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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38화 (239/388)

238. 불씨 던지기 (4)

말이 달리며 모래가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갑주 위로 모래들이 박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의 노련한 기마술 덕에 그들의 말은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다만 디모니카 특유의 본능적인 방향 감각으로, 처음 진입한 방향과 지도상 왕성의 위치를 역추산해 올곧게 직선으로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자욱한 모래먼지 사이로 그와 속도를 맞추어 달리는 키르하스의 몸이 희미하게 보였다.

-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모래바람 속에서 흩어졌다. 볕이 맑은 늦봄의 정오. 햇살과 모래바람이 만들어낸 황색 장막 너머에서 수많은 실루엣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겁에 질린 말이 투레질했다. 페르난데스는 말의 뺨을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사방에선 전투가, 아니, 학살이 한창이었다. 이곳, 망자들의 도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죽음이 만연한 공간이 되었다.

시가전의 복잡성, 차단된 시야 속에서 돌연 나타나는 망령들의 공격, 그리고 기습적인 재난으로 혼란에 빠진 군영까지. 전투는 이제 종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이다. 아직 종언을 이룰 때가 아니었다. 후방에 남아 구조 작업을 준비하는 제국군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영웅이 탄생할 수 있도록.

이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아직이었다.

-쉬이이이익!

페르난데스가 그의 정면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피한 것은 순전히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녹슨 화살 하나가 섬전처럼 날아들어 페르난데스의 투구를 치고 튕겨졌다. 투구 끈이 끊어지며 투구가 그의 뒤로 날아갔다.

-스르릉.

칼자루를 잡아 뽑아 든다. 공격의 방향도, 적들의 위치도 파악할 수 없다. 사방에서 너울지는 모래바람이 환상을 품고 흔들렸다. 방향도, 감각도 희미해지는 어떤 경계면에서—

-카앙!

쳐냈다. 공격은 우측면, 창날이었다.

“칫……!”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말의 박차를 차고 옆으로 몸을 누였다. 또 다른 창이 날아들어 말의 두개골을 관통했다. 그대로 앉아 있었다면 그의 몸까지 관통할 강맹한 일격이었다.

-쾅!

말이 허물어지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짚고 앞으로 굴렀다. 지금까지 달려온 가속도 탓에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완벽한 낙법이었다. 그는 착지한 자세 그대로 칼을 반 바퀴 돌려 다음 공세를 막아냈다.

-캉! 카드드득! 쾅!

모래 안에서 형체가 나타났다. 악어의 머리를 한 석조 구조물이었다. 뻣뻣하게 움직이는 구조물이 그에게 연신 창을 내려찍었다.

다시금 창날이 내려 꽂혔다. 창대를 치고 그대로 깨끗하게 반원. 그 간격 너머로 들어오는 놈의 팔뚝이 바스러지며 허공을 날았다. 다시금 자세를 잡고 한 바퀴 더.

-카앙!

몸통을 내려찍었음에도 숫제 바위를 찍어 내는 듯한 소리와 타격감이었다. 석상은 그대로 반파되며 무너져 내렸다. 라비라타의 본대…… 해골들은 그저 성벽 위의 미끼에 불과했던가.

그의 예상대로 시가지는 사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놈들이 우글거린다면 흩어진 일반 병사들로서는 상대할 도리가 없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명과 실루엣이 모래 안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키르하스!!”

“은, 은공!”

-타닷!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페르난데스는 낮은 한숨을 쉬며 칼자루를 쥐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곧 키르하스가 나타났다. 그녀 또한 말을 잃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숨을 쌔근거리며 칼을 꽉 쥐고 있었다. 피가 팔뚝과 그녀의 하반신에 잔뜩 묻어 있었다.

“다쳤느냐?”

“말이 죽었습니다!”

“너만 무사하다면 그걸로 되었다.”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의 머리칼을 한 번 헝클였다. 다행이다. 지금은 다만 그 생각뿐이었다.

“거리는, 얼마나 남았느냐?”

“왕성까지의 거리는 아직 멉니다만…… 제게 보이는 길은 멀지 않습니다.”

“왕성이 목적지가 아니란 뜻이로구나. 라비라타가 직접 친전했다는 뜻이겠느냐?”

“확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길이 머지 않았다는 것만은…….”

“그래. 가자꾸나.”

