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39화 (340/388)

339. 불멸자와 필멸자 (8)

-펑!

놀랍게도 꽃비가 흩날렸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게도—

[구원자시여, 영원하소서!]

[영원하소서!!]

망령들이 한마음 한목소리로 열성을 다해 한 사람을 부르짖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광장에 모여 꽃가루를 흩뿌리며 환호하는 망령들을…….

[왜 그러느냐, 페르난데스. 혹여 아직 정신이 온전히 맑아지지 않은 게냐? 어의를 불러야겠구나. 내 말하지 않았느냐, 그대는 진찰이 필요하다고!]

“혹시…… 어의가 약을 좀 조제할 수 있겠소?”

[아, 그대는 연금술에도 조예가 깊었지. 그래, 말해 보거라. 어떤 비약이든 이 이바리스에서 불가능한 것 따윈 없으리라.]

“최대한 빠르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필요하오…….”

페르난데스는 입술을 꽉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의 두 눈에선 초점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의 예리한 감각은 저 석상의 높이가 이바리스의 외성벽보다 높으며, 이 광장이 평야를 기준으로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다고 소리쳤다.

그 이후로는 간단한 수학이다. 이바리스 인근을 거닐다가 이 성벽을 바라보는 이방인들은 모두들,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이 석상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담장 너머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악동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을.

‘페이자쉬!! 긴급 상황이다. 빨리 나와! 내…… 내 몸을 대신해!’

페르난데스는 공황에 빠져 소리쳤다. 물론 아무런 반향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독한 외로움이 그를 덮쳤다. 진정코 이 지옥 같은 물질 세계에 그의 편 따윈 없었다…….

내 삶이 곧 나의 형틀이로다. 페이자쉬의 늙은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하하,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구나!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이바리스의 유구한 예술에는 한계가 없으니. 자아, 시작하라!]

“시작…… 하지 마시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결코 시작하지 마시오.”

간절하게까지 느껴지는 페르난데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라비라타는 유쾌하게 길쭉한 지팡이를 흔들었다.

곧, 석상의 표면에 정성스럽게 도포된 오색 찬란한 도료를 타고 마력이 흘러 움트기 시작했다.

페르난데스는 본능적으로 그 마력의 형태를 분석했다. 생각을 멈춘 그의 머리와는 정반대로, 그의 본능은 처음 마주한 마법을 열성적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빠르게 결론이 도출되었다. 저건 지하 암반의 수원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술식이었다.

조금 복잡하고 화려하지만, 그 구성 자체는 여느 도시에 있는 상수도 시설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

-촤아아악!!

페르난데스의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모습을 본뜬 석상의 두 눈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태양을 등지고 하늘을 바라보는 석상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고대 아시트 예술의 극한을 담아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석상의 표면에 그려진 수로를 따라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워낙 거대한 규모인 탓에 작은 물줄기조차 지상에 닿을 때엔 강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물줄기는 곧 도시 전역에 놓여 있는 상수 시설과 마주했다.

[그대가 우리에게 생명을 돌려준 것을 묘사하기 위해 이바리스의 공예가들이 머리를 마주하고 고민한 결과이니라. 수원이란 도시의 젖줄이자 삶의 시작이지. 그대의 눈에서 흐르는 숭고한 눈물이 짐의 천년 도시 전역에 생명을…….]

라비라타의 말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녀는 페르난데스를 돌아보았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페르난데스? 페르난데스! 이런! 어의!! 어의를 불러라! 대의례가 끝난 직후에 너무 큰 무리를 했나 보구나!]

선 채로 혼절한 페르난데스는 곧 망령들의 정성스러운 부축을 받으며 침소로 인도되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첫날의 일이었다.

* * *

“죄송합니다. 저는…… 더 이상, 도저히…….”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보시오. 피엘. 조금만 더…….”

막사 내부엔 종이와 지도, 마구 휘갈긴 쪽지 따위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막사의 한 귀퉁이에 설치된 간이 침대는 식은땀과 혈흔에 푹 젖어 있었고, 그 위에서 피엘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헐떡였다.

