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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70화 (271/388)

270. 신성 레바인테르 제국 (1)

황제의 죽음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놈의 육신이 소멸되는 순간은 화려한 마력 잔향도, 시끄러운 갑충의 날갯짓 소음도, 부산스러운 움직임도 없이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스르릉.

고요를 깨고 서늘한 소음이 들렸다. 칼날이 칼자루 안으로 미끄러지는 마찰음이. 페르난데스는 빗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앉아 칼날을 다스리는 제피스를 바라보았다.

제피스는 여상한 손짓으로 무장을 정리하고는 곧 일어섰다. 방금 군왕급 악마이자 대악마의 사도를 무찌른 사내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쏴아아아…….

빗물이 장막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철퍽, 철퍽. 썩 처연한 소리와 함께 제피스가 페르난데스에게 다가왔다.

“받게.”

제피스는 빗물에 손을 털어 칼날에 묻은 체액을 닦아내고는 성검을 건넸다. 열쇠검의 찬연한 빛이 빗방울 사이에서 몽환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아무 말 없이 칼을 받고 잠시 꽉 쥐었다. 칼날을 잡는 것만으로도 성검의 뜨거운 영성이 느껴졌다. 일반인이라면 이 검을 쥐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지거나 영혼이 찢겨 죽을 정도로 강력한 반발이었다.

그럴 만했다. 이 검이 가진 의미를 생각한다면. 열쇠검은 봉문한 만신전의 전당을 열 수 있는 성유물이자, 그 자체로 신이 인간을 수호한다는 징표이며, 제물로서 사용할 때에 설령 대천사라 할지라도 물질 세계에 현현시킬 수 있는 강대한 아티팩트였다.

“멀쩡하시군요?”

“뭐가 말인가?”

“성검. 만지지 않으셨습니까.”

페르난데스는 빗물을 맞으며 제피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에선 어떤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산책이라도 나온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주의 힘이 나를 해한다면 나의 삶이 그릇되었던 것이니. 다행히도 내 인생이 헛산 것은 아니었나 보군.”

“그런 것이…….”

그저 떳떳하게 살았다는 것만으로 열쇠검의 영성을 이겨 낼 리가 있나? 페르난데스는 반박하려다가 멈칫했다. 가능할 수도 있다.

애초에 신성이란 관념의 영역에 걸쳐 있다. 검을 쥐고 휘두를 때의 마음. 근육을 움직여 적을 공격하는 그 일련의 과정 전반에 걸쳐 단 한 번의 사심조차 없이 정갈했다면, 그럴 수도 있나?

칼을 휘두름이란 곧 적대심의 극한을 표출하는 과정이다. 검격은 적을 죽이고자 할 경우에만 의미를 갖는다. 기사도 로망스 속 활인검 따위는 환상이다.

적을 도륙하기 위해 공격하고, 살아남기 위해 방어하는 모든 과정은 결국 적을 상대해 승리하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생존욕, 경쟁심, 살의와 분노. 이런 사심들이 포함되지 않은 검격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하지만 방금 제피스의 공격엔 단 한 가지의 신념만이 깃들어 있었다. ‘악을 정화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리라.’ 무아의 경지에 다다른, 설령 정점에 도달한 기사라 할지라도 일생에 두어 번 가능할지 의문인 검격이었다.

페르난데스가 조용히 감탄하고 있자, 제피스는 설핏 웃으며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믿음은 내 마음 속의 등불이라네. 세르너드 수사.”

“참으로 사제들의 귀감이십니다.”

“이제 나는 사제가 아닐세. 칼 든 무부이자, 평범한 병졸에 불과하지.”

“그 누가 형제님을 병졸로 취급하겠습니까. 하하.”

페르난데스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칼에 엉켜 있는 로사리오를 풀었다. 그는 그 낡은 성물을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그 위에 얹은 핏물을 닦아 내었다.

“형제여. 우리가 서로를 형제라 부름은 나의 삶보다 형제의 삶을 먼저 아끼고 보듬으란 뜻이며.”

“또한 나의 죽음이 형제의 죽음보다 앞서기를. 그리하여 먼저 떠난 우리가 다른 우리에게 보이는 등대가 되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형제. 진심으로.”

