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42화 (343/388)

342. 불멸자와 필멸자 (11)

“제기랄, 이토록 지독한 마력이라니……!”

“대봉인전이 뚫렸군. 저 안은 지금 지옥이겠어.”

헤레티카들이 복면을 두른 채 낮게 속삭였다. 드래곤스파인 산맥 전역에 안개가 낀 듯 자욱한 마력이 넘실거렸다.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의 심처에는 악마들이 봉인된 성소가 있다. 악마를 잡아 둔 유물들을 보관하는 성소, 대봉인전이다. 지금의 사태는 그 성소의 파괴 외엔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안개 너머로 보이는 비틀린 그림자들을 보며, 헤레티카들은 침을 삼켰다.

나무다. 하지만 더 이상 단순히 나무라 부를 수 없는 나무.

단지 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또는 이따금 들리는 가지의 마찰음마저도 속삭임이 되어 정신을 파고들었다.

-기억…….

-우리는 기억한다…….

-카시도르는 불타올랐다…….

순간 눈이 멍하게 풀린 헤레티카가 스스로 뺨을 후려치며 고개를 황급히 휘저었다. 그는 뒤로 주춤 물러서며 말했다.

“퇴각한다. 전원은 가까운 수도원으로 향해 정화 성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알베르트 형제님……! 저 너머엔……!”

숲의 경계선에서 안개를 노려보던 시선을 조금만 올리면, 그 너머로 불길의 흔적이 보였다. 늦은 밤과 짙은 마력 너머로도 뚜렷하게. 마치 유혹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저 방향, 드래곤스파인 산맥의 깊은 사면 쪽으로. 저곳엔 수도원이 있다.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이. 인퀴지션 킵, 이단심문청이 있는 방향이다.

그것이 불길에 휩싸여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 안에서 그의 형제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알베르트는 입술을 아득 물었다. 격렬한 분노가 시시각각 치솟아, 당장이라도 몸을 던져 뛰어가고 싶었다.

-우드득!

붙잡고 있던 횃대의 손잡이가 으스러졌다. 그 저릿한 감각에 알베르트는 흠칫 놀랐다. 그의 오른 팔뚝에 힘줄이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분노 탓이 아니다. 보다 지독한, 악마의 오염이 감정에 의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퇴각한다.”

“형제님!”

“번복은 없다, 형제들. 자살은 순교가 아니니. 치릴로 형제, 마지막 지원 요청이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지?”

“다섯 시간이 흘렀습니다.”

“바르시메오 형제, 형제는 지금 산역 인근의 헤레티카 전원에게 퇴각 후 재집결을 요청하게. 디모니카 형제님들이 필요한 사안일세. 데르모트 형제는 지금 당장 디모니카 형제님들을…… 아니, 파비아노 형제님을 찾게나. 전원은 정화 성사 이후, 랑데부 포인트에서 재집결할 것이네. 다섯 시간 주겠네.”

“예, 형제님.”

헤레티카들은 즉시 숲을 빠져나갔다. 알베르트는 가장 마지막으로, 앞서 달리는 형제들의 뒤를 지키며 천천히 물러섰다. 그는 떠나기 직전, 저 멀리 산 너머에 올라오는 붉은 매연을 힐끔 바라보았다.

-카시도르는 불타올랐다…….

-우리는 기억한다. 네가 우리들을 죽였다…….

“가로되, 우리는 가장 앞선 검이라.”

-그 기도가 어째서 우리는 구하지 않았지?

-너는 살인마다. 너는 살인마. 살인마다.

-살려주세요, 사제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카시도르는 불타올랐다…….

알베르트의 눈앞에 불꽃이 타올랐다. 죽어가는 어린 소년의 얼굴을 한 불꽃이. 피눈물을 흘리며, 그의 다리에 뺨을 문지르고는 간청하던 목소리까지.

너무 꽉 깨문 탓에, 입술이 모두 터져 너덜거렸다. 알베르트는 핏물을 퉤 뱉고 재빨리 몸을 돌려 뛰어나갔다.

-우리는 기억한다…….

속삭임이 끝날 때까지 알베르트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숲의 경계를 빠져나갔을 때, 그의 그림자 뒤에서 광기에 휩싸인 메마른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울려 퍼지며 멀어졌다.

* * *

“형제여, 특1급 이단 준동 사태입니다. 수도원이 불타고 있습니다.”

이단심문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메를린포트였다. 도시로부터 본청까지 중간중간 마을이 있기야 했으나, 지금 동부 왕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사제들이 집결하기 위해선 대도시의 인프라가 필요했다.

따라서, 지금 메를린포트의 베이타서스 교회엔 유례없을 정도로 많은 이단심문관들이 모여 있었다. 엔마기카, 헤레티카, 그리고 디모니카까지. 이 정도의 숫자라면 능히 한 나라마저 상대할 수 있을 무력이자 권위였다.

