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59화 (260/388)

259. 선악의 구분법 (7)

밤거리를 점점이 밝히는 마력등이 마치 물결처럼 흐르며 뒤로 사라졌다. 빛이 잔영으로 보일 정도의 전력 주파였다. 바람 소리가 마치 칼을 가는 듯 귓가를 울린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도 명확히 들리는 소리가 단 하나 있다면—

[오거라.]

단 한 문장. 음산하고 질척한, 수십 마리의 파리 떼가 날갯짓하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서 윙윙 울렸다.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강하게.

[오라, 이단심문관이여. 너의 죽음을 향해 오라. 네 죽음을 순교라 칭하고자 한다면, 그걸로 좋다. 바라는 것이 오직 자신의 죽음뿐이니, 이 얼마나 숭고하고 겸허한 자세란 말이더냐.]

환청이 겹치며 소리가 된다. 소리는 주술적인 리듬으로 점점 더 노이즈를 얽어 갔다. 깜빡이는 마력등, 벌레의 거친 날갯짓 소리, 희뿌연 안개와 따갑게 죄여 오는 적의…….

주술. 악랄하고 질척한 주술이다. 오감이 얽히고 대지가 뒤틀리며 방향감각이 서서히 희미해진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를 달리고 있는 자는 디모니카다.

-콰드드드득!

페르난데스는 달리는 자세 그대로 허공을 내려 그었다. 아무것도 없는 희뿌연 안개 너머에서, 칼끝에 살점이 걸리는 감각이 여실히 느껴졌다.

뿌드득,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 허공에 숨어 있던 형체가 육편이 되며 흩어진다. 놈은 바로 부활하겠지만 상관없다. 그 시간에 이미 페르난데스는 오 미터 넘는 거리를 주파하고 있었다.

숨이 가빠 온다. 폐활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무와 주술이 그의 호흡을 앗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아니, 인간의 것이다. 인간의 정점에 닿아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종이 가진 한계에 한없이 근접한 존재의 것이다.

언젠가, 멸망 없이 유지된 종이 언젠가는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의 정수. 우연과 기적, 그리고 진화의 정점. 그 장구한 세월을 넘어 빚어 낸, 신의 축복이 바로 디모니카이며—

-콰직, 콰직, 콰지지지직!

디모니카란 절망의 가장 깊은 나락에서도 두 발로 대지를 딛고, 하늘을 바라보며 진창을 걸어갈. 인간이 가진 의지의 표상이다.

-콰드드드득!

육편이 빗발친다. 페르난데스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으며 연신 칼을 휘둘렀다. 때론 위에서, 때론 옆에서, 때론 발밑 그림자 아래에서 악마들이 튀어 올랐다.

만일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면 살점과 악마로 이어진 길목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피와 죽음으로 이루어진 길이다. 지옥의 단면을 쪼개어 물질 세계에 현현시킨 것과 같은, 잔악하고 질척한 길이다.

‘우리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치 말라. 화평이 아니오, 다만 칼이노라.’

이단심문청의 경전을 속삭인다. 네가 아니오, 다만 나의 양들이로다. 너는 이리 앞에 가장 앞서 나설 칼을 든 목자 되리니…….

“어둔 밤을 밝히는 횃불이요, 악의 권세에 맞선 초병이요, 거친 바다를 밝히는 십자성이니!”

벅찬 호흡을 떨쳐 내며, 폐부를 찢어 내듯이!

“그대, 나를 두려워하라. 선한 이들의 양이오, 악한 자들에겐 용이 되리니.”

그 발걸음 멈춤 없이 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앞으로. 팔텐노이아에 도래한 지옥의 심부를 향해 앞으로.

“밤이 깊을수록 등불이 밝게 타오르듯이. 우리는 화평이 아니오, 다만 칼을 들고 왔노라. 그대, 나를 두려워하라.”

덤벼드는 악마가 많아질수록 칼날을 휘두르는 손길이 복잡하게 얽힌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검격은 단순히 적의 목숨을 끊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일격, 그리고 일격이 허공에 자수를 긋는다.

한 획, 그리고 다시금 그 위로 한 획. 달리며 휘두르는 칼날의 궤적이 마치, 수인처럼.

“우리의 이름이 불길이다!”

