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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51화 (252/388)

251. 기밀작전 : 심판

이단심문청은 창사 이래 그 어떤 순간보다 많은 심문관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베오른의 총소집령 이래로 직급을 불문하고 모든 이단심문관들이 본청 아래에 발이 묶인 것이다.

따라서 디모니카들조차도 이 순간, 수도원 내부를 감도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 목청을 낮췄다. 역사상 가장 많은 요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수도원은 그 어느 순간보다 고요했다.

그리고 그 수도원의 내실에, 한 디모니카가 걷고 있었다. 이제 황혼기를 향해 나아가는 거구의 사내. 제피스였다.

-똑똑.

“누군가.”

“형제님, 제피스입니다.”

“들어오게.”

수도원장의 집무실 문은 시끄러운 경첩 소리와 함께 묵직하게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제피스는 잠시 멈칫했다. 눈 밑이 거멓게 물든 베오른이 서류더미 아래에 파묻혀 있었다.

수도원장의 거대한 책상 위엔 수많은 서류 뭉치들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평소 철두철미하게 보고서를 처리하던 베오른에게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제피스는 자신의 손에 쥐인 서류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걸 건네는 것이 도의적으로 올바를까. 고민은 짧았다. 그는 테이블 위로 보고서를 올리며 베오른의 앞에 기립했다.

“뭔가?”

“작전 제안서입니다.”

“교황청의 명령상 본청의 모든 작전은 잠정적 중지일세. 돌아가게.”

“그럼 형제님께서는 어째서 침소에 드시지 않습니까?”

제피스는 베오른의 맞은편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베오른이 찻잔을 건네자 가볍게 목례하고는 차를 들어 마셨다.

“얼마나 되셨습니까?”

“사흘.”

“형제님은 디모니카가 아닙니다. 지금 상황에 형제님께서 쓰러지시면 수도원은 끝입니다.”

베오른은 그의 말에 픽 웃었다. 단 한 사람의 부재가 조직 전체를 무너트릴 수 있다면, 그건 시스템의 문제였다. 제피스가 하는 말은 걱정이 아니라, 지적에 가까웠다.

교황의 이단 조사 금지령은 상황상 여의치 않은 결정이었다. 이단 조사라 함은 필연적으로 세속 왕국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일이다. 그들은 협조라 생각하지 않겠지만, 오직 교회의 권위만으로 이단을 척결하고 조사를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속세의 귀족들, 그 귀족들과 밀접한 연결 고리를 가진 사교도들. 뒷골목과 그림자 아래에 숨어들어 평범한 민중으로 변장한 이단들을 불태우기 위해선 명분과 실리가 모두 필요했다. 그리고 교회는 공의회 선언 이래 세속의 권위를 가장 크게 잃어버린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단 조사를 시도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세속 왕가를 자극할 수도 있었다. 당장 동부 왕국의 왕가들은 베이타서스 교회를 의심하고 있었고, 샤일드 교회에서 중립 규약을 어긴 이후 교회의 권위는 점점 더 치명적으로 실추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단심문청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었다. 그들이 민중을 잡아들이고 이단을 화형시키는 가장 큰 명분은 교회의 중립성 탓이었기에.

그러나, 그러므로. 지금 베오른의 과중한 업무 부담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이단심문청이 기능을 상실했는데, 수도원장이 바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디 봅시다. 팔가스 평원의 사교도 조사 요청. 볼프라임 시의 연쇄 실종 사건. 음. 이건 가르댄 지방의 사건이로군요. 이건 트롤의 짓입니다.”

“……형제.”

“이단 사건들을 분류하고 계십니까. 이게 다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당장 조사에 착수할 수조차 없는데?”

“형제. 우리가 멈추면 누가 이들을 구원하겠는가.”

베오른은 보고서를 잠시 옆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그는 피로에 찌든 눈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신음했다.

“지금의 상황이 언제 풀릴지 나도 모르겠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지. 우리가 멈춘 이 시간만큼. 우리의 발걸음이 한 발자국 멈춰 선 만큼. 악마 추종자들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네.”

“행동하지 않은 선의는 악의와 다름없음이라.”

“참회는 추후에 함께 하세나. 우리 모두가. 하지만 지금, 우리가 행하지 않음은 더 큰 악을 근절코자 함이니. 만신전이여…… 아니. 주 베이타서스시여, 가호하소서.”

