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26화 (327/388)

326. 매와 늑대와 바다뱀 (3)

칼날이 춤을 춘다. 묵빛 대검이 허공을 활개 치는 그 간극 사이에서, 늑대와 사제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카앙!

맑은 금속성이 울렸다. 놈의 공격 수단은 발톱과 엄니였으나, 악마의 축성을 받아 그 사도가 된 이상 일격 일격의 무게와 강도가 보통을 넘었다.

-카득!

갈퀴처럼 어그러진 손아귀 속에 칼날이 맞물리며 끔찍한 마찰음을 내었다. 어쩌면 그의 손목에서 들린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놈의 손목이거나. 몸을 튕겨 낼 정도로 묵직한 충격을 전신으로 받아 내며, 페르난데스는 입술을 씹었다.

-화르륵!

그의 머리 뒤에서 돌연 검은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그는 빈 왼손으로 능숙하게 수인을 짜 올렸다. 복잡한 대주문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 대지의 지맥과 대기는 지금 그의 마력을 거부하고 있었다.

세계 전체가 그를 향해 집요하게 마력 쐐기를 박아 넣는 듯한 감각이었다. 물론, 그런 방식의 마법전에는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양이 범상치 않았다. 이 정도의 왜곡을 모조리 계산하며 실시간으로 주문을 매듭짓는 것은 당년 페이자쉬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단순한 주문을 짜 올린다. 일단 하나. 허공을 짚은 수인이 그린 문양은 [셋].

-카앙!

정신없이 내달리는 팔뚝을 쳐내며, 그는 거의 온전히 방어에 전념하며 연신 주문을 짜 올렸다. 누군가가 본다면 불가능한 기예라 할 것이다.

본디 마법사란 세간의 상식과는 달리 체술에 능하다. 가장 세련된 마법전은 상대방의 주문이 완성되기 이전에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므로. 와일드캐스트들의 마법전은 단검을 던지고 암습을 가하는 식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마법의 합이 교환될 시점에 이르면, 그 누구도 주문 시전 도중 체술을 섞지 않는다. 수인을 얽어 마력을 매듭짓는 것은 외과의의 수술처럼 대단히 섬세한 기예이며, 그 과정의 사소한 실수조차도 치명적인 백래시를 낳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주문 실패로 인해 머리나 장기가 터져 나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므로 마검사라는 호칭은 동화 속 이야기에 불과하거나, 강력한 유물을 손에 쥔 검사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완벽한 수인을 짚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완숙한, 이를테면 반평생을 타지에서 방랑해야 했던 노년기의 와일드캐스트가—

-카아앙!!

스무 살 젊은 육체. 심지어는 디모니카의 육신을 입어 인지능력과 신체 제어 능력, 그리고 반사 신경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그 와중에 검기(劍技)의 경지가 어떤 정점에 이를 정도로 단련되었다면.

체술과 마도, 그 상반된 두 학문에서 일정 이상의 경지를 고르게 쌓아 올린 자가 있다면. 그런 기적과, 또는 망상과 같은 일이 실재한다면.

-화르륵!

세 가지 수인을 짚어 내는 동안 열다섯 번의 검격이 오고 갔다. 페르난데스는 카라드스카르의 일격을 가슴으로 유도해 강하게 쳐 냈다.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였다. 충격을 최대한 완화시켜 몸을 튕겨 냈으나, 놈의 공격은 이미 충차의 것과 같은 수준이어서, 설령 디모니카의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온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덕에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바닥에 처박혀 다시 튕겨 나가며 굴러떨어졌다. 그가 자세를 다잡기도 전에, 카라드스카르의 거체가 날듯이 뛰어올라 그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몇 초. 아니, 그걸 다시 여러 차례 나누고 난 뒤의 찰나. 가슴으로 유도한 공격에 간격을 벌리기 위해 튕겨 나가고, 그 날아가는 몸을 야수의 각력으로 따라잡아 온 것이다.

만월을 배경으로 드넓은 그림자를 내리며, 놈의 발톱이 다시 그의 머리와 가슴을 노리고 떨어졌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놈의 어금니가 반짝였다. 놈은 승리를 만끽하며 웃음 짓고 있었다.

-화륵.

페르난데스는 바닥에 누운 채, 달려드는 놈을 향해 왼팔을 뻗었다. 삼 절에 불과한 짧은 수인. 그 뜻은 셋, 축조, 날개. 완성된 주문의 이름은 삼두육비라.

