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팔텐노이아, 제국의 종언 (4)
렐리기오사 헤레티카. 이단의 수도원. 이교도 사냥꾼들.
렐리기오사 엔마기카. 마녀의 수도원. 마녀 사냥꾼들.
렐리기오사 디모니카. 악마의 수도원. 악마 사냥꾼들.
이처럼,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에 위치한 세 분파는 각자 그들의 주적을 자신의 현판으로 삼았다. 수도원의 이름으로는 과히 적절치 못한 작명이었으나, 비장미가 있는 편이다.
이에 페르난데스는 고심했었다. 전생에 알고 있던, 싹수가 나쁘지 않고 이용 가치가 있으며 회개할…… 또는 타협할 가능성이 있는 녀석들을 모아서 분파를 꾸린다면 어떨까.
그 아이디어에서 파생된 것이 뭄토와 대적할 당시, 놈의 환상 속에서 조직했던 이들이다. 렐리기오사 말레디카. 죄악의 수도원. 속칭—
‘악인 사냥꾼.’
비록 세부 사항은 기밀에 속하지만, 적어도 선신 만신전 교회의 공식 인가를 받은 다른 세 분파와는 달리, 말레디카의 심문관들은 결코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의 무기는 이교도, 악마 숭배자, 타락자, 추방 마법사의 것이며, 이들의 신념은 오직 생존과 이윤뿐일 테니까.
하지만 그편이 낫다. 애매한 선의보다는 뚜렷한 적의가 더 다루기 쉽다. 더군다나 공식 인가가 나오지 않은 심문관이라는 뜻은 생환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임무에 투입되어 소모되더라도 교회의 타격이 전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작전에서 말레디카가 사망한다? 세상의 악이 사라지는 것이다.
작전에 성공해 말레디가카 악인을 처단했다? 그 또한 세상의 악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는다.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차악과 최악 중 하나가 희생되는 것일 뿐. 교회의 손해는 전무하다.
“불만이 있는 자는 지금 말하도록. 설득해 주마.”
“…….”
칼자루를 움켜쥐며, 페르난데스는 싸늘하게 말했다. 이단심문관의 설득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마법사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이 뜬금없이 자신의 조직에 속하라고 협박하는데, 그게 하필이면 자신들 머리에 현상금을 가장 크게 걸어 둔 교회 기관이라. 마법사들은 얼떨떨함과 억울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마를린이 애써 침착을 가장하며 물었다.
“고인께선 저희가 생존, 그리고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고인께서 직접 손을 쓴다면 저희의 목숨이야 여반장일 테니 그렇다 하더라도. 저희에겐 어떤 이윤이 따르겠습니까?”
“대담하군.”
페르난데스가 그렇게 말하자 마를린이 움찔 떨었다. 만일 저자가 진짜 신실한 이단심문관이라면, 지금 그의 말은 다만 생존을 보장하는 사법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살려줄 테니 나를 따르라. 그 한 문장으로 그들의 처지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마를린은 이들의 대표격 인사로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했다.
마법사는 결코 자신의 것을 헐값에 내놓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목숨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페르난데스는 그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거래의 기본을 알고 있는 냉철한 마법사라는 것은, 성장 가능성이 뛰어나다는 뜻이니까.
“몇 년 전에 들였던 수하에겐 금전과 자유를 약속했지. 각 작전에 투입될 때마다 나오는 수당, 기본적인 급여, 신앙 생활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장되는 자유로운 활동과 그에 대한 보조금.”
“현금으로 저희의 충성을 구입하시려면 다소 많은 돈이 필요하실 겁니다.”
“하하, 충성? 충성은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가장 가치 낮은 상품이다.”
방랑 마법사들의 충성만큼 값싸고 휘발성 높은 것이 없지. 놈들의 제일 가치는 오직 생존과 더 많은 이윤일 뿐이다. 그러므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단심문관의 작전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아군을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 분자들이라는 뜻이다.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말했다.
“너희보다 이 조직에 먼저 들어온 자들이 둘 더 있다. 대황야에 있는 자는 목숨과, 부족의 암중 지배자가 될 권력을 보장받았지.”