베오른은 눈가를 누르던 손을 떼어냈다. 그의 외눈이 피로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언젠가 다시금 우리의 족쇄가 깨어지는 날에. 적어도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네. 사교도들은 그 어떤 순간보다 크게 활개치고, 거짓 예언자와 배교자들은 우리에 대적하려 들 것이니.”

“그 준비를 형제님 한 사람이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형제여. 내가 하는 업무는 교황 성하와 교황청의 의사에 반하는 일일세. 추후 문제가 생기더라도, 배교자는 나 한 사람이면 족하지 않겠나.”

“가로되, 우리 갈 길 언제나 같았으니. 다시 만날 때까지 기도드리세.”

제피스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베오른의 눈앞에 밀었다. 베오른은 천천히 보고서의 낱장을 열었다. 평범한 작전 제안서였다. 그러나 목적지가…….

“팔텐노이아……. 황실을 노리나?”

“그리고 샤일드 교회를 노립니다.”

제국의 수도, 팔텐노이아. 샤일드 교회의 가장 큰 교구가 자리한 곳이자 문명 사회의 심장부. 그리고 아마도…… 흡혈귀들이 만든 둥지 중 가장 거대한 성일 것이다.

때로, 어떤 종양은 평생 이고 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절개하는 즉시 숙주의 목숨을 끊어내는 종류의 종양이 그렇다. 교회의 입장에서 팔텐노이아는 그런 종류의 종양이 되었다.

만신전 교회의 고위 수도사들은 모두 황제의 타락을 의심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악마 사교도로서의 타락이 아닌, 흡혈귀로서의 타락을.

그러나 황제를 적대하는 순간, 제국 전역의 친황제 계열 파벌들은 교회의 권위에 대항할 것이다. 교권과 왕권의 대립이 치열해질수록, 교회를 등진 귀족들의 곁엔 ‘다른’ 선택지가 생겨날 것이다.

타락. 제국의 절반이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진다. 그뿐이랴. 황실의 기능 정지는 곧 대륙 동부 절반의 정지를 의미한다. 교역이 끊기고 경제가 동결되며 기근과 전쟁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때론, 어떤 종양은 평생의 천형이다. 그러나 때론, 그런 종양을 끝내 들어내야 하는 의사가 필요한 법이다. 환자에게 종언을 고하고, 죽을 것이 뻔한 환부를 절개하는. 의사보다 장의사에 가까운.

“감당할 수 있겠나?”

“주께서 바라신다면.”

“교황 성하께선 기다리라 하셨네.”

“성하의 뜻은 반드시 옳습니다. 하지만, 어찌 모든 목자들이 옳은 길로만 향하겠습니까.”

베오른은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펼치고서 잠시 멈칫했다. 그는 차마 그 마지막 문장에 서명을 넣을 수 없었다.

모든 목자들이 옳은 길로만 향할 수는 없다. 때때로 어떤 목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양 떼를 위해 가시밭길을 거닐어야 하는 법이며, 어떤 이는 자신의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떨어져 빛나야 하는 법이다.

제피스의 제안서 또한 그런 결로 볼 수 있다. 그의 요청은 다음과 같았다.

“제 역할은 파비아노 수사에게 일임했습니다.”

완곡한 종류의 파문 요청. 수도사가 교황의 뜻에 반해 성사를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수도복을 벗고 속세로 떠나 자신의 업을 수행하겠노라는.

“그 형제는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자네가 그럴 필요는 없네.”

“이번 작전에 성공한다면 교회의 권위를 회복하고 수도원의 성사를 재개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희생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주께서 바라신다면. 주여 기꺼이 그리되리다.”

“형제여.”

“가로되 교회 밖에는 구원 없으니. 저 어둔 밤 속 어린 양들을 어찌하리오.”

그리 말하고 제피스는 웃는 낯으로 베오른을 바라보았다. 베오른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후렴을 이었다.

“우리, 세상의 등대 되려 주께 탄원한 이들이며, 이리에 맞서 앞서 걷는 칼 든 목자 되리라.”

“그간 감사했습니다.”

