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56화 (257/388)

256. 선악의 구분법 (4)

팔텐노이아의 외성이 지평선 끝자락에 드러났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국의 수도는 제국 산업, 공업과 문화의 중심지다. 그건 곧 팔텐노이아의 창공을 뒤덮는 검은 매연들이 단순히 먹구름은 아니란 뜻이었다.

팔텐노이아, 이른바 해가 비치지 않는 도시다. 도심 한복판에서 밀려 나오는 검은 연기들은 현대화된 공학의 산물이다. 이 위대한 도시는 그 탓에, 사시사철 그림자 아래에 어스름이 묻혀 있다.

“위용이 대단하구나……. 샤를, 그 시기엔 그저 철기를 제법 다룰 줄 아는 인간 부락에 불과했거늘.”

아벨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용의 입김처럼 검은 매연이 똑바로 하늘을 향해 치솟고, 하늘 저 위 어딘가에서 넓게 퍼지며 구름을 만든다. 그 사이로 이따금씩 새파란 전류가 흘렀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먹장구름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건 마력 회로를 다루는 공장에서 흘러나온 부유물이고, 저 아래엔 통제받지 않는 원초적인 마력이 비산하며 흩어지고 있을 것이다.

“다른 부락들이 청동기를 간신히 사용할 때에 철물을 다룰 줄 알았다면, 이제 철물을 다루는 다른 국가와 달리 ‘기술’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겠지.”

“훌륭하다.”

아벨은 따듯하게 웃었다. 수도의 상황은 대기를 오염시키고 자연을 입맛대로 재단하는 등의 행동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그녀는 이에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페르난데스가 그에 대해 묻자, 아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저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더냐? 자연이란 표현조차도 우습구나. 물질 세계는 언제나 생존을 경쟁하지 않았더냐. 범이 발톱을 기르고 뱀이 이빨을 다루듯이, 인간은 기술로 경쟁하는 것뿐이다.”

오랜 용의 시각은 다른 이들과 사뭇 다른 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불멸자들이 갖는 공통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수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뒷자리에서 요란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죽겠다!! 저 연기는 대체 뭐냐!”

“마력석을 태우고 나오는 부산물이오.”

“여신이 죽는다! 여신은 아프다!”

프레이야는 꽥꽥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 척 보기에도 그녀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신성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수준의 마력은 아니라 하더라도, 팔텐노이아의 대기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못 참겠구나!!”

프레이야가 꽥 소리치며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끝에서 꽃망울 하나가 터지더니 푸릇한 잎사귀를 쌓아 올렸다. 그녀는 잎새 사이에 얼굴을 묻고 헐떡거렸다.

“도착하면 깨워라!”

저건 일종의 멀미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삐를 당겼다. 곧 구릉을 넘어, 이제 본격적인 관도에 들어섰다.

야트막한 언덕에서 저 아래로. 드넓은 평야 지대 너머 거미줄처럼 이어진 관도가 보였다. 저기 보이는 작은 줄기 하나하나가 설령 군단이라도 진군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고, 그 한가운데에 위치한 팔텐노이아는 거의 풍경의 정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건립 이래 단 한 번도 이 성스러운 고대 도시가 전장으로 전락한 역사가 없다. 그 말은 곧, 저 도시의 성가퀴를 이루는 벽돌 가장 작은 한 단이라 할지라도 천 년의 역사를 지닌 고대 유적이란 의미였다.

하여, 팔텐노이아는 그 자체로도 마법적인 힘을 지닌다. 충분히 오래된 역사는 신화가 되기 마련이고, 천 년이라 함은 천상 전쟁 이후 문명 사회가 형태를 띤 초창기부터 지속된 기간을 의미했다.

아직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던 시절. 사막이, 정글이, 초원과 삼림이 인간의 적이었던 시절. 거주지 밖 모든 세상이 적대적이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팔텐노이아는 인류의 문명을, 그리고 인류의 의지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저 스스로 맥동하는 거대한 도시를 향해. 한 마차가 천천히 가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꽃덤불로 장식된 아름다운 마차가.

* * *

“정지! 신원을 밝히시오!”

“카르벨리에 공왕 전하를 뵙기 위해 찾아왔소. 전하께선 어디에 계시오?”

