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매와 늑대와 바다뱀 (2)
-카앙!
페르난데스가 놈의 발톱을 막아 낸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두운 밤조차 낱낱이 볼 수 있는 야간시를 가지고 있었지만, 카라드스카르의 발톱은 어떤 전조 없이 그의 목젖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캉! 카득!
정신없이 칼을 휘둘러 공중을 쳐 낼 때마다 놈의 발톱이 어김없이 튕겨 나왔다. 일반적인 강철검이었다면 열 번은 더 부서지고도 남았을 강격이다. 페르난데스는 고작 다섯 합을 겨룬 이후부터 팔뚝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다.
-뒤!
‘알아!’
-쒜애액!
오랜 경험과 단련된 육체가 만들어 낸, 거의 예지에 가까운 본능 덕에 페르난데스는 가까스로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공기가 찢겨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머리칼이 한 움큼 잘려 흩어졌다.
[고작 이 정도였나? 고작 이 정도에 불과했나!]
카라드스카르는 거칠게 외치며 연신 팔을 휘둘렀다. 거대한 갈퀴 끝에 날 선 손톱이 공간을 갈라내며 페르난데스의 머리와 가슴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카앙!
“큭!”
두 수를 동시에 막아내는 바람에 자세가 어긋났다. 단단하게 대지를 디디고 있던 발이 허공에 들리며, 페르난데스는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낸 채 뒤로 날아갔다.
-제기랄, 온다!
‘알……아!’
낙법을 취할 시간이나 전술을 다듬을 여력이 없었다. 그가 날아가는 그 순간, 카라드스카르가 그대로 뛰어들어 야수처럼 어금니를 벌리는 것이 보였다.
-쾅!
페르난데스는 허리를 틀어 바닥을 차고는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급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방금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놈의 턱이 맞물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농업용 압착기가 부딪치는 것 같았다.
‘이래서 다리안이 실패한 건가?’
-무슨 소리야. 다리안이 상대했던 카라드스카르는 예카세트의 사도 같은 것이 아니었어. 우리가 더 힘든 상황이란 거지.
‘저 녀석을 죽이면 우리가 다리안보단 낫다는 뜻이지?’
-죽일 수는 있고?
‘그럼 죽을 생각이었나?’
페르난데스는 농담으로 압박감을 털어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놈은 당장 달려들지 않고,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를 내려 보고 있었다.
카라드스카르의 네 쌍의 붉은 눈이 이글거리며 그를 집어삼킬 듯 노려보았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잠시 숨을 돌릴 틈을 얻었다.
‘육체 능력으로는 상대가 되질 않는군. 타이반의 사도가 와도 저 수준은 못 보여 줄 것 같은데.’
-부상은?
‘장기가 조금 상했고, 오른 손목이 살짝 어긋났군. 조금 더 무리하면 부러지겠어.’
-대안은?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
근접 격투에서 놈을 꺾는다는 것은 망상에 가까운 일이다. 야수들의 지배자, 만월의 화신, 일곱 밤의 사냥꾼, 뿔 난 왕관 쓴 늑대, 예카세트. 그런 놈의 힘을 고스란히 받아 내고도 놈이 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지금 놈의 상태가 대악마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진짜 영웅이 있더라도 단독으로는 결코 상대해선 안 되는 괴물이다. 페르난데스는 칫, 하고 혀를 찼다. 장기가 상해 핏물이 얼핏 비쳤다.
단독으로는 결코 상대해서는 안 되는 괴물. 대악마의 사도들이나 그에 준하는 자들. 이른바, 열다섯 악적들. 페르난데스는 잠시 향수에 젖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즐거운가?]
“우습기는 하군.”
[뭐가 그리 우습지? 자조인가? 체념인가?]
페르난데스는 대검을 한 손으로 옮겨 쥐고는 빈 왼손을 가볍게 풀었다. 손목이 시큰거리지만 손가락을 움직이는 데에 무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단독으로 상대해서는 안 되는 괴물.
열다섯 악적?
그 명단 가장 마지막에, 가장 굵고 큰 글씨로,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도록 진하고 위협적으로 새겨진 이름이 있다면. 그건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배신자’ 페이자쉬의 이름이었을 터.
애초에 칼은 수단에 불과했거늘. 페르난데스는 짧게 반성했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이들의 소치다. 그리고 마학자는 언제나,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법이니.
“카라드스카르, 네 분노를 존중하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다. 그러니…….”
