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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11화 (312/388)

311. 꼭두각시들의 전쟁 (8)

술탄이 직접 이끈 군세는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전군의 삼 할가량이다. 즉, 단순히 머릿수로만 따지더라도 키르자트 전역의 군사력 중 삼 할이 그의 수중에 있다 하겠다.

이는 기형적일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이었다. 그 어떤 전쟁 군주들도 왕실 직속 병력의 수가 국가 동원력의 삼 할까지 이르는 자는 없었으니.

그리고 그 강대한, 아마도 역사상 가장 강대할 전쟁 군주의 군단은 지금 요새 인근의 숲속에 주둔지를 펴고 있었다.

“그런가? 패배했다고?”

“그렇습니다. 예정대로.”

“예정이야 되었으되, 과도하게 이르군. 아직 군세가 완전히 편제된 것이 아니네.”

“시간을 버는 일은 충분했을 겁니다.”

페르난데스는 화려한 막사에서 느긋하게 몸을 누인 술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휘장 너머에서, 술탄은 이제 서슴없이 그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었다.

오래된 전통에 따르자면 예법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술탄은 결코 신하들에게 직접 말을 할 수 없다. 술탄의 권위가 반쯤 신성한 존재의 것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그러나 술탄, 알’하쉬르는 그런 예법 따위에 전전긍긍하는 고지식한 군주가 아니다. 그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적의 목젖을 뜯어서라도 손에 넣는 야수였다.

“방도가 무엇이었지?”

“제 수하가 지휘관의 수급을 쳤습니다. 당분간 놈들은 평야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겠지요.”

“수급을? 놀랍군.”

술탄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 어떤 자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사자가 토끼를 물 때에도 최선을 다한다 하던가.

그런 그였으니만큼, 평원에서 카라드스카르의 군세가 갖는 강인함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적의 지휘관을 직접 참살하는 것은 일반적인 교전 상황에서도 어려웠을 것인데, 적병 거의 과반이 기마병으로 이루어진 군세 속에서 어찌 해낸 것인가.

“그러고 보니, 자네에겐 참 인재가 많아.”

“과찬이십니다.”

“아니, 진심이다. 혹시, 내게 팔 생각이 있나?”

이 대륙 최강의 기마병들 사이에서 적장의 수급을 자르고도 철수할 수 있는 기수.

한정적인 범위 안에서라면, 병력의 이동과 경로를 앉은 자리에서 파악할 수 있는 참모.

술탄이 가진 가장 뛰어난 검수보다 날카롭고 정교하게 싸우는 검사.

그리고, 대륙 동부의 거의 모든 왕국과 외교 라인을 갖고 있는 이 사내.

이 사내가 이끌고 있는 저 작은 집단은, 그 존재만으로도 전황을 뒤틀고 외교 관계의 저울추를 뒤튼다. 알’하쉬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탐이 난다. 저 능력이.

“아니, 실언이었군. 그대의 수족들은 그대의 연인들이니. 그렇다면 내 다시 묻지. 세르너드, 내게 투신하겠나?”

키르자트는 일부다처와 일처다부를 모두 존중한다. 이는 단적으로, 능력과 재력이 충분하다면 배우자의 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형식과 체면을 중시하는 동부 왕국 귀족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관이었다.

그런 그였으니, 술탄은 페르난데스의 일행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주 뛰어난 청년이 아주 뛰어난 아내들을 대동하고 있다는 식으로.

“충성을 바라신다면, 그건 제가 제공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닙니다. 술탄.”

“충성이라. 하! 내게 충성이 부족해 보이던가?”

“능력 있는 인재들이 필요하시다면 그 또한 술탄께 모자람 없어 보입니다.”

“충성과 달리 인재는 언제나 많을수록 좋지.”

휘장 너머에서 안광이 일렁였다. 페르난데스에게 만일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저자를 악마나 그 하수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술탄의 존재감은 인간의 것을 벗어나 있었다.

저런 눈빛과 저런 존재감을 가진 존재는 이 대륙 위에 많지 않다. 전성기의 비센테 2세, 다리안 쉬라이크, 칠흑의 에리크, 그리고 카라드스카르. 한 사람, 한 사람이 대륙의 전황을 뒤엎던 영웅호걸들의 눈이었다.

“자네의 군주가 자네에게 무엇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많지는 않을 걸세.”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제국의 황제는 선출직이고, 내 권위는 신성하니까. 자네의 군주는 법도와 명분 사이에서 그대에게 하사품을 주었을 것이네만, 내 말은 이 나라의 법도이며, 내 의지는 이 나라의 명분이고, 내 이름이 키르자트일세.”

“제 충성을 대가로 황제가 올려 둔 거래 상품은 혼인이었습니다.”

“어느…… 귀족가와? 그대에게 배우자가 부족해 보이진 않네만, 바란다면 내게도 경국지색의 규중처녀들과 귀족 영애들이 넘쳐 나네만.”

“황제 본인과의.”

“…….”

