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믿음은 등불이라 (1)
수도의 밤하늘엔 별도, 달도 떠 있지 않다. 수도 인근의 각종 공장에서 흘러나온 매연으로 밤하늘은 언제나 희뿌연 가면 아래에 얼굴을 숨긴다. 저 아래에 펼쳐져 있을 민낯은 과연 언제나처럼 아름다울까. 페르난데스는 확신할 수 없었다.
별이 흐드러지는 하늘은 언제나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가져오곤 했다.
감성적인 영역이 아니라, 마도학적 개념에서의 관점이다. 별무리 아래로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은 보는 것만으로도 수십 가지의 회로와 마법진을 상상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구름 짙게 덮인 하늘 아래에서 그는 새로운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력의 흐름이 엉킨다.
-쿠르르릉.
마력 섞인 매연이 낮은 울음을 터트렸다.
어떤 종류의 혼란은, 일견 불규칙해 보여도 그 내부에서 일련의 공통점을 갖는 경우가 있다. 수도의 하늘은 꼭 그런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각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매연이 하늘 위로 무분별하게 뿜어져 올라오며 서로 뒤엉키고, 마력이 누수되어 파편화된 대기가 서로의 흐름에 간섭하여 뒤엉키는 모양은, 제국 중앙 남반구 특유의 온난한 기후와 얽혀 일정한 규칙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아주 작은 실타래들이 조금씩 풀려나가며 흐름 사이에 와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섯 개의 와류들. 수도의 지도 위로 그어서 역오망성. 수비학적으로 황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포위망이다.
이 광경을 오로지 그 혼자 인지했을 턱이 없다. 저 나름의 거사를 준비하는 황제 또한, 이 일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일종의, 아주 정중한 선전포고였다.
당신의 생각을 알고 있으며,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지 않을 것. 그리고 나는 그럴 능력도, 동기도 충분히 있음. 대충 그런 의미의.
만인지상의 권력자에게 목젖 아래에서 전하는 경고문. 이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저 멀리 황궁의 대로가 보였다. 봉문 이래로 그 누구의 입궐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거대한 관문이 보였다.
“이 길을 걷는 건 처음인가.”
-그 시절엔 길이 남아 있지 않았으니.
전생 시절 르네 필리파는 끝내 팔텐노이아 방어전에서 패배했었다. 다섯 대악마의 군세가 밀려들며 이곳 팔텐노이아의 유서 깊은 관도는 폐허로 변모했었다.
페르난데스가 방랑 마법사이던 시절엔 이 길을 걸을 이유가 없었고, 그가 정복자들 속에서 진군할 당시에 이 길은 폐허에 불과했었다. 그러니 온전히 성한 이 관도를 걷는 것은 감회가 새로운 일이다.
‘역사상 단 한 차례도 파괴된 적 없는 도시라.’
-두 번 박살 내면 기분이 제법 끝내주겠어.
하늘 아래 검은 그림자 속으로 길게 몸을 늘어트리고 있는 고성을 바라보며, 페르난데스는 잠시 멈춰 섰다.
저 멀리 횃불들이 외로이 타들어 가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그 아래로 불빛에 빛나는 갑주를 차려입은 기사들이 번을 서고 있었다.
그가 저들을 보고 있듯이, 저들 또한 그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 몸을 도사린 들짐승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젖 아래까지 저릿하게 다가오는 살기가.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만 저 보초들뿐만이 아니다. 보초의 눈을 통해 그를 보고 있을 다른 존재가 있다.
황제. 저 성 자체가 맥동하듯 숨을 쉬는 것이 느껴진다.
황궁은 짐승의 소굴이 아니라, 짐승 그 자체다. 그를 향해 어금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짐승. 하나의 의지에 의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생물이다.
본디 예법에 따라 왕의 목을 치는 것은 왕이어야 하며, 황제는 언제나 격에 맞는 존재에게 추락해야 한다.
단순히 놈의 마법을 흐트러트리는 것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암살자의 방식이다. 그러나 페르난데스가 지금 이 순간 정문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가 암살을 위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악마를 소환할 수 있는 존재. 대악마 소환에 가장 근접한 마법사. 그런 자와 대적할 때라면, 그에 준하는 존중과 경의가 필요한 법.
이 순간, 페르난데스는 이단심문관으로서 이 자리를 찾은 것이 아니다. 마법사로서 사고하고, 마법사로서 행동하며, 마법사다운 격을 드러내기 위해 왔다.
그러니 선전포고에도 그만한 격식이 따라야 했다. 페르난데스는 손을 뻗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하늘을 향해 곧게.
-화르륵!
그의 머리 뒤로 검은 헤일로가 타올랐다. 청동 왕좌의 마력 회로가 달궈지며 비의가 그의 손등을 따라 손끝으로 흘러 나갔다. 당장이라도 흩어질 듯 아슬한 실선, 그것을 움켜잡으며—
-쿠르르르릉!
이에 반응하듯 구름 사이로 벼락이 쳤다. 마력을 품은 구름이 머리 위에서 휘몰아치며 기묘한 나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섯 방향, 말레디카들이 장악한 와류와 동조하며 복잡한 도형이 머리 위에 떠올랐다.
