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04화 (305/388)

304. 꼭두각시들의 전쟁 (1)

페르난데스는 알 무카파가 건네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켜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벌써 불콰하게 취한 기색이 완연했다. 그는 어떤 내색도 없이 그저 마음 편히 연회를 즐기는 것 같았다.

폭죽이 터져 오르고, 화려한 무희들이 반짝이는 장신구를 요란하게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알 무카파의 가신들은 저마다 수군거리거나, 껄껄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잠시 바람을 쐬러 가시겠습니까?”

“그러지.”

외국에서 찾아온 귀s빈이라는 말에 그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은, 연회가 진행되어 갈 때마다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알 무카파가 워낙 허물없이 대한 까닭에, 가신과 하인들의 눈에 페르난데스는 그저 영주의 친구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그 누구도 페르난데스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게 되었을 즈음. 연회가 막바지에 달해 흐릿한 취기에 이성을 날리고 즐기는 무관들 사이에서, 알 무카파가 페르난데스에게 속삭였다.

두 사람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발코니를 향해 거닐었다. 비가 내리는 도시의 정경을 내려다보며, 알 무카파가 나지막이 말했다.

“귀빈께서 요청하신 사람과, 귀빈을 만나고자 한 사람. 둘이 접견을 청합니다. 괜찮으십니까?”

“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

요청한 사람이라 한다면 샥시시일 것이다. 지금의 술탄은 자신의 신하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각 영지엔 한 사람 이상의 샥시시들이 잠입해 있었기에.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이 이역만리 타향에서 그를 특정해 만남을 청하는 이가 있었단 말인가?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들어와라.”

알 무카파가 뜻 모를 미소를 띠며 말하자, 지붕 위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페르난데스는 반사적으로 소매 안에 감춰 둔 단검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대로 고개를 조아리며 페르난데스에게 예를 갖추었다.

“여기 이 사람은 이 도시에 주둔 중인 샥시시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세르너드 경.”

“그리고 이 사람은, 먼 동방에서 찾아와 그대의 소식을 듣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 인물이지요.”

페르난데스가 한쪽 무릎을 꿇은 사내를 바라보자, 그 사내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빙긋 웃었다.

“궁중백께서 경을 보필함에 있어 어떤 불편도 없게 하라 명하셨습니다. 필요하신 일에 하명하소서.”

“백작께 큰 빚을 지게 되었군.”

“빚이라니요. 궁중백께선 친우를 돕는 일을 저울 위에 올리지 않으십니다.”

그 사내는 완벽하게 키르자트 사람으로 변장해 있었다. 오직 이 대륙에서 아이언사이드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인종이 다른 적성 국가의 가장 깊은 곳에 간자를 심는 행동은.

그건 대단히 큰 노동력과 자본이 들어가는 일이다. 한 지역에 완전히 잠입한 요원을, 고작 그 자신을 돕기 위해서 포기한 것이다. 이제 이 요원은 다신 키르자트에 잠입할 수 없을 테니까.

단순한 호의가 아니다. 다른 사람…… 이를테면 데인 왕국의 비센테 왕이라면 모르되, 로베르 궁중백이 이런 행동을 했다면 그건 호의라기보다는 일종의 거래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자는 결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위인이니.

‘아직 나를 황제의 국서로 보고 있군.’

-우리로선 나쁠 것 없는 일이지.

르네 필리파와의 혼약이 깨진 것은 공식석상에 발표된 일 없는 비밀이었다. 둘 사이에서만 오고 간 이야기는 제아무리 로베르라 하더라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아귀가 맞물린다. 르네 필리파가 황궁을 완전히 장악하고 난 뒤에 로베르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악마에게 투신했던 선황제를 몰아내고 지금의 황실을 새로 쌓아 올린 이상, 황제의 입장에서 트레뮐레 백작가는 장차 정치적인 급소가 될 수도 있었으므로.

로베르는 황제와 자신 사이에 어떤 안전선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대상이 페르난데스가 되어 주고, 그 대신 로베르는 키르자트 내부에서 그의 안전과 정보를 책임지겠다 전달한 것이다.

