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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71화 (272/388)

271. 신성 레바인테르 제국 (2)

페르난데스는 이틀을 내리 기절한 이후 간신히 깨어났다. 그가 디모니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상할 정도로 더딘 회복이었다.

그건 지금껏 그가 입었던 부상, 그리고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르기까지 혹사한 육체. 거기에 대악마의 저주에 직접 오염되며 마법을 부린 대가였다.

그래서 그가 마침내 눈을 떴을 때, 그는 의사의 목에 칼날을 들이밀고 있는 키르하스와, 가만히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고 있는 아벨, 그리고 저 멀리 방구석에서 소파에 기대고 팔짱을 낀 프레이야를 볼 수 있었다.

“다들 뭘 하시는 거요?”

“으, 으, 으, 은!! 공!!”

키르하스는 타닷, 하고 뛰어올라 그대로 침대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아벨의 손이 벼락처럼 움직이더니 어느새 키르하스의 뒷목을 잡아채 허공에서 들어 올렸다.

“크흑!”

“그만하거라. 그이는 지금 환자가 아니냐.”

“은공! 은공!!”

페르난데스는 패닉에 빠진 키르하스와 착잡함 반, 책망 반, 그런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아벨을 피해 시선을 돌렸다. 프레이야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여신이 보기에 너는 지금 경계에 서 있다.”

“무슨 말이오?”

“아이들이 듣는 곳에서 하기에 좋은 말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몸을 아껴라. 의사 인간, 고생 많았다. 돌아가거라.”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페르난데스와 프레이야를 힐끔거리며, 아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계에 서 있다라……. 수명을 의미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프레이야는 생명의 여신이니까, 그녀의 눈엔 남은 수명이 보이는 걸지도 모르지.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상황 설명이 좀 필요한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이틀이에요! 은공께선 이틀이나 잠들어 계셨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

“카르벨리에 공작의 군사들이 황궁터를 점거하고 수도에 비상 경비 체제를 선언했다. 교황청과의 교섭이 끝났고, 공식 서한과 비공식 서한이 도착했더구나. 한 부는 너의 것인데, 지금 보겠느냐?”

“주시오.”

아벨은 품 안에서 편지를 꺼내어 페르난데스에게 건넸다. 교황의 인장이 밀랍으로 발려 있는 편지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봉인을 뜯고 편지를 펼쳤다.

“교황이 에르브 공작의 순교를 인정했군. 곧 공식적으로 카르벨리에 공작은 순교 성인으로 시복될 것이고, 르네 필리파 공녀는 교황청의 인가 속에서 작위를 이양받을 것이오.”

“나는 그것이 의문이더구나. 작위 승계에 교황의 인가가 필요하더냐?”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소. 하지만 공작의 죽음이 순교로 취급된 이상, 카르벨리에 가문의 혈통은 종교적인 의의를 갖게 되오. 이에 대한 정통성을 인정받는 것은 선제후 가문 역사에 이례적인 일이고…….”

대단히 강력한 일이지. 일반적인 작위 계승은 사제의 입회하에 유언장을 낭송하며 이루어진다. 생전 영지 귀족의 가신과 지인, 그리고 친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사자의 장례식과 장자의 승계식이 이어지는 것이다.

장례를 주관하는 사제에도 급이 있다. 선제후에 준하는 대귀족의 승계식에는 특히 그렇다. 입회하는 사제의 직위, 그리고 승계식에 참석하는 가신의 수로 권위와 명성, 정통성을 확보하는 자리인 탓이다.

그런 승계식을 교황이 직접 주재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또한 대단히 강력한 일이다. 교황은 쉽사리 세속 귀족들의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교회의 입장과는 달리, 귀족들의 행사는 다분히 정치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제국을 극도로 적대하던 교황이 직접 승계식에 참석하고 사망한 에르브 공작을 순교 성인으로 시복하는 퍼포먼스는…….

‘어떤 귀족들도 그걸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겠지.’

여러가지 가설이 오고 갈 수 있다. 교황이 직접 제국에 평화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황제의 죽음 뒤에는 교황이 있다. 르네 필리파를 통해 세속 왕가에 대한 정치적 간섭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어떤 것도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루머다. 그리고 모든 루머들이 한없이 진실에 근접해 있기도 했다. 정치적인 이슈 아래에 깔린 진실이란 결코 한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교황이 직접 이 일을 공표한다면 다음 황제는 르네 필리파가 되겠군.”