“그럼 다른 자는 무엇을 받았습니까?”
“힘.”
대황야의 파르탁은 권력을 얻었고, 북부의 오라이온은 마법의 비의를 한 줄 얻었다. 크샤르락스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오라이온은 페르난데스의 전투법을 보고 마법의 비의를 갈망하며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이력이 있다.
방랑 마법사와 이교도들에게서 진심이 담긴 충성을 얻어 내기란 대단히 어렵고, 그렇게 얻은 충성조차도 제대로 된 목줄이 없다면 결코 믿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러나 힘은, 힘의 논리는 믿을 수 있다.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 개체는 언제나 부하들의 목젖을 물어뜯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하므로.
“내 너희에게 힘을 내려 주리라.”
“고인께선 인간이 아니십니까?”
“아직은.”
그렇다면 저 언사는 너무나 오만한 것이 아닌가? 마법사들은 그 말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불만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한 학파의 학장쯤은 손쉽게 될 것 같은 주문 구사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뛰어난 마법사라는 뜻이었지 초월적인 절대자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리고 방랑 마법사라는 존재들은 심지어, 각자 자신의 학파를 제 발로 걷어차고 나와 자유를 갈구하며 방황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새로운 구속이란 결코 달가운 조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에겐 이들의 복종을 얻어 낼 비장의 수가 있었다.
“마를린. 네 연구, 화염술의 융해 저주 고안에 가장 큰 문제는 네가 제국 필라인네일 대학 특유의 마법만을 익혔다는 점이다. 놈들은 온통 폭발에만 치중해 있으니, 융해와 침식과 같은 섬세한 작업은 놈들의 마력 회로 특질로 구현하기 까다롭지.”
“……!”
“그러니 이걸 봐라. 대충 지금 네 주문이 이런 식이라면…….”
페르난데스가 허공에 손짓을 시작하자 공중에 푸른 마력이 맺히기 시작했다. 청동 왕좌가 기동하며 그의 머리 뒤로 검은 헤일로가 타올랐다.
수인이 매끄럽게 허공을 움켜쥐고 짚어 낸다.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은 마법사들이었으므로, 그의 수인이 얼마나 정교하고, 또 얼마나 신속하게 마법을 맺어 내는 지 똑똑히 알아챌 수 있었다.
저 젊은 나이에선 결코 보일 수 없는 노련함. 그리고 나이와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압도적인 재능. 유소년기에서 청년기, 그 특유의 치기 어린 열정이 아닌, 섬세하고 진득한……. 완성된 재능의 편린이다.
수십 년을 근속한 제국 외과의의 메스와 같이. 수백 명의 도제를 둔 세공 장인의 끌과 같이. 마법사의 수인은 단 한 번의 획과 변을 조합하는 것으로도 그 품위와 존재감이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절정에 달한 화공의 마스터피스. 그 화폭의 한 획이 하얀 백지 위를 달릴 때의, 그리고 그런 것을 직접 바라볼 때의 쾌감과 전율이 좌중을 휩쓸고 있었다.
“이 대신에 이렇게.”
페르난데스가 수인을 다시금 교차했다. 완성되어 가던 마법진이 허물어지고 새롭게 직조된 또 다른 주문이 손끝에서 맺혀 나갔다. 정교하고 적확한 중심절의 각 변이 흐트러지며 이번엔 몽환적인 터치를 담아 전혀 다른 형상으로 기동되어 간다.
앞서 시연했던 마법진이 하나의 체계적인 톱니 장치로 보였다면, 그래서 그 기능미에 감탄했다면.
지금 페르난데스가 보이는 주문에서는 조형과 형태, 그리고 그 행간에 포함된 예술성에 대한 감동마저 느껴졌다.
이것이 장인. 이것이 정점에 도달한, 완성된 마법사의 능력. 마를린은 거의 감격 속에서 속삭였다.
“저게…… 정답이었군…… 나는 지난 삼 년을 허공에 내다 버린 꼴이었어.”
