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의회 (4)
마법사는 신이 될 수 없다.
정확히 말해서, 신이 된 존재는 더 이상 마법사로 남을 수 없다.
신성을 빚어내 만들어 내는 ‘기적’은 그 발동 기제 자체가 마법과는 전혀 다른 논리로 구성된다.
그것이 설령 마법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을 빚어낸다면, 마법사는 마력을 직조해 관념을 현상으로 끌어당기는 방법을 취한다. 그러나 신들은 그런 방식으로 불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신성은 극도로 응집된 ‘힘’이다. 방향성 없는 힘. 관념 그 자체가 된 힘. 그런 힘을 품은 존재들이 만일 불을 피워 내려 한다면. 그들은 불꽃을 상상하고, 세계에 속삭인다.
[불이 있으라.]
그리하면 그리되리라.
모든 신앙. 적어도 선신 만신전 계열의 모든 교회가 각자 가지고 있는 저들만의 성경 구절에도 흔히 나타나는 문장이다.
‘너는 바라라, 주께서 더하시리라.’ 말 그대로, 신은 현상을 직조하지 않는다. 신의 힘 자체가 현상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영생자 오르키스.”
그러므로. 신성으로 향하는 기나긴 계단을 밟아 가는 존재. 인간과 신 사이 그 어딘가의 길을 걷는 구도자들은 더 이상 마법사가 아니다. 신성을 몸에 품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그들은 마법사로 남을 수 없으므로.
페르난데스 또한 그랬다. 그의 신성은 ‘이성’의 힘이다. 그리고 신앙은 ‘감성’의 영역이다. 그 기묘한 역설 탓에 페르난데스의 신성은 신의 힘이 갖는 관념을 세상에 표현할 수 없었다. 씁쓸한 부작용이라 할 만했다.
그래서 그는 마법을 택했다. 신성이 가져오는 편리한 기적을 포기한 채.
그에게 있어 신성의 힘이 갖는 의미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 합리적인 도구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니까.
디모니카로서, 그리고 신성을 품은 준신으로서. 페르난데스가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은 ‘죽음’이었다. 스스로의 몸을 빈사 상태로 만들어 신성을 강제로 흩어버린 이후에야 그는 마법의 편린이나마 쥘 수 있었다.
“대단하군, 페이자쉬. 정말 놀라워. 어쩌면 네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그래…… 우습지만. 지혜가 아닌가 싶구나.”
“피차 낯부끄러운 소리 하지 말지.”
노마법사. 대의장. 아니, 영생자 오르키스. 이 시대에도, 그 전 시대에도. 심지어 세계가 멸망하던 시대에도 남아 있던 몇 되지 않은 영생자 중 하나였다.
필멸자 가운데에서도 영생자들이 나타난다. 시대와 시대를 접어 건너는 거인들. 남부 정글의 라쿤. 철갑요새의 델피아. 베이타서스의 바울. 그리고, 방랑자 오르키스.
신성을 품은 준신. 신에게로 향해 걷는 구도자. 신이 내린 사명에 서원한 사제. 또는, 신의 저주를 받아 안식을 박탈당한 시체.
연원이야 어쨌건 이들 모두가 신성의 편린을 쥐고 있는 존재들이었으며—
“본산 세계를 알고 있나?”
본산 세계의 대종말 당시에, 지옥의 세력에 철저히 저항하고 끝내 옥쇄한 망자들이었다.
“하하. 운이 좋았지.”
“운이라?”
“그 시절 페이자쉬가 이 세계로 넘어왔다는 것과, 그 대단한 마법사께서 개심해 활약한다는 것 말이야.”
어둠 속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들이 겹치고 울려서, 마치 여럿처럼 들렸다.
디모니카의 감각은 그 순간에도 예리한 검처럼 빛난다. 목소리의 잔향을 파악하고, 상대의 거리와 위치를 특정한다.
“고위 의회라는 것 자체가. 아니…… 아세아스라는 이름 자체가 허상이었군.”
“맞아. 영생이라는 게 으레 그렇지 않나. 가면을 갈아 치우며 주위에 녹아드는 거지.”
“다른 녀석들은 그러지 않던데.”
“그야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겠나. 아니면 오만하거나. 또는…… 멍청하거나. 사람들 사이를 걷기 위해선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쯧.”
소리는 파형을 그린다. 그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을 때와, 어떤 초월적인 감각으로 인지할 때의 차이는 생각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소리가 부딪치고, 부서지고, 뭉개지는 그 결을 읽어 낼 수 있다면. 공간을 유추할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설령 디모니카라 하더라도 불가능한 기예였다. 페르난데스는 음성의 잔향을 역추산하며 이 공간의 크기와 형태를 분석하고 있었다.
응접실이 아니군.
탑의 관문을 넘는 그 순간부터 마법이 아닌 것들이 없었다.
십이인회.
열둘. 샤이쉬. 진리를 향해 걷는 길.
주술 문자, 아세아스의 비전. 학파가 아니라 개인의 것.
“와일드캐스트.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니 실험을 했구나. 신성의 역설에 걸렸었군.”