마지막 한 획을 그으며 페르난데스가 고함쳤다. 신성 주문의 삼 요소는 기원, 기도, 그리고 기적이다. 페르난데스는 묵빛 대검을 빙글 돌려 납도하고, 거의 동시에 등허리에서 다른 검을 뽑아 올렸다.

새하얀 빛무리가 검신을 따라 불타오른다. 그 자체로도 영혼을 태워 버릴 정도로 강렬한 신성이다.

호흡에 섞여 핏속을 달리는 악마의 독소가 일거에 불타 사라진다. 끔찍한 격통이 전신을 휘감고, 그 충격으로 두 눈이 충혈되어 핏물이 흘러내렸다.

-스겅!

그대로 내려 긋는다. 세상을 찢어 내는 듯한 묵직한 반발이 손아귀에 느껴져, 그의 악력으로도 자칫 칼을 놓칠 뻔했다. 그러나 그 틈을 비집고 앞으로—

[대단하군.]

속삭임이 들렸다. 페르난데스는 충혈된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에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 * *

더운 공기가 몰려들었다. 페르난데스는 온통 붉게 변한 시야가 단지 그의 뺨을 가로지르고 있는 혈루 때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계와 환각 주술로 감춰진 황제의 금지. 이 장소는…….

-끄으으으…….

-그어억…….

실험실이었다. 느하리픽시가 직접 운영하는 실험실. 이곳은 오직 고통과 절망만을 배양하는 거대한 배양조였다.

차라리 시체라고 믿고 싶어질 만큼 끔찍한 육신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 사이를 걸어 다니며 차트에 무언가를 작성하고 이따금씩 실험체들에게 자극을 가하던 이들이, 거의 동시에 페르난데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피와 진물로 얼룩덜룩해진 하얀 가운을 입은, 밀랍처럼 창백한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유리알처럼 무감각한 눈동자로 페르난데스를 응시했다.

“결계를 직접 찢고 들어온 자는 처음이로군.”

인간들의 입이 열리며 동시에 같은 음성이 메아리쳤다. 페르난데스는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폈다. 넓다. 거대한 토굴, 제도 한 구획의 바닥을 모조리 들어내고 그 구획 안에 살던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는 듯했다.

희미한 신음과 피 끓는 숨소리가 안개처럼 떠다니는 공간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손아귀 안에서 뜨겁게 맥동하는 성검을 꽉 움켜쥐었다.

-페르난데스, 진정해라.

‘난 지금 그 어떤 순간보다 냉정해.’

페르난데스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경전을 외우고 신성 주문을 펼친 것은 다만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일 뿐. 격렬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럼 전략은?

‘모조리 불태우고, 느하리픽시를 죽인다.’

-좋군.

페이자쉬가 클클 웃었다. 페르난데스는 칼날을 빙글 돌려 자세를 다잡고는, 그대로 이교도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저자는 가늠할 수가 없구나.”

둥지의 깊은 곳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이며 떠올랐다. 그 존재는 저 멀리, 자신을 향해 똑바로 달려오는 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콰득!

시야 하나가 꺼진다. 그의 하수인들이 곧 그의 눈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그가 정성스럽게 가꾸고 힘을 나누어 주며 생육시킨 그의 자손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콰득!

시야 하나가 또다시 명멸했다. 방금 죽은 자손이 본 마지막 광경은, 새파란 귀화를 안저에 품고 달려드는 맹수의 것이었다.

둥지 안에 도사린 존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안광이 점점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깜빡이더니. 여덟 개로 분열했다.

“마법을 쓸 줄 아는 것이 분명한데, 검을 저렇게 다룬단 말인가?”

그의 하수인을 불사르던 모습은 분명 마법사의 것이었지만, 칼끝의 정교함이 그의 눈으로도 좇기 버거울 정도로 예리했다. 도저히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재주는 아니었지만, 직접 본 이상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니, 전략을 바꿔서…….

“정면 승부는 어리석지…….”

안광이 하나둘 꺼져 가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어둠 속에 동화되며, 느하리픽시는 음산하게 웃었다.