그러나 사제들에게선 그 힘에 걸맞은 사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침통한 한숨과 슬픈 기도가 잇따랐다. 이들에게 수도원이란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던 탓이다.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은 보금자리이자, 쉼터이며, 배움터였고, 또한 믿음의 표상이었다. 이단심문관들은 이 물질 세계에서 어쩌면 가장 끔찍한 장소와 잔악한 사건만을 처리하는 자들이었고, 이런 이들에게 유일한 요람이 있었다면 그곳이 바로 본청이었다.

본청의 소실은 마지막 안전 구역의 상실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 사제들은, 이단심문관으로서는 드물게도 망연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2급. 지휘관의 역할을 맡은 상급 이단심문관들의 경우 이 사태를 달리 해석해야 했다. 이들에겐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이들의 현실은 사제들의 것보다 차갑고 날카로웠다.

“마르코 형제님. 지금 이 사태를 대봉인전의 상실로 보아도 좋겠습니까?”

“그럴 걸세. 파비아노 형제.”

“그럴 경우 경계선을 어디까지 그어야 하겠습니까?”

“지옥 마력이 흩어지기까지 일주일 간은 이곳 메를린포트가 위험 지역이고, 일주일이 지난 이후부터는 페이른 전역에 퇴거를 실시해야 하네.”

“주여…….”

파비아노는 짧게 성호를 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마를 감싸 쥐고 테이블을 두드렸다.

“막을 방도가 있습니까?”

“엔마기카 전원이 드래곤스파인 산맥을 봉인해야 할 것이네. 지옥 마력이 세속 사회에 흩어지는 것은 어떻게 저지할 수 있겠으나…….”

“풀려난 악마들은 저지할 수 없다는 뜻이겠군요.”

“그렇네. 누군가는 저 안에서 악마들을 제거해야 하네. 단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이 자리에 디모니카 형제들은 총 서른 명이 모여 있습니다.”

“격퇴가 아니라 완벽한 제거가 되어야 하네. 절반은 봉인지의 경계면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남은 절반은 내부에서 타격조를 이끌어야 할 걸세.”

“잠깐, 형제님들. 내부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파비아노와 마르코의 사이에 인상 날카로운 사내가 끼어들었다.

“저희는 [성 안토니오의 성배]를 유실했습니다. 디모니카 형제들을 더 이상 육성할 수 없단 뜻입니다. 이 시점에서, 디모니카 형제님들을 소실하면서까지 내부의 악마들을 소탕할 이유가 없습니다.”

“형제.”

“형제님들, 고정하십시오. 보다 냉정히 생각해야 합니다. 드래곤스파인 산맥 전역을 봉인한 이후, 내부에서 악마들이 탈주할 경우 이를 요격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마르코 형제님의 말을 정정하지. 우리는 타격대가 아닐세. 이건 소탕 작전이 아니고.”

“그렇다면……?”

파비아노는 우묵한 눈으로 헤레티카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든 사제들이 지금 이 순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구출 작전이며, 우리의 목표는 적의 섬멸에 앞서, 저 내부에 조난되어 있을 형제들을 구원하는 것일세.”

“하지만……!”

저 지옥 속에 형제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다. 그렇게 말하려던 헤레티카는 순간 숨을 들이켜며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나, 모두가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파비아노의 시선을 피하며, 헤레티카는 눈을 낮게 깔았다. 파비아노의 진중한 눈동자가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단 하나의 가능성, 설령 실낱같은 희박한 가능성만이라도 좋다.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멈추지 않으리라. 이는 헛된 몸부림 따위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이단심문관들이 갖는 삶의 태도라 보아도 좋았다.

세상이 언제고 지옥이 아니었던 적 있던가. 이 잔악한 세상 속에서 그들은 문명 사회의 가장 앞선 등대가 되기를, 가장 거친 파도 앞의 방파제가 되기를 맹세한 자들이다.

그들은 순교를 위해 자살하는 부나방들이 아니다. 명백히 죽을 것이 뻔한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까닭은,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형제들이 안전할 것을 믿기 때문이며—

또한, 언젠가 마지막 남은 형제가 숨을 거둘 때, 세상이 보다 평화로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 작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이들은 지금껏 스스로를 장작 삼아 세상의 어둠 속에 불타올랐다.

지금이라고 다르겠는가. 저기 저 멀리에 그들의 형제가 있다. 그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그들의 무덤이며, 그들의 요람이며, 그들의 안식처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

악마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사제들이 나아가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하고도 넘쳤다. 파비아노는 묵묵히 자신의 법의를 벗었다. 낡고 해진 사제복이 펄럭이며 그의 손에 감겼다.

성당 내부의 모든 사제들이 그 광경을 보았다. 그들과 동일한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사제복의 등에 자수된 열쇠검과 횃불의 문양을 보았다. 이단심문청의 인장이다. 파비아노는 그 낡은 옷감을 군기처럼 치켜들고 연단 위에 올라 말했다.