페르난데스는 칼을 빙글 돌려 어깨에 걸쳤다. 두 사람은 모래 너머로, 바싹 붙은 채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 * *

모래사장 위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한참을 홀로 바닥을 짚고 더듬던 손에 돌연 힘줄이 돋았다. 곧, 거구의 사내가 모래를 뚫고 일어서 침을 뱉고 헐떡였다.

보르아였다. 그는 성벽을 넘어 진지를 구축하던 순간에 토사 아래로 빨려 내려갔었다. 그 과정에서 무장을 모두 유실했으며, 지금 이곳은 망자들이 우글거리는 사지였으나. 그의 머릿속엔 그런 것 따윈 들어 있지도 않았다.

“전하!! 전하아아아!! 어디 계십니까. 전하!!”

보르아는 목청 높여 외치며 주위 모래를 마구 흩었다. 그 와중에 무언가 집혀 힘껏 끌어 올리면, 모래더미의 압력과 충격에 사망한 병사의 시체가 나타나기 일쑤였다.

“전하아아아!!”

토사에 휩쓸리며 상처 입은 왼쪽 눈에선 피가 울컥거렸다. 그는 거의 발작하듯 외치며 흙더미를 뒤적였다. 그 순간, 그의 어깨를 향해 무엇인가 날아들었다.

“크……흑!”

화살이 틀어박혔다. 고통이 전류처럼 흘렀다. 보르아는 입술을 씹으며 화살 끝을 부러트렸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자, 모래 너머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빛나고 있었다.

“제기……랄!”

무기가 없고, 시야마저 차단되었다. 망령들은 인간과 달리 눈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는다. 따라서 놈들에게 이 도시는 그다지 문제 될 것 없는 환경이란 말이렷다. 보르아는 황급히 몸을 숙였다.

공작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은 이 시점에, 어쩌면 바로 발밑에 깔려 있을지도 모르는 이 장소에서. 그는 결코 도주할 수 없었다. 반드시 이 위치를 사수하고, 안전을 확보하여 추후에 일어설 부하들이라도 수습해야 했다.

“덤, 벼라!!”

모래를 삼킨 목에서 힘겹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쩐지 저 너머에 있는 존재가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 망령에게 감정이 있을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르아는 주위에 병기를 찾아 눈을 굴리며 사방을 경계했다.

-휘리리릭! 쾅!

무언가가 날아와 그의 발치에 꽂혔다. 반쯤 부서진 제식 장검이었다. 천천히, 무기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바람결에 모래 먼지가 살풋 흩어지며 주위가 잠시 보였다.

“……!!”

기사가 쓰러져 있었다. 저기에도, 이 근처에도. 보르아에게 무기를 던진 기사는 하반신이 으스러진 채로 헐떡이며 모래 구덩이 아래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사방에 그런 이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며 소리 없이 다가오는 망령들과, 해골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몸집의 석상들이 있었다.

“제기랄…….”

남들보다 먼저 일어난 탓에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목숨을 걸고 이 위치를 사수한 탓에 그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방에 쓰러진, 그보다 먼저 흙더미를 치우고 올라왔을 기사들의 분전 덕이다.

“자네, 이름이 뭔가?”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궁금하십니까, 대장?”

하반신이 으스러진 기사가 쿨럭이며 말했다. 투구를 열어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사는 힘없이 손짓했다.

“전하의 위치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토 아래엔 아직까지 살아서 애쓰는 병사들이 무수히 많고, 적들이 가깝습니다. 보르아 대장. 기사의 몫을 하십시오.”

“남은 병력은……?”

“제가 쓰러지기 전까지 이 근처에 기사 열댓 명은 있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건 대장 하나뿐이고요.”

“아니. 둘이다. 자네까지.”

보르아는 반파된 장검을 들어 올리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망령들은 멍하니 서 있다가, 움직이거나 소란스러운 방향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는 다시 멈춰 섰다.

비록 성벽 위의 전투가 한창일 당시에도 그다지 활동적인 녀석들은 아니었지만, 저런 행동은 명백히 이상했다.

“이봐, 자네.”

이에 대해 물어보고자 기사를 바라본 보르아는,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에게 칼을 건넨 기사는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파스스……!

모래더미가 움찔거리더니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살아 있는 인간의 손이었다.

“살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세요.”