* * *

점점 눈을 뜨기 어려워져, 어느 순간부터인가 페르난데스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싸우고 있었다. 신성 주문의 백래시로 육신의 기능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열쇠검이 갖는 부하는 설령 디모니카의 몸이라 할지라도 버겁다. 일반인은 쥐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조각나 죽을 정도로 강력한 신성이 어려 있는 칼이다. 그걸 쥐고 전투에 임하며, 오히려 그 내부의 신성을 강제로 끄집어 냈으니 멀쩡하길 바라는 것은 오만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성’이다. 뭄토의 사령술은 그의 장기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었고, 사다르켈리사의 하수인들은 그저 힘으로 부딪쳐 오니 차라리 대적하기 수월했지만…… 우르카시아의 수족들은 그렇지 않다.

놈들은 역병과 해충을 부린다. 그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칼로 베어낼 수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마법을 펑펑 써대기엔 이 몸에 걸린 제약이 너무나 심했다.

그러니 마법은 결정적인 순간에만 활용해야 했다. 페르난데스는 섬세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불길을 살짝 건드렸다.

-퓍!

터져 나가는 육편을 향해, 작은 불똥이 핀포인트로 날아가 박혔다. 곧 육신이 타들어가며 잿가루로 변했다. 마력 쐐기를 박아 넣는 감각으로, 최소한의 마력을 사용해서 최대한의 효율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스르릉. 철컥.

주위에 더 이상 숨을 쉬는 개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페르난데스는 칼을 빙글 돌려 납도했다. 칼날이 칼집 아래에 물리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이곳은 놈의 공방이다. 느하리픽시는 결코 이 장소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성기사들, 또는 이단심문관들이 대대적으로 이 장소를 정화하려 드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그 오만한 준신이 고작 한 사람의 침입에 도주를 택할 리가 없었다.

-왜 덤비지 않지? 놈답지 않군.

‘더 지친 척을 해야 할까?’

-관둬라. 네 연기는 형편이 없다.

페이자쉬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페르난데스는 간신히 회복되기 시작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불에 타들어간 시체들, 그리고 아직 완전 연소되지 않은 시체들이 보였다.

-왜, 기도라도 하고 싶나?

‘그것으로 충분하다면.’

하지만, 행동 없는 선의는 악의와 다름없음이라. 가만히 앉아 기도를 올린다고 바뀔 현실이라면, 이런 지옥 같은 풍경은 이 세상에 없어야만 했다.

-저들의 처지를 동정하나?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나?

‘자격이라.’

페르난데스는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우리가 불태운 마을들, 우리 손에 죽은 ‘무고하신’ 영혼들. 그 치들이 지금 우리 모습을 보면 참도 대단한 회개를 하셨수다, 하고 감탄이라도 하겠어? 이봐, 페르난데스. 영혼의 변질은 참을 수 있어도, 과거가 없는 듯이 살진 마. 그건 못 참겠거든. 역겨우니까.

‘우리에게 누군가를 단죄할 자격이 없다는 말. 그래, 옳은 말이야.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적어도 우린 그럴 자격이 없지.’

하지만, 우리가 그날. 저물어가는 프리지아 향을 기억하는 이상. 우리에겐 아직 ‘자격’이라 할 만한 것이 남아 있다.

이 자리에 희생된 이들을 연민할 자격. 저들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가 다르지 않으므로. 저들은 차라리 죽었지만, 그는 그럴 수도 없으니까.

악마에 의해 고문당하는 영혼을 끊어내는 것은 안락사다. 저들의 고통뿐인 삶에 종지부를 찍어내는 것은 자비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다. 그의 삶이 곧 형틀이었으나, 그 형틀을 방기하는 것은 도피에 불과하다.

목적이 있는 이상 멈출 수는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 전체를 온전히 바쳐 얻어낸 기회이므로. 결코 그럴 수는 없다.

그러니, 그에게 있는 유일한 자격은 후회뿐이다. 후회할 자격. 적어도 그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 하나만 내게 남아 있다면, 이 삶의 끝이 어디로 흐르든 아깝지 않으리라.’

페이자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와 페르난데스의 격차는 이제 좁힐 수 없이 틀어졌고, 기억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사고의 구성 자체가 전과 같지 않다.

그러나 단 하나. 그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건 결코 그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리라는 것뿐이었다.

휴식은 끝났다. 페르난데스는 칼을 뽑아 어깨에 걸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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