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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49화 (250/388)

249. 황제의 눈 (8)

비명을 제외하더라도 불길에 휩싸인 산은 충분히 소란스러웠다. 오래된 나무가 타오르는 소음, 젖은 낙엽과 이끼가 타들어 가며 내는 소음, 화염의 열기에 날뛰는 들짐승이 내는 단말마들까지.

“끄아아아악!!”

“멈추지 마!! 멈춰 서면 죽는다!”

부관들은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길 없는 깊은 숲 속이란 뜻은, 눈에 보이는 모든 공간에 땔감이 있다는 소리와 같았다. 화염 속에서 쓰러지는 나무를 칼로 쳐내며, 병사들은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병사들은 지쳐 있었다. 며칠에 이은 오랜 행군과 전투의 긴장감으로 지친 병사들에게, 밤을 지새며 불타는 숲 속을 걷는 것은 차라리 사형 선고와 다를 바가 없다.

매캐한 연기, 점점 부족해지는 산소로 정신이 아찔해진다. 지독한 열기와 불이 내뿜는 빛, 혼란에 휩싸인 동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뛰는 숨 막히는 순간.

생과 사의 경계. 그 아찔한 순간. 공작의 병사들은 이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지독한 공포와 혼란이 생존 본능과 얽히며 만들어내는 광기 탓에, 병사들은 이제 짐승처럼 뛰고, 허물어져 타들어 갔다.

“기다려!!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

중장기병들은 애저녁에 겁을 먹고 도망친 말들 탓에 병사들과 함께 걸어야 했다. 그들의 경우 오히려 일반 병사들보다 상황이 나빴다. 철은 쉽게 달아오르고, 그 아래의 살은 순식간에 짓무른다. 기사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갑옷을 떼어내며 헐떡였다.

기병대들이 쓰러진다. 가장 선두에서, 가장 큰 의무감으로 길을 뚫어내던 기사들이 쓰러지자, 그다음 남은 것은 오직 혼란. 혼란뿐이었다.

“흩어지지 마라!!”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부관이 건넨 말에 귀를 기울이는 병사 따윈 없었다. 병사들은 공포와 광기에 젖은 채로 온 사방을 향해 질주했다.

-끄으아아아악!!

타오르는 나뭇결이 찢어지는 소리. 불길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분사하는 병사의 괴성. 허물어지는 갑옷의 시끄러운 마찰음. 이 야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정리하자면—

그건 뷜랑 공국 만오천삼백이십 명. 개중 천오백칠십사 인의 기병을 포함해 삼백여 명의 준귀족 포함 고위 장교들. 열한 명의 영주 귀족. 한 사람의 선제후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 * *

페르난데스는 타들어 가는 산의 정경이 마치 횃불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의 곁에서, 기병대장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불…… 당신이 낸 것이오?”

“그래.”

“대체 어떻게? 화공이라는 건 이렇게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산 속에서 화공을 염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화공이라는 것은 단순히 불을 크게 낸다고 능사가 아니다.

불이란 방향성을 특정하기 대단히 어려운 병기다. 불을 지른다고 그것이 곧 아군에게 유리한 진형으로 타들어 가란 보장이 없으며, 저렇게 큰 산의 경우 적의 눈에 띄지 않고 대규모 방화를 저지르기 위해선 아주 까다로운 사전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가 이 산에 들어선 것은 고작 적 병력의 입산 하루 전의 일이었고, 그의 곁에 내리 함께 있었던 기병대장으로서는 화공을 준비하는 모습 자체를 본 적이 없다.

페르난데스는 기병대장에게 픽 웃으며 말했다.

“알면 다칠 텐데.”

“그럼 궁금해하지 않겠소. 그나저나 지독하군. 저 안은 지옥이 펼쳐져 있을 거야.”

만오천 명의 병사가 저 산 안에 갇혀 있다. 불길을 뚫고 내려온다 한들 어마어마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생존한 이들은 더 이상 ‘병사’라고 부를 수 없는 꼴이 되어 있으리라.

-흐으으…….

그때, 숲의 외곽을 향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타들어 간 머리칼과 검게 그을린 얼굴, 전신에 엉겨 붙은 화상 자국. 철기를 모두 버리고 내달린 탓에 빈손과 빈 몸으로.

하나둘씩, 약 백여 명가량의 병사들이 덜덜 떨며 나와서 한참 비틀거리다가. 더 이상 주위에 불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대로 허물어졌다.

“……제기랄. 정말 해야 하겠소?”

“전쟁의 죽음에 존귀함이 따로 있던가?”

“뭐요?”

“하찮은 죽음과 존귀한 죽음이 따로 있냐는 말이다. 저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창칼을 받아내 쓰러지면 명예로운 죽음이고, 비참한 꼴로 무력하게 쓰러지면 하찮은 죽음인가?”