술탄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휘장 뒤에서 천천히 페르난데스의 얼굴을 훑었다. 충분히 강인하고 귀족적으로 생긴 미남이었으나, 전혀 동하는 것이 없었다. 당연하다. 그는 남색가가 아니었으니.

그리고 보기에, 저 청년 또한 남색을 선호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당장 일행이 모두 여인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호색을 한다면 호색가이겠지만.

잠시간의 침묵 끝에, 술탄의 머릿속에 벼락처럼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무릎을 치며 충격받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대를 사로잡으면 제국의 황제가 내 신하의 첩실이 되겠군!”

“…….”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는 술탄을 보고서, 이번에는 페르난데스가 말을 잊고 말았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생각은 했으나, 그 예상조차 그를 너무 협소하게 판단한 것이 아니었을까.

-미친놈이군.

페이자쉬가 끙, 하며 속삭였다. 이번엔 그의 말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 * *

술탄과 페르난데스가 계획에 대해 논의하던 그 시점, 키르하스는 막사 뒤에서 오랜만에 마주한 그녀의 기수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모두들 신이 난 상태였다. 전투는 호쾌했고, 아군의 피해는 놀라울 정도로 전무했으며, 그들의 주군, 불패자 키르하스는 여전한 무예와 안목으로 전장에 임했다.

그녀와 함께하는 전장은 사냥터에 불과했다. 그녀에겐 승리를 보는 눈이 있었고, 그건 수인들 모두의 자랑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냥 신의 대리인, 가장 위대한 전사, 스스로를 입증한 전설. 수인들 모두는 그녀의 열성적인 신도들이나 다름없었다.

“자, 한잔하시죠. 대족장!”

“아, 미안. 술은 좀. 난 이거 마실게.”

“예……?”

키르하스는 찰랑이는 잔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어딘지 성숙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건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 준 고압적이고 강인한 면모와 전혀 다른 웃음이었다. 그 모습이 그녀가 애써 만든 가면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기수들에게, 그녀의 모습은 퍽 낯선 것이었다.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음, 아니! 건강은 괜찮아. 걱정 고마워!”

“그럼 갑자기 취하면 안 될 이유라도……?”

“술은 독이니까!”

“예……? 이게 언제부터……?”

“아기한테!”

“윽엑?”

“켁!”

기수들은 일제히 머금던 술을 뱉어 내며 컥컥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키르하스가 “더러워!”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그게 문젭니까? 대족장? 아니 세상에, 누굽니까?”

“누군지 몰라서 물어요, 대장? 당연히 페르닌 경이겠지!”

“제가 도전하고 오겠습니드아악!”

“대장 죽으면 다음 대장 저 시켜 주세요, 대족장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수인 전사 하나가 씩씩거리며 칼자루를 쥐려다가 멈칫했다. 페르닌 경이랑 일대일로 사내답게 싸우는 것까지는 상상이 되는데, 문제가 있다면 그다음 상상에 잘린 자신의 목도 보인다는 것이었다.

전사는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이 못난 족장의 명령에 잘 따라 줘서 정말 고마워. 황야 사정도 녹록지 않았을 텐데.”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거, 지금 다 대족장 덕에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인데.”

수인들은 픽 웃었다. 사실이었다. 황무지를 전전하던 시절보다 지금 사정이 훨씬 좋았다. 선제후령 하나를 거의 공식적으로 점거한 상황에서, 황무지 위의 부족들은 더 이상 적은 먹거리를 두고 다투지 않았다.

대족장의 드높은 권위 탓이다. 내분을 엄격히 금하고, 반란 분자들을 직접 도륙해 버린 키르하스의 무위 덕에, 황야의 부족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를 맛보고 있었다.

거기에 제국은, 저들 선제후의 땅이 침탈당했음에도 대황야 인근의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명목하에 수인들을 용인했다. 키르하스가 생각하기에, 그건 아마 르네 필리파의 역할이 지대했을 것이다.

이대로 한 세대만 무사히 흐른다면 수인들은 자연스럽게 제국에 복속될 것이었다. 이건 평화와 먹거리를 미끼로 한 일종의 문화 침략이었다. 물론, 수인들에게 있어서 나쁠 것이 없는 거래였고, 키르하스 또한 그런 행동을 알고도 묵인하는 중이었다.

수인에겐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했다. 더 이상 부족민들이 노예로 잡혀 가거나 사냥감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제국은 대황야를 얻고, 수인들은 안전을 확보한다. 양방 간에 이득뿐인 거래다.

“요즘 애들은 어때? 말 잘 들어?”

“블랙팽이 아주 실권을 단단히 쥐고 있습니다, 대족장. 피엘 대무녀님도 블랙팽과 손을 잡고 있고, 골든투스 전사장님도 별 반발은 하지 않으시고요.”

“파르탁이 뭐 못된 짓을 하거나 하진 않지?”

“블랙팽이야 일상이 더러운 녀석이라 뭐……. 몇몇 원로분들이 실종되긴 하셨는데, 사실 그 원로분들도 뒤가 구린 작자들이었어서. 부족민들 사이에선 불만이 없습니다.”

“다행이야!”