마치 손처럼. 거대한 손아귀의 형상으로.
-이제 가지.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후드드득!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검은 하늘 아래로 떨어지는 빗물은 마력과 매연이 섞여 혼탁한 색을 띠었다. 떨어져 내리는 빗물을 맞으며, 페르난데스는 관도 정 가운데를 저벅저벅 걸었다.
-쿠르르릉! 쾅!
벼락이 치고.
-끼이이익…….
관문이 열렸다.
* * *
황궁은 일곱 개의 아성이 얽힌, 제국은 물론이요, 문명 사회 전반을 둘러보아도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단일 구조물이다.
파괴된, 또는 파괴되어 가는 황궁의 터를 본 일은 있어도 이토록 온전한 궁궐을 거닌 경험이 없었기에, 페르난데스로서도 단번에 길을 찾기는 지난했다.
그러나 감각이 외치고 있었다. 놈은 저기에 있다. 놈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놈이 기다리고 있다.
“오만하구나.”
페르난데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황제가 보이는 태도는 도전을 받은 기사의 것과 같다. 친절히 결투장까지 안내하며, 무구를 닦고 기다리는 기사의 면모마저 보였다.
우르카시아의 수족답지는 않은 행동이다. 놈들은 더 치밀하고 끈적한 함정을 선호하니까. 그러니 이건 마법사가 아니라, 황제라는 직위 특유의 오만함에 가까웠다.
절대자의 오만함이라. 퍽 익숙한 부류의 것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픽 웃으며 발을 내디뎠다.
동시에.
-화르륵!
어둠 속에 잠겨 있던 회랑에 횃불들이 일제히 타올랐다. 피처럼 붉은 횃불이 점점이 불타며 길을 밝혔다.
쥐와 곤충 따위가 몸을 비비는 듯한 소음이 회랑 구석구석, 그림자 진 모든 방향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날갯짓, 산발적으로 찍찍거리는 울음소리, 갑각이 마찰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 딱딱거리는 턱의 부딪침—
그 모든 소리들이 얽혀 자아내는 말소리.
[너는 누구냐.]
“너희는 항상 그렇더군. 너는 누구냐. 누가 보냈느냐.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고는 있느냐…….”
의미 없는 질문들의 나열이다. 무릇 마법사라면 가장 단순한 행동 하나에도 뚜렷한 목적을 함의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체스와 같다. 그저 룩을 전진시키는 가벼운 한 수에도 대국을 노리는 심계가 숨어 있어야만 했다. 의미 없이 소모되는 수는 낭비에 지나지 않으므로.
“너는 마법사가 아니구나.”
페르난데스의 눈이 빛났다. 타오르는 횃불을 담아 이글거리며.
[마법은 단지 기술일 뿐이며, 짐은 위대한 아버지의 힘을 이어받아 충만해졌으니. 다만 마법사라 하더라도 짐보다 능한 이 없도다!]
그림자 아래에서 짹짹대는 소음 사이에 적의가 섞였다. 놈은 코웃음 치는 듯 말을 했지만, 행간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페르난데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옛 지인들, 즉 악마술사들이라 칭할 법한 이들 대부분은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으므로. 대악마를 소환하려는 전대의 마법사나 전생에 없던 강자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탓이다.
치열하고 완벽한. 수 싸움과 센스를 나누며 이루어지는 마법 공방. 마치 달인의 검격이나, 합을 맞춘 무희의 검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는 공격과 방어의 수 싸움.
그러한 수준의 마법전을 기대했었다. 영웅이 흔한 시대였고, 악마가 득세하는 시대였으니까. 그런 시대에서 제국을 배경으로 날뛰는 대악당이라 한다면 능히 그 정도의 기대를 걸어 볼 법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볼품없다. 페르난데스는 짧게 혀를 찼다. 이래서 우르카시아 계열 악마와 추종자들에겐 기대를 해선 안 된다.
그때, 놈이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짐은 너의 목적을 알고 있음이라. 위대한 존재께서 저 깊은 나락 속에서 속삭이셨으니. 너는 인간 신의 사도로다.]
아, 우르카시아. 나를 그렇게 신경 쓰고 있으셨나. 이거 기쁘군. 페르난데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픽 웃었다.
[짐이 심혈 기울여 봉헌한 제단을 네가 어지럽혔으니 처음엔 몸소 징벌하려 했으나, 생각이 바뀌었노라. 짐과, 위대한 아버지께선 너의 능력을 높게 산다.]
“그거 고맙군.”
[그리하여 네게 더욱 존귀한 존재로 승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하니 달게 받들라.]
회랑 끝의 문이 열렸다. 녹슨 경첩의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우르카시아 계열 악마의 존재감과 자취가 금속을 삭게 만들고 유기물을 부패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독한 시취가 훅 불어닥쳤다. 공기와 맞닿은 횃불이 암녹색 빛을 내뿜으며 이글거렸다. 끈적한 역병을 담은 뜨거운 바람이 피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화륵!
