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61화 (262/388)

261. 선악의 구분법 (9)

토굴 밖으로 나서니 어느덧 어슴푸레 날이 밝아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뻐근한 어깨를 풀며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딱딱하게 굳은 피들이 가루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갑옷, 그리고 그 아래에 받쳐 입은 옷에 핏물이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경장 갑주에 대검까지 두 자루나 끼고 있는 용병의 행색인지라, 피까지 엉겨 있으니 더없이 흉흉해 보였다.

골목을 벗어나 한참 더 걸어가서, 폐쇄된 지역에서 나오자마자 인기척이 들렸다. 사람들은 그의 몰골을 보고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고, 이따금씩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청력이 좋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귀찮기만 하다. 페르난데스는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피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잠시 멈춰 주십시오.”

“무슨 일이오?”

다소 긴장한 표정의 경비병이었다. 아침 순찰 중이었는지, 경비병은 페르난데스의 몰골을 보고 흠칫거리며 칼자루 위에 손을 얹었다.

“사고를 당하신 겁니까?”

“친 쪽은 아니오만.”

“잠시 시간을 내어 주셔야겠습니다.”

귀찮게 됐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걸어 다녔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어야 했다. 과다 출혈로 인해 사고가 저하된 것이 틀림없었다.

“걱정 마시오. 내 피니까.”

“아, 네. 그러시……? 아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싸움이 있었습니까?”

“굴렀소.”

“굴러……?”

경비병은 얼이 빠진 얼굴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설령 망루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하더라도 저 정도의 피가 뿜어져 나오진 않을 텐데.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옷에 묻은 혈흔은 상처 따위가 아니었다.

경비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럼 병원까지 동행하겠습니다.”

“한숨 자면 나을 거요.”

“대체 어느 누가 그런 상처를 입고 한숨 자면 낫는다고 합니까. 정말 선생님 피가 맞습니까? 그 정도 혈흔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히 움직이시는 겁니까?”

“하.”

페르난데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무겁고 몸이 뻐근하고 며칠간의 철야로 피로가 중첩된 데다가 혈액 손실로 정신도 아찔하다.

육체의 기능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당장 필요한 것은 기름진 식사와 충분한 물, 그리고 수면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다소 날이 선 표정으로 경비병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경비병이 경계심 어린 눈으로 주춤 물러서며 칼자루를 움켜쥘 때, 페르난데스는 여상한 몸짓으로 천천히 건틀릿을 벗었다.

-철컹.

벗겨진 건틀릿이 바닥에 떨어지고, 장갑과 아대가 해제되며 그 위에 쌓였다. 하나씩, 하나씩 양팔의 갑주를 풀어낸 페르난데스가 경비의 눈앞에 팔을 들이밀며 말했다.

“보시오.”

“이게…… 무슨……?”

맨살이 드러난 몸엔 흉터가 가득했다. 찢어진, 베인, 뜯어져 나간, 갈라진 흉터들. 낡고 묵은 흉터에서부터 피딱지 얹은 흉터와, 생살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깊은, 새 흉터까지.

마치 깨진 거울이나 거미줄처럼, 보이는 모든 살갗에 빼곡하게 흉터가 얹어져 있었다. 아직까지도 몇몇 흉터에선 붉은 선혈이 울컥이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비는 그 충격적인 모습에 압도되어 뒤로 주춤 물러섰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인데, 보고 싶다면 보여 주겠소만.”

“아니, 대체 어떻게…… 어쩌다가 이런. 습격을 받았습니까?”

“나는 베이타서스의 고행 사제요.”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품에서 로사리오를 꺼냈다. 그는 베이타서스 교회의 로사리오를 경비 앞에서 한 차례 흔들고는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여상한 일이지. 신경 쓸 것 없소.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행을 좀 했을 뿐이니. 피해자도 없고, 가해자도 없는데 내 신병을 구속하겠소?”

