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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07화 (308/388)

307. 꼭두각시들의 전쟁 (4)

페르난데스는 곧게 달려도 이틀이 걸릴 거리를 거의 반나절 안에 주파했다. 출발 당시만 해도 튼튼했던 군마는 당장이라도 다리가 풀려 쓰러질 듯 헐떡거렸고, 샥시시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 말 없이 그의 뒤편에 매달려 있었다.

저 멀리에 드높은 성벽이 보였다. 아름답게 빛나는 푸른 벽돌로 외성을 장식한, 거대한 도시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십 갈래의 관도가 성하에 늘어서 있고, 그 길을 따라 행상인과 병사들이 줄지어 오고 갔다. 가히 제국의 위엄에 걸맞은 풍광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자연스럽게, 팔텐노이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규모가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팔텐노이아는 암군의 폭정과 내부의 분열로 피폐해진 상황이었고, 알 자흐라의 태양궁은 강대한 술탄의 치세 아래에 여전히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놀랍군.”

그는 알 자흐라로 향하는 관도에 오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체 왜 그리도 쉽게 멸망한 것이었을까?

약 반 세기. 전생 시절을 기준으로 지금으로부터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 정도로 부강한 국가가 고작 반 세기 안에 흔적도 없이 무너지는 것이 가능했단 말인가?

전생 대전쟁의 시기에 인류 최후의 보루는 제국의 팔텐노이아였다. 카르벨리에 여제의 치세 아래에서 지옥의 군세에 맞서 투쟁하던 마지막 전장이 팔텐노이아 평원이었다.

전생과 다른, 개변된 오늘날의 역사가. 즉, 그의 존재가 두 강대국의 차이를 만들어 낸 셈이다. 페르난데스는 그 문장을 입에서 한참 굴리다가 슬쩍 웃었다. 그래, 운명은 없다.

지금 만일 레바인테르 제국이 다시 한번 50년 전쟁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키르자트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장담하긴 어려우리라. 제국은 아직 내전의 피해를 미처 수습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므로.

그러니, 차라리 이 기회는 호재였다. 레바인테르 제국의 국력으로는 결코 카라드스카르를 막아 낼 수 없을 테니. 비교적 국력이 온전한 키르자트의 지원이 있다면 아직 승산이 남았다.

카르벨리에 여제는 아직 여물지 않은 영웅이다. 그러나 그에겐 전성기의 키르하스가 있었으며, 그의 명령에 죽고 사는 수하들이 세계 각지에 잠복해 있었고, 교회와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분열된 국가들과 부족한 준비? 물론 약점이다. 그러나 예상보다 30년 이르게 일어난 전쟁은, 카라드스카르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터. 거기에 더해, 페르난데스에게 남은 수명은 이제 고작 오 년여.

차라리 호재로다. 그의 생전에, 세계의 멸망에 일조할 존재를 하나라도 더 없앨 수 있다는 점이.

페르난데스는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삐를 당겼다. 지친 말이 거품을 물며 천천히 나아갔다. 술탄궁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알 자흐라의 관문 경비대는 반쯤 혼절한 샥시시가 내민 면책증서와 1급 외무보증을 확인하고는 아무런 저항 없이 길을 열었다.

수차례의 관문과 무장 점검, 그리고 삼엄한 경비 아래에서 반나절.

페르난데스는 마침내 태양궁의 심처. 술탄의 어전 안으로 인도받을 수 있었다.

* * *

당대의 술탄, 이사 무스크 야흐아 알’하쉬르는 젊고 사나운 사내였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것일까? 50년 전쟁 중간 제위를 이어받아 치세 기간 전반을 전장 위에서 보낸 전쟁광다운 위엄이, 그의 고동색 눈동자 아래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보라색 베일 아래에서, 그의 실루엣과 안광만 이글거렸다. 화려한 의복이 어전의 조명에 번쩍였고, 베일 뒤의 시종들은 그에게 담배를 건네고 깃털을 부치며 고개를 조아렸다.

예법에 따라, 술탄은 결코 직접 하명하지 않는다. 페르난데스가 어전의 한복판, 보석으로 수려하게 장식된 사치스러운 대리석 타일 위에 가만히 조아리고 있을 때. 베일 뒤에서 자그마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빛나는 태양, 오만 요새의 군주이자 태양이 뜨고 지는 모든 강역의 왕 중 왕이신 존귀자께서 이국의 외인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바라고 이 나라를 찾았느냐?”

시종이 곧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물론 페르난데스는 그가 소리치기 이전에 술탄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무리 작게 말한다 한들, 기침 소리 하나 없는 이 고요한 어전에서 디모니카의 귀를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술탄은 낮게 으르렁거리는 짐승처럼 중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레바인테르 제국의 황제께서는 일찍이 저 남부의 마적들이 준동할 것임을 예측하셨으며, 지금껏 있었던 모든 사태보다 가장 위급한 상황으로 여기시었습니다. 하여, 제가 여제의 대리된 입장으로 이 나라의 존귀자께 청컨대, 병력을 보내어 저 마적들을 단죄하소서.”