꽃으로 장식된 싸구려 마차라는 조합은 너무 눈에 잘 띄었다. 페르난데스가 수도 관문을 넘을 때에, 관문 경비병들이 대뜸 그들을 멈춰 세우고는 다가왔다.

“총사령관님의 객인가?”

“리뷔에와 뷜랑 근방의 급보가 있소. 공왕 전하께 직접 아뢰어야 할 일이니 안내를 부탁드리겠소.”

“증명할 수 있겠나?”

“공왕 전하의 가신단 중 내 얼굴을 알고 있는 이들이 많소.”

“좋네. 거기 너! 림바르가 37번지로 이자들을 안내하게!”

“예!”

경비병들의 검문은 놀라울 만큼 합리적이었다. 이 시기 다른 영지나 소국들의 관문 경비대 중에 뒷돈을 받지 않는 이들이 없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이 그랬다.

-의심스럽군.

페이자쉬가 툴툴거렸다. 사실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의심스럽다.

황실의 타락이 명백한 이 상황에서 시스템이 너무나 체계적으로 잡혀 있었다. 더군다나 이 외성 관문 수비대의 안색이나 시선에서는 흡혈귀 따위에게 상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몸을 잘 감춘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페르난데스는 경비병의 안내를 따라 말을 몰며 생각에 잠겼다.

* * *

당황한 페르난데스의 얼굴을 보며, 에르브는 멋쩍은 표정으로 차를 마셨다. 페르난데스는 곧 인상을 찌푸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직도 황제를 친전하지 못했다는 뜻이오?”

“입궐 허가가 좀처럼 나질 않더군. 내가 황제라면 수도에 병력 없이 들어온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 텐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오.”

페르난데스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상하다. 뭔가 놓친 것이 있었나? 페르난데스가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카르벨리에 공작을 찾은 것은, 황제의 술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황제가 생각이 있는 자라면, 지금 수도 인근 지방을 모두 점거하고 있는 카르벨리에에게 모종의 영향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정치적이든, 마법을 이용한 것이든 간에.

그러나 에르브 공작의 입궐을 지금까지 거절하고 있다고? 에르브 공작이 팔텐노이아의 수비를 담당한 지가 벌써 두 달 하고도 보름이 넘게 지났다. 그 긴 시간 동안 제국 전역에선 내전의 싹이 올라오고 있고, 황실의 권위는 더없이 실추된 상태다.

에르브 공작을 회유하거나 타락시키거나, 또는 죽여 없앤 후에 인근 병력을 집어삼키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장 올바른 수였다. 그러나 황제는 지금 황실 내부에 칩거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어쩔 생각인가? 곧장 궁궐을 찔러 보겠다면, 나는 개인적으로는 반대하고 싶네.”

“당연히 그렇게 하진 않을 거요.”

황실의 방비 수준을 떠나서 황궁 자체를 허가 없이 침범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명분 싸움에서 크게 밀리게 된다. 단순히 승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페르난데스에겐 ‘완벽한 승리’가 필요했다.

제국의 팔다리를 뜯어내고, 새살을 돋우는 과정에서 아무런 불협화음 없이 르네 필리파에게 제위를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짜내야 했다.

귀족들은 정치적인 생물이며 특히 선제후들이란 귀족 중의 으뜸이다. 황제를 먼저 공격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제위를 노려 황실을 범한 공작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권력은 칼끝에서 나오는 법이지만, 내전이 눈앞에 닥친 지금. 도드라지게 행동한 이후에도 역풍을 맞지 않기 위해선 정치적인 명분이 완벽해야만 했다.

“교회에 다녀오겠소.”

“좋네. 그러면 나도 따로 수를 내어 보지.”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따로 예를 차리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털고 방을 나섰다.

* * *

에르브의 저택에 짐을 풀고 있자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무장을 점검하며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흐린 하늘 저 너머로 군청색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시커먼 매연 탓에 도시는 언제나 어두웠지만, 도시의 밤은 차라리 칠흑에 가까우리만치 어둑했다.

하나둘, 마력등에 불이 들어와 을씨년스러웠다. 창백한 빛무리를 흘리는 마력등을 바라보며, 페르난데스는 대검을 돌려 차고는 밖으로 나섰다.