“아니,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고생하시오.”

경비병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비켜서자, 페르난데스가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길을 떠났다.

* * *

그리고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비를 다섯 차례 더 지나친 이후에야 페르난데스는 에르브 공작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귀족 거주 지구는 경비가 더 빡빡한 탓에 피로가 정점에 달했다.

이젠 거의 시체가 걸어 다니는 몰골로, 페르난데스가 저택의 문을 두드리려 손을 들어 올리자 문이 저절로 왈칵 열렸다.

“은공, 대체 밤새 어딜 그렇…… 세상에!!”

“소리 지르지 마, 키르하스. 머리가 울린다.”

“꺄아아아아악!!”

“아.”

키르하스는 거의 혼절할 만큼 비명을 질러 대고는 그대로 페르난데스를 들어 올렸다. 양팔로 페르난데스를 안아 올리고는 그대로 저택 안으로 와다다 달려 나갔다.

“내려줘. 머리가 울려. 흔들린다. 그만둬.”

“은공! 정신을 꽉 붙들고 계세요! 제가 금방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키르하스는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러 댔다. 그 서슬에 저택에 있던 모든 시종과 급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가, 같은 수준의 비명을 내질렀다.

전신이 피 칠갑이 되어 있고, 여전히 피를 뚝뚝 떨어트리는 반시체가 수인 대족장의 품에 안겨 있었다!

“대족장 어르신!! 아침부터 시민을 죽이셨습니까!?”

“여긴 팔텐노이아입니다. 어르신! 대체 무슨 짓을……?”

“공왕 전하를 불러!! 빨리!!”

키르하스는 비명 지르는 시종들을 향해 사자처럼 포효했다.

“다들 닥쳐! 빈방은 어디에 있나!!”

“이, 이, 이쪽입니다!!”

페르난데스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키르하스는 그를 들어 올린 채로 시종의 손짓에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말을 꺼낼 겨를조차 없이 그 거친 발걸음에 숨이 턱 막혀 왔다.

‘내 상태가 말이 아니긴 하군.’

-보기 아주, 아주 흉하다. 하하. 이건 기록 수정에 남겨야 하는 건데!

‘다들 닥치란 말 못 들었어? 키르하스는 지금 너한테도 말한 거야.’

-오, 미안하지만……. 키르하스의 침묵 주문은 영체한텐 소용이 없다네.

‘대답 안 한다.’

-‘페르난데스의 토라짐’.

페이자쉬는 끊임없이 킬킬거리며 그를 따라다녔다. 곧 키르하스는 닫혀 있는 방문을 발로 걷어차 박살 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 서슬에 문을 열어 주려던 시종이 겁에 질려 주저앉았다.

“은공, 잠시만 계세요.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당신 곁에 있습니다!”

“난 괜찮다. 키르하스. 그냥 잠을 좀…….”

“주무시면 안 됩니다!!”

-쾅!

키르하스는 순간 거칠게 침대를 내려찍었다. 충격에 페르난데스가 컥, 하고 숨 막힌 소리를 지르자 곧 애처로운 눈으로 그를 올려 보며 말했다.

“이렇게 피를 흘리시고 처치 없이 주무시면 위험합니다. 은공, 디모니카 형제님들이라고 모두 불멸의 존재인 것은 아니에요. 디모니카 형제님들도 선종하실 수 있습니다…….”

“내 몸 상태는 내가 더 잘 알아.”

“저희 어머니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었어요…….”

“아.”

페르난데스는 울먹이는 키르하스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제기랄, 외통수로군. 곧 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의원으로 보이는 노인과 에르브 공작, 그리고 아벨과 프레이야가 나타났다.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꼴이냐!”

“보아하니 죽을 상처는 아니로구나. 여신은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아벨이 기겁하고, 프레이야는 다시 침실로 올라갔다. 모두가 프레이야의 행동에 잠시 멍하니 서 있을 때, 아벨은 괘념치 않고 다가와 누워 있는 페르난데스의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조사를 하러 간다 하지 않았더냐. 조사가 언제부터 토벌이 된 것이냐.”