“존귀자께서 이국의 외인에게 답한다. 나의 신민을 주살한 자는 곧 나의 적이오, 나의 강역을 더럽히는 자들은 곧 나의 도적들이니, 이는 너희의 군주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하오나, 황제께서는 이 사태가 단순한 국경 분쟁으로 종결될 일이 아니라 판단하셨으며, 작게는 많은 사람들이 상하고 크게는 여러 나라가 흔들릴 대전의 전초라 하셨으니. 미상의 외적에 대항하여 두 강국이 손을 잡는다면 과연 이 문명 사회 위에 적수가 있으오리까.”

잠시 침묵 후에, 술탄은 시종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시종은 머뭇거리다가, 곧 크게 외쳤다.

“존귀자께서 이국의 외인에게 반문한다. 너는 제국의 사절이 아니며, 또한 나의 빈객이 아니니 다만 불청객일 따름이며, 너희의 군주가 겁을 먹은 것은 어리고 연약한 계집일 따름이라. 문명 대륙의 자비로운 지도자로서 너희의 근심을 덜어 주는 대가로 너희는 나의 국가에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시종의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술탄의 목소리를 들었던 페르난데스는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베일 너머의 술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퍽 재미있는 수를 쓰는군. 이 한 수로 그는 술탄의 성미를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저자는 맹수다.

유년 시절부터 청년기, 그리고 치세 전체 기간을 50년 전쟁에 투신했다. 저 사내는 태어난 순간부터 왕자이며, 전사이며, 장수였고, 보고 배울 모든 것들은 전장의 기마 위에서 익혀야 했다.

선대의 제위를 이양받고 난 직후 50년 전쟁이 끝났다. 어느 누구의 승리도 아닌, 애매한 기적으로. 대황야는 초원이 되었고, 황무지는 수인들에게 돌아갔다.

따라서, 그 막대한 군비 소모를 충당하기 위해 술탄, 알’하쉬르는 선택해야 했다. 선제후 시스템이 구축된 레바인테르 제국과는 전혀 다른, 절대군주정의 군주로서. 그는 피와 암살과 살육과 독재로 자신의 제위를 지켜야 했다.

그건 이리와 승냥이의 방식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라난 모든 순간을 야전사령관으로 보내야 했던 청년은 지금, 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문명 국가의 군주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전쟁 군주가 그를 시험하고자 한다. 이는 야수들의 방식이다. 손을 잡기에 앞서, 충분한 능력을 갖춘 자인지 알아보기 위한 가벼운 견제였다.

그래서, 페르난데스는 장막 안에서 빛나는 두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지원을 제공하겠습니다.”

“존귀자께서—”

“아니오. 제가 말씀드린 지원이라 함은, 귀국이 몰락하지 않을 최소한의 지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존귀자께서 말씀—”

“물론 그렇게 받아들이실 수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으며, 제국의 황제께서 생각하신 바 또한 그렇습니다. 남부의 소요 사태는 단순한 경계 태만이 아니며, 귀국은 이 전쟁으로 결코 씻을 수 없는 손실을 강요받게 될 겁니다.”

페르난데스는 이제 더 이상 시종의 말을 기다리지 않으며 대답했다. 당장 교수대에 걸린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을 무례였다. 그러나 당황한 시종과 분개한 신하들을 제외하고 정확히 당사자, 술탄과 페르난데스 두 사람은 분노한 기색 없이 담담했다.

비록 그 언사에서 칼이 춤추고 창이 날아든다 하더라도.

“이는 협박도, 허황된 예언도 아닙니다. 황제 폐하뿐만 아니라, 저 개인 또한 완전히 동일한 결론을 내렸으며 적들의 군세가 이곳 알 자흐라까지 도착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술탄께서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셨던 대황야 또한 놈들의 발굽 아래 불타오를 것이며, 그 광경을 보고 술탄께선 차라리 기뻐하셔야 할 겁니다. 저 병력들만큼은 귀국을 침략하지 않았으므로!”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일어서며 한 글자, 한 글자 끊어 말했다. 완벽할 만큼 정중한 키르자트어였으며, 유창한 발음과 문장 구조였지만. 그 뜻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신들 사이에서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만일 술탄의 권위가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대신들은 당장 일어서 그를 끌어내거나 목을 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술탄이 휘장 아래에 앉아 두 눈을 새파랗게 뜨고 있는데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간 큰 신하 따윈 없었다.

그리고 곧,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처음과 달리. 이젠 이 어전의 모든 이들이 작게나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내가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나의 강역을 노리고 있으며, 이를 만리타향의 황제가 돕고자 한다는 말을. 내게 믿어 달라는 뜻인가?”

“존귀자께서 말씀—”

“닥쳐라. 쓸모 없는 녀석.”