“그대의 앞길을 주께서 인도하시길.”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두 수도사는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제피스는 보고서를 내려놓고는 등을 돌려 떠나갔다. 끼이익, 탁. 녹슨 경첩이 메마른 소음을 내었다.

홀로 남은 수도원장실에서, 늙은 수도사는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 중 가장 밝은 이를 먼저 데려가시니. 천상의 별이 되게 하심이라.”

* * *

뷜랑 시의 외곽. 호족 연합의 군단이 숙영지를 이루고 있었다. 도시는 이미 도시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뷜랑 시는 전초 기지로 전락했으며, 호족 연합의 전사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은 ‘치안 유지’라는 명목하에 승인되었다.

대족장은 뷜랑 시의 약탈을 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징발’이라는 말로 도시와 인근 영지의 물자를 확보했으며, 물류 유통과 인구 이동은 호족 연합의 군대에 의해 철저히 감시되고 있었다.

세포르 공작 대리, 장 르망은 대족장에 의해 억류되었다. 뷜랑 시는 이미, 수인 호족들의 영토로 편입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그 엄중한 감시망 속으로, 한 사내가 걸어가고 있었다.

“누구냐!”

창을 비껴들고 관문을 지키던 수인 보초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동부에서 이어지는 관도, 다른 모든 방향과 달리 수도로 이어지는 무역로에서 오는 이들은 더 거친 감시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 깊은 밤중에 어떤 미친 여행자가 홀로 돌아다닌단 말인가. 심지어 관문에 가까이 다가온 저 사내에게는 등불이나 횃불 같은 것들이 전혀 없었다.

마치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사내는 관문 초소의 불빛 아래에 이를 때까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밤눈에 밝은 수인들의 입장에선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저 눈. 검은 그림자 속에서 빛나는 음울한 푸른 눈이 수인들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정지! 정체를 밝히고 무장을 해제하라!”

“비켜라.”

“뭐?”

사내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관문 초소의 앞에 섰다. 보초들은 그제야 사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흑발의 젊은 청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모든 수인들이 알고 있는 청년이었다.

대족장의 오른팔. 모든 전장에서 가장 앞서 달려나가 가장 거대한 전공을 세우는 야차.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삼백여 명의 기병으로 십만 대군을 분쇄했다고도 전해지는 전설적인 사내였다.

“페르닌…… 공!”

“그래. 내가 돌아왔다. 비켜라.”

“제기랄, 피! 부상을 입으셨습니까? 거기! 군의관을 불러라!”

“군의관은 무슨. 그냥 술 한잔 내오거라.”

페르난데스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으며 걸었다. 그의 상징적인 대검 두 자루가 횃불 아래에서 반짝하고 빛났다. 보초들은 그의 말에 잠시 경탄한 듯 몸을 움츠렸다.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전사’의 모습이다. 수인들은 경외심을 담아 고개를 숙이며 길을 열었다.

-멍청한 것들.

페이자쉬가 큭, 하고 웃었다. 페르난데스는 웃음기 없이 걸으며 다가온 수인이 건넨 술병을 그 자리에서 뜯어 벌컥 마셨다.

물론, 디모니카의 간 기능은 술 따위에 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건 모두 연기였다. 페르난데스는 그 어떤 인간들보다 수인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내였다.

수인들은 ‘거친 남자’와 ‘나쁜 남자’에게 매료된다. 그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강자’에게 현혹된다. 페르난데스가 술병을 단숨에 비우고 병을 집어 던지자 이제 그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시선은 거의 존경심에 가까워졌다.

척 보기에도 복부에서 흘러나온 핏물은 결코 가벼운 부상이 아니었다. 갑옷이 완전히 우그러지며 그 사이로 상처 입은 살결이 비쳐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 비틀거림 하나 없이 우직하게 걸으며 술을 들이켜는 사내는, 수인족들이 존경하는 ‘사자의 심장’ 그 자체였다.

페르난데스는 싸구려 독주로 씁쓸한 입가를 한번 다시며 걸었다.

명분이 부족할 땐 우상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키르하스에겐 더 강력한 권위가 필요했다. 그걸 위해서라면 이런 광대짓도 할 만했다. 대족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그가 수인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그건 고스란히 키르하스의 덕으로 이어질 터였다.

페르난데스는 영웅을 만들어 내는 것에 능했다. 그리고 그건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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