔다. 그러니 이번 전투는 엄밀히 말해서, 페르난데스의 필요에 따라 수인의 피를 강요받은 전쟁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그 말에 픽 웃었다. 대담해졌군. 마음에 들어.

“너희는 제국을 불태워라.”

“……예?”

“제국의 분열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뭇 제후들은 자신의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서로를 공격할 것이오, 어떤 간웅들은 그 틈을 타서 제 영토를 불리기 위해 군기를 들어 올릴 것이다. 난세가 도래하고, 그 시기의 전투는 모두 서로에게 명분을 쥐어 줄 것이니. 너희는 제국을 불태우고 그 땅과 성을 너희의 것으로 삼아라.”

북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온 순간부터, 페르난데스는 더 이상 대악마의 개입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전생을 기반으로 생각했을 때에, 남은 가장 큰 사건은 저 먼 서남부 평야에서 올 대침공뿐이었다.

대카간 카라드스카르의 북진은 지금으로부터 족히 20년 후에 일어날 사건이다. 본디 에리크의 침략과 맞물려 문명 사회의 혼란과 쇠락이 이어져야 할 시기가 암중에서 마무리되며, 사회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물론, 문명 사회가 강대해지는 것은 그에게 호재였다. 그러나 평온 속에 살찌우는 이들이 저 스스로 타락하고 있었다. 미래가 바뀌며 생기는 균열이 그에겐 결코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 큰 사건들. 예상치 못한 참변과, 반드시 의로워야 할 위인들의 타락이 이어지기 전에. 썩은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선 난세가 필요했다. 난세는 영웅을 담금질하는 용광로가 될 테니. 그 사이에서 전생의 영걸들이 일어서리라.

대악마는 아직 셋이나 더 남았다. 이들의 침략은 비록 그 순서와 시기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변수는 항상 존재하는 법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홀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평화로운 세상이 문제가 된다면, 직접 혼란을 일으켜 다스리면 된다.”

영웅의 타락이 평화에 기인했다면, 혼란은 영웅의 탄생을 촉발할 것이다. 그리고 혼세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전생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페이자쉬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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