“나도 그랬다네. 형제.”

턱. 페르난데스와 제피스는 서로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힘 있게 흔들었다. 짧은 악수 이후에 그 둘은 함께 빗물 속을 걸어 나갔다.

돌아갈 시간이다.

“아, 소개해 줄 사람이 있네.”

“네?”

“너무 놀라진 말아 주게나.”

제피스는 빗속을 걷던 도중에 껄껄 웃으며 말을 꺼냈다. 제피스가 수도에 지인이 있던가? 그의 활동 범위는 엄밀히 말해 동부 왕국 연합에 가까웠고, 수도는 너무 먼 곳이었다.

한참 걷던 그가 황궁의 무너진 외성 터에 다다랐을 때, 갑작스레 크게 외쳤다.

“나오셔도 됩니다!”

“네!”

폐허 사이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사람이 명랑하게 소리치고는 타닥, 하고 달려 나왔다.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딱딱하게 굳었다.

-엥?

‘엥?’

드물게도 페이자쉬마저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왜 니가 여기서 나와?

“어…… 저…….”

“만나서 반갑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해맑게 웃으며 뛰어나온 여인이 거리의 깜빡이는 마력등 아래에서 활달하게 외쳤다.

“예법에 맞지 않아 부끄럽군요! 하지만 예법 전체가 지금 저 돌무더기 아래 매몰되어 있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눈감아 주시길 바랍니다!”

찰랑이는 황금색 머리칼과 그에 대조되는, 맹수의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새파란 눈. 트레뮐레 궁중백가 특유의 유전적 형질이 짙게 남은 미녀였다.

“저는 에버리즈 리스 드 라 트레뮐레랍니다. 작게는 황녀라는 직책이 있었으나, 이젠 아니고. 달리는 귀르 항만의 외무서경이란 직책도 있었으나, 이젠 그도 아니니. 그저 한 사람의 여식으로 여겨 주었으면 합니다.”

“어…….”

페르난데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제피스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가 맞겠지. 저 황궁 어딘가에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왜 여기에?

힘과 명예의 라제리엘, 눈동자의 색과 머리칼 따위의 사소한 문제들을 제외한다면. 그가 기억하는 그녀의 얼굴 그대로였다.

“말하자면 대단히 길어지지만, 작전 도중에 구출할 수 있었네.”

“그 대단히 긴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습니다. 형제님.”

페르난데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제피스에게 속삭였다. 그건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는 꼼짝없이 황궁의 대천사를 잃었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 * *

페르난데스가 돌아오기까지 에르브 공작의 저택은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황궁이 갑작스레 폭발한 데다 예고에도 없던 악천후까지 닥치고, 마법사들은 모조리 봉문을 해버린 상황이었던 탓이다.

그런 와중에 팔텐노이아의 유일한 수비 병력이, 그것도 수장을 잃은 수비 병력이 침착을 유지하고 있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들이 지금 당장 거병해 황궁으로 진입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참을성이라 평할 만했다.

그리고 반쯤 시체가 되다시피 한 채로,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페르난데스를 마주할 때쯤에 이르러서는, 편집증에 가까운 공황적 임전 태세까지 번져 있었다.

“멈춰! 쏘지 마! 페르닌 경이다!!”

“화살 쏘지 마, 이 새끼야! 정신 차려!”

페르난데스가 저택의 내원에 접근했을 때, 기어코 눈먼 화살 하나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제피스는 재빨리 날아드는 화살을 낚아채고는 껄껄 웃었다.

“웃음이 많아지셨군요, 형제님.”

“형제여,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수도원을 나와 유랑하는 지금…… 나는 제법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심정이라네.”

파문 사제의 자세로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반평생 죽음과 악마를 대적하며 피와 진창을 걸었던 해묵은 디모니카에게 파문이란 일종의 전역으로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페르난데스는 그의 태도에 픽 웃고는, 우르르 몰려나오는 기사들을 마주했다. 그들은 완벽하게 무장을 끝낸 채로 빗물 속을 턱턱 뛰어오고 있었다.

“페르닌 경!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오!”

