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34화 (335/388)

334. 불멸자와 필멸자 (3)

“……막토.”

파비아노는 죽은 사제의 눈을 감겨 주며 작게 속삭였다. 비카레 호반을 내려 보는 산턱에 위치한 이 작은 예배당은 지금 형체조차 남지 않도록 전소해 있었다.

아직까지 남은 불씨들이 주위 수풀을 그을리며 타닥거렸다. 그는 잔불을 짓밟고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아가토 형제님.”

“바르도 형제와 코르넬리오 형제는 예배당 내부를 수색하고 다른 흔적을 찾게. 다비오 형제는 이 근방에서 펼쳐진 사교 의례가 있는지 확인하고……. 나는, 이 흔적을 추적하겠네.”

“홀로 말입니까? 함정일 겁니다. 형제님.”

“그러니 내가 가야지.”

파비아노는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레티카 둘과 엔마기카 하나. 거기에 디모니카까지 하나. 이들 중 악마의 함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그 하나뿐이었다.

놈들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을 때, 놈들을 만날 가장 좋은 방법은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거미줄 끝엔 거미가 살듯이, 함정을 파 두었다면 놈들이나 그 끄나풀이 있기 마련이니까.

“수색이 완료되는 대로 이 흔적을 따라오게. 다비오 형제, 사교 의례가 발견된다면 그 즉시 지원을 요청하고 비카레 호반 인근 세 개 마을에 소개 절차를 시행하게.”

“주의 이름으로.”

“막토.”

파비아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풀 속 끈적하게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 걸었다. 예배당 인근은 전소되어 있었다. 사제들이 살아 있을 때 불을 질렀다면 모를까, 잿더미 위에 흩어진 생생한 혈흔은 노골적인 함정이었다.

뿌득, 이가 갈렸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용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 *

“이상하지 않습니까, 코르넬리오 형제?”

“흐으음…….”

코르넬리오는 바닥에 흩어진 파괴흔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적의 심부에 대한 타격만을 전문으로 하는 디모니카와는 달리, 헤레티카들은 그 활동 범위가 넓다. 이들은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페이른 왕국 전역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곳은 작은, 대여섯 명의 사제들이 모여 조용히 살아가는 봉쇄 수도원이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런 사건이 두어 차례 더 접수된 바가 있었다.

“누군가가 봉쇄 수도원을 의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요새화된 수도원엔 제법 가치 높은 부가 쌓이기 마련이다. 성유물은 말할 것도 없고, 잘 교육받은 수도사들은 제법 뛰어난 품질의 와인이나 옷감, 특수 작물 따위를 길러 판매하기도 했다.

수도원을 세속의 강도들이 공격했을 리가 없다. 산적이나 강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온적인 추적과는 달리, 교회의 추적자들은 이단심문관과 성당 기사가 될 테니까. 그럴 경우, 제아무리 뛰어난 산적들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수도원을 공격한 대상은 세속의 인물이 아닐 것이다. 이단이나 사교도. 대부분의 경우엔 그랬다. 게다가 이 수도원엔 약탈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이 근방에 수도원이 얼마나 되지?”

“다섯 군데 더 있습니다. 대부분의 수도원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지내는지라…… 지금 상태를 파악하기 지난합니다만…….”

“페이른 왕국 내의 수도원은?”

“대략 쉰에서 예순 사이 정도 됩니다. 정확한 파악은 본청에 복귀한 이후에 확인할 수 있겠으나, 개괄적으로 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형제님.”

“최근 접수된 수도원 파괴 사건은?”

“지난 반년간 네 차례였습니다.”

모든 이단과 사교도들이 도시 내에 암약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는 인프라가 뛰어나 숨어들기 좋지만, 그만큼 교회의 눈에도 잘 띄는 곳이었으므로. 이단들이 도시 외부로 시선을 돌릴 때, 가장 공격하기 수월한 곳이 수도원이었다.

성유물과 신실한 사제의 영혼은 악마 추종자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제물이다. 수도원에 저장된 식료와 고서적들은 방랑 마법사로 떠도는 사교도들에겐 더없이 훌륭한 수확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봉쇄 수도원들의 특징상, 이들이 내부에서 어떤 환란을 겪고 있는지는 외부에서 관측하기 어렵다. 반년간 네 차례. 최근 페이른 왕가가 내분을 일으키며 치안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제법 빈번하지 않은가.

“수색을 멈추지. 형제는 지금 본청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수도원장님께 알리고 긴급 조사 명령을 시행하게. 나는 아가토 형제님을 따라 임무를 속행하겠네.”

“예, 형제님. 허면 다비오 형제는……?”

“함께 철수하게.”