한 손에 쥐인 묵빛 대검이 빙글, 한 바퀴 돌아 곧게 뻗었다. 페르난데스는 칼을 뻗은 채 잠시, 이글거리는 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광기에 가까운, 상처 입은 맹수와 같은 분노. 그 절절한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른 누구라면 모르되, 그는 지금 저 사내의 광기에 공감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그건 변명에 불과하기도 했다. 내 아들을 위해, 내 아들의 미래를 위해 놈의 아들을 죽이겠다고 선택한 순간부터. 시간을 다시 돌린다 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같은 사건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는 저 사내를 연민할 것이다.
그 또한, 잃어버린 자식의 슬픔으로 세계를 부수고 천상을 향해 진격했던 사람이었으므로. 역사가 그 전과 같이 흘렀다면 저 사내는 그런 슬픔을 마주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하지만, 역사가 전과 같이 흐른다면 그날의 고통은 다시금 그 자신의 가슴을 살라 먹을 것이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사제들의 호언과는 달리, 목숨의 저울추는 결코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적어도 그에겐, 그의 아들의 목숨은 이 세계와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다.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이 나의 자식이어서는 안 된다. 치기 어리고 이기적이며 부도덕한 말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 말은 페르난데스의 최우선 명제였다. 그러니, 다시 돌이킨다 한들 같은 행동을 하겠으나.
“기도해 주마.”
저자의 처지를 연민하겠다. 그것 또한 치기 어리고, 이기적이며, 부도덕한 자기 위로에 불과하겠지만.
“간절히.”
-아우우우우!!
부풀어오른 만월 아래, 검은 먹물 같은 빗방울이 산란하는 와중에 늑대와 사제가, 아니 아들을 잃은 두 아비가 서로를 향해 달려 나갔다.
* * *
-아우우우우!!
“대족자아앙!!”
“크윽!!”
수인 기병들은 지금 정체불명의 적군과 뒤엉켜 있었다. 키르하스는 정신없이 산란하는 비 속에서 칼을 휘두르며 적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아니, 정체는 확실했다. 놈들은 백국마족의 기병대였다. 적어도 오늘 밤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뜻이다. 말도 통하고, 겁을 먹을 줄도 아는 평범한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습격이 시작된 직후부터 놈들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악마와, 심지어는 다른 세계의 신들마저 마주했던 그녀로서도 지금 저자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막막했다.
“으아…… 아아악!!”
“눈 내려! 하늘을 바라보지 마!”
“아아아악!!”
“늦었다! 녀석의 목을 쳐라!”
키르하스는 으르렁거리며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따라 질주하던 정예병들이 거품을 물고 온몸을 바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저 달을 본 순간 키르하스마저 한순간 정신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을 받았다. 달을 직시한 그녀가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카단의 힘이 있었던 탓이었다.
[과연 대단하군.]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닐 텐데!’
[사냥의 신과 사냥의 악마라. 하하, 그전이라면 자웅을 겨루어 봄 직했을까? 글쎄, 잘 모르겠군. 나는 놈을 알고 있다. 천상전쟁 이전, 첫 들짐승이 첫 번째 사냥감을 물었던 순간 사냥감의 비명에서 태어난 악마. 필멸자들이 어둔 밤 속에서 타오르는 야수의 안광을 겁낼 때부터 이름을 얻은 악마. 놈은 이미 관념 그 자체가 되었다.]
카단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존재로서의 격에 차이가 명백했다. 카단이 ‘사냥’이라는 관념을 이어받은 것은 전적으로 베이타서스의 안배 덕이었다. 그의 관념은 본디 균형과 심판이었고, 사후세계로 향하는 관문을 관장하던 그의 신격은 뭄토에게 집어삼켜졌으므로.
그러나 예카세트는, 태고의 첫 사냥부터 태어난 관념적 존재였다. 야성에 대한 공포와 짐승 내면의 광기가 고스란히 구현된 현상에 가까운 존재였다.
완전히 현현했다면 이보다 더 사태가 심각했겠으나, 다행히 그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카단은 혀를 차며 수인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저 보름달. 놈의 관념에 얽혀 든 수인들이 하나둘 짐승의 형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꾸드드드득!!
병사들의 피부 거죽 아래에서 근육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피부가 종잇장처럼 찢어져 나갔다. 곧 그것은 백국마족의 다른 병사들과 같이, 더 이상 인간으로 부를 수 없는 형상이 되어 피와 살점을 탐하며 날뛰었다.
