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팔텐노이아, 제국의 종언 (2)
물론 황궁이라는 곳이 친절한 마을회관도 아니고 들어가려 한들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제국 선제후이자, 지금 이 근방에서 가장 강력한 군벌인 에르브 공작조차도 입궁 허가를 무리 없이 받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일반적인 경우 선제후의 입궁과 알현 요청은 결코 그 정도의 시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는 지금 황궁의 상태가 거의 봉문에 준할 정도로 삼엄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황궁의 입구를 직접 두드려 들어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교회가 대대적으로 황제를 적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성직자의 신분을 들먹이며 입궁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란 뜻이다.
‘하지만 실험 정도는 할 만하지.’
페르난데스는 손가락을 우득 풀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팔텐노이아는 현대 문명의 중심지이며, 설령 현대 문명 사회 절반이 잿더미가 된다 하더라도 반 세기 안에 재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품고 있는 곳이다.
더군다나 제국은 당대 최고의 마법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 조건들을 취합한다면 쓸 수 있는 가짓수가 당장 두 손에 꼽아도 넘칠 만큼 충분했다.
‘잘들 지내고 있으셨나.’
어두컴컴한 길목에 들어서며 페르난데스는 슬쩍 웃었다.
* * *
바스티스 거리의 일곱 번째 골목 세 번째 문. 도장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파란 문을 바라보며 페르난데스는 감회에 젖어 들었다. 이 시기에 방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때 제법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전생 시절. 페이자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이전. 간신히 스승의 마수 아래에서 도주해 시작된 오랜 방랑 마법사 시절에 몸을 의탁했던 곳.
칼름부르크 마법 학회라는 멋들어진 이명이 만들어진 바로 그 장소다. 팔텐노이아 내부에 위치한 수많은 마법 학회들 중에서 주류 학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떨거지들이 모여드는 곳.
일명 그림자 학회. 그 멋들어진 이명과 달리 이 장소는 각 학파에서 버림받은 마법사들이 숨어드는 곳이다. 방랑 마법사와 흑마법사, 학파 내부의 규율을 어기거나 비전을 빼돌리려 시도한 사도들이 우글거리는 장소였다.
-끼이익.
그런 장소이니만큼 외부의 개입을 극단적으로 꺼린다. 이곳에 상주하는 인원 대부분은 현상 수배범들이었으며, 현상범들 중 다수는 교회가 직접 추살령을 내린 중죄인들이므로.
“어서 오…… 누구쇼?”
겉보기엔 평범한 여인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한 아주 단출하고 허름한 내부. 마른 걸레로 테이블을 닦는 종업원 한 사람과 모닥불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인. 주방 방향 바에서 컵을 만지작거리는 바텐더 한 사람이 전부였다.
“사람을 좀 찾고 싶어서 왔는데.”
“여기가 흥신소로 보이쇼?”
“그럼 묵을 곳은 있나?”
“댁한테 줄 방은 없수!”
종업원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일반적인 여행객이라면 이 장소를 찾을 리가 없기에, 낯선 이가 이 곳을 방문했다면 십중팔구는 마법사다. 그리고 마법사 사회에서 추방된 이들에게 낯선 마법사란 적이나 다를 바가 없다.
“마를린. 너무 박하게 구는군.”
“!! 넌 누구냐!”
매몰차게 말하던 종업원의 눈이 대번에 날카롭게 변했다. 그녀는 뒤로 재빨리 물러서며 품속에서 짧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주방에 있던 사내와 난로 앞에 앉아서 졸고 있던 사내가 페르난데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추방자, 현상범, 방랑 마법사들의 은신처 ‘그림자 학회’. 이런 곳을 찾은 이방인이 가명이나 칭호가 아니라 대번에 본명을 입에 담았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페르난데스는 고요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2층에서 이쪽을 내려 보고 있는 자가 둘, 주방에 하나, 카운터에 하나. 도합 넷이 숨어서 마법을 준비 중이고 정면에 둘은 시선 끌기라.
판에 박힌 듯 익숙한 배치다. 칼림부르크 마법 학회 초창기 시절에도 사용했던, 유서 깊은 전술이었다.
마력의 흐름이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모든 종류의 마법은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굳이 시그니처 스펠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번 경험한 주문에서는 시전자만의 특수한 ‘버릇’을 찾을 수 있다.