“중간까진 정말 조사였소.”

“그럼 왜 중도에 돌아오지 못하였느냐. 함께 나섰다면 이보다 수월하지 않았겠느냐.”

“빠져나올 수 없었소.”

“……고난이 있었구나. 내가 미안하다. 너를 타박하는 것은 아니나, 내 스스로 속상해서 그러했다.”

아벨이 글썽이는 눈으로 상처 입은 페르난데스의 팔뚝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흉터가 많이도 늘었구나. 상처가 너무 많아서, 이젠 맨살이 더 적을 지경이로구나. 아벨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키르하스가 의원을 끌고 와 강제로 앉혀 두고 턱짓했다.

그녀가 호족 연합의 대족장이라는 것은 이 저택의 모든 인원이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 존재의 명령을 받자 심약한 노인은 겁에 질린 채로 진찰을 시작했다.

그는 잠시 심장 부근의 맥을 잡고, 상체를 벗겨 상흔들을 확인한 이후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러났다.

“저……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은공의 상태는 어떠냐!! 어떤 상태이더냐!”

“체내 기능은 거의 정상에 가깝습니다. 그저 외상이 다소 많을 뿐인데…… 출혈량을 볼 때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하시니 환부를 처치한 이후에 정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상이라고? 피를 이렇게 흘리고도 정상일 수가 있나! 이 돌팔이 같으니!”

“나 정상 맞아, 키르하스. 그리고 그만 움직여라. 머리가 울린다니까.”

방방 뛰는 키르하스의 어깨를 토닥이며, 페르난데스가 에르브 공작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주위를 물러 주시오. 에르브 공작은 픽 웃으며 의원과 시종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무슨 일인지 말해 주겠나?”

“사전에 말했던 대로 샤일드 교회의 교구관 주교와 접촉했소. 그자는 유폐 중이더군. 황제의 정체를 알아챈 대가로 말이지.”

“황제의 정체?”

“놈은 악마와 손을 잡고 생체 실험을 하고 있었소. 팔텐노이아에 역병을 퍼트리고 이목을 차단한 이후에 실험실을 차려 놨더군.”

“역병……! 그래, 그런 사건이 있었지. 그래서 어찌 되었나?”

역병 사건은 에르브 공작이 수도에 진입하기 이전의 일이다. 치안을 유지하는 입장에서 이미 발생한 괴질을 수습할 이유가 없었기에, 해당 구획 전체를 폐쇄한 것으로 족하던 차였다.

다른 문제들도 산재해 있으며, 더 이상 괴질이 퍼져 나가지 않았기에 신경을 끄고 있었던 차였는데…….

“어찌 되기는. 놈들이 살아 있다면 내가 여기에 멀쩡히 있을 수 있었겠소?”

“……하긴. 그랬겠군.”

공작은 다소 안심한 표정이 되었다. 악마 사건 하나를 저지했다는 의미는 지금 이 순간 단지 수도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했다는 뜻만은 아니다.

황제가 악마와 결탁한 이상 그건 황제의 수족 하나를 성공적으로 절제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이제 다음 수는 무엇이 되겠나?”

“황제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오. 황제가 지금껏 정성껏 꾸리던 시설을 파괴하고 악마 하나를 찍어 냈으니, 놈은 몸이 달아 직접 움직이게 될 거요.”

“가만히 기다리는 건 불리하지 않겠나? 자네가 거동하기 어렵다면 내 군대를 회군하겠네.”

“그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일이 그리 쉬웠다면 진작 그렇게 했겠지. 카르벨리에 공작. 그대의 군사들이 팔텐노이아의 외성을 무장한 채 넘는 순간 그대는 반역도가 되오. 당장 성공한다 하더라도 추후의 역풍을 감당할 수 없어.”