“흐음. 트레뮐레 궁중백과도 친분이 있으신 줄은 미처 몰랐군요. 세르너드 경.”

“내가 먼저 밝힐 일은 아니었으니.”

“그렇다면 제가 경을 제국의 밀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경이 말하신 수수께끼의 정답 되겠습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알 무카파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무카파는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추론 과정까지 궁금하시다면야……. 듣던 대로 철두철미한 분이시군요, 세르너드 경. 가장 최근에 제국에서 활동했던 황실의 귀인이 돌연 엘프 왕조와 연수하여 아국의 항구 도시에 밀항한 이후, 술탄의 첩보 요원들과 접촉하려 한다면 일이 너무 뻔하지 않겠습니까?”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없는 외교를 은밀히 진행하려 한다?”

“그것 외에, 경께서 아국에 발을 들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알 무카파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페르난데스는 아이언사이드의 요원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 또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정리해 보자.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생각했다. 아이언사이드는 지금 페르난데스의 밀항이 황제의 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키르자트 측 또한 그렇게 생각해 밀담을 나눌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았고.

그렇다면 지금, 키르자트 내부에서 그의 발언은 암묵적으로 황제의 요청으로 받아들여질 것이었다.

-운이 좋았군. 이건 기회야.

‘아주…… 절묘한 기회로군.’

레이아가 설마 이것까지 노리고 그를 귀빈이라 소개한 것은 아닐 테지만, 페르난데스로서는 최선 이상의 결과인 셈이었다.

“내 예상이 틀렸군, 알 무카파. 황제 폐하께선 나를 가장 유능한 영주가 수호하는 영지로 파견한 것이었어. 훌륭하시오.”

페르난데스는 미소를 지으며 알 무카파를 바라보았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와 같은 고위 귀족들에겐 결코 오해할 수 없는. 명백한 함의를 품은 미소였다.

마침내 알 무카파는 확신을 가진 채로, 어쩌면 뽐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국에서 처음 마주한 귀족이 저라는 사실이 퍽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세르너드 경. 경에게도, 제게도.”

“나 또한 그리 생각하오. 자, 샥시시도 함께하고 있으니…… 지금의 대화는 술탄께 직접 전달되리라는 보장을 받을 수 있겠지?”

“물론이지요. 언제나처럼, 술탄께선 아국 전역을 언제나 관조하고 계실 테니.”

샥시시는 특유의 성호를 그으며 웃었다. 어쩌다 보니 분위기가 대제국의 고위 귀족들이 갖는 은밀한 회동처럼 변해 있었다.

페이자쉬는 악동처럼 웃으며 주위를 떠다녔다.

-머저리들. 하하하!

‘어디 빼먹을 데까지는 빼먹어 보자고.’

* * *

놀라운 우연과, 절묘한 정보 부족이 만들어 낸 상황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웃음을 애써 참아 가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로베르는 여전히 아이언사이드를 실효 지배하고 있었다. 르네 필리파가 언제고 그 지위를 탈환할 테지만, 아직 로베르는 제국 최고의 정보기관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르네 필리파의 견제를 미리 경계한 탓에, 아이언사이드는 황실 내부의 사정에 대해 무지하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제국의 정보원이 굳이 황실을 감찰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아이언사이드는 지금 페르난데스의 키르자트행이 황제의 명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황제가 아니고서야 굳이 그를 키르자트에 파견할 만한 당위가 없는 탓이다.

따라서, 로베르는 페르난데스를 도울 것이다. 그는 페르난데스의 호의를 통해 황제와의 유연한 정치적 합작을 노리고 있으므로. 또한 이 밀담의 청취자로서 황제의 진의와 향후 정책을 예측하려 할 것이다.

‘아주 현명해. 정보 부족을 고려하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했군.’

-거기에 이 요원의 판단도 대단히 기민하군. 트레뮐레 백작가의 입지를 고려해 자신의 잠복 신분을 발각당하는 것조차 감수했으니.