획을 꺾는 방식, 수인을 조합하는 편향성, 회로와 회로 사이의 지향성과 같은…….
페르난데스는 픽 웃으며 허공을 짚었다. 우선, 시각 차단의 주술을 시전하는 저놈.
“길슨 리그나스. 제2번 변환절의 활용이 더디군.”
뻗은 손가락을 아래로 긋자, 직조되어 가던 마법이 흩어진다. 천장 위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주문 시전 도중에 발생한 강제적인 차단으로 백래시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 조악한 활용법은 도대체 뭔가. 그 버릇은 고치는 편이 낫네. 마력 누수가 심각해서 효용이 나오질 않는군. 브람 페타스. 다시 해보게.”
다른 손을 들어 내저으며 마력 쐐기를 흘려 넣는다.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은 마법사이며, 그들 또한 마력의 흐름을 얼핏이나마 느끼거나 볼 수 있기에. 그것이 얼마나 깔끔하고 세련된 기술이었는지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배우기만 한다면 어렵지 않다. 정해진 술식에 필요한 마력을 흘려 넣을 수 있을 수준의 회로만 구성하고 있다면, 사실 마법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그러나 시동이 된 마법을 도중에 해체하는 것은 적어도 두 단계 이상의 격차가 필요한 고급 기예였다.
마력을 화살로, 마법 회로를 활과 현으로 비유한다면. 마력 쐐기는 날아드는 화살을 화살로 쳐내는 것과 같은 수준의 기예다. 타이밍, 이해도, 센스.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천장 위에 잠복하고 있던 둘이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압도적인 실력이다. 단순히 두 번의 쐐기를 박아 마법진 구성 자체를 헝클어버린 것이다.
저 정도의 실력자라면, 전투 마법을 시전할 때 이 자리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자가 없다. 기습을 준비하던 이들이 전의를 잃자 날 서게 느껴지던 분위기가 한 차례 꺾여 나갔다.
“어디의 고인이십니까……?”
마를린은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억지로 씹어 삼키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느 학파의 학장쯤이 되지 않는 이상 갖추기 어려운 실력인데, 보이는 외관은 고작 스물에서 서른 남짓. 느껴지는 마력은 한 줌도 되지 않는데 사용하는 기술은 보고도 믿지 못할 수준이다.
“항상 묻더군. 어디의 누구냐. 정체가 뭐냐. 글쎄, 우리 족속들이 어디 정체가 중요하던가?”
“……아니. 힘이 더 중요하죠.”
“그리고 이윤이 그보다 더 중요하지. 그렇지 않나?”
“제 질문이 어리석었군요.”
마를린은 그림자 학회의 수장이다. 거의 십 년을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방랑 마법사로 보냈고, 향후 십 년은 더 그 자리를 지킬 예정이었다.
지난 역사에 의한다면 그랬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후. 페르난데스가 중년에 접어들 그 시점에 마를린은 한 사내를 만나 재도약을 시작했었다.
29세의 페르난데스.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라 불리는 사내의 휘하로. 악명 높은 ‘칼림부르크 마법 학회’의 초기 멤버로.
그녀는, 어리석지 않다.
“저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방랑 마법사는 반드시 객사한다. 따라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방랑 마법사는 반드시 현명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페르난데스는 순식간에 저자세로 변한 그녀를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실험에 인력이 필요하거든.”
* * *
작전 회의가 끝났던 날의 저녁. 아벨은 페르난데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걱정스럽게 말을 꺼냈었다.
“힘든 일이 아니겠느냐? 저들이 교회의 권위를 과연 인정하겠느냐?”
“그럴 리가. 저잣거리에 숨어든 삼류 흑마법사들도 이단심문관이 출두하면 일단 저항부터 하고 보는데, 황제가 악마 추종자이기까지 한다면 결코 순순히 응하지는 않겠지.”
“명분의 문제는 결국 살아남은 이후의 일이다, 페르난데스. 홀로 저들 소굴 안으로 들어선다는 것은 너무 과하게 위험한 일이다.”
아벨은 페르난데스의 몸 상태를 알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인물 중 하나였다. 죽을 위기를 몇 차례 겪고서도 사지 멀쩡히 귀환하는 괴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더라도, 그 대가가 그의 수명이 된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없는 편이 좋소.”
