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꼭두각시들의 전쟁 (18)
-후드득!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페르난데스의 눈앞으로 그의 땀이 모여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세상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 떨고 있는 탓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몸이 뜨겁고, 전신 근육이 피로와 고통을 울부짖는 와중에도 내면은 고요히 침잠하기만 한다. 페르난데스는 깊은 숨을 내쉬며 팔을 굽혔다.
-우득!
뼈마디가 맞춰지는 소리와 함께, 웅덩이가 가까워졌다. 코끝에 물기가 닿고, 이내 다시 떨어졌다.
“후우…….”
[짐이 보기에 그건 그저 학대에 불과하다.]
“때때로 자기 학대와 수련은 구분하기 어렵지.”
[짐 또한 수많은 전사들을 육성했으며 다섯 이상의 전사장들을 보았으나 그토록 거칠게 제 몸을 학대하는 전사는 없었다. 그건 차라리 고행자들의 자세에 가깝구나.]
“바로 맞추셨소. 나는 디모니카니까.”
디모니카는 고행자이며, 또한 전사라 불릴 만한 자들이다. 페르난데스는 팔을 굽히며 말했다. 그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 단 두 손가락으로 전신을 받치고 물구나무선 채로 팔을 굽혀 근육을 풀고 있었다.
라비라타는 시종들의 부채질을 받으며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상의를 벗은 탓에,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섬세하게 갈라진 근육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근골이 뒤틀리고 뼈마디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그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울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페르난데스는 가볍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스트레칭을 했다.
“이제야 좀 몸이 풀리는군.”
[……? 몸을 풀었다고? 근육을 풀어 헤쳐 찢어 놓았다는 관용어인가? 현대 언어 체계는 복잡하구나.]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농담에 대답 없이 픽 웃었다. 라비라타는 스트레칭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칼날과 같다고 여겼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수척해졌지만, 오히려 더 날카로워져 예기가 흐르는 듯했다.
칼날이라. 마치 검인을 연마하듯이, 숫돌 위에 칼날을 모로 드리워 갈아 내듯이. 그는 전신에 고행에 가까울 자극을 내리쳐 근골을 다잡고 있었다.
“너무 오래 몸을 놀렸었으니, 이제 일어설 때가 되었지.”
[그대의 무기는 내면에 있다 여겼다. 그대가 뛰어난 무사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굳이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는가?]
“최선의 준비는 최대의 준비니까. 도구는 많을수록, 그리고 강력할수록 좋은 법이오.”
[한 사람의 몸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으려 하지 말거라. 이건 그대보다 오랜 삶을 살아온 짐의 조언이니라.]
“말씀 고맙소.”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닌데?]
“때가 되면 그때 귀담아듣도록 하지.”
[사내들이란.]
라비라타는 짧게 혀를 찼다. 페르난데스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저 파라오의 육신은 메마른 미이라에 가깝다. 즉, 발성 기관이 없다는 뜻이었다. 다른 망령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녀의 맑은 음성은 순전히 그녀의 마법에 기인한 것이었다.
‘혀를 어떻게 찬 거지? 그런 음성까지 마법으로 구현했다는 건가?’
-여자들이란.
페이자쉬가 킬킬거리자, 라비라타가 매섭게 눈을 빛냈다.
[아는지 모르겠으나……. 그대, 주문술사여. 짐은 그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매우 무엄하군.]
-오, 미안하게 되었네. 혼잣말이 너무 익숙해져서 말이야. 생각이 좀처럼 속에서 삭여지지가 않는 몸인지라. 영체는 속이 없거든.
[아주, 무례하군. 페르난데스. 어째서 저자를 치우지 않는 거지?]
“도구는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오.”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팔을 마저 풀었다. 육신의 상태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고된 노동과 마법의 백래시로 빠르게 소모되는 수명, 그리고 육체의 성능을 언제나 정점에 유지시키려는 디모니카의 신성이 상충하며 영혼과 육체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르키스의 선물. 영생자의 영성이 스며들며 육체와 영혼의 불균형이 일시적으로 조율되었다. 무작정 안심해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의 몸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신들의 파편을 흡수한 아벨이 유해에 불과하던 육신을 수복하여 영혼과 육체의 균형을 맞춘 것처럼. 그의 몸에도 정확히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용의 영혼은 신성을 품을 수 있으나, 인간의 영혼은 그럴 수 없다는 점.’