키르하스가 정권을 직접 주도한 것은 대단히 짧은 시간뿐이었다. 그녀는 수인들에게 있어 직접 통솔하는 리더라기보다는, 일종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신화의 시대를 불러오고 수인 전체를 규합한 상징.

그녀가 직접 실권을 잡아 부족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던 적이 있던가? 수인 전사들이 생각하기엔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권위에 반발하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가 드러난 순간, 분열되어 투쟁하던 수인들은 하나가 되었고, 황야 위의 다른 강대한 적수들은 그녀의 지휘 아래 으스러졌다.

불패자. 사냥신의 대리자. 민족의 통합자. 그리고 마침내, 흙먼지뿐이던 황무지 위에 들풀이 솟아나고, 어린아이들이 더 이상 굶주리거나 죽음과 추위에 떨지 않는 시대를 연 상징.

“그래서 대족장. 언제쯤 돌아오십니까?”

“아마도, 곧? 적어도 열 달 안에는 가야지. 아이한테 고향은 보여 주어야지 않겠어?”

“페르닌 경의 고향이 대황야던가요?”

“아니? 하지만 내 아이를 동부 왕국에서 키울 생각은 없어. 이 아이는 대족장이 될 테니까.”

키르하스는 아직 매끄러운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 완숙한 모습에, 수인들은 그녀가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성장했다. 그 전까지 그들의 대족장은 능력과 재능이 넘쳐나는 영웅이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면모가 있어 아슬아슬해 보이곤 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만난 그녀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영웅의 씨앗이 온전히 발아한 그러한 인물이.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동시에 겸비한, 한 아이의 어미가 되어 있었다.

“대족장!!”

그때, 저 멀리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기마가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수인들이 일제히 풀밭에 뉘여 놓은 칼자루를 움켜 쥐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키르하스는 그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달려오는 자는 수인이었다.

“누구냐!!”

“블랙테일 대장님, 죄송합니다! 급보가 있어 직접 찾아왔습니다!”

기마 위에 흙먼지 뽀얗게 얹은 남루한 행색의 수인 전사가 곧장 뛰어내려, 키르하스의 발아래에 오체투지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헐떡거리며 말했다.

“저, 저는 체라센 부족의 발라인이라 합니다. 위대한 불패자를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응, 괜찮아. 누가 이 전사에게 술을 건네라! 자, 체라센의 발라인. 난 괜찮으니 호흡을 다스리고 천천히 말해도 좋아.”

“감사합니다. 대족장님!”

전사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황급히 입술을 닦았다. 그는 큼, 하고 호흡을 정돈하고는 급히 말했다.

“부족들이 불타고 있습니다, 대족장님. 적들이 침공했습니다!”

“적들이……? 자세히!”

“며칠 전, 라비라타에서 지원 요청이 있어 몇몇 족장들이 전사들을 이끌고 참전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절반만 살아 돌아왔고, 지금 이제 대황야 전역에서 교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거짓말! 우리가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대황야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블랙테일 대장님. 아닙니다! 대장님이 출정한 시기 거의 바로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상한데? 라비라타가 대황야에 위치하고 있기야 하지만, 너무 남부 지역 아니야? 지금 수인들 대부분은…….”

수인 대부분은 그 거점을 제국의 선제후령, 뷜랑 인근에 두고 있었다. 대황야에 남은 자들은 몇몇 보수주의자들과 전통주의자들뿐이었다. 그러므로 수인들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기 위해선 뷜랑까지 진군해야 했으며, 라비라타와 뷜랑은 그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전령의 말로, 며칠 전에 라비라타를 적들이 공격했다면 그 직후 뷜랑이 곧장 위협받을 리가 없었다. 그 아래로 제국엔 다른 지방들이 넘쳐나고 있었는…….

‘백국마족의 진격이 수도에 알려졌을 때, 놈들은 이미 다섯 개의 도시를 정복했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에 샤르자 항에서 막 벗어났을 때, 샥시시에게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백국마족의 군사들은 상식 밖의 진군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라비라타가 큰 저항 없이 함락되었다면, 그 소식이 제국에 알려지기 전에 이미…….

“거기 너! 페르닌 경을 불러라! 당장!”

“예!!”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부드럽고 강인했던 인상에서, 이제 칼날을 품고 있는 전사의 것으로. 그녀는 고개를 흔들고는 일어서서 외쳤다.

“아니! 모두들 출정을 준비하고 있어라! 내가 직접 다녀오겠다!”

“예, 대족장!”

백국마족의 군세가 대황야를 정벌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대황야에는 유의미한 저항 병력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대부분의 수인들은 뷜랑 시 인근에 주둔 중이며, 대황야 남부는 라비라타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 지역이 점령되었다면, 놈들은 진공 상태의 대황야를 웃으며 가로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제국엔 뷜랑 시보다 더 라비라타에 가까운 대영지가 있었다.

“리뷔에가 넘어갔나……?”

르네 필리파 드 카르벨리에. 리뷔에의 공왕이자 제국의 황제. 그녀가 그 사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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