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38화 (339/388)

338. 불멸자와 필멸자 (7)

페르난데스는 지금 자신의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환각이라 생각했다. 발끝에서 시작된 통증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타고 올라왔다. 머리 한구석이 시끄럽게 울리며 시야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죽어 가는 건가? 페르난데스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치고 다시 접었다.

* * *

[신경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영체가 육신에 고정을 시작합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아니 될 것이다. 지금 발생할 문제는 추후에 치명적인 장애로 남을 수도 있다!]

* * *

칠흑 같은 공허 속이었으나,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엔 문제가 없었다. 끈적한 통증이 전신에 달라붙어 그를 괴롭히고 있었으나, 그는 여전히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관조했다.

정신 붕괴의 전조가 전혀 없었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통각만 존재할 뿐. 페르난데스는 지금의 통증이 익숙하다고 느꼈다.

언젠가, 그리 머지않은 과거에 이런 종류의 통증을 겪어 본 것만 같았다. 그가 익히 아는 감각이었다. 그는 천천히 지금의 통증과 가장 유사한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이건 환지통에 가까웠다. 수천 마리 개미가 신경줄을 갉아먹는 듯한 통증. 신체를 결손한 직후에 있을 리 없는 사지 말단에서부터 발생하는 고통이었다. 가장 유사한 경험은…….

‘데인 왕의 어전.’

알트베르트의 지하 묘실에서, 콘클라베에 의해 강제 전이를 당했을 때. 공간 이동의 부작용으로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다시 붙어 나가던 과정이 지금과 가장 유사했다. 육신의 기능이 천천히 살아나고, 육체가 재정립되어 가는 종류의 고통이다.

‘육체의 재정립?’

불사의 축복이 있을 당시 일이다. 그의 영혼은 너무나 강력하게 육체와 결합되어 있었고, 육체에 남아 있는 베이타서스의 성흔은 영혼과 가장 유사한 형태로 육체를 끊임없이 다시 빚어 내는 종류의 것이었다.

육체를 잃더라도, 성흔이 작용하여 영혼과 육체를 다시 결합한다. 그때의 메커니즘을 고려한다면, 지금 이 상황을 억측 섞은 가설로 추정해 보자면…….

‘육체가 재정립되고 있다?’

누군가가 그의 영혼을 회수하여 그 영혼을 바탕으로 육신을 조립하고 있다는 뜻일까? 어떤 단서도 없이 단지 통각일 뿐이다. 이런 과감한 추측으로 희박한 희망에 목을 매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수는 없다. 무미건조한 방황 속에서 주어진 유일한 단서가 아닌가. 페르난데스는 머리를 온통 헝클어트리는 지독한 통각 속에서도 차갑게 생각했다.

베이타서스인가? 아니, 만신전은 봉문된 상태이며 그 봉문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열쇠검과 같은 극히 희소한 고대의 유물뿐이다. 그런 유물을 지닌 존재가 만신전의 봉문을 깨면서까지 천상에 그의 부활을 의뢰할 일이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큰일이지.’

만신전의 봉문을 외부에서 해체하기 위해선 신검 수준의 강력한 성유물이 필요하다. 그걸 희생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서, 그를 부활시켜야 할 정도의 위기가 도래했다면 애당초 그의 준비와 계획, 모든 것들이 실패했다는 뜻이니까.

그 가설은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불사의 성흔과 유사한 기작을 지닌 외부의 유물.’

불사의 성흔은 베이타서스가 내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축복이다. 일개 필멸자의 권리를 넘어서는 힘이며, 실제로 페르난데스는 불사의 성흔을 입은 당시 끊임없이 수명을 소모해야 했다.

그 정도의 힘을 지닌 유물. 그런 것이 실존한다면 누가, 그리고 왜 그를 부활시키려 하는가.

‘깨어나자마자 전투가 있을 수도 있겠군.’

페르난데스는 점차 밝아지는 주위를 날카롭게 훑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급격한 사태 변화에 넋 놓고 멍하니 목숨을 내어주는 것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사태를 분석하고, 냉철히 사고한다. 그건 와일드캐스트들의 기본 소양이었다. 그는 조용히 숨을 가다듬고, 곧 다가올 정보 혼선에 대비했다.

* * *

[영혼이 완벽하게 결합했습니다! 흠잡을 데 없는 성공입니다!]

[마치 한 차례 부활이라도 해 본 적 있는 것처럼 능숙하게 자리 잡았구나. 놀라운 일이다. 고생들 많았다.]

[감축드리옵니다. 이바리스의 위대한 태양이시여!]

라비라타는 떨리는 목소리로 창생의 관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곧 그가 눈을 뜰 것이다. 생전과 동일한, 아니 어떤 면에서는 생전보다 우월한 육신을 가진 채로.