“그게 무슨 소리냐?”
“며칠 전, 내가 추격했던 악마를 쓰러트리는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조금 있었거든.”
* * *
악마를 토벌할 때 페르난데스는 기묘한 충족감과 전능감을 느꼈다. 마치 전생 시절 시그니처 스펠을 사용하던 때처럼. 세상을 오시하는 듯한, 영적인 충족감이다.
그건 마법이 더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이었다. 페이자쉬는 코웃음을 쳤지만, 그 또한 내심 인정하고 있었다. 새로운 마력 회로 활용법의 개척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신성은 마력을 배격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외부의 기물들을 활용해 마법을 제한적으로 사용했어야 했지만…… 그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며칠간 병상에 누워 지난 싸움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페르난데스는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이거…… 큰일 낸 걸지도?’
-확실히 가능성 있는 행동이군. 나다운 일이야.
‘나다운 일이지.’
-네가 나인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당시 사용했던 마법은 순간의 영감과 재치, 그리고 상황의 적절함이 조화를 이룬 일종의 임기응변이었다. 대부분의 마법 창안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뛰어난 마법사는 그러한 ‘우발적 술수’조차도 철저하게 분석하여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법.
페르난데스와 페이자쉬는 마분지에 당시 상황을 그려 넣으며 한참 동안 연구에 매진했다. 육신이 온통 고장이 나 삐걱대는 상황이니 할 수 있는 것이 달리 없기도 했다.
-서걱, 서걱.
수십 장의 도안이 그의 손 아래에서 빚어졌다. 종이 위에 평면으로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의 머릿속에선 당시에 펼쳐졌던 입체적인 마법진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몸 안에 파고든 저주를 마력으로 치환하고, 이를 몸 밖으로 사출하면서 각각의 저주에 마력 쐐기를 박아 넣어 무력화시킨 이후. 그 각 쐐기들을 선으로 이어 입체적인 마법진을 그려낸다.’
-그리고 저주를 건 대상과의 연결점을 활용해 표적지를 유도한다.
‘필중의 공격 주술이 완성되는군.’
일정 등급 이상의 고위 저주들은 모두 시전자와 피해자 사이에 최소한의 연결점이 있다. 이를 저주의 사슬이라 칭한다. 저주는 단순히 피해자의 영과 육에 작용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전자의 의도에 따라 더욱 악화되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사용되는 연결점. 저주의 사슬을 강탈한다. 강탈 순간부터 사슬은 이제 더 이상 시전자의 고삐가 아니다. 그건 그때부터 시전자에게 가해지는 포승줄로 탈바꿈한다.
‘이걸 뭐라 부르면 좋을까. 뭔가 멋진 이름이 필요해.’
-그건 동의한다.
페이자쉬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본디 마법사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마법을 창안하고 신비를 분해하여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부분은, 이름 짓기에 있다. 마법사들이 굳이 쓸데없이 자신의 시그니처 스펠을 외치면서 마법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그건 마치, 기사들이 결투할 때에 서로에게 장갑을 던지는 것과 같은 일이다.
‘명예’. ‘과시욕’. 그런 욕망들의 집약체. 그것이 바로 ‘멋진 시그니처 스펠 이름’이다. 모든 종류의 시그니처 스펠들은 공식적으로 학회에 보고되어 인정받는 순간부터 마법 역사에 길이 남기 때문에, 멋진 이름에 목숨을 거는 마법사들이 널리고 널렸다.
‘페이자쉬의 다섯 왕좌의 손아귀. 페이자쉬의 증오의 연쇄, 페이자쉬의 추방령, 페이자쉬의 바락바르의 붉은 창…….’
-모두 내 역작들이지. 일생의 역작이고, 아주 아름다운 스펠들이야. 스펠 활용의 세련됨을 알아보는 자들에겐 더욱. 장인의 솜씨라고 할 수 있지.
‘……페르난데스의 진홍창.’
-그건 바락바르의 창을 따라 한 거잖아. 자기 복제는 마법사의 죄악이다.
‘페르난데스의…… 유도창.’
-스무 살 시절 내가 이렇게도 창의력이 부족했단 말인가.