“그건 당연하지. 이건 전투도, 사냥도 아니오. 도살이요!”

“맞아. 도살이지. 그리고 전투의 끝에, 사냥의 끝에, 도살의 끝에. 모두 공평하게 칼 반대편 사람은 죽는다.”

페르난데스는 혀를 차며 기병대장의 손에서 장검을 빼앗아 들었다. 스르릉, 서늘한 소리에 기병대장은 마치 제 머리가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어 목을 움츠렸다.

“명예란 전쟁에 나설 일 없는 호사가들이 만들어 낸 가장 허울 좋은 헛소리다. 죽음은 존귀하지도, 하찮지도 않아.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리고 내겐 자네들을 살릴 의무와, 이 전투에서 승리할 의무, 그리고 추후 수인족과 카르벨리에 공왕에게 반드시 적이 될 이들을 확실하게 꺾어야 할 의무가 있다.”

페르난데스는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화상과 탈진으로 허물어진 뷜랑 공작의 병사들은, 불길 속의 트라우마에 여전히 사로잡혀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페르난데스의 그림자가 그들의 머리 위에 길게 내려앉았다. 불타는 산을 등에 지고, 페르난데스는 새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기병대장을 바라보았다.

“명예와 자긍심은 권리에 불과하며. 승리와 생존은 나의 의무다. 자네, 내 말에 반대한다면 기꺼이 칼을 들어 대적하라. 명예를 위해 승리를 방기하겠다면, 마지막 변론의 기회를 주겠다.”

-키이잉.

페르난데스는 기병대장을 향해 곧게 칼을 뻗었다. 기병대장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서슬 퍼런 눈빛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사들의 정의(定義)는 승리다. 명예로운 패배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패자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죽음과, 처자식의 암담한 미래. 그리고 불타오르는 고향뿐.

수인 호족들의 경우. 부족 간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은 곧 부족 전원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생존 그 이상의 문제였다. 그런 자들 사이에서 살아온 기병대장은, 감히 페르난데스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콰직!

칼이 떨어지고, 병사의 척추가 끊어졌다. 메마른 장작을 바스러트리는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메마른 장작을 다루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무미건조한 행동들이 이 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수인들의 경계망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뷜랑 공작의 병력 중, 생존자는 절반 이하였고. 생존자 중 영지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이들은 그 반수가 되지 못했다.

여덟 선제후의 나라. 제국의 근간 그 한 축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 * *

르브르는 수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키르하스가 이끄는 대황야의 군세는 아무런 저항 세력 없이 뷜랑 지방의 모든 영지들에 입성했다.

수많은 농경지, 드넓은 목초지가 수인들의 지배하에 들어섰다. 그 전까지 르브르 전역을 약탈하던 수인 도적 떼는 키르하스의 등장과 동시에 도주했고. 키르하스의 군단은 르브르 지방의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주둔군을 재편해 나갔다.

유일하게 저항하는 도시는, 영지의 주도. ‘뷜랑 시’뿐이었다.

“세포르 공자는 들으라! 그대들의 저항은 무의미하며,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길 원할 뿐. 침략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다!”

수인들의 군대가 뷜랑 시를 포위하고 있었다. 앙투앙의 유일한 적자인 장 르망 드 세포르는 아직 앳된 소년에 불과했고, 그에게 그의 아비와 같은 권위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뷜랑 시에 남은 얼마 되지 않는 병사들, 그리고 그나마 남아 있는 행정 귀족들은 불안감 속에서 떨었다. 본대의 연락이 끊긴 것이 벌써 일주일이고, 수인들의 군세가 밀어 닥친 것은 닷새 전이었다.

고작 닷새 만에 르브르 지방의 드넓은 영지들이 모두 항복한 것이다. 닷새를 온전히 질주하는 것에만 썼다 하더라도 그 정도의 속도는 비이성적이다.

냉정한 군사 지휘관들이 있었다면, 이런 정보들에서 적들의 전략을 역추산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르브르 지방엔 남은 병력이 전무했고, 약탈에 피폐해진 도시들은 수인 군세의 깃발만 보고도 항복을 외치며 성문을 열었다.

키르하스의 군세는 지금 사방에 흩어져 있는 셈이다. 동시에 모든 성들을 집어삼켜 반란의 싹을 없애려는 급박한 시도다. 만일 노련한 지휘관이 있었다면 그 틈을 타서 활로를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령관들은 모두 앙투앙과 함께 전선으로 향했고, 이 자리엔 행정 귀족들과 어린 소년만 남아 수인들의 군세를 맞이해야 했다.

“항복해야 합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오! 항복하면 끝이오! 다른 선제후들이 개입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오!”