신체적 능력으로는 비견될 바가 없고, 사기로 따진들 의미가 없다. 놈들은 겁을 먹지 않는 광기의 짐승들이었다. 달밤의 사냥개들. 예카세트의 악마가 된 것이다.
[인간이든, 수인이든, 그 무엇이라도. 결국 태고의 야성이 온전히 거세될 수는 없는 법이지. 사냥꾼과 사냥감의 위치가 바뀌고, 사냥의 시간이 시작되는구나.]
“닥쳐!”
키르하스는 가면을 으스러질 듯 움켜쥐고는 으르렁거렸다. 그녀 또한 지금 시시각각 달아오르는 머리를 간신히 식히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안저가 타오르고 뇌수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격렬한 충동, 살인과 식육에 대한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아니다. 아직 아니다. 그녀는 마음속 깊이 그녀의 주군을 속삭였다.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이성과 합리의 화신처럼 보이는 그 사내의 행동, 언행, 태도를 떠올렸다.
“크윽! 대족장! 퇴각해야 합니다!”
“더,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아직 이성을 붙들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키르하스는 잠시 주위를 살폈다. 온 사방이 오색 색체로 물들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피와 붉은 작약꽃이 흐드러진 초원, 타오르는 싯누런 달과, 새카만 빗물들…….
그 어디에도 승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끔찍한 순간,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이 온다 한들 저 어딘가엔 승기가 있기 마련이다. 포기하지 않는 이상, 반드시 가능성이 있다.
“……하…….”
키르하스는 마침내 그 실낱같은 가능성을 찾아내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있었다. 승리로 향하는 길이. 너무나 아득하고, 불가능한 길이 그녀의 눈앞에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달이었다. 저 천구 위에 썩은 종양처럼 부풀어 올라, 부패한 혈관을 뻗어 나가듯이 광기의 마력을 흩뿌리고 있는 거대한 천체가 이 싸움의 유일한 승산이었다.
아마도 저것이 놈의 근원일 것이다. 관념적 존재라 하였으니, 놈의 관념이 응집된 본신은 저 위에 도사린 달이겠지. 그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선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모두 도망쳐라.”
“대족장……?”
“하루, 하루가 더 필요하니…….”
제국의 본대가 도달할 때까지 얼추 하루 거리. 본격적으로 전투를 준비하고 교전이 발생한다 가정한다면 아무리 빨라야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다. 이미 사기가 꺾여 시시각각 탈주자가 속출하는 그녀의 군세는 꼬리 만 개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니 누군가는 그 하루와 반나절을 벌어야 했다. 저 먼 곳 어딘가, 아마 이 장소보다 치열할 어딘가에서 그녀의 주군이 싸우고 있을 것이다. 홀로 외로이,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니 그녀 또한 언제나 그랬듯, 그의 곁을 지켜야 한다.
결코 그를 홀로 방기하진 않겠다. 키르하스는 고개를 젓고는 어금니를 드러냈다. 은공, 제게 남은 소원이 하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은공보다 먼저 죽는 것뿐입니다. 그녀는 착잡한 마음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다들 가라! 아직 살아 있는 녀석들을 모아서, 이 자리의 상황을 제국의 황제에게 전해! 그들이 전투를 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라도 전해라!”
“하지만, 대족장! 어찌 저희만…….”
“누군가는 누군가의 하루를 벌어야 하는 법이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 생각하느냐?”
그녀의 말에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이던 수인들이 퍼뜩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달과 그 아래의 야수들을 마주 보며, 키르하스의 청록색 눈동자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건 광기나 야성 따위의 저열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숭고함이었다. 그 광경에, 수인들은 저도 모르게 속삭였다.
“황야의 방패…….”
“불패자…….”
창공을 뒤덮는 악마의, 지독한 존재감 앞에서도 홀연히 타오르는 강인함. 대해의 폭풍 앞에, 흐린 수평선 너머로 작게 빛나는 등대와 같이. 아련하고 보잘것없으나 확고하게. 이를 달리 말하자면, 그건 희망이리라.
수인들은 그녀의 모습 앞에서, 주위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무력과 그녀의 지휘, 또는 카리스마나 그녀가 쌓아 올린 업적 따위와는 상관없이. 이 자리에서 이성을 갖춘 모든 수인들은 그녀에게 진심을 다해 경의를 바쳤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대족장.”
“살아서 보자.”
“예, 하트테이커. 반드시. 살아서 뵙길 바라겠습니다.”
수인들이 떠나고, 그들을 쫓는 야수들 사이에서. 키르하스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