그들은 죽은 자를 부활시킨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물질 세계에 신을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창생의 관은 영혼의 형태를 물질 세계에 고정시키며 그 위에 육신을 덧씌우는 유물이다. 그 이전까지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영혼이 기억하는 자신의 형태와 실제 육신의 괴리감을 버티지 못한 까닭 또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완벽했다. 페르난데스의 영혼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육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육체의 구석구석을 그 한계까지 사용한 적 있는 전사와, 육체의 구성을 해부학적으로 완벽히 이해한 마법사의 두뇌. 그 둘의 합작품이라 보아도 좋았다.

라비라타는 관 안에 고요히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육체를 내려다보았다. 이 사내는 여전히 고요하게, 희미한 숨을 들이켜며 누워 있었다.

[일어나거라, 페르난데스.]

라비라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그와 함께, 페르난데스의 눈이 스스륵, 뜨여졌다.

* * *

-쿵, 쿵, 쿵.

느리지만 묵직하게 맥박 치는 소리. 페르난데스는 눈을 감은 채 잠시 몸 안을 울리는 그 소리에 집중했다.

‘이건 심장 소리인가.’

눈을 뜨기 전,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촉각과 청각, 후각 등의 감각이 날카롭게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오랜 시간 육체 없이 방황하던 그에게 갑작스런 감각은 통증에 지나지 않았다.

고통을 참아 내며 하나하나 뭉친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느낌으로 정보들을 헤치고 분석한다. 페르난데스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육체에 적응하고 있었다.

[일어나거라, 페르난데스.]

이명이 시끄럽게 울리던 귓가에 그 목소리가 닿았을 때, 그는 마침내 육체의 제어를 완전히 되찾을 수 있었다. 정보가 선명해지고, 더 이상 감각은 그에게 통증이 되지 못했다.

그는 동시에, 이바리스의 망령 왕조가 자신을 부활시켰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육체에 영혼을 고착시키는 것은 상 아시트 비술 역량을 총동원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며, 라비라타는 그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 있었으므로, 그를 도울 동기 또한 충분했다.

“하…….”

굳은 관절 탓에, 턱을 움직이는 것조차 뻐근했다. 페르난데스는 눈을 뜨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카앙!

주위에 도열한 망자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꺼내어 그를 겨누었다. 라비라타가 그에게 다가가려 하자, 망령들은 위협적으로 외쳤다.

[이바리스의 영원 지도자시여, 이자는 창생의 관에서 이제 막 깨어났나이다! 이자의 정신이 무해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창생의 관은 상 아시트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다섯 번 이상 작동된 적 없는 유물이었으며, 이 유물을 통해 부활한 모든 자들은 광기에 휩싸여 주위 모든 대상들을 공격하곤 했다. 이자라고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망령들은 황급히 여왕을 감싸며 페르난데스를 경계했다.

낡은 창과 시퍼렇게 빛나는 검날이 위협적으로 페르난데스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저들에겐 공격 의사가 없었으므로, 아마 공격이 그의 몸에 닿기 전에 멎을 터였다.

-캉!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본능적으로 팔을 놀려 가장 가까이 다가온 칼날을 잡아챘다. 그는 칼날의 끝을 교묘히 비틀어 쥔 후에, 그대로 끌어당겨 칼자루를 빼앗아 들었다.

찰나의 순간, 페르난데스는 경비병의 칼을 움켜쥐고 자신의 곁으로 들이닥치는 창대를 후려쳤다. 금속과 금속이 마찰하며 빛이 번쩍이고, 경비병들이 일제히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한순간의 격돌 후에, 창생의 관 안에서 페르난데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몸 상태가 최상에 가깝군. 내가 죽은 뒤 시간이 얼마나 흘렀소?”

[반년이다. 페르난데스.]

“반년……? 못해도 삼백 년은 흐른 줄 알았는데.”

망자들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라비라타가,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과 동일하다 하여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판단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그는 공허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는 곳에서 오직 환각만을 벗삼아서. 그 끔찍하고 장구한 시간은 그에게 차라리 고문과 같았다. 그런데 고작 반년이 흘렀다……?

“상황을 듣고 싶군.”

[그대는 이제 막 부활했다. 그대의 상태를 진찰해야 하니 잠시 누워 있거라.]

라비라타가 다급하게 저지하려 했으나, 페르난데스는 이미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 한 마디부터 하나씩 몸을 풀어 나가며 담담하게 말했다.

“진찰은 이미 끝났소. 내 장비들을 가져와 주시오.”

[떠나려느냐?]