“아니. 네 노력이 너의 능력이 되었을 테니. 학문에 정진하고 비의를 탐구하는 것은 그 어떤 순간에도 헛되지 않는다. 마를린.”
페르난데스는 최대한 근엄함을 유지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기실 지금 그가 보여 준 마법은 칼림부르크 마법 학회 당시 말년의 마를린이 완성했던 주문의 열화에 불과했다.
그 시절 마를린이 학회에 보고했던 주문은 분명 이보다 아름답고, 또한 동시에 치명적이었다. 자신의 주전공이 아니었던 탓에 페르난데스는 그저 주문의 완성도를 검수하는 정도로 그쳤지만. 그 시절 그녀의 주문은 마법사 사회의 걸작으로 인정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그 열화 복제조차도, 이십 년 전의 마를린에겐 새로운 활로의 영감이 되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다소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마법에 완성과 완벽이 어디 있겠느냐. 설령 마법의 신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완벽한 것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하다.”
완벽이라는 단어는 태생적으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개선의 여지없는, 그 자체로도 완성되었다 말할 수 있는 독립된 주문이 있을 수 있는가? 모든 상황과 모든 조건에 상관없이 동일한 입력값에 동일한 출력을 낼 수 있는 주문이 있을까?
불가능하다. 차원을 만들고 신을 창조하는 제1계. 세계의 의지가 직접 현현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마법엔 완성이란 없다.
그러므로.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이 존재하는 곳이므로. 더 깊은 신비가 도처에 자리 잡고, 더 많은 진리가 사토 아래에 묻혀 있는 곳이므로. 이 세계의 마법사들은 결코 지혜의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마법사란 그런 존재들이다. 그래야 마땅하다.
“더 높은 곳을 바라고, 더 많은 것들을 원한다면 따르라. 내가 너희에게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자유도, 안전도, 권력도 아니오. 오직 지식이다.”
면면을 살핀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이미 아는 얼굴들이다. 그의 수하이자 학우이며 때로는 제자로 들어왔던, 칼림부르크 학회 시절의 마법사들이다.
그 시절 모든 문명 사회에서 이를 갈며 쫓던 부랑자, 떠돌이, 패배자와 탈주자, 살인범과 이교도들.
저들의 미래가 선하다. 저들이 만들어 낸 저들만의 마법 또한. 어렴풋하게라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페르난데스는. 아니, 그 시절 페이자쉬는.
-한 번이라도 알았던 마법은 결코 잊지 않았다.
방랑 마법사로 사십 년을 살았다는 것은, 그 긴 시간을 홀로 방황하며 살아남아 마법의 비의를 탐구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으니.
하나둘씩. 이 자리의 마법사들이 고개를 숙인다. 정체 모를 이방인.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이 정체 모를 청년에게. 본질적인 기품. 영적 영역에서의 존재감. 그 격의 차이에 기꺼이 굴복하여.
렐리기오사 말레디카가 설립되는 순간이었다.
* * *
그날 늦은 밤 말레디카의 임시 지부로 지정된 이곳, 그림자 학회의 여관에선 다섯 무리의 마법사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너희는 여기, 펠러실 거리의 중앙 대로 옆 수로를 장악해라.]
[무력으로 말입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 당연히 마력으로 해야지. 너희 모두가 마찬가지다. 이곳, 이곳, 이곳. 그리고 이 건물까지. 이렇게 다섯 지역은 반드시 마력으로 복속시키고, 저항하는 자가 있다면…….]
죽여라. 그 누가 되었더라도. 설령 귀족이며, 또한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거침없이.
[하지만 그렇다면 저희의 안전은…….]
[선신 만신전의 이름으로, 오늘 이후에 너희를 핍박할 수 있는 자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놈은 오늘보다 오래 살 수는 없을 것이니. 페르난데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소 지었다. 말레디카들 또한 그와 같은 미소를 공유하고 있었다.
각자가 품고 있는 주문 연구와 마법에 대한 지식은 고작 편린에 불과했지만 작전의 선수금으로는 충분했다. 마법사들은 기꺼이 페르난데스가 말한 장소를 향해 떠났다.