“홀로 가십니까?”

“쉬고 있어. 여정이 길었잖아.”

“은공.”

“괜찮대도. 그냥 교회에 정보나 들으러 가는 거야. 그리고 너는 외부에 얼굴이 알려져서는 안 되는 입장이 아니냐.”

따라나서던 키르하스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이미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키르하스가 지금 이 시점에 수도에서 발견되어 좋을 일이 없다.

정보는 숨길수록 강력해지는 무기다. 외부에서 키르하스는 지금 황무지 중심으로 돌아갔거나, 뷜랑 인근 어딘가에서 수인들을 다스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의 부재가 드러난다면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키르하스는 절호의 한 수였다. 그녀의 능력과 그녀의 직책은 추후의 싸움에 필요할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 이런 잡스러운 정보 탐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페르난데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칼을 한 차례 쓰다듬었다. 키르하스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잠시 내고는, 그의 옷깃을 살짝 쥐었다.

“요즈음 은공의 표정이 더러 풀리셨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표정이?”

“예, 확연히.”

페르난데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키르하스는 비죽 웃고는 손을 놓았다.

“솔직히 처음, 저는 은공께서 무슨 기계 장치쯤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요. 웃고, 농담하고, 근심하고.”

“신뢰성이 떨어졌다는 뜻이겠군.”

페르난데스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기계 장치와 같다는 의미는, 항상 동일한 입력값에 같은 수준의 기댓값을 출력한다는 뜻이었다. 그건 마도학자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이었다.

그러나 키르하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오히려 지금이 더 믿음직스러우십니다.”

키르하스는 페르난데스의 장구를 여미고는 어깨에 붙은 먼지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주위를 훑어보았다.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와락, 하고 그녀의 팔이 페르난데스의 목 주변을 감쌌다. 그의 넓은 가슴팍 아래에 폭 파묻혀서는 한참 얼굴을 비비고는 천천히 떨어졌다.

다소 딱딱히 굳은 페르난데스를 올려 보고는, 키르하스는 불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기분이 나쁘셨나요?”

“아니.”

“그러면 웃어 주세요.”

“키르하스.”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머리칼을 한 번 쓰다듬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쾌락과 행복은 쉽게 쟁취할 수 있다.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그런 감정들은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가? 아니, 아니다. 책임 없는 호의는 차라리 적의와 다를 바 없음이라. 적어도 오늘날은 아니다. 아직 그녀를, 그녀의 마음을 책임질 입장이 아니다. 그는 아직 안주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는, 고개를 돌려 걸어 나갔다.

“위로 고맙구나.”

“……네, 은공.”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며 키르하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멀구나. 그리고 항상 멀어지는구나. 잡힐 듯하면 흐드러지는 그림자처럼.

* * *

창 앞에 서서 문가를 바라보던 아벨이 고개를 숙였다.

“린드부름. 기운 내. 저 목석 같은 사내에게 뭘 더 바랐던 것이냐?”

“글쎄. 뭐라 해야 할까. 답답하구나.”

아벨은 슬프게 웃고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프레이야가 그녀의 곁에 앉아서 조잘거렸다.

“마음에 찾아들 때엔 더없이 무례하고, 그 마음을 쥐려 할 때엔 더없이 매정하구나.”

“저 녀석이 왜 저러는지 알아?”

“알다마다. 그이의 마음엔 다른 이가 있다.”

“……뭐?! 뭐야. 뭐야, 뭐야? 누군데!”

“나도 모른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지, 어쩌면 이미 태어나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지.”

그녀의 말에 프레이야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예언자였나? 저 남자. 하긴 예언자 같긴 했어. 그래도, 미래를 보고 미래에 있을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낭만적이긴 하지만 좀 소름 끼치는데?”

“복잡한 사정이 있다 했다. 먼 미래에 만날 여인과 자식까지 낳아 살게 된다더구나.”

“그래서 넌 어쩔 건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벨의 시선이 방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키르하스가 방문을 열려다가 그 앞에 멈춰 서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벨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이가 말하기를, ‘정해진 운명은 없다.’ 했으니. 포기할 수 있겠느냐.”

함께 노력해 보자꾸나. 아벨은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문 앞에서 타닥, 하고 뜀박질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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