이제 알 무카파. 이자 또한 범상한 인물은 아니다. 서글서글하고 싹싹해 보이는 저 표정 아래에선 수십 마리의 능구렁이들이 어금니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제 능력과 판단력에 대한 확신으로, 그는 직접 레이아의 기함에 사절로 올라섰다. 그는 그 자리에서 레이아가 엘프 왕조를 통합했다는 것을 파악했으며, 동시에 향후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영민한 판단이지만, 여기까진 누구나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그 이후 알 무카파의 행동에서 그에 대한 가치를 한 단계 올려 평가했다.

그는 페르난데스가 동부의 인간 귀족이라는 것에, 그리고 레이아 여왕이 그를 귀빈이라 말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미 레이아는 동부 왕국들과 연수하여 해상 압박을 시작하려는 인물로 비칠 것이다.

동부의 인간이 굳이 키르자트에 ‘밀항’했으며, 그 밀항의 안전과 주목도를 확보하기 위해 레이아 여왕을 이용했다? 그 정도의 행동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제국뿐이며, 이는 제국의 황제가 키르자트와 비공식적인 밀담을 나누고 싶다는 의미였다.

‘정보가 부족하다면, 당연한 추론이지.’

페르난데스는 알 무카파의 번뜩이는 눈을 바라보며 내심 웃음을 지었다. 키르자트에 도착해 처음 만남을 요청한 인물이 ‘샥시시’라는 점이 그의 추론을 뒷받침했을 것이다.

그 누가 감히 사보타주와 암살, 테러와 정보 교란의 전문가들을, 심지어는 적국의 요원들을 만나고자 하겠나. 그럴 사람이 있다면 그건 술탄과 접촉을 원하는 제국의 밀사뿐이리라.

-언젠간 추월될 정보야.

‘당연하지. 이 녀석들이 허수아비들은 아닌데.’

페르난데스가 황실의 명령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아이언사이드이든 샥시시이든, 그 누가 되었건 언젠가는 파악할 일이었다. 각자 서로의 국가에 이미 심어 둔 정보원들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괘념치 않았다. 아무리 길어도 열흘 안엔 떠날 국가이며, 그 뒤에 그의 정체가 탄로 난다 하더라도 이미 손쓸 방법이 없을 테니까.

“황상께서는 전쟁을 대비하고 계시오.”

무거운 목소리, 마치 단어 자체가 무게를 띠고 있는 듯한 선언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그렇게 말하며 알 무카파를 바라보았다.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경청하고 있는 듯했지만, 눈빛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선전포고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이었으므로.

“그 뜻은…….”

“오해하지 마시오. 귀국과의 전쟁은 이미 종전되었고, 황무지의 적법한 소유권은 수인 호족 연합에 있음을 공고히 하셨으니.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

그의 말에 샥시시가 움찔 떨었다. 술탄은 여전히 황무지 지하에 매장된 마력석 광맥을 탐내고 있었다. 제국의 황제가 수인 호족 연합에 그 땅을 넘겨주었으며, 만신전 교회들이 그 소유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한들. 키르자트의 입장에선 억울할 따름일 테니.

지난 50년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군비 손실은 비단 제국의 것만은 아니었다. 키르자트 또한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했으며, 이는 국가의 근간을 뒤틀 수 있을 정도로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따라서 술탄에겐 전쟁이 필요했다. 내부의 불만과 각 지방 영주들의, 중앙 정권에 대한 불신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황실의 권위를 입증해야 했다. 이는 선대 황제가 수인 호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망령 군주들을 공격하려 했던 것과 같은 논지의 일이었다.

“술탄께오서는…….”

“귀국의 술탄께서도 그리 생각하시겠지. 당연히! 아국과 귀국은 이미 지난 반 세기간 충분한 피를 보았소. 그렇지 않소?”

페르난데스의 말에 샥시시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회담의 주제가 두 강대국 사이의 전쟁 위험을 논하는 자리로 번진 이상, 언사의 실수로 다시금 도화선에 불이 붙는 것만큼은 반드시 피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귀국의 황제께선 어떤 전쟁을 대비하려 하신다는 말씀이신지……?”