공작의 목소리가 아니다. 아마도 전장에 참여했던 다른 병사의 목소리일 것이다.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인간의 애원이다. 리뷔에의, 그의 백성의 애원이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망령들의 고개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망령 하나가 화살을 시위에 걸고 길게 당기고 있었다.

‘나의 기사들이여.’

그 순간. 전투 돌입 직전에 에르브 공작이 했던 마지막 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다만 약자의 죽음을 지켜볼 자신의 비겁함만을 두려워하라.”

보르아는 낮게, 공작의 말을 되뇌고는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상처 입은 몸과 차단된 시야, 충격으로 아직까지 균형이 잡히지 않는 감각. 모든 컨디션이 최악이고, 적들의 위치와 수는 파악조차 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이다.

그러나 그의 뒤엔 살아 있는 병사들이 있다. 이 모래 아래에서, 삶을 찾아 꿈틀거릴 리뷔에의 백성들이.

“나는!! 리뷔에의 보르아다!!”

-피리리릭!

화살 하나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보르아는 칼자루를 급히 틀어 화살을 쳐내고는 외쳤다. 그보다 앞서 이 모래를 뚫고 나왔던 다른 기사들이 했을 방식으로.

“나는 리뷔에의 보르아다!!”

시야가 흐린 상황에서 화살을 쳐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 두 번의 우연은 없으리라. 그러나 다른 병사들이, 하나라도 더 많은 병사들이 퇴각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을 벌어야 했다.

-피리리릭!

죽음이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보르아는 반쯤 체념하며 칼을 휘둘렀다.

-챙!

화살이 칼자루에 튕기는 감각 따윈 없었다. 그러나 적의 화살이 그의 몸에 틀어박히는 일 또한 없었다. 보르아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어깨어림 옆에서 튀어나온 방패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해서 뭐 들리기나 하겠어?”

투구에서 모래를 털어내며 한 기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우리 대장님 목소리 크게 듣는다고 누가 좋아하겠어. 그냥 그러려니 해.”

“뭐야, 너 아직 안 뒤졌냐?”

“니 관뚜껑에 못질하기 전엔 못 죽지.”

“크. 입만 살아서는.”

다른 기사들이, 하나둘 그의 곁에 모이고 있었다. 방패가 모인다. 기병용 대방패가 그의 곁에 늘어서며 벽처럼 쌓였다. 보르아는 잠시 머뭇거리며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크고 작은 상처가 없는 이가 없었다. 모든 이들은 엄밀한 관점에선 후방으로 차출되어야 할 부상병들이었다. 보르아는 찢어진 왼쪽 눈을 한번 쓱 훔치고는 말했다.

“저놈들 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다.”

“그럼 소란을 피워 드려야죠.”

모래를 뚫고 나온 기사들의 수가 많지 않다. 열 명 남짓, 어쩌면 그보다 적을 수도. 보르아는 짧게 웃었다.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리뷔에의 보르아다!”

“나는 리뷔에의 팔렌토다!”

“나는 리뷔에의 가르멜이다!”

기사들이 제각기 목청 높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망령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생존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망령들의 군세를 향해, 그들은 방패를 들어 올린 채 질주하기 시작했다.

“공왕 전하께 영광 있으라! 리뷔에를 위하여!!”

이 자리의 기사들이 어릴 적, 첫 걸음마를 떼기 이전부터. 그들의 아버지가 전장을 누비던 시절부터. 에르브 공작은 그들의 주군이었으며, 또한 사령관이었다.

50년 전쟁 속에서 태어난 어린아이들은, 전쟁으로 아비를 잃고 작위와 검을 물려받으며 어른이 되어 다시 전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비를 죽인 전장을 향해서.

그때에도, 에르브 공작은 그들의 주군이며, 사령관이며, 후견인이자, 또한 스승이었다. 기사들을 이끌고 항상 선두에 나서는 야전 사령관이자, 50년 전쟁 전체를 통괄하는 위대한 선제후였다.

그의 직속 수하들. 그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대검귀족들이 공작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확히 그 정도였다. 아버지, 후견인, 대부, 주군, 사령관……. 대를 이어 자신의 가문을 지켜준 위대한 군주.

그런 이가 그들의 등 뒤에, 모래 밑 어딘가에 있다. 그런 이가, 마지막으로 했던 명령이 바로 ‘백성을 지켜라.’였다.

그러니, 그리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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