하나씩, 날개가 펼쳐지듯. 바싹 마른 손이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난다. 동시에 일그러진 노인의 두 머리가 그의 양 어깨 위에 희미하게 투영되고 있었다. 그 현상에 늑대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했지만.

늑대는, 페르난데스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든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발톱이 저 나약한 인간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 내고 그 피를 탐할 것이다. 심장을 산 채로 뜯어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촤르르르륵!!

갑작스레, 검은 쇠사슬이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인지가 현상을 뒤쫓지 못했다. 늑대는 진심으로 당황하며 팔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오른팔에 단단한 사슬이 감겨 있었다.

“카자드의 검은 포승.”

페르난데스는 한 팔을 뻗은 채 작게 속삭였다. 늑대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는, 왼팔을 휘둘렀다. 도약으로부터 이어져 나온 힘은 사라지고 없었으나, 거리는 충분했고 그의 한 팔은 사람 하나를 토막 내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콰아앙!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몸을 튕겨 그 자리를 벗어났다. 늑대는 페르난데스가 피한 순간에도 그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우득, 오른팔이 터져 나갈 듯 팽창했다. 페르난데스는 뒤로 물러서며 수인을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 뻗어 있는 다른 손들이 제각기 다른 수인을 짚기 시작했다. 대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삼두육비는 사실 낭비에 가까운 보조 주문이다. 그러나 마법전을 상정할 경우엔 다른 관점이 필요했다.

팔이 여섯이란 뜻, 그리고 그 팔 하나하나가 각자 다른 주문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예컨대. 여섯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소규모 주문을 퍼부을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

“부패.”

시그니처 스펠조차 아닌, 학파 공용 마법서에나 있을 법한 아주 간단한 주문. 하나하나가 관념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그 안에 담긴 마력이 현상을 온전히 투영할 수 없는 ‘저급 술수’.

-따악!

“부싯돌.”

손가락이 튕겨지며 반짝, 하고 불똥이 튄다. 기실 그 무엇도 태울 수 없는 작은 섬광에 불과한 한 수.

-카앙!

“칼바람.”

날카롭게 벼려진 바람이라 한들, 그 풍압으로 벨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피부 한 장 정도뿐. 악마의 거죽을 찢기는커녕 붉은 생채기 하나 내기 어려운 주문이다.

그러나 계속. 끝없이 이어서,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증기를 뿜는 제국 공장의 내연기관들처럼. 서로 정반대의 방향에서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하며 매듭 짓는 여섯 개의 팔이 기묘한 합주를 이어 나간다.

“타락.”

“모루.”

“어두운 화살.”

“제물.”

“영체화.”

“소규모 추방.”

주문과 주문이 마치 끝말잇기를 하듯, 사슬처럼 이어진다. 하나하나 별 볼 일 없는. 심지어는 유효한 타격이 전혀 없을 주문이.

일 년 전, 뭄토를 추적하기 위해 프타하의 투탄 가르텝에게 사용했던 주문이 있다. ‘저급 술수’의 마법들을 때려 박아, 이를 단번에 격발시키는 주문. ‘페이자쉬의 악의의 고리.’ 그러나 지금 페르난데스가 사용하는 것은 이와 그 구동 방식이, 기조가 전혀 다른 주문이었다.

정말로 무의미한. 영체와 육체 모두에 어떤 타격조차 줄 수 없이 그저 닿는 순간 흩어져 버리는 소규모 주문들의 나열. 그저 그뿐이었다.

-쾅! 쾅! 쾅!

따라서, 늑대는 페르난데스의 주문을 무시했다. 화려하고 번쩍거리지만 조잡하다. 그의 몸에 닿는 순간 주문들은 그대로 파괴되며 마력 파편이 되어 흩어져 버릴 따름이었다.

그러니, 당장 그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그의 오른팔을 묶고 있는 사슬뿐이었다. 이건 저 나약한 주문들과는 달리, 진짜 마법이었다. 다른 부가적인 기능 하나 없이 정말 단순히, 적을 묶는 것에만 치중한 시그니처 스펠이다.

시간을 들인다면 파괴할 수는 있겠지만, 늑대의 성미가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놈은 곧 어금니를 드러내며 제 어깨를 씹었다. 우득, 콰직. 기묘한 파열음과 함께 어깨가 덜렁이며 뜯어져 나갔다.

-아우우우우우!!

늑대가 달을 바라보며 긴 울음을 터트렸다. 한 팔을 잃은 고통과 그로 인한 분노가. 짧은 순간이나마 한자리에 묶여 있어야 했던 그 억눌린 치욕과 야성이 터져 나갔다.