그녀의 땀에 젖은 머리칼 위로 사내의 거친 손이 얹어졌다. 사내는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엘은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백작님…….”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우리 모두가 말이오. 피엘. 거의 다 오지 않았소.”

로베르였다. 그는 초췌한 얼굴로 그녀의 곁에 주저앉아 종이 뭉치를 뒤적였다.

구겨진 서류철과 갈기갈기 찢겨 나간 쪽지들이 그의 곁에 흩어져 있었다.

그는 서류 뭉치에서 종이 한 장을 뽑아내어 피엘에게 건넸다.

피엘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백아흔일곱 번째 시나리오요. 피엘. 이건 보이시오?”

“……아뇨. 백작님. 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혀, 어떤 것도?”

“예, 백작님. 이 계획은 실패할 겁니다.”

로베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구리잔을 집어 들었다. 그는 모닥불 위에 걸린 찻주전자를 들어 올려, 잔에 찻물을 부었다.

피엘은 그의 손에서 잔을 받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내려놓고는 로베르를 바라보았다.

“제가 무능하여 백작님의 소중한 시간을 벌써 몇 달이나 빼앗았군요.”

“그대가 무능하다면 이 대륙 그 누구도 유능할 수 없소.”

로베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피엘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아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였다.

매사에 결벽증적일 정도로 깔끔하고 정돈되었던 그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몇 개월간의 경험은 그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암운 덮인 미래. 모든 예언자들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종류의, 지독한 종말의 환시. 그것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현실.

그림자 뒤에서 메마른 웃음소리를 토해내는 악마들의 존재. 그들의 발호 아래에 분열되고 으스러지는 문명사회까지.

로베르는 첩보 기관의 수장이었다. 당연히, 그는 악마의 존재와 그들의 암수에 대해 이단심문청의 사제들 못지않게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것과 그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그 무게가 다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직접 보는 현실과, 그 아귀다툼 속에 뛰어들어 투쟁해야 하는 삶은 그 무게가 다르다.

천상의 대신이 물질 세계의 간청에 두 귀를 막고 있는 지금. 로베르는 그 어떤 순간보다 간절히 생각했다.

종말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누군가가 자신 대신 손을 더럽혀줄 수 있기를.

비겁한 생각이었지만, 로베르는 쓰러져 죽어가는 그의 기사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기도했다.

그리고 그때, 대황야에서 성인이 탄생했다.

수천 수만의 악마들을 비집고, 가장 강대한 악마를 직접 마주해 격살하는 위대한 성자. 공포와 절망에 뒤엉킨 지독한 밤에서, 동녘 일출처럼 한 줄기 빛을 상징했던 사내가.

로베르는 언제나 영웅을 꿈꿔왔다. 이야기 속의 영웅을.

영웅은 무릇 비극 속에서 단련되는 법이었으며, 그는 결코 비극을 등지고 도망치는 비겁자가 아니라 여겼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투쟁하는 페르난데스를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비겁함을 슬퍼했다.

그리고 동시에, 저 자리에 자신이 서 있지 않다는 현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정보 기관의 수장이었으나, 악마의 발호는 언제나 정보와 전략의 속도를 추월했다.

그렇다면—

‘예언자가 필요하다.’

미신에 가까운 무당들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예언자들이.

제국의 드넓은 인재풀엔 그런 존재들이 있다. 예언자들. 감각의 경지를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예언을 부리는 선견자들이 있다.

로베르는 정보 기관의 수장으로서, 오래전부터 그들을 이용할 방도를 찾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예언자들은 단명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예언 능력은 필멸자가 갖추기엔 너무나 강대한 권능이라 할 수 있었다.

예언을 각성해 그 능력을 발휘했던 모든 자들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후 오래지 않아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보는 유독하다. 제국의 정보를 통괄하는 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단지 보고서를 통해 정보를 파악하는 그와는 달리, 예언자들은 불투명한 미래의 정보를 정확히 읽어내고 직접 마주해야 했다.