“그런 말들이 오고 가더구나. 하지만…… 귀르에선 여전히 개선 소식이 없다. 그녀가 왜 수도에 직접 입성하지 않는 것이냐? 공작의 장례를 시행해야 하지 않더냐?”

“명분 다지기를 하고 있을 것이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가지치기다. 한없이 역성혁명에 가까운 지금 이 정세 속에서, 전조의 자취를 제거하는 작업은 외과 수술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일이었다.

귀족 가문들은 모두 하나같이 복잡하고 교묘하게 엉겨 있으므로, 황제와 손을 잡았거나, 황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귀족들을 선별해서 처리하고 있는 데에 골몰할 것이다.

“그 말은, 지금 그녀가 적대 세력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다는 뜻이냐? 교황이 그랬던 것처럼?”

“그럴 가능성은 낮소. 그건 너무 눈에 띄는 짓이니까. 명분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손해를 볼 필요가 없지. 그녀는 아마도 협상을 하고 있을 것이오. 자신의 제위에 표를 던지지 않을 친황제파 선제후들과.”

명분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선제후들의 절반가량은 황제의 편에 섰던 이들이다. 선제후 의회에서 그들 전부가 반대표를 던진다면 결코 온건한 방식의 제위 이양은 불가능했다.

이들을 군사력으로 짓밟는 것은 결국 새로운 내전을 불러올 것이다. 제위의 시작을 내전으로 끊은 황제가 후세에 어떻게 불릴지, 그리고 치세 동안 어떤 역풍을 맞게 될지는 눈에 선했다.

그러니 르네는 지금 물밑 협상에 한창일 것이다. 교황의 인가, 황제의 타락, 압도적인 군사력을 카드로 쥐고 있는 이상, 협상 자체가 길게 늘어질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편지가 하나 더 있었다. 이건 비공식 서한이야.”

“음……?”

“교황이 네게 비공식적으로 전달한 서한이 한 부 더 있다 하지 않았더냐.”

아벨은 다른 편지를 하나 더 꺼내어 건넸다. 낡은 두루마리를 봉인한 밀서였다. 페르난데스는 편지 칼로 밀랍을 뜯어내고는 한참 편지를 읽어 내렸다.

그러고는 다시 한 차례 더 읽었다. 이번엔 조금 더 느긋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먹듯이.

그 과정이 네 번 반복되었을 때, 아벨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뭐라 써 있는지 물어봐도 좋겠느냐?”

“음…….”

“은공!”

키르하스는 꼬리를 탁탁 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벨을 한 번 바라보더니 냉큼 편지를 빼앗아 들었다.

“저는 본청 소속이라 읽을 수 있지요!”

“비밀 인가 등급이 안 될 텐데…….”

“은공께서만 비밀로 지켜 주시면 되겠네요!”

페르난데스가 그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이자 키르하스는 헤헤 웃으며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가…… 멈췄다.

“으잉?”

“뭐라 쓰여 있느냐?”

“세상에…… 이거…… 이건…… 안 돼요! 이럴 순 없어요!”

키르하스는 비명을 빽 내지르며 편지를 던졌다. 교황의 밀서를 취급하는 방식으로는 최악의 자세였다. 아벨은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편지를 낚아채고 읽어 내리다가 창백하게 질렸다.

“혼……인? 혼인 동맹……?”

“음…….”

“저는 그 여자가 그럴 줄 알았어요! 그 여자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요! 저는 이 결혼 반대예요!!”

페르난데스가 말릴 틈도 없이 키르하스는 소리를 악악 지르며 달려 나갔다. 아벨은 그 모습을 보더니 곧 자세를 다잡고는 차분하게 페르난데스의 곁에 앉았다.

“갑작스러울 수도 있지만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무엇이오?”

페르난데스는 서늘한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되물었다. 아벨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교황청은 용의 입김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더냐?”

“진정하시오.”

“혼인 동맹이라니. 혼인…… 혼인 동맹이라니? 이건 용인할 수 없는 폭거다. 나는……. 사람의 자유 의지를 수호하는 용이니라. 이런 압제는 용납할 수 없다.”