영체에 갇혀 있는 신성이 빠른 속도로 휘발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의 호전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일종의 회광반조, 또는 응급처치에 불과하다. 여전히 몸은 무너지기 시작한 도미노처럼 균형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소.”
[아포타자르의 회신이 아직이다. 괜찮겠느냐?]
“언제나 변수는 있을 수 있지. 하지만 내겐 최적의 순간을 파악할 수 있는 유능한 가신들이 몇 있소.”
[제국 인간들의 군단이 어디쯤 도달했는지 모르지 않느냐.]
“그들은 늦지 않을 것이오.”
그건 믿음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이상, 그를 살리고자 하는 이들이 결코 늦지 않으리라는 믿음.
피엘은 대단히 강력한 정보 반사 독립체다. 즉, 그녀는 페르난데스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 실시간으로 이를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키르하스가 지금 그녀와 합류해 있다. 키르하스에겐 승리의 길이 보인다. 사냥의 신 카단이 직접 정제했으며, 다른 세계의 ‘불패자’ 키르하스가 그녀와 섞여 만들어진 재능이다. 그녀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 순간 최적의 수를 본능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또한, 이 대황야에는 프레이야가 있다. 지금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녀는 며칠 전부터 이 대황야 전역을 그녀의 영지로 삼아 세력권을 넓히고 있었다. 이 황무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그녀의 눈에 포착된다.
프레이야는 자신이 거하는 지역에서, 꽃을 피워 올려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 조건들이 맞물리면, 적어도 제국 방면에서의 지원은 반드시 성공한다. 저들 모두가 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므로. 오히려 사지를 향해 걷는 것이 작전의 성공률을 높일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다만, 믿음뿐이었다. 자신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가신들에 대한. 이제 움직여야 할 때였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끝냈으니.
[그들이 부럽구나. 그대가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에서 특히.]
“그대에게도 의지하고 있소.”
[말뿐이라도 듣기 좋구나.]
“빈말이 아니오. 남부 방면의 방어선은 순전히 그대의 손에 걸려 있소. 키르자트의 군사들이 이 지역에 접근한다면, 전장으로 이어질 교두보를 확보해 주시오.”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하지만, 짐과 하나만 약속하도록 하지.]
“그게 무엇이오?”
라비라타는 시종을 향해 턱짓했다. 시종들이 조용히 물러서며 페르난데스의 행장을 꺼냈다. 그녀들은 나긋한 손짓으로 페르난데스의 몸에 묻은 땀을 잘 말린 아마포로 닦아 내고는, 갑주와 장비들을 입혀 주기 시작했다.
[그대는 짐의 요구 조건 세 가지를 거부할 수 없다. 이는 짐과 그대의 거래였다.]
“그렇소만……?”
[하지만, 짐은 그대에게 유예를 주었다. 그대가 죽은 후에 그 조건을 제안하겠다고.]
“그랬소만……?”
[짐은 그 위에 한 가지 더 조건을 걸고 싶다. 약속하거라. 그대의 수명이 스스로 다하기 전까지는 짐에게 오지 마라. 그대의 육신은 고작 스무 해를 살지 않았느냐. 그대는 스스로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러니,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후에 그 행복을 충분히 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사후의 여정을 준비하라.]
라비라타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장황하게 말을 이어 나갔으나, 그 본질은 기원에 가까웠다. 건강히 살아서 이 전쟁의 끝을 보라는 기원. 페르난데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행장을 등에 지고 황무지를 향해 걸어 나갔다.
* * *
-퐁!
드넓은 초원 위로, 붉은 꽃이 문득 피어올랐다. 풀잎 사이에서 순식간에 꽃봉오리가 발아하고는, 눈에 띄는 순간 꽃망울이 터져 나갔다.
-퐁!
때도, 그리고 장소도 맞지 않는 붉은 꽃들이 점점이 그의 길 앞에 박혀 있었다. 프레이야였다. 그녀가 먼 거리에서 그에게 길을 밝히고 있었다. 여신이 그의 길을 가호한다는 듯, 말없는 응원과 함께.