머리 뒤의 헤일로가 바람결에 따라 흐트러지고, 다시 모양을 잡아 타오르며 움직였다. 페르난데스는 우득, 하고 손가락 마디를 풀었다. 좋군. 몸 속에 저주가 끼어들고 있다.
체내의 혈관을 타고 악마의 저주가 스며들고 있었다. 아주 은밀하게. 제 놈들 딴에는 비밀스럽게 타락시키려는 수작이다. 대부분의 경우엔 이 정도로도 충분했겠지.
악마에 의한 타락은 대부분 의지와 상관없는 부분에서 시작된다. 기묘한 악몽, 예측할 수 없는 괴질, 갑작스러운 통증과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분노 같은 곳에서.
그렇게 차츰. 가장 신실한 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처음엔 그저 컨디션 문제로 취급되던 것들이 점차 큰 장애로 번지고, 이내 신의 가호를 구걸하며 교회를 찾아가도록.
그러나 봉문한 만신전에서 해답이 내려올 리가 없으니, 의지가 꺾이고 운명에 대한 증오가 차오르는 순간. 폐인이 된 사람의 귓가에 악마가 속삭인다. ‘나를 섬겨라.’라고.
악마 숭배에 대한 전도는 그와 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대단히 수고스럽지만, 또한 대단히 효과적인 계략이다. 황제 또한 그런 굴레 속에서 악마의 발밑에 고개를 조아렸겠지.
특히 우르카시아 계열 악마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페르난데스가 가장 주의 깊게 대처법을 준비하던 방식이고.
-두근!
악마의 저주가 혈류를 타고 점점 더 넓게 퍼져 나간다. 피부 위에 붉은 반점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곧 신체 말단의 기능성이 저하되고 질병의 뚜렷한 증세들이 나타나 점차 악화될 것이다.
아주 감사하게도.
“고맙다고 해 두지.”
[……그렇게 바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지만. 아주 멍청한 놈은 아니었던 모양이로군.]
열병으로 인해 머리가 아찔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페르난데스는 속삭임을 따라 그저 앞으로 걸었다. 황제의 어전으로, 황궁의 심처로. 놈의 초대를 따라서.
-끼이익.
마지막 문이 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문을 지나쳐 왔을까. 일반적인 예식에 따라 어전에 입궐하려 했다면 첫 관문에서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에 적어도 일주일은 넘게 걸렸을 거리였다.
그 긴 회랑. 이 드넓은 궁궐을 지나치는 동안 그는 단 한 사람의 시종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텅 빈 성안을 직진했을 따름이었다.
붉은 비단이 길게 늘어진 거대한 홀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더 깊은 곳을 향해 더 높게 층계가 올라간 홀. 그 최상층에 위치한 거대한 옥좌엔, 한 청년이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괴고 그를 내려 보고 있었다.
-저벅.
발이 질척한 비단 위를 걸었다. 페르난데스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살폈다. 붉은 비단…… 아니. 이건 수의였다.
피에 물든 수의가 누더기처럼 이어져 있었다. 좀먹고 뜯어진 낡은 수의들. 피로 물든 조각 난 옷가지들을 어설프게 이어 붙여 만든, 왕의 어전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죽음을 형상화한 표현법 중에서 가장 저열한 방식을 골랐군. 페르난데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황제를 노려보았다. 옥좌 위의 청년이 쾌활하게 웃었다.
“네 심장에서 공포가 느껴지는구나, 인간. 그러나 걱정하지 말거라. 존귀한 분께서 네게도 나와 같은 힘을 내려 주실 것이니.”
“이래서 아마추어들이 싫다.”
페르난데스는 손을 들어 후드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질병이 파고든 탓에 성대가 상해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짧은 사이에 악화된 병세에 손등 위로 수포 얹은 주름들이 늘어서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양, 황제는 비죽거리며 말했다.
“네 안에 깃든 축복을 느껴라. 그분의 손길을 거부하지 말라. 그저 받들라. 짐이 선배 된 도리로 친히 너를 인도해 주겠노라.”
숫제 새로운 병졸은 얻은 양, 황제는 킬킬거렸다. 페르난데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거의 다 들어찼군. 놈을 통해 발현된 악마의 저주가 온몸에 빼곡히 틀어박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크륵, 하고 핏줄기가 입을 따라 흘렀다. 페르난데스는 바닥에 핏물을 탁 뱉었다. 거품이 인 끈적한 핏물이 바닥에 눌러 붙으며 비명 지르는 해골의 형상을 띠었다.
완성된 저주를 내려 보며, 황제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질 때. 갈라진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이건 트로피구나.”
“무엇이?”
“네 성취를 자위하기 위해 만들어 낸…… 오직 자기 자신만을 숭배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장난감이로다.”
바닥에 깔린 수의는 이 황궁 내 피해자의 것들. 자신의 것이 아닌 힘에 취해 분수도, 본분도, 이성도 잃고 마구잡이로 휘둘러 그린 조악한 조형물에 불과하다.
악의라고 하기에도 품위가 부족하고, 광기라 부르기에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페르난데스는 그저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이런 적이 있었지. 치기 어린 시절도 있을 수 있지.
“네 말이 옳다. 트레뮐레. 선배 된 입장에서 본을 보여 줄 필요가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