페르난데스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뻐근하게 굳어 있는 뼈마디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르하스가 기겁하며 부축했지만, 그는 슬쩍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지금은 황실의 정세를 파악해야 하오. 악마 사건을 공표하고 그 증좌를 수집하는 것은 수월하지만, 그걸 황제와 연관 짓는 것은 지극히 까다로운 일이 될 것이오. 그걸 공작, 그대가 해야 하오.”

“황실에 직접 찾아가야 한단 뜻이군.”

“아마도 그 자리에서 살아 나오기 어렵겠지만…….”

“그래. 황실에서 살해된다면 명분이 내게 돌아오겠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가문에 돌아가겠지.”

싸늘한 사형 선고였다. 공작은 페르난데스의 말에 오히려 웃으며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바른 것을 행동하는 군주의 자세이자, 딸에게 가장 좋은 것을 물려주고자 하는 아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페르난데스 또한 그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차라리 투덜거리거나, 꺼리거나, 겁에 질렸다면 마음이 편했으리라.

“아, 황제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했지. 그건 무슨 뜻인가?”

“그대는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지금 일을 저지르는 것 같소?”

“불멸성을 얻고 영구적으로 제위를 유지하려는 수작이 아니었나?”

“큰 틀은 그것이 맞소. 하지만 과정은 그렇지 않지. 지금까지는 무능했다고 여겼지만, 아니오. 황제는 그저 무능한 머저리가 아니오. 놈은 제국을 의도적으로 분열시키고 있소.”

제국을 영원히 소유하고자 하는 황제가, 자신의 것이 될 국가의 국력을 의도적으로 박살 내고 있다. 선제후 간의 내전은 단지 황실의 권위가 떨어진 탓에 발발한 것이 아니다. 이건 배후에서 황제가 조율하고 있는 의도된 내전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페르난데스 또한 그저 황제가 멍청하고 무능한 탓에 국가가 분열했다고 여겼다. 그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황제가 무능했다면 군왕급 악마를 소환할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또한, 황제가 그저 제위의 유지를 원했다면 우르카시아를 소환하려 계략을 짜지도 않았을 것이다.

먼 옛날, 뭄토가 저 스스로 대악마를 칭했을 때에 당시 대황야 전역을 지배하던 상 아시트 제국은 한순간에 멸망했다. 지금이라고 그러지 않겠는가. 우르카시아의 봉인이 풀리면 이 제국 또한 산산조각 나 흩어지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러니 놈의 목적은 단순히 권력 유지가 아니다. 무언가 다른 술수가 남아 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리한 생체 실험을 벌여야 했을 이유가.

그게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황제의 행보는 단적으로 말해, 그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제위를 유지하려는 이가 제국을 무너트리려 안간힘을 쓰고, 수도에 둥지를 튼 자가 수도 함락 직전까지 방어를 위한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뭐, 이리 말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겠군. 좋네. 내가 가 보겠네.”

“믿을 수 있는 기사 셋을 대동하고, 그중 둘은 황궁 앞까지만 동행하도록 하시오.”

“군사들은?”

“여차하면 수도를 봉쇄할 수 있도록 포위해 두고.”

에르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양하고 있게나. 곧 자네 차례가 다시 돌아올 것이니. 에르브 공작이 그리 말하고 문가를 향해 걸어갔다.

“아, 참.”

그가 박살 난 문 위로 걸어가려 할 때에, 그의 등 뒤에서 페르난데스가 말을 꺼냈다.

“사실 난 그대가 죽지 않았으면 하오. 가급적이면.”

“내 딸을 잘 부탁하네.”

“그건 걱정 마시오.”

“그거면 되었네.”

에르브 공작은 싱긋 웃고는 떠났다. 페르난데스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침대에 몸을 묻었다.

감상적이다. 그건 분명 피로 때문일 것이다. 그는 스륵,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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