새벽 어스름한 초원 위에서, 페르난데스는 꽃이 트는 방향을 향해 말없이 걸었다. 여정의 끝이 머지않았다.
* * *
“대족장? 대족장!”
“쉿.”
키르하스는 동녘을 등지고 서쪽 저 멀리 지평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귀가 날카롭게 솟아서 움찔거리고 있었다.
“뷜랑……?”
저 너머엔 뷜랑이 있다. 수인 호족들이 스스로 불태워 만든 폐허가. 카라드스카르의 군단이 대황야를 건너,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진출할 교두보로 사용 중인 전진기지가 있었다.
그녀는 눈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수인 병사들을 보았다. 초췌하고 남루한 행색에, 피로와 먼지가 깊게 쌓인 도망친 짐승들이 보였다.
“대족장……. 후퇴해야 합니다!”
저들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적들의 전병력에 비하자면 터무니없는 소수의, 말하자면 선발대나 정찰대 정도에 불과할 병력을 막아내는 것에도 충분히 벅찼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퇴로에는 패배. 장기적인 결과로서의 패배가 보였다.
“뷜랑으로 간다.”
“진심이오, 대족장?”
승리를 향한 길이 서쪽을 향해 펼쳐져 있었다. 전투 예지에 가까운 본능이 뷜랑으로, 그리고 그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족장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제기랄, 다 같이 뒤지자는 거야, 뭐야!”
“그대는 남으십시오. 린드테일 원로. 골든투스 원로님과 저는 대족장을 따르겠습니다.”
“블랙팽도.”
숲의 그늘 아래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원로는 꼬리를 바싹 세우며 그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파르탁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른 원로들과 함께 걸어 나왔다.
“매파 원로들 전원이 대족장과 함께 할걸세, 린드테일. 자네는 어디로든 도망이라도 쳐 보라고. 꼬리 만 개새끼처럼.”
“파르탁 블랙팽. 이제 와서 전사인 양 구느냐? 지난 전쟁 내내 뒤에 숨어 벌벌 떨던 놈이?”
“뭐, 힘을 모으고 있었다 치지.”
파르탁은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주군과 갑자기 연락이 닿을 줄은 누가 알았겠나. 한동안 연락도 없고, 그 시기에 겹쳐 괴물 같은 녀석들이 몰려오기에 그사이에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주군이 살아서 돌아왔을 때 나의 배신을 알아챈다면 나를 살려 둘 리가 없다.’
페르난데스의 연락을 받은 이후부터 파르탁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그는 가장 영향력 높은 원로였으며, 각 씨족의 원로들 대부분은 그에게 크고 작은 약점이 잡혀 있는 상태였다.
“누구든 저 겁쟁이의 잔에 찻물을 채워 주어라. 도망칠 길에 목이라도 축여야지.”
“제기랄, 다들 정말 뒤지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게요? 저긴 사지라고!”
“다들 조용.”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림자 짙게 내린 숲속에서 청록색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원로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게 깔았다.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쌓아 올린 격과 신의 의지를 대리하며 성장한 영성이 끔찍한 존재감이 되어 장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키르하스는 침묵에 빠진 원로들을 한바퀴 훑고는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피엘, 페르닌의 상태는?”
“며칠 전에 비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호전되었군요. 대족장, 지금 그는 카라드스카르의 군영을 향해 곧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예상 접촉 시각은?”
“사흘 뒤 자정입니다.”
“그 후의 미래가 보이나?”
“……아뇨.”
피엘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예지가 미래를 환시할 수 없는 경우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대상이 죽었거나, 정보 노출을 방해하는 모종의 사건이 일어났거나.
며칠 전부터 피엘은 페르난데스의 미래를 볼 수 없다 말했다. 그 이후로부터 키르하스는 매일같이 피엘에게 그의 상태를 물었고, 같은 대답이 들려올 때마다 칼날처럼 싸늘해져 갔다.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그녀 또한 지금 페르난데스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처럼 정확히 그의 수명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인들은 감이 좋다. 페르난데스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키르하스는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아주 간단한 공식이 있었다.