-콰득!

그리고 그의 몸을 덮어 가던 수많은 주문들이 그 울음에 일제히 깨지며 마력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잔재주는! 끝이다!!]

늑대는 더듬거리며 외쳤다. 이미 반 이상 광기에 삼켜진 머리에서는 그보다 복잡한 어휘가 빚어지지 않았다. 곧 놈은 몸을 틀어 페르난데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카앙!

페르난데스는 다시 칼을 뻗어 놈의 공격을 막았다. 그는 반쯤 튕겨 나가다시피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이번엔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늑대는 주문을 맺을 짧은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달려들어 발톱을 휘두르고 어금니를 찍어 댔다.

-캉! 캉! 카드드득!

“붕괴.”

“격발.”

“가속.”

-카아앙!

이제 덜렁거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페르난데스는 양손으로 칼을 휘둘러 늑대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그의 등 뒤에 뻗은 손들은 여전히 멈춤 없이, 의미 없는 주문을 쏟아 내고 있었다.

놈의 발톱이 휘둘러질 때마다, 그리고 이에 대항해 그의 검이 허공에서 맞물릴 때마다. 그가 쏟아 낸 주문이 바스러지며 흩어졌다. 먼지처럼, 빗방울과 바람에 섞여 산란하며 점차 희미하게 사그라들었다.

[소용! 없다—!!]

“쐐기.”

-파직!

불똥이 튀며 늑대를 스쳐 지나갔다. 늑대는 코웃음 치며 팔을 뻗었다. 이젠 몸에 닿지도 못하는군. 이 작은 주문술사가 나약해졌다는 뜻이다. 상처 입은 사냥감을 내려다보자니 군침이 질척하게 흘렀다.

놈의 심장을 삼키고 싶—.

“페르난데스의—”

-파직! 파직! 파지지직!

늑대를 스쳐 지나간 불똥이 전류처럼 사방을 향해 뻗어 나간다. 희미하고 작은, 의미 없을 정도로 너절한 주문의 파편. 아니, 관념조차 빚지 못하는 그저 마력의 흐름에 불과한, 작은 와류가.

-파지지지직!!

사방에 산개한 마력 파편들을 향해서. 더 이상 마법의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바스라진, 먼지같이 비산하며 사그라드는 것에 불과한 마력들을 타고 흐르며. 마치 들불이 기름 위를 달리듯, 벼락이 하늘 위를 수놓듯이!

-파직…!

섬전처럼 그의 심장을 노리던 늑대의 팔이 우뚝 멎었다. 저 천구 위에서 광란을 흩뿌리던 만월. 그 아래 휘몰아치는 바람과, 심지어 빗방울마저.

박제된 것처럼.

“파편 매듭.”

부서진 마법들, 파편화된 주문들이 사그라드는 순간 허공을 비산하는 마력 파편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단순한 쐐기 주문 하나가 격철이 되어.

찰나, 그 단 한 순간에 허공 위로 방향성을 빚어내었으니.

주문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킨, 지반 아래의 마력 흐름을 대신하여. 허공 위에 만들어 낸 인공적인 마력 흐름이 짧은 순간 와류처럼 일렁였다.

대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뒤틀린 지맥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마력들이 주문 매듭에 광범위한 마력 쐐기를 끊임없이 때려 넣고 있기 때문이었으나—

-그렇지. 마법전에서 패배한다면 진홍탑의 이름이 울지. 하하, 으하하하!

반대로, 단지 현상만을 해석한다면. 마력 쐐기가 틀어박히는 것은 마법전을, 그저 규모가 크고 불합리한 마법전을 의미할 따름이니.

이 순간, 세계 전체가 그를 상대로 마법전을 걸고 있는 지금. 단 한 순간만큼은. 그의 마력이 전류처럼 흐르는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담대하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베이타서스 경전의 구절을 속삭이며, 페르난데스는 핏물 흐르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이건, 흑마법사식 농담이었다.

-털썩!

무력화되어 허물어진 카라드스카르를 향해서, 페르난데스는 주문의 역류를 전신으로 받아 내며 비척거리고는 천천히 걸어 다가갔다.

역할을 다하고 부서진 주문들이 다시, 먼지처럼 흩어져 나갔다. 주문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청동 왕좌가 그의 손목에서 끊어져 떨어졌다. 이젠 수리해도 다신 써먹지 못하겠군. 페르난데스는 털털 웃었다.

제 328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