‘잠깐 닥쳐봐. 오, 페르난데스의 역전. 어때?’
사냥감과 사냥꾼의 역전. 저주 시전자와 저주 피해자의 관계를 역전하는 마법이니 중의적이고 세련된 이름이 아닌가? 페르난데스가 그렇게 생각하자 페이자쉬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 보았다.
‘그냥 닥쳐. 페르난데스의 역전으로 간다.’
-그러든가.
마력 쐐기를 이어 마법진을 만드는 아이디어 자체는 전생 시절 멘더슨의 것이었다. 어차피 멘더슨은 이번 삶에서 그 마법을 만들어내기 전에 죽었고, 기왕 헛되이 사라질 지식이라면 이렇게 활용해주는 편이 낫지 않은가.
‘심지어 내가 만든 것이 더 효율적이야.’
-아니, 훨씬 비효율적이지.
페이자쉬가 혀를 끌끌 찼다. 저주에 일부러 노출되고, 그 저주를 반대로 활용해 마법을 펼친다는 논지인데. 애초에 그 주문은 시전자보다 세 배는 노련한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상대의 마법을 모조리 분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강탈하기 위해 직접 저주에 노출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그 전에 저주를 해주하는 편이 효율적이니까. 실력 차이가 나면 애초에 마법에 걸리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 저주의 부하를 육체의 강건함으로 때우며 싸우겠다는 뜻이다.
-몸을 아주 죽어라 사용하는군.
‘이제 와서 아낀다 한들 몇 날 며칠이나 장수하겠어?’
페르난데스는 픽 웃으며 손을 털었다. 그래. 이게 최선이야. 그리고 이걸 실전에서 바로 사용할 수는 없으니, 일단 효용성 실험을 좀 해봐야겠군.
* * *
“……?”
그 말을 모두 전해 들은 아벨은 천천히 머릿속에서 이 복잡한 개념을 재구성해 보았다. 마법사가 자신이 방금 개발한 마법을 열정적으로 늘어놓는 것은 문외한에겐 대부분 알아듣기 어려운 개소리로 여겨지기 마련이었다.
아벨은 마법에 조예가 깊지 않다. 그녀에게 마법사들이란 대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음흉한 인간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명예로운 기사들을 선호했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는 인물이 안타깝게도 극도로 순수한 마법사였으므로, 그녀는 최대한의 이해력을 동원해 페르난데스의 장황한 설명을 곱씹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저주를 당한 이후에 그걸 적에게 돌려준다는 뜻이더냐?”
“아니오. 저주를 당한 이후에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저주의 술식을 파편화시켜서 새로운 마법으로 재구축한 이후에 공격 마법을 퍼붓는 것이오.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면 상대방의 마법 저항과 방어 주문을 무시하고 그대로 본체를 가격할 수 있거든.”
“마법을 무슨 화살 쏘는 것처럼 비유하지 말거라. 더 헷갈리니까. 그러나…… 그런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더냐? 일단 저주에 걸려야 한다고?”
“그렇소만?”
“……그리고, 저주에 걸린 이후에 몸에서 저주를 분해해서 끄집어내야 한다는 뜻이고?”
“바로 그렇소. 그게 아주 어렵고 섬세한 부분이지.”
장인이 자신의 공예품을 자랑하는 것처럼, 페르난데스의 무뚝뚝한 얼굴에서 일종의 자부심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아벨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과정이, 지난 전투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전투 과정에서 창안한 마법 체계를 심화시킨 것이라고 봐야지.”
“그럼 반작용도 전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반작용? 아, 그렇소만.”
“……‘그렇소만’?”
“……그렇……소만……?”
“후.”
아벨은 상쾌하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잠시 페르난데스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팔을 들고 손을 살피는 등 아무 말 없이 페르난데스의 몸을 잠시 만졌다.
“움직이는 데엔 지장이 없느냐? 어디 아픈 곳이 있다거나, 불편한 곳이 있다거나?”
“아주 멀쩡하오.”
“좋구나. 그래서 네가 그런 이상한 생각을 했나 보다. 따라오거라.”
“어딜 말이오?”
“연무장.”
땀을 흘리면 좀 건강한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까.
아벨은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날 페르난데스는 아벨이 어떻게 데인 왕의 검술 스승이 된 것인지 밤새도록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