그런 존재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과거에 그는 포기했으나, 지금에 이르러 비로소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대황야의 예언자에게서.

“피엘, 괜찮으시오?”

“제가 심려를 끼쳐드렸군요, 백작님.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초췌한 안색으로, 피엘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녀의 모습에서 로베르는 그녀가 지금 이 순간도 자살 충동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막기 위해 그는 단 한 순간도 그녀와 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렇게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 세계의 유일한 해답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시나리오를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피엘.”

“예, 백작님.”

그렇게 대답하며, 피엘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

예언 능력은 양날의 검이 아니다. 오직 예언자를 향해서 서 있는 면도날이다.

제아무리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한들, 그 칼날은 언젠간 반드시 예언자의 목을 치게 된다.

이에 로베르는 가설을 세웠다. 예언자가 자결하는 이유가 정보의 과다라면, 습득한 정보를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 예언자의 수명을 보장할 수 있는가?

아므네사 모라이. 제국 아이언사이드가 사용하는 독극물이다. 정량 투입할 경우, 대상은 그날 하루 분량의 기억을 잃는다. 로베르는 이 약물을 피엘에게 투약하며 정보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종말로 향하는 미래를 읽을 수 없다. 그리고 예언은 가장 가능성 높은 미래를 보여준다.

이 두 가지 명제를 기반으로, 예언 능력을 활용한다면 종말을 피할 수 있다.

로베르는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수많은 정보들을 토대로, 종말을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들을 분류했다.

수백 건의 ‘종말’ 시나리오가 작성되었다.

몇 개월에 걸쳐, 그는 ‘보이는 미래’를 찾기 위해 피엘과 함께 은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함께한 몇 달 동안.

피엘은 매일 낮 수십 년을 살아야 했고, 매일 밤 하루를 잊었다. 그녀의 하루는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 고정되어 반복되고 있었다.

로베르는 매일 낮 세계를 멸망시킬 수백 가지 방법들을 연구했고, 그 모든 방법들을 무산시킬 비책을 짜냈다.

매일 밤, 그 수백 가지 비책들이 끝내 실패한다는 사실에 한탄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는 피엘이 잃은 하루를 비탄으로 채워 나갔다.

피엘은 예언으로 인한 자살 충동을 독극물을 통해 이겨내는 대가로, 그녀 자신이 살아갈 수 있을 수년의 수명을 잃었다.

로베르는 그런 그녀를 동정하며, 자신의 행위를 비난했다.

로베르는 종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세상을, 어쩌면 변하지 않을 미래를 위해 허우적거렸다. 그는 피엘을 대신해 미래에 대한 절망을 등에 지고 걸어 나갔다.

피엘은 그런 그의 자세를 동경하며, 그의 슬픔을 동정했다.

몇 개월. 어둠뿐인 미래를 밝히려 발버둥 치는 두 사람에게 그 시간은, 결핍된 남녀가 서로에게 빠져들기에 충분히 길었다.

그들의 사랑은 한낮의 절망과 깊은 밤의 비탄 속에서 깊어지고 있었다.

* * *

그리고, 에버리즈가 마침내 그들을 찾아내었을 때.

“일천 하고 사백오십여섯 번째 시나리오로군.”

정돈되지 않은 수염을 긁적이며, 로베르는 그를 바라보는 자신의 옛 수하들과 그의 누이를 향해 웃었다.

“아이언사이드. 일할 준비가 되었나?”

“예, 주군.”

제국 행정부엔 유명한 금언이 있다. ‘아이언사이드가 알지 못하는 정보는 아직 없는 정보뿐.’

그리고 지금, 아직 없는 정보조차 알고 있는 수장이 돌아왔다.

제국 아이언사이드 그레이서클. 대륙 최고의 정보 집단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페르난데스가 죽음에서 돌아온 이후 닷새가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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