“할 일이 남았으니.”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광경은 카라드스카르의 죽음과 예카세트의 발악이었다. 그 이후로 그의 계획이 유의미하게 흘러갔다 자부하기엔 적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일을 시작한 것이 그였으니, 마침표 또한 스스로 찍어야겠지. 페르난데스는 마지막으로 어깨를 우득, 풀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복을 먼저 가져다주마. 준비가 끝나면 태양 광장으로 나오거라.]

* * *

페르난데스는 장신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복잡한 의복을 추스르며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었다. 망령 사제들은 반쯤 경외하는 눈으로, 또는 감시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의 앞에서 나아가고 있었다.

[구원자시여, 정녕 몸과 영혼에 이상이 없으십니까……?]

“이상이 있다 한들 곧이곧대로 말하는 광인이 있겠나?”

[그 또한 그렇지요. 하지만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바리스의 역사 속에서 창생의 관 대의례는 성공한 사례가 없었습니다.]

화려한 의관을 갖춰 입은 망령 사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페르난데스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몸 상태를 관조하고 있었다.

마력 회로가 없다. 그러나 그건 죽기 전처럼, 육체를 타고 흐르는 신성 탓에 마력이 결집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회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차라리 긍정적인 일이었다. 마력 회로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기관이 아니다. 마법사가 평생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몸 안에 삽입하는 인공적인 내장 기관에 가까웠다.

신성으로 인해 마력을 흐르게 만들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 육신에 신성이라곤 단 한 조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뜻은 곧, 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마력 회로를 박아 넣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좋군. 이 년 정도라면 충분하겠어.’

그 정도의 시간이 허락될지는 모르겠으나, 이 년이라면 과거의 절반 이상에 가까운 마력을 회복할 자신이 있었다. 어떤 일이든 첫 시작이 어려운 법이며, 마력 회로의 생성은 그에게 단지 복구에 불과한 단순 작업이었다.

-뿌드득.

그는 로브에 달린 장신구 하나를 떼어내 주먹을 움켜쥐었다. 복잡한 청동 조각이 순식간에 뭉그러지며 구체가 되었다. 디모니카 시절의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성 한 줌 없이도.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육체의 구성과 감각은 인간의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마도학적으로도, 그리고 해부학적으로도 그는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디모니카의 육신은 신성을 담는 세례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은 건너뛰고 창조된 육체가 어떻게 디모니카의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페르난데스는 상념에 빠진 채 손 안에서 청동 구체를 굴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앞서 걷던 사제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눈앞에는 거대한 석문이 있었다. 사제는 문가에 손을 올린 채 잠시 멈추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구원자시여. 이바리스의 위대한 석공들이 오직 그대를 위하여 지난 반년간 건축했습니다.]

건축……? 그 불길한 단어에 페르난데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석공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부디 그들의 노고를 치하해 주시길…….]

제대로 된 대답 없이, 사제는 석문의 틈을 조작했다. 쿠구구궁, 석문이 마른 먼지를 토하며 옆으로 밀려났다. 곧 밝은 햇살이 복도를 밝히기 시작했다.

페르난데스는 눈을 찌푸린 채 차양을 만들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광원에 눈이 미처 적응하지 못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는 곧 힘없이 팔을 늘어트리고 말았다.

[아, 우리의 구원자가 당도했구나!!]

저 멀리, 광장의 끝에 쌓아 올린 제단 위에서 라비라타가 화려한 의관을 갖춘 채 팔을 활짝 펴고 외쳤다.

[자, 부활하여 창공 아래에 거니는 첫 번째 순간이구나. 지금 심경이 어떠하느냐?]

라비라타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멍하니 태양 광장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석조 구조물……. 아마도, 석상으로 보이는 것이 광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바리스 시엔 수많은 석상들이 있다. 즉, 광장에 석상이 있다는 것 자체는 신기한 일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규모가, 심지어는 라비라타의 궁궐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하다면 말이 달랐다.

너무나 거대한 구조물인 탓에, 처음 페르난데스는 그것의 발치까지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갈수록, 그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 갔다.

화려한 열쇠검을 역날로 지상에 박아 넣고, 당당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거인의 신상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디모니카의 시각은 다소 먼 거리까지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처음으로 그 사실을 저주했다. 그의 머리 위에, 그의 얼굴을 정확히 묘사한 석상이 경건하고 자애롭게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맹세코 그는 생전 저런 표정을 지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논리적으로…… 저건 자신의 얼굴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더듬거리며 닿았을 때, 라비라타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낭랑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대를 판에 박은 듯 닮지 않았느냐? 이것이 이바리스의 수천 년에 걸친 석조 공예이니라!]

페이자쉬가 있었다면, 당장 저 여자를 죽이려 들었을지도 모르겠군. 페르난데스는 애써 눈앞의 광경을 무시하며 중얼거렸다.

[응? 무어라 했느냐?]

“죽여 주시오.”

부활 첫 날, 페르난데스는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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