“소란은 그대들만 부리고 있는 것 같소만?”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진짜 소란은 이제 끝났소. 이제부턴 뒷정리만 조금 남았을 뿐이지.”

“황제는……?”

“죽었소.”

페르난데스는 아무 말 없이 해실거리는 에버리즈를 힐끔 바라보았다.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과, 그 소식에 기쁨의 탄식을 터트리는 기사들을 보고도 황녀는 전혀 표정 변화 없이 웃고만 있었다.

“그분들은?”

“이쪽은 황제를 참하는 것에 지대한 도움을 주신 분이시고…….”

잠시 침을 삼키고는 기사들을 훑어보았다. 그는 기사들이 달려들면 저지할 준비를 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쪽은 에버리즈 황녀 되시는 분이오.”

“……예?”

“반가워요, 여러분!”

에버리즈는 기다렸다는 듯 활기차게 손을 붕붕 흔들며 외쳤다. 기사들 사이에서 패닉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가 죽고 에르브 공작도 죽은 이 시점에서, 수도를 점령하고 있는 병력이라는 의미를 곱씹어야 했다.

-스르릉.

“페르닌 경. 비켜서시오.”

“칼을 넣으시오.”

“지금 저 계집을 죽여야 명분이 바로 설 수 있소.”

결국 성미 급한 기사 하나가 칼을 뽑으며 외쳤다. 그의 말이 맞았다. 에버리즈는 지금 이 순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황제가 죽었으니 선제후 의회가 열리게 될 것이다. 모든 선제후들이 서로를 적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가장 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둘이다. 수도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또한 전쟁 초기부터 제국 수호의 기치를 세웠던 에르브 공작의 카르벨리에 가문

즉, 르네 필리파. 지금 트레뮐레의 군사력과 그녀의 군사력, 그리고 키르하스에 의해 점거된 뷜랑의 병력까지 합친다면 이 순간 제국 내에 그녀보다 강력한 군벌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에버리즈 황녀다.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황궁의 대소사를 맡아 처리하던 궁내대신이었으며 황제의 죽음에 대한 발언권을 가진 그녀가 허튼 말이라도 꺼낸다면 카르벨리에 공작가의 명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황제의 폭정과 그의 죽음은 카르벨리에 공작이 군사력을 동원해 일으킨 일종의 정치적 쇼였다. 그것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선제후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저 압도적인 강자의 탄생을 견제할 것이므로.

지금 그녀의 입장은 전가의 보도와 같다. 누가 휘두르든, 누군가는 죽을.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무기다. ‘명분’과 ‘체면’이라는 무기. 귀족 사회에서 때론 칼보다 강력한 무기다.

“황제를 죽인 것이 나이며, 지금껏 그대들을 대신해 앞서 문제를 해결한 것도 나의 힘이었소. 그대들의 권위를 위해 나 자신의 명분을 희생하며 이끌어 지금의 순간에 도달했거늘. 지금 내 앞에서 칼을 뽑으려는 건가?”

-턱.

페르난데스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걷자 기사들이 움찔 떨며 물러섰다. 그건 그의 무력에 대한 복종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껏 카르벨리에 공작가와 리뷔에를 위해 해왔던 모든 일에 대한 존중이었다.

공작과 공녀가 모두 부재한 지금 이 순간, 카르벨리에의 병력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페르난데스였다. 적어도 사령관급의 모든 기사들은 그의 업적과 권위를 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 영민한 경이라면 알잖소. 저 계집이 입 한번 잘못 놀린다면 우리 모두가 죽고, 제국은 사지가 찢겨진 채로 불타오를 것이오!”

“반대로 생각해야지.”

그녀는 전가의 보도다. 누가 휘두르든 누구 하나는 반드시 죽게 되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카르벨리에 공작가를 지지한다 선언한다면 일이 어떻게 되겠는가.

카르벨리에 공작가의 권위는 힘에서 나온다. 귀르, 리뷔에, 뷜랑. 적어도 세 개 이상의 선제후령이 연합하여 만들어낸 수장인 이상 그녀의 무력에 대항할 수 있는 군벌은 제국 내에 없다.