1. -> 은공은 결코 패배할 작전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라도.
2. -> 즉, 은공의 작전을 수발하면 자연스럽게 승리를 향한 국면을 마주하게 된다.
3. -> 그러므로, 그녀의 직감이 승리를 향하는 방향에 은공이 있다.
이건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이따금씩 수인들이 키르하스를 불패자라 부르듯이, 그녀는 페르난데스를 불패자라 여겼다. 그는 결코 패배할 것 같지 않은, 압도적인 초인의 형상이다.
그러나 어째서 불안한가. 그녀는 칼자루를 톡톡 두드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그녀는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페르난데스의 계획에 자신의 안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작전의 거국적 승리에 필요한 조건이 자신의 목숨이라 할지라도 그는 충분한 가치만 있다면 아낌없이 자결할 인물이었다. 그러니, 미래를 볼 수 없다는 피엘의 말은 그녀에게 사형선고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믿음이 없다면 따르지 말 것이요, 따른다면 불길과 가시밭길 사이에서도 반드시 믿어라.’
언젠가 페르난데스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다. 그건 도구로서의 맹목적인 믿음을 바라고 말한 것일 테지만, 지금까지 키르하스에게 그 말은 절대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홑몸이 아니다. 이제 그녀의 목적은 페르난데스의 승리가 아닌, 페르난데스의 생존과 행복에 보다 더 기울어져 있었다.
“우린 뷜랑으로 간다.”
“대족장!! 이건 우리의 전쟁이 아니오!”
“얼마나 더 도망칠 생각인가? 적들이 대황야를 불사르고 진군하는 이때에, 놈들의 가축이 되길 자처해 목숨을 연명하겠는가? 내일이 우리의 도축일이 아니기를 기도하면서? 너희의 자식들, 우리의 자손들에게도 그 천형을 물려주겠나?”
키르하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원로들과, 오랜 전투로 피폐해진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존재감이 서슬 퍼렇게 이글거리며 저들 모두의 가슴을 옥죄는 듯했다.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존이 아니요, 우리 자손들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리라. 우리의 선조들이 그래 왔듯이! 우리의 전쟁이 아니라고?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외면한다면, 언젠가 다가올 우리의 전쟁에 그 누가 우리의 곁에서 저들에게 맞서 주겠는가?”
키르하스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곧장 집어 던졌다. 콰득 하는 파열음과 함께, 정면의 나무에 단검이 깊숙이 틀어박혔다. 곧 이에 화답하듯, 단검이 틀어박힌 자리에서 꽃봉오리가 터 오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그녀는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호족들을 향했다. 그들은 갑작스레 벌어진 기사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라! 이 지상 위에 신들마저 우리의 사냥을 축복하고 있으니. 무기를 들라! 도주는 끝이다! 그대들의 대족장이, 사냥 신의 대리자가 돌아왔다. 사냥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부우우우!!
그녀의 손짓에 기수 하나가 뿔나팔을 꺼내 들어 불었다. 곧, 산 전체에서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뷜랑에서 팔텐노이아로 향하는 험준한 산맥, 곳곳에 숨어든 수인 전사들이 하나둘 이에 화답하고 있었다.
산 전체가 울부짖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도망치고, 삶을 연명하기만을 바랐던 수인들의, 이 천성적인 사냥꾼들의 화답이었다.
대황야가 불타고 있다. 새로 옮긴 거주지들 모두가 적들의 손에 떨어졌고, 그들은 야산에 숨어 풀뿌리로 연명하며 간헐적인 기습으로 적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러나 키르하스가, 그들의 대족장이 돌아왔다. 먼 황무지, 적들이 가득한 저 죽음의 공간을 가로질러서!
-하트테이커! 하트테이커! 하트테이커!
불패자. 두 강대국의 지독한 전쟁과 망령 군단의 압박, 호족 내부의 분열과 반란. 그 모든 사건들을 직접 돌파하며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았던 그들의 대족장이 지금 그들의 앞에 있다.
곧, 산맥 전역에 몸을 웅크리던 기수들이 기마에 올라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소식은 머지않아 서부 팔츠, 데인 왕국과 제국의 연합군 군영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