“너무 과하게 심취해 있는 것 같소. 진정하시오.”

“공녀가 진정코 교황에게 그런 요구를 했단 말이냐? 아니, 그런 요구를 할 수는 있다. 너는 인간 중에서도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니까. 하지만 그걸 교황이 인가했단 말이더냐!”

페르난데스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감쌌다. 아벨은 조용히 타오르는 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교황의 밀서는 간단했다. 르네 필리파 드 카르벨리에 공녀가 베이타서스 교회의 순교 성인 시복, 제국 국교 제정, 선제적 성전군 선포에 대한 함묵과 교회를 향한 기타의 밀약을 모두 승인하는 대가로—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의 수도사, 페르난데스 세르너드와의 공식적 혼례를 요청했다고.

이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은 아주 단순했다. 혼례는 아름다운 성사이며, 응당 이에 대해 흔쾌히 화답해야 마땅하지만…… 혼례 성사의 주례는 몰라도 주관은 직접 할 수 없으니.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승인하겠다는 것이 밀서의 요지였다.

교황청의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단순히 수도사 하나를 내어주는 대가로 교회가 얻을 세속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문명 사회 최고의 강대국이 공식적으로 국교를 개종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으니까.

페르난데스는 한참 편지를 내려보다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로군.”

“……뭐라고……?”

“종교법상 수도사에게 혼인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오. 그리고 교황의 입장에서 황제와 수도사의 혼례가 추진된다면 이후 나올 자손들은 성직 선제후가 되겠지. 앞으로 제국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대대손손 황제 선출권에 교황의 입김이 닿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요.”

“아니, 그 조건 말고. 다른 조건이 있지 않느냐?”

“개인적인 조건이라 하더라도 그리 나쁠 것은 없군. 황제의 권위를 등에 업게 된다면 다양한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소. 작전 진행과 인가에 공식적인 제한이 따르던 이단심문관의 입장보다 훨씬 긍정적이지.”

페르난데스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단심문청에 소속되어 작전을 승인받는 과정은 너무 복잡했다.

그가 판단하기에 바로 진행해야 하는 작전이 있고, 그렇지 않은 상황이 있다. 그러나 전생의 기억을 통해 수립한 작전 계획안을 지금 세상의 교회에 인가받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명분과 절차가 필요했다.

그런 요식 행위들을 모조리 건너뛰고 곧장 임무에 착수해도 그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는 든든한 뒷배가 생기는 셈. 나쁘지 않은 결과다.

“고작 그런 일에 혼인을 승인한다는 것이냐?”

“고작이라니. 공식적으로 나는 수도사와 제국 국서를 동시에 겸하게 되오. 교황청의 지원과 황실의 지원을 동시에 받아낼 수 있으니 사실상 문명 사회 안에서 나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자가 따로 없게 되는 격이 아니오?”

“너는……. 너는……!!”

아벨은 한참 씨근거리다가 벌떡 일어서서 뛰어나갔다.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팔자에도 없는 여난에 휩싸이는군. 페르난데스.

‘어차피 국서 직위는 형식에 불과해. 르네 필리파와 교황 사이의 밀약에 증표가 필요한 셈이지. 실질적인 의미 따윈 없는 자리인데 왜들 화내는지 모르겠군.’

-사실 나도 그건 잘 모르겠어. 따지고 보면 이번 작전 시작부터 너는 하트테이커의 애첩이었는데 말이지.

페이자쉬와 페르난데스는 시종이 들어와 식사를 준비할 때까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시종이 다과를 준비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제피스 형제님…… 아니. 나와 함께 왔던 사내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시라다스트 경 말씀이십니까? 지금 지하 수로를 방역하는 작업에 자원해 나가 있습니다.”

“지하 수로 방역?”

아직 수도에 우르카시아 계열 악마나 그 추종자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긴 했다. 실제로 인근 수로에서 실종 사건이 빗발치기도 했고.

페르난데스는 픽 웃으며 생각했다. 그건 디모니카 특유의 성실함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단심문관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이단 정화를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다. 아마도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신념 때문이겠지.

무엇이 되었든 존경받아 마땅한 자세였다. 당장 상의하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였지만, 그건 뒤로 미루기로 하고.

“그럼 황녀……. 아니, 아니지. 트레뮐레 영애는 어디에 계시나?”