“저 짐승들은 영지 수호를 명분으로 삼았소! 그런 치들이 감히 직접적으로 우리를 죽이기라도 하겠소?”

“그렇지 않으면? 노예로 전락해 수탈당하는 미래뿐이겠지! 제후로서의 권리도, 귀족으로서의 신망도 모두 잃고, 제국의 지원을 바랄 수도 없을 거요!”

“지금은 누가 우릴 도와주고 있기라도 하답니까!”

귀족들의 회의실에서 고성이 오갔다. 항복해야 한다. 며칠만 버티면 공작의 군대가 도착할 것이다. 그 며칠을 우리가 버텨낼 수가 있느냐. 뷜랑 시의 외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그러한 언사가 오고 가는 와중에도, 그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 있었다. 끈적한 절망감. 수인 도적 떼들의 약탈부터 인근 제후들에게 보냈던 지원 요청이 모두 거절된 이 상황에서, 그 누가 이 영지를 구원할 것인가.

“아버지는……. 돌아오실 거야.”

“공자님. 밤이 늦었습니다. 돌아가서 쉬시지요.”

“아니. 아버지께서 부재하실 때엔 내가 이 영지의 주인이다. 아버지께선 날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어. 나는 남겠어.”

장 르망 드 세포르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멍청한 귀족 자제가 아니었다. 그는 총기 있는 소년이었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도 늙고 교활한 행정 귀족들의 사이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그때, 회의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시종이 뛰어 들어왔다.

-쾅!!

“이게 무슨 추태냐! 어전 회의다!”

“큰일, 큰일,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시종이 더듬거리며 말하려다가, 이내 울먹이며 넙죽 엎드렸다. 시종은 참람한 표정으로 울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공왕 전하의…… 전하의 관을……. 저들이. 저들이 공왕 전하의 관을 운구하겠다며…… 성문의 개문을 청하고 있습니다…….”

“……뭐라?”

“저들이 말하기를…… 도적 떼의 습격으로 공왕 전하께서 승하하셨으니, 이를 추모하고 장례를 거행하기 위해 성내에 입성하고자 한다 합니다.”

“헛소리다!!”

행정 귀족 하나가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만오천이 넘는 대군이 고작 도적 떼에 무너졌고, 공왕 전하께선 그 과정에 전사하셨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하지만…… 제가…… 크흡. 제가…… 봤습니다. 제가 직접 제 눈으로 봤습니다. 전하.”

장 르망은 시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히 말했다.

“저들이 정녕 그리 말했더냐. 아버지께서…… 도적 떼들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셨다고?”

“예, 전하.”

“공자님. 거짓말입니다! 저들이 공왕 전하를 암습하고 이리 꾸며내어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수로……? 카르벨리에 공왕의 군사들은 제국 수도에 주둔 중이고, 수인들의 군세는 서쪽에서 이제 막 진군해서 고작 닷새가 지났다. 아버지의 군사들은 동쪽에서 넘어오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수로 저들이 만오천 병력을 괴멸시키고 아버지를 참할 수 있었단 말이냐?”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행정 귀족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그렇다. 불가능하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만오천 명의 대군이 회전을 치렀다면 그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물며 저들의 군세가 들이닥친 것이 고작 닷새 전이었다.

소년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저들이 공식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이…… 만오천 군사들의 죽음이 정녕코. 도적 떼 탓이라 한다면. 그렇다면…….”

그리고 그 도적 떼가, 수인 대족장의 진군과 동시에 항복하고, 흩어졌다면.

“우리 가문은 고작 도적 떼에 몰락한 첫 번째 선제후로 역사에 남겠구나.”

“……공자님…….”

“우리 가문은…… 세포르 공작가의 긍지는. 위대한 명성은 고작…… 고작 닷새 만에 정리되는 도적 떼의 손에 무너졌구나.”

그렇게 말하며 소년이 쓰러졌다. 충격과 절망감 속에 혼절한 것이다. 그를 수습하는 귀족들도, 시종들도. 그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만, 끈적한 절망감만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날이 밝은 이른 아침. 뷜랑 시의 문이 열렸다.

세포르 공작가는 공식적으로, 영지의 수비와 군사의 관리 전반을 대족장 키르하스 하트테이커에게 위탁한다.

키르하스는 신의와 명예를 걸고 세포르 공작가를 수호하겠노라 선언했으며, 세포르 공왕 대리. 장 르망 드 세포르는 그녀를 가문의 제일 기사로 임명한다.

선제후가 타국의 괴뢰 정부로 전락한 것은 제국 천 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이에 대해 제국 정계엔 이런 소문이 돌았다.

삼백 명으로 만오천 명을 무너트린 귀신 같은 야전사령관이, 키르하스의 수하 중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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