“하하하! 이래서 마법사들이 좋아. 하나를 알아채면 모두를 알게 되는 데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니! 네 말이 맞아, 페이자쉬. 나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니, 내가 창조한 마법을 내 스스로 볼 수 없었지!”
그래서 학파를 만들었다. 제자를 거두고, 마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죽을 때까지 이 탑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건 덫이었다. 마법사라면 빠져나갈 수 없는 종류의, 아주 매력적인 덫.
스스로 실험양이 되길 자처한, 다만 진리의 편린을 갈구하며 도축장으로 향하길 자처한 마법사들의 덫이다. 학파가 아니라, 거대한 공방이었다.
“십이인회라는 것은…….”
“그래. 내 다른 얼굴들이다. 나는 우리이며, 우리가 곧 나였지. 오르키스. 알레한드로. 아스카니오. 알렉산도르. 모두 나의 다른 이름들이며, 각자 다른 역할을 가진 존재들이었지.”
-딱!
손가락이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빛이 돌아왔다. 밤하늘이 융단처럼 펼쳐진 바닥과, 그리고 이를 반사해 빛나는 대해의 수면이 천장 위를 도도히 흐르는 그 사이.
능글맞게 웃는 노인이 저 멀리, 낡은 소파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과를 들겠나, 페이자쉬? 해묵은 망령들끼리 해묵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뭐지?”
“본산 세계는 멸망했고, 내가 숨을 거두는 그 순간에 베이타서스가 이 세계를 창조했어. 그 총력을 기울이는 것과, 계획을 숨기는 것에 만신전이 봉문했고. 너는 어떻게 종말을 피해 이 세계에 넘어올 수 있었지?”
“차원과 차원 사이에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겠나?”
노인은 손가락을 뻗어 다시 부딪쳤다. 쉬익, 바람결이 스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저 멀리 떨어져 앉아 있던 노인이 어느새 페르난데스의 바로 앞에 자리를 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노인 사이엔 응접실에서의 것과 동일한 다과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존재일 수도 있겠나?”
“정보 반사.”
“정답이야. 그게 아세아스 비술 실험의 결과였지.”
페르난데스는 흐, 하고 웃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마법사, 그것도 학문에 열중하던 당시의 마법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관념과 현학 그 사이 어딘가를 헤매이는, 당장 끊어질 듯한 진리로 향하는 끈을 움켜쥐려 노력하던 순간으로.
“본산 세계의 아세아스 고위 의회가 멸망한 건…… 내가 더 이상 의회를 가장할 필요도, 실험을 계속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지. 미래를 아무리 점쳐 봐도 종말뿐이었거든.”
“정보 반사 독립체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그거지.”
“그래. 하지만 더 끔찍한 건 내가 영생자였다는 거야. 다른 ‘예언자’들이야 종말 전에 수명이 다할 수야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거든. 어쩌겠어. 이대로 손 놓고 종말을 기다릴 수밖에?”
“왜 다른 영웅들을 돕지 않았지?”
“하! 영웅? 진심으로 영웅이라 말한 건가, 페이자쉬? 그놈들이 영웅이라고?”
노인의 얼굴에 처음으로 비웃음이 걸렸다.
장난기, 그리고 호의가 가득하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지옥의 관점에서 보면 너도 영웅이었겠지. 어떤 인간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놈들도 영웅이라 할 만하지. 하지만 그건 선과 악의 대립이나, 정의와 타락의 대립 따위가 아니었잖나. 천상 전쟁의 연장, 만신전과 지옥의 이권 다툼. 또는…….”
“생존 경쟁.”
“그래. 그 사이에 유일한 규칙은 자연법이었고, 유일한 진리는 강자존이었지. 네가 말한 소위 영웅들이라고 해 봐야 더 강한 힘을 타고나 더 강력한 억제력으로 군림하던 군벌들에 불과하니.”
“세계가 멸망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위선이 낫지 않았던가?”
“그으을쎄. 나는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더군.”
-달그락.
노인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페르난데스가 차에 손도 대지 않는 것을 보며 그는 클클 웃었다.
“그 시절 같구만. 경계심에 어려서 잔뜩 움츠려 있는 것 말이야.”
“정보 반사 독립체라는 건 알겠어. 미래를 봤고, 포기했다는 것도. 그래서 뭘 한 거지?”
“많은 시도를 해 보려 했지. 종말을 피하려고, 네 말대로 영웅 나리들을 지원해 보기도 했어. 그런데 알아? 사태가 나아지고,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면. 네가 말한 영웅들은 서로의 등을 찌르더군.”
“아, 모두가 그런 시절이었지.”
지독한 역설이다. 지옥도, 천상도. 붕괴된 사회 구조 속에서 다음 권력자를 견제하려 애쓰던 시절이었다.
분열된 문명을 단숨에 전복하지 못한 이유가 대악마 사이의 균열이었다면, 힘겹게 움켜쥔 희망을 끝내 유지하지 못한 문명 사회의 패착 또한 저 스스로의 균열 탓이었다.