“백국마족의 웅거를 경계하고자 하시오.”

“백국마족…… 말씀이십니까?”

“혹 이 자리에, 놈들 사이에서 수상한 거동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이가 있소?”

아이언사이드도, 그리고 샥시시도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철저한 정보기관의 요원들이라 하더라도 이 도시는 백국마족의 평원과 거리가 제법 멀리 떨어진 최후방 지역이었다.

물리적으로, 아직 그들의 소식이 이 자리에 당도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누가 갑작스레 그런 마적들을 걱정하겠는가. 그들은 지난 세월간 단 한 번도 유의미한 전과를 낸 적 없는…… 그저 유목민들에 불과했다.

다소 거칠고, 다소 미개하더라도. 어쨌건 놈들은 제 땅 안에서 돼지나 양 따위를 치는 일에 전념하는 자들이었다. 그 수가 너무 늘어난다 싶으면, 놈들은 저 스스로 내분을 일으켜 정리하곤 했다. 평원의 자원이 감당할 수 있는 인구가 될 때까지.

“그 미개한 유목민들이 대체 무얼 한다는 뜻입니까……?”

“놈들 사이에서 카간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었소. 평원 위의 수천 수만의 게르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비옥한 땅을 향해 진격하리라는 정보가.”

“!!”

그의 말에 샥시시는 움찔 떨었다. 백국마족의 평원은 황무지 이남 지역에 있다. 제국과는 거리가 다소 멀었고, 그들의 눈에 황무지는 썩 비옥한 토지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니…….

바로 국경선이 맞닿아 있는 키르자트가 그 대상이 아니겠는가? 페르난데스의 말은 의외로, 경고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놈들에겐 변변한 병장기도, 병력들도 없습니다. 황제께선 제위 초의 격무에 시달리시어 너무 과한 기우를 보이시는 것이 아니온지…….”

“그것을 내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제 평원으로 향하던 길이었소.”

“허면 경이 아국을 찾은 사유가 아국과의 밀담을 원한 탓이 아니었다는 의미입니까?”

“내 말하지 않았소.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다고. 알 무카파 공. 하지만 황상께서 당부하신 것이 있었으니, 만일 이 일이 진실일 경우 귀국은 향후의 침략에 대비해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조하셨소.”

페르난데스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으며 덤덤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근육 한 줄기, 한 줄기마저 조절할 수 있는, 반쯤 초인의 영역에 걸쳐 있는 디모니카에겐 쉬운 일이었다. 심지어 그는 헤레티카의 위장 잠입 기술마저 숙달한 인물이었으므로.

물론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황제는 이 일에 대해 완벽하리만치 무지하며, 카라드스카르의 발호는 오직 심증만 확실한 미지의 사건이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랴. 이자들이 진실을 깨닫게 될 때는 이미 더 이상 그를 신경조차 쓰지 못할 텐데.

‘카라드스카르가 제국으로 향하게 둘 수는 없지.’

르네 필리파의 제국은 아직 안정이 필요하다. 키르자트는 그와 어떤 연고도 없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으나 제국에서 페르난데스가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은 막대했으므로, 둘 중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면 키르자트를 버리는 것이 맞다.

단순한 소거법이다. 대악마들을 격살하는 위업을 적어도 이 년 안에 완수하기 위해서는 우선 확실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거대한 지지 기반이 필요했다. 더 이상 문명 사회에 신경을 쓰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키르자트는 카라드스카르를 막아 내는 방파제가 되어야 했다. 전생과는 달리, 그 역할을 키르자트에게 위임할 것이다. 술탄과 샥시시들이 진실을 깨달았을 때엔 이미 그들의 눈앞엔 예케 테타이 울루스(대테타이 제국)의 군단이 진군하고 있을 것이다.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진 최대한 이용해 줘야지.’

페르난데스는 그의 말에 집중하며 침을 삼키는 두 꼭두각시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 해야 할까. 아니, 차라리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와 소모를 논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흑마법사와 사제는 그런 면에 있어서 동족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며, 페르난데스는 그 두 직함을 동시에 가진 최초의 인물이라 할 만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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