그의 일은 그 외에도 다양했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사안들이 산적해 있었다. 트레뮐레 백작가와의 협상, 추후 있을 공식 발표에 필요한 대본 작성. 에버리즈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시종은 다소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시라다스트 경을 따라가셨습니다.”

“응?”

“그…… 트레뮐레 영애께서는 수도의 참상을 직접 해결하겠노라 발 벗고 나서셨습니다. 지금 그분께서는 시라다스트 경과 함께 지하 수로 방역 작업에 동참하셨습니다.”

평생 황궁에서만 보냈던 귀족 영애가 지하 수로 같은 곳에서 악마를 대적하는 것에 자원했다고? 이건 또 무슨 생각이지? 페르난데스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물론 이성적으로 접근할 때, 대단히 날카로운 정치적 쇼가 될 것이다. 카르벨리에 공작가의 가신들은 에버리즈를 증오하고 있으니까. 직접 험지에 자원하여 나서는 모습을 연출한다면 적어도 돌발적인 암살 위험은 덜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게 필요한 일인가? 아니다. 영애의 가치는 주위의 인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입장이 갖는 특수성에 있다. 굳이 그녀가 손수 지하 수로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건 알겠군!

‘뭔데?’

-로망스야!

페이자쉬는 하! 하고 자신감 있게 웃으며 말했다.

-에버리즈 그 계집의 상황을 잊었나? 황제는 그녀를 제물로 바쳐 대악마를 소환하려 했어. 그런 와중에 그녀의 처우가 온당했겠나?

‘아주 끔찍했겠지?’

그녀가 타락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대천사의 영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제가 우르카시아를 소환하는 촉매로 그녀를 사용하려 마음먹은 이상, 그녀는 실험실 이상의 참상에 유폐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와중에 제피스 그 무식한 디모니카가 나타나서 주위 잡것들을 모조리 때려 부순 뒤에 황녀를 구출했다고 생각해 봐. 귀족 여식 눈에 그게 어떻게 보이겠어? 기사도 로망스가 아닌가!

‘그건 너무 앞서간 것 같군.’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 *

“같이 가요……!”

“저택에서 쉬고 계시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헉, 헉……. 잠깐만요! 같이 가요!”

더러운 수로를 관통해 나아가는 것도, 끔찍한 악취를 내뿜는 괴물들을 도륙하는 광경을 직접 목도하는 것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에버리즈를 힘들게 하는 것은 혐오스러운 지하 수로가 아니라, 그저 오래 걷는 것뿐이었다.

평생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던 황녀. 구중궁궐의 귀족 영애에게는 단순히 오래 걷는 것조차 매순간이 체력적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제피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보다 전진 속도가 늦춰지고 있었으며, 그가 계획했던 구획 정화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너무 늦습니다. 트레뮐레 영애. 여긴 빈민가 인근 지하입니다. 귀족 거주 지구와 달리 이들은 자기 방어 수단이 거의 없지요. 오늘 밤 안에 이 지역을 정화하지 않는다면 밤사이 이들은 이 삿된 무리들에게 시달리게 될 겁니다.”

“너무나…… 멋진…… 기사도예요!”

“…….”

제피스는 아무 말 없이 헐떡이는 에버리즈를 바라보았다. 그의 차가운 시선에 에버리즈는 몸을 살짝 떨며 그에게 살풋 기대어 섰다.

“저는 기사님을 돕고 싶은 것뿐인데……. 혹시 제가 짐이 되나요……?”

예, 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그의 눈에 사슴처럼 맑은 에버리즈의 두 눈망울이 들어왔다. 그녀는 애처롭게 그를 올려 보며 떨고 있었다.

이대로 그녀를 귀가시킨다 한들 마음 편히 작전을 진행할 수 있을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당장 이 위로 올라가는 것도 문제일뿐더러, 빈민가의 치안은 아무리 좋게 잡아도 황무지의 무법자 범죄 집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가 홀로 귀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최대한 조심히 따라오십시오.”

“네, 네!”

* * *

-그래, 미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네.

‘아무렴. 다른 건 둘째 치고도 그 둘 나이 차이가 얼만데.’

그 즈음,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아리아 사이에서 아들까지 얻었던 흑마법사 둘은 그런 말을 나누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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