도시의 다섯 지역. 황궁을 중심으로 일견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그 포인트들을 향해서. 그의 지시를 의심하고 의도를 파악하려 하는 자는 이들 중엔 없었다.
‘황제가 국가 규모로 마법진을 펼치려 한다면…….’
그 중심은 반드시 황궁이다. 황제는 오랜 시간 황궁에서 떠난 적이 없으며, 지금 황궁은 거의 봉문에 가까운 상태였다.
심지어 수도에 직접 역병을 풀어 가며 애써 구축한 실험실에마저 황제는 직접 나타나 현장을 지휘하지 않았다. 그 의미는 모든 일을 꾸미고 준비하는 장소가 황궁이라는 뜻이므로…….
‘황궁을 중심절로 가정하고. 그 위로 마법진을 그린다.’
국가 규모, 제국 규모로. 각 선제후가 지배하는 공국령까지 포함하여 거대한 방사형 마법진을 가정한다. 벌써 며칠 전, 우르카시아의 소환진을 의식한 순간부터 그는 오로지 이 날만을 기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큰 틀을 잡고 세부 항목을 채워 나간다. 마법진 도해의 역추산 기법이다. 적이 펼치는 마법진을 분석하고 해부하는 기초적인 테크닉이었다.
거대한 규모로 멀리에서 바라본다면 국가 규모. 그러나 중심절이 확실하다면 보다 세부적으로, 각 지방에서 연결되는 변환절과 희생절, 치환 계수를 그려 나가며—
‘대마법의 하위 항목. 중심절에서부터 외부로 이어지는 각 변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황제의 마법진은 ‘제물’이다. 제국 내에 미리 준비한, 타락한 마을들을 불태워 발생한 영혼이 이곳 팔텐노이아의 황궁으로 흘러 들어가는 일종의 ‘통로’가 존재한다.
그 통로의 각 관문에 해당하는 지역을 점거한다. 그렇다. 지금 떠나간 이들은 각자 일종의 마력 쐐기로 작용할 것이다.
마법진의 흐름이 끊어지고, 주문이 파괴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아니.’
마력 쐐기를 박아 마법을 정지시키는 것은 오히려 간단하다. 적의 마법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면.
그러니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앞서 나가. 적의 마법을 ‘이용’한다. 마력 쐐기를 이어 그 위에 새로운 마법진을 그려 낸다. 시그니처 스펠 [페르난데스의 역전]. 상대의 마법을 되돌려 사용해 자신의 마법으로 빚어내는 주문.
“전세 역전이다.”
페르난데스는 슬쩍 웃으며 후드를 눌러썼다. 모든 마법사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고 홀로 남은 여관에서. 그는 낮게 속삭이며 문을 밀었다.
여름날의 끈적한 밤바람이 골목 사이를 스쳐 지나고 있었다.
말레디카의 첫 작전이다. 이단심문관 분파로서 본을 보여 주어야지.
황궁을 불태울 것이다. 황제를, 그 악마를.
이단을.
모두가 떠난 여관을 나와 황궁을 향해서. 한 사람의 이단심문관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 * *
“자, 그럼 작전명을 생각해 보자.”
“……작전명이요?”
“이래 봬도 이단심문청의 정식 작전으로 기록될 사건이니까. 상부에 작전 보고서를 상신해야 되거든.”
“혹시 고인께선 생각해 두신 것이 있습니까?”
로베르 황자가 말하기를, 썩은 것이 허물어져야 새것이 바로 설 수 있으므로. 다음 천 년의 역사를 견디기 위해 지난 천 년의 제국을 무너트리겠다.
재건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달콤하고 아름다운 동화책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말레디카. 죄악의 수도원은 그보다 질척하고 꺼림칙한 일을 해야 했다.
“제국의 종언. 어떠하냐?”
말레디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떵떵거리고 으스대는 제국 귀족 돼지들을 무너트리고 저들의 부패한 헛간을 박살 내는 것은, 정의와 별개로 통쾌한 일일 것이니.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