코르넬리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단심문청은 베이타서스 교회의 영향력이 닿는 거의 모든 지방에서 활동한다. 지금 페이른에 집중할 수 있는 인력이 얼마나 될까. 고작 현장 인력의 의혹만으로 예비 병력 전원을 투사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세속 왕가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페이른에서라면. 1왕자와 2왕자의 마찰이 극대화된 지금, 페이른은 동부 세속 왕가들의 화약고로 전락하고 있었다.

오랜 전란이 끝났으나, 전쟁은 끝이 없구나. 역사의 앞에서도, 역사의 뒤에서도. 코르넬리오는 한탄하며 칼자루를 쥐고 불타오른 예배당 밖으로 나섰다.

* * *

핏자국이 끊겼다. 파비아노는 어금니를 아득 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흔적이 끊겼다는 건, 이 근방이 함정의 한복판이란 뜻이었다. 그의 감각이 넓게 퍼지며 주위 작은 소음을 하나하나 분류하기 시작했다.

곤충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따라 흩어지는 소리, 들짐승이 살금살금 기어가는 소리. 온갖 정보가 그의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그러나 파비아노의 단단한 정신은 그 혼란 속에서 진중하게 다른 정보를 찾아 분류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바위처럼 멈춘 채로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곧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파비아노의 눈이 번개처럼 뜨여지고, 그가 품 안에서 단검 한 자루를 뽑아 그 방향을 향해 겨누었다.

“누구냐.”

“접니다, 형제님. 코르넬리오입니다.”

“아, 형제.”

파비아노는 단검을 회수하며 수풀 속에서 나타난 코르넬리오를 바라보았다. 그 또한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쥔 채 파비아노를 향해 경계하고 있었다.

“아가토 형제님. 기도해 보십시오.”

“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주는 나의 생명이며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너는 선(善)을 바라며, 덕(德)을 행하고, 의(義)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의 천부께서 네게 정(正)을 더하시리라.”

“막토.”

두 사람은 성경 구절로 서로를 확인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침없이 서로에게 다가섰다.

“추적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형제님?”

“흔적이 여기에서 끊겼네. 주위에 악마나 사교도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더군.”

“타격에 실패했습니다. 이 일은 저희들의 정보 미흡이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형제님.”

“무슨 말을 그리하는가. 어찌 형제에게 허물을 묻겠나?”

“본청으로 복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르도 형제가 현장에서 의문점을 발견했습니다.”

“가면서 듣지, 그게 뭔가?”

파비아노와 코르넬리오는 수풀을 헤치며 예배당 폐허를 향해 걸었다. 코르넬리오는 열기로 바싹 마른 수풀을 끊어 내며 말했다.

“최근 봉쇄 수도원들에 대한 집단적인 공격이 의심됩니다.”

“페이른 왕국 내에서? 성급한 추측이 아닌가?”

“몇몇 수도원들을 확인해 보아야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만……. 이번 작전의 추적은 여기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참사를 일으키고 도주한 악마 사교도를 방치하자는 겐가?”

“지금 다른 형제들이 팔론 시에서 추적 작전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작전을 그 형제님들에게 인계하고 저희는 수도원에서 다른 작전을 검토해야 합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조용히 의견을 나누던 두 사람의 발이 멈췄다. 정확히는, 파비아노의 발이 멈췄다. 코르넬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파비아노를 바라보았다.

“형제님?”

“쉿.”

파비아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잡히고 있었다. 작은……. 희미한.

신음 소리.

-콰득!

파비아노는 거칠게 칼자루를 움켜쥐고 달려 나갔다.

이 예배당에 살아남은 수도사 따윈 없었으며, 작전 지역은 이미 이단심문관들을 제외하곤 완전히 소개된 이후였다. 그렇다면 저 신음은 형제의 것이었다!

* * *

수풀 끝에 도달했을 때, 파비아노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온몸을 긴장시켰다. 지옥 마력의 감각이 여실했다. 지금까지 숨긴 것이 용할 정도로. 세인트메탈 장검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형제여…… 형제…….”

악마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위협적이었다. 황폐화된 수도원 위에 떠오른 태양은 정오였음에도 싸늘하게 느껴질 만큼 창백했다. 파비아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잿더미 위에서 꿈틀거리는 형체에게 다가갔다.

불에 타 얼굴이 뭉그러진 형체는, 체구나 음성으로 보건대 다비오였다.

“어떻게 된 건가. 형제.”

“바르도 형제가…… 공격…… 타락…… 조심하십시오…….”

“코르넬리오 형제!!”