지금 제국 선제후들의 행태와 동일하다. 강자는, 패러다임을 뒤흔들 만한 압도적 강자의 등장을 싫어하는 법이다. 영웅이라. 강력한 군벌을 이끈 자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다. 짊어져야 하는 무게에 자신 외에도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었으니까.
대악마들이 서로 아귀다툼을 벌일 때에, 분명 만신전 측에도 희망이 있었다.
어떤 지옥 관문은 무너졌고, 어떤 관문은 역공세에 걸려 도리어 지옥으로 향하는 길목을 내어 주기도 했으며, 어떤 대악마는 만신전 측에 다른 악마들의 정보를 팔아넘기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면 어김없이 이권 다툼이 시작되곤 했다.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비참한 일이다. 인류의 종말은, 페이자쉬의 오랜 말버릇처럼. 인류에 의해 마침표를 그렸다. 페이자쉬가 그 사이에서 한 일이라곤 그저 방점 하나를 찍었던 것뿐.
“그게 신물이 났지. 이놈은 좀 나을까? 하고 미래를 보면, 또다시 종말뿐이고. 저놈은 좀 괜찮아 보이더군. 하고 보면, 또다시 종말뿐이야. 어떤 미래에도 멸망 이외의 결론이 없었고, 나는 다른 준비를 해야 했지.”
“그게 뭐지?”
“너.”
노인은 희게 바랜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네 후회. 너의 한탄. 본산 세계의 멸망처럼, 그 어떤 미래에도 바뀌지 않던 단 하나가 있었으니. 너의 후회였다, 페이자쉬. 그 모든 미래. 모든 가능성의 결과에서도 너는 과거를 후회하더군.”
“웃겼겠어. 나 같은 놈이 후회라는 것을 할 줄 안다는 게.”
“아니. 감명 깊었어.”
노인은 부드럽게 웃었다.
“대단히. 감동적이었지. 때론 배신하고, 때때로 배신당하고, 대부분의 경우에 핏물로 손을 적시던 녀석이. 모든 미래, 모든 가능성, 그 어떤 조건에서도 자기 자신을 후회하더군.”
그렇다면 그건 천성이 아닐까? 노인은 그렇게 속삭였다.
페르난데스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생각했다. 천성이 아니다. 그건 천형이다. 그가 이고 가야 할. 그러나 노인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베이타서스는 그런 너에게 희망을 가졌지. 너무나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었으니까. 그리고 나 또한 그랬다. 그 미래를 본 순간, 베이타서스의 계획을 본 순간에 나도 같은 준비를 했어.”
“역천 말이냐?”
“아니지. 그건 선신 만신전이 총력을 기울여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니.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그보다 확실한 것에 걸어야 했어.”
“……그게 뭐지?”
종말을 마주한 예언자. 심지어는 신성을 품은 영생자가 피할 수 없는 종말에 대처할 방법. 노인은 슬그머니 웃으며 말했다.
“정보를 반사시켰다.”
“……뭐?”
“먼 훗날 다른 세계가 창조되더라도, 그 세계 안에 있는 나는 여전히 정보 반사 독립체겠지. 왜 우리가 굳이 그 특성을 ‘예언자’라고 함축해 말하지 않는지, 알잖나.”
“예언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니까.”
“그래. 미래와 과거의 어떤 정보들이 난립하며 반사되는 그 잔향.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존재. 여기서 나는 ‘반사’라는 단어에 집중했어. 실험 끝에, 결과가 있었지. 미래의 정보를 반사해 읽을 수 있다면, 내가 미래로 정보를 반사시킬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어쩌면 미래나 과거 따위의 시간선이 아니라. 차원과 차원 사이의 경계면으로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탑…….”
“그래. 아세아스 고위 의회의 마탑. 이건 일종의 송출기이자, 수신기야. 미래에 대한 정보뿐만이 아니라, 차원 너머에서 반사되는 정보의 잔향을 잡아내기 위해 세상을 떠돌며 자리를 찾는 수신기지. 송신에 성공하고 나는 탑을 파괴했다. 종말의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며 미래를 기다렸지.”
노인이 웃었다. 대부분의 것은 설명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이 있었다. 대체 왜? 그럴 필요가 뭐가 있었나?
“차원을 넘어 정보를 반사시킨다. 낭만적인 말이지만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지 않나. 종말을 피하거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잖나. 그저 본산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이 하위 차원의 ‘오르키스’에게 알려주는 것에 불과할 텐데. 그러니, 너는 결국 본산 세계의 오르키스가 아니라, 그 망령에 불과해.”
“맞아.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거든.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본산 세계의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이 세계의 나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어야 했던 이유가.”
“……그게 뭐지?”
노인의 웃음이 멎었다. 서늘하게. 살기? 아니, 그건 어쩌면 보다 더 담담하고, 무기질적인 감정에 가까웠다. 마치 판관의 판결처럼. 감정 하나 없이 단호하게. 사실을 그대로 증언하는 양.
“지금도, 내가 보는 모든 미래엔 여전히 종말뿐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