“진창을 밟고, 어둠을 향해 나아가리라. 우리는 양이 아니라 용이 되리라 맹세한 이들이니. 형제들이여, 우리는 우리 스스로 등불이 되리라 맹세한 이들이 아니던가.”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제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잠시 말을 멈췄다. 설령 디모니카라 하더라도 배움이 짧은 이들은 아니다. 다른 모든 사제들에 비해 압도적일 정도로 죽음과 가까운 탓에, 이들은 오히려 유쾌하길 택한 자들에 가깝다.

모든 사제들은 기초적인 교양과 지식을 쌓아야 한다. 성경에서부터 교회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파비아노 또한 다를 바 없이, 임무에 나서지 않은 모든 순간 성경을 읽고 기도를 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이단심문관이기에 앞서 그들 모두는 교회의 사제들이다. 따라서, 열 마디 말보다 한 마디의 성경 구절이 더 효과적이리라. 파비아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세속에서 환란을 당하나, 두려워 말라. 주께서 세상을 이기시었노라.”

“기뻐하라, 기뻐하라. 영광된 주님. 우리 곁에 역사하시노라.”

본청의 사제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구절이었다. 파비아노의 말에 사제들이 조용히 후창을 이어 갔다. 파비아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도를 계속했다.

“두려워 말라,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놀라지 말라, 주께서 네 하나님 되심이라.”

“참으로, 주께서 너를 굳세게 하리라.”

“우리는 주의 가장 앞선 칼이요, 가장 날 선 칼이며, 가장 거친 칼이니.”

“너는 다만 의롭게 나아가라. 참으로, 주께서 너를 굳세게 하리라.”

기도를 이어 나가려던 순간, 파비아노는 사제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짧게 웃으며 다른 기도문을 외웠다. 모든 이단심문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엄경의 구절이었다.

“너희는 내가 화평을 가지러 온 줄 알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칼을 가져왔으니.”

“우리는 주의 가장 앞선 칼이요, 가장 날 선 칼이며, 가장 거친 칼이니.”

사제들은 매끄럽게 그의 기도문을 이어받아, 기도가 끊김 없이 후창했다.

“바라는 자여, 구하라. 따르는 자여, 말하라. 의로운 자여, 행하라. 주께서 칼을 들고 찾아오시니.”

“저희를 미쁘시고, 의로우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세상에 악과, 불신과, 유혹이 많으니. 주여, 저희를 시험케 하지 마소서. 다함 없이 간구하나이다.”

“뜻 있는 자여, 주께서 칼을 들고 찾아오시니.”

“주님, 하여 기도하나이다.”

이단심문관들의 서원. 그 마지막 구절 앞에서 파비아노는 잠시 멈추었다. 교회 예배당에 앉아 있는 모든 사제들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오르는 감정으로, 파비아노는 말을 골랐다. 곧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서원의 마지막 구절을 조용히 속삭였다.

모든 사제들이 동시에, 그와 함께 기도를 완성했다.

“악마를, 이단을, 그리고 마녀를 불태우리라.”

-화르르륵!!

파비아노가 들고 있던 사제복이 갑작스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찬란한 광휘 아래에서, 이 자리의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짧은 숨소리와 낮게 깔리는 기도문, 그리고 황급히 움직이는 성호 따위가 보이고, 또 들렸다.

“……막토…….”

파비아노는 찬란히 빛나는 자신의 사제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 불이 꺼지자,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오색 자수가 들어간 화려한 군기가 되어 있었다. 이단심문청과 베이타서스 교회의 상징이 얽혀 있는 거대한 군기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각 문양의 자수는 보석을 뽑아 내어 만든 듯 저 홀로 반짝이고, 그 문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육신에 새로운 기운이 도는 것만 같았다.

“신성 주문의 삼 요소는 기원, 기도, 그리고 기적이니…….”

엔마기카, 마르코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성호를 그었다. 파비아노는 놀람을 진정시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제들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서서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럴 법도 했다. 만신전이 봉문된 이래, 대황야의 성자 페르난데스를 제외한다면 천상 만신전의 직접적인 개입이 일어난 첫 사례라 할 수도 있을 테니.

기적이었다. 파비아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군기를 크게 들어 올렸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교회 바깥에 구원이 없나니(Extra Ecclesiam Nulla Salus),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요람, 그대들의 교회, 그리고 그대들의 신앙을 향해 진군하라!”

“주께서 이를 바라시니(Deus Vult)!”

“그리되리라!!”

군기가 바람 없는 실내에서 저 홀로 크게 펄럭였다. 문양의 아래엔 긴 휘장에 자수된 글귀가 흩날리고 있었다. 펙투스, 인켄숨. 고대 게일어로 용기와 희생. 이단심문청 내부, 형제들의 무덤가에 적힌 글귀였다.

디모니카 도합 34인.

헤레티카 도합 317인.

엔마기카 도합 173인.

동부 왕국 인근에 주둔한, 따라서 본청의 환란에 즉시 소집할 수 있는, 이단심문청의 총력 도합 524인.

그들은 단 한 번의 의심도, 망설임도 없이. 악마가 도사린 드래곤스파인 산맥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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