파비아노가 거칠게 외치자, 이윽고 수풀 속에서 코르넬리오가 헐떡이며 나타났다. 디모니카의 전력 질주를 수풀 속에서 쉽사리 따라잡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비오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내가 부주의했네. 혈흔이 함정이 아니라 미끼였군. 다비오 형제를 부축해 본청으로 복귀하게. 정화 성사를 받고 치료를 서두르게. 시간이 길지 않네!”

“형제님은?”

“바르도 형제가 타락했네. 형제를 정화하고 이 지역에 잠복한 악마를 색출하겠네. 가게, 어서!”

“예, 형제님!”

코르넬리오는 재빨리 다가와 바르도를 등에 업었다. 그는 파비아노에게 짧게 묵례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파비아노는 칼을 뽑아 들고 예배당 내부로 향했다.

-바스락.

바싹 타들어 간 잿가루가 그의 발치에서 풀썩였다. 파비아노는 주위를 빠르게 훑으며 칼날을 곧게 세웠다. 곧, 저 멀리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피이잉—!

숨소리를 향해 곧장 단검을 던졌다. 섬전처럼 날아간 단검이 둔탁한 무언가에 틀어박히는 소리와 함께, 끅, 하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파비아노는 칼을 겨누며 재빨리 달려들었다.

“형……제님…….”

“바르도.”

가슴에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있는 채로, 바르도는 고개를 떨구고 피를 뱉었다. 그는 하반신이 사라져 있었다. 내장이 꾸물거리며 잿더미 위에 쏟아지고, 그 위로 질척한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전신엔 경전 문구를 비틀어 조소한 악마들의 글귀가 인장처럼 찍혀 있었다. 희미하게, 그 몸에서 유황 냄새가 났다. 파비아노는 칼날을 들어 그의 목젖에 가져갔다.

“기도해라.”

“가……로되……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내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려 왔나니, 그저 믿으라. 신심을 다하여…….”

“……제기랄.”

“다비오를…… 죽이셨습니까……?”

“코르넬리오 형제가…… 본청으로…….”

“제가…… 미욱했습니다, 형제님. 다비오가 의례를 시작할 때…… 놈이 다비오의 몸에 깃들었습니다. 제가…… 제가…….”

“그만.”

“주여…… 저는…… 저는.”

바르도는 헐떡이며 핏물을 토해 냈다.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파비아노는 분노로 붉게 충혈된 눈을 꾹 감고,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내가 방만해 형제가 떠나는구나. 미안하네, 바르도.”

“형제여, 악은 때때로 간교하나, 제 다함이 형제의 반석이 되기를.”

“편히 쉬게. 형제의 정의는 내가 이루겠네.”

“막…….”

“막토.”

바르도는 푹 하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파비아노는 칼자루를 쥐고 예배당 밖으로 나섰다. 타들어 간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먼지가 풀썩 일고, 창백한 태양 아래에서 열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저 멀리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바싹 타들어 간 얼굴 아래로 실금이 죽 그어지더니, 기괴한 웃음이 되었다.

“악마.”

[그…… 코르넬리오……? 그 사제의 영혼은 달콤하더군. 선물 고마워.]

악마는 진저리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킬킬거렸다. 그는 몸을 우득, 거리고 비틀며 기이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이제 너 혼자 남았으니, 귀찮은 일 없이 마음껏 먹고 마시겠군.]

“나는 디모니카, 아가토다.”

[결투라도 하자는 건가? 응? 머저리 같으니. 이건 사냥이다! 아니, 그저 만찬에 불과하지! 네 이름은 내 앞에서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이건 선고다.”

-키이잉.

세인트메탈 장검이 햇살 아래에 번들거렸다. 파비아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곧게, 악마의 미간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본청은 피고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기도하라, 아무 신에게나, 어떤 말이든. 간절히.”

그리고 곧장, 웃음을 터트리는 악마를 향해 파비아노가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 * *

비틀거리는 세이리를 부축해 걸어 나가던 다리안은, 자신을 따라오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왜 날 돕는 거지? 제아무리 신실하지 않다 한들, 내가 하는 짓은 신성 모독에 불과한데. 왜 사제를 죽이는 것을 돕는 건가?”

“1왕자는 베이타서스의 신도고, 2왕자는 맥라렌의 신도요. 그리고 나는 2왕자파에 속해 있지.”

“페이른 헌팅 스쿨도 제법 정치적이로군.”

“내가 정치적인 거요. 다리안 쉬라이크 경.”

카를은 비죽 웃으며 말했다.

“베이타서스 교회가 이 일로 경동하면 2왕자 전하께 명분이 생기지. 뭐, 귀족 사회란 것이 다 그런 것들 아니겠소.”

“그도 그렇군.”

다리안은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뒤에서, 카를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붉게 점멸했다.

그 모습에, 다리안의 등 뒤에 묶여 있는 태양창이 햇살 아래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곧장 식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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