술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의 말을 주워섬기려던 시종을 발로 걷어찼다. 거칠게 튕겨 나갔음에도 시종은 아무런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곧장 일어서 의관을 정돈했다.

어전에 침묵이 감돌았다. 술탄이 어전 회의 도중에 직접 목소리를 키우거나, 직접 무언가 행동하려 할 때마다 누군가의 목이 날아갔었다. 대신들은 겁에 질려 목을 움츠렸다.

곧, 휘장이 걷혔다. 술탄은 맨발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저벅저벅 걸어왔다. 마치 야수가 걸어오는 기분이라, 페르난데스는 오랜만에 온몸의 근육이 쭈뼛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디모니카의 본능이었다. 자신에게 충분한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본능이 먼저 인지한 것이다. 서로 주먹만 뻗어도 닿을 거리에 서서, 술탄은 페르난데스에게 말했다.

“그 유창한 혓바닥을 조금 더 놀려 보지. 그 시간만큼 네 수명을 담보해 줄 테니.”

“술탄께선 저를 죽이실 수 없습니다.”

“왜? 제국의 밀사이며, 엘프 여왕의 귀빈이며, 카르벨리에 여제의 처첩이며, 대황야의 군주가 아끼는 애첩이기 때문에? 네 그 화려한 편력을 내가 모를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길 바라지. 내 신하들은 그리 어리석지 않으니. 자, 대답해 봐.”

술탄은 페르난데스보다 한 뼘가량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탓에, 그는 온몸을 긴장한 채 어둠 속에서 도사리는 고양잇과 맹수처럼 보였다.

“네 그 번지르르한 직함이 나의 손 앞에서 네 목숨을 보장해 줄 것 같나?”

“술탄께서 저를 죽이실 수 없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럼 뭐지?”

“그럴 능력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꿀꺽. 어전 안에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 울렸다. 대신들은 이제 화내는 것조차 잊은 채 긴장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의 머릿속엔 분노한 술탄이 제국의 밀사를 찢어 죽이고, 그를 만류했던 신하들을 도륙한 이후, 제국에 선전포고를 거는 광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영원 같은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바람이 흩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후, 후후. 후.”

그 누구도 감히 술탄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술탄이 소리 내어 웃는 광경을 처음 마주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제국의 황제에게 대단한 인물이 있었군. 나는 제국의 인물이라 하여 선황제의 차남이 왔나 했었지. 그 녀석을 제외하면 네 나잇대의 제국인들은 모두 쭉정이들이었으니! 하하. 그래, 좋군! 암! 그런 기개가 있어야 사내라 할 수 있지.”

술탄은 껄껄 웃으며 페르난데스의 등을 두드렸다. 페르난데스가 술탄을 마주 보며 웃음 짓자, 술탄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제국이 수만 필의 군마를 보내고 수만 근의 강철을 지원한다 한들 자네 하나보다 든든할 것 같지는 않군. 모든 상황을 미리 파악했고, 내게 그 사실을 전달할 담대함을 갖추었으며, 내 의중을 가장 먼저 깨달았으니. 그 시선을 나와 같은 지점에 두고 있음이로다.”

술탄은 흔쾌히 페르난데스의 손을 마주 쥐고 흔들었다. 곧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돌아 옥좌를 향해 걸었다.

“그대가 예상했다시피 상황은 심각하지. 그리고 또, 예상했다시피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이 몰려오고 있으며 우리에겐 아직 뚜렷한 대안이 없고. 서로를 견제할 필요도, 그럴 가치도 없음을 적어도 이 자리에서 우리 둘은 알고 있으니. 자. 말해 보게.”

황제는 지금 이 순간, 굳이 백국마족을 예로 들어 키르자트를 견제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엘프 여왕의 입장에서도, 키르자트는 견제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교역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는 법이며, 외교는 오직 차가운 논리와 냉철한 이윤 앞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지금 키르자트에 백국마족의 위험에 대해 설파하고 고도의 외교전을 걸어 혼란을 주어 보았자 이득을 얻는 집단이 없었다.

그러므로, 술탄은 이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페르난데스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다. 신뢰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므로. 그건 간단한 소거법이다.

그리고 술탄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페르난데스 또한 파악하고 있었다. 두 사내는 서로를 본 순간부터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술탄에겐 그를 시험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향후 대신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그러니 이제 모든 절차는 끝났다. 충분히 의심했고, 충분히 해명했고, 충분히 증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실행과 논의뿐이었으며, 두 사내는 귀찮은 절차들을 해치웠다는 만족감 아래에서 함께 웃었다.

그날 늦은 저녁이 미처 지나기 전.

술탄은 알 자흐라의 거의 모든 병력을 남하시킨다.

카라드스카르의 군세의 예상 가능한 최대 진군 속력을 고려하자면 일주일.

술탄의 병력이 ‘안전지대’로 분류되는 남부 한계선에서 카라드스카르의 군세와 처음 조우할 때까지 걸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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