그러나 선제후들은 압도적인 강자의 등장을 원치 않는다. 선제후 의회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내전 없이 그들의 표결을 받아 제위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힘으로 인한 권위가 갖는 한계다.

하지만 에버리즈가 르네 필리파를 지지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황제의 폭정을 인정하고 트레뮐레 가문이 가진 권한을 양보하며 카르벨리에 공작가를 제국의 수호자라 공표한다면, 르네 필리파가 갖는 권위는 무력에서 체면과 명성의 영역으로 급상승하게 된다.

친황제파 선제후들은 지금 동부 왕국 연합과 베이타서스 교회의 전쟁에 소모되고 있다. 이 상황을 모두 정리할 수 있는 키카드는 제국의 통합뿐이다. 에버리즈의 지지를 받는 르네는 반드시 그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저 계집의 뭘 믿고? 저 계집의 아비는 카르벨리에 공왕 전하를 암살했소! 그 핏값을 받지는 못할망정, 저자와 연수해 일을 꾸미라는 소리인가?”

“그녀는 제위를 세습받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악업 또한 그렇지.”

페르난데스는 내원에 모여든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였지만, 넓게 울리는 힘 있는 음성으로.

“누군가의 악행이 다른 누군가에게 이양되어서는 아니 되오. 어떤 악도, 어떤 선도. 개인의 행위가 개인의 범위를 넘을 수는 없소.”

“마치 사제처럼 이야기하시는군?”

“맞소.”

-차르륵.

페르난데스는 손 안에서 로사리오를 꺼내 길게 늘어트리며 말했다.

“베이타서스 교회의 제2급 이단심문관. 렐리기오사 디모니카이자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의 수사이며, 교황령에 의거해 교구관 주교의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서 말하겠소. 이 순간부터 교회는 카르벨리에 공작의 권위를 인정할 것이며…….”

그는 당황한 기사들을 하나하나 힘 있게 바라보며 말했다.

“교황청은 리뷔에의 공왕이자 제국의 수호자, 정의와 기치의 선봉으로서 르네 필리파 드 카르벨리에의 제위를 기꺼이 찬양할지니. 신성 레바인테르 제국이여, 영원할지라. 이는 다만 나 개인의 의견이 아니요, 교황 성하의 뜻이기도 하오.”

“교황께서 세속 왕국의 정치에 힘을 싣겠다 선언하셨다는 뜻이오?”

“아니. 에르브 공작의 희생은 순교로 시복될 것이니, 이에 대한 찬사가 될 거란 뜻이오.”

에르브 공작은 악마에 의해 타락한 황제에게 암살당했다. 그는 전쟁의 확산과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막고자 얼마 되지 않는 병력을 이끌어 제국을 수호하려 시도했었다.

전쟁과 정의의 신, 베이타서스를 믿는 자들. 베이타서스의 교회는 공식적으로 위와 같은 내용을 선포하고 성전의 종전을 선언할 것이다.

황제가 일으켰던 모든 악행에 대한 종식과 황제의 죽음은 에르브 공작의 공으로 돌아갈 것이다. 공작은 순교자로 시복될 것이고, 르네 필리파는 베이타서스 교회로 개종한다 공언할 것이니.

그녀는 황제가 되고, 제국의 국교는 베이타서스 교회에 돌아가며, 교황은 제국 전역에 대한 권위를 갖는다. 이것이 승자가 만들어 내는 역사다.

그림자 뒤에서 쌓아 올린 투쟁과, 그로 인한 시체들은 그런 역사의 기둥이 되어 줄 것이다. 그 한 축으로서, 페르난데스는 경악한 기사들을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피곤하구만…….’

-고생 많았다. 오늘은 쉬어라.

페이자쉬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페르난데스는 땅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쓰러졌다. 전생 전성기 시절의 시그니처 스펠과 끊임없는 전투, 대악마의 마력에 의한 오염과 강제된 각성까지 이어지며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일이 마무리되고 맞이하는 단잠은 나쁘지 않았다. 이건 시간 낭비가 아니라, 일종의 재충전이라 여겨도 좋으리라. 페르난데스는 그렇게 자조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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