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47화 (348/388)

347. 불멸자와 필멸자 (16)

늦은 새벽이었지만 페르난데스는 별다른 고민 없이 뷜랑의 시 경계를 넘었다. 일반적인 도시라면 이 시각에 도시 관문이 폐문되어 있을 것이나, 뷜랑은 이 영지의 주도였다. 주도의 관문은 시간에 상관없이 항상 개문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뷜랑의 굳게 닫힌 관문 앞에서 멈춰야 했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관문 위의 갤러리에 서 있는 경비병을 바라보았다.

경비병은 대단히 귀찮은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뉘슈?”

“여행자요.”

“내일 아침에 다시 오시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뷜랑의 관문이 언제부터 시간에 따라 닫혔단 말이오? 전쟁이라도 일어났소?”

“황무지 방면에서 오신 분 같은데 어디 산속에 틀어박혀 계셨소? 대족장께서 돌아오신 이후부턴 쭉 그랬는데?”

“……뭐?”

페르난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경비병을 바라보았다. 인간이었다. 인간 경비가 서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경비가 키르하스를 ‘대족장’이라 불렀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시사했다.

인간이 키르하스에게 존칭을 한다는 건, 뷜랑의 주권은 이제 수인종에게 넘어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도시의 경비대로 인간을 세워 두었다는 것은 키르하스가 수인들의 지배를 공공연한 사실로 확정 짓기 꺼린다는 뜻이었다.

‘개판이로군.’

페르난데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나 온화하고, 너무나도 애매한 일 처리였다. 제압할 것이라면 확실히 제압해 공포 정치를 펼쳤어야 했고, 방관자로 남으려거든 자신의 정체조차 은밀하게 하여 배후 세력으로 남았어야 했다.

지금 뷜랑 시는 완전히 다른 두 문화권의 강제적인 규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저리 어중간한 정책을 펼쳤다면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인간이든, 수인이든.

‘파르탁을 찾아야겠군.’

피엘이 로베르와 함께 전략을 짜고 있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수인 호족의 지분은 키르하스와 파르탁이 양분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이 공론화된 이후 반년이라면, 놈의 성격상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이 놀라울 수준이다.

수인뿐만 아니라 인간조차도 아직 키르하스를 대족장이라 부르고 있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진행된 것은 아닌 모양이니까.

페르난데스는 짧게 생각하고는 곧 품에 손을 넣었다. 차르륵, 로사리오가 그의 손에 감겨 들려 나왔다. 그는 머리 위로 로사리오를 길게 늘어트리고는 담담하게 외쳤다.

“길을 비켜라. 어린 양들아. 이단심문청에서 나왔노라.”

수인에게라면 통하지 않았을 협박이지만 상대는 인간이었다. 이때만큼은 키르하스의 애매한 정책이 큰 효과를 본 셈이었다. 그는 황급히 열리는 관문을 바라보며 웃었다.

파르탁 블랙팽. 수인 최고의 흑마법사. 아직까지 별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참작의 여지는 있다.

이 늦은 새벽, 이단과 사교도와 흑마법사들이 활동하는 올빼미의 시간은 달리 말해. 이단심문관의 시간이기도 하다.

* * *

“대족장을 대체 어떻게 죽이겠다는 거요? 독살이나 암살 같은 방식으로는 호족들의 지지를 얻어 낼 수 없소.”

사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대족장은 지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우두머리의 부재에도 이 들개들이 여전히 고개를 조아리는 이유는, 대족장의 권위가 단지 업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불패자라는 별명은 농담이 아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검을 들었던 반년 전. 밀물처럼 들이닥치던 악마들 사이에서 그녀는 홀로 서서 수인들의 도주로를 확보했다. 그 누구도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다. 심지어 그 틈바구니 안에서 살아 나왔다면.

악마들의 피에 절어 돌아온 키르하스의 흉흉한 눈동자를 마주했던 수인들 중 그 누구도 감히 그녀의 무력에 의문을 표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명실상부, 뭇 수인들 중 최강이라 할 만했다.

그런 그녀를 독살이라도 한다면, 혹은 몰래 월담해 암살이라도 시도한다면? 과거라면 모르되 지금 그녀에겐 후계자가 있다. 골든투스와 같은 비둘기파 호족들이 즉시 그 아이를 차기 대족장으로 옹립한 이후 섭정 정치를 시작할 것이다.

암살에 연루된 자들은 그날로 효수되겠지. 지금 정국은 매파 원로들이 쥐고 있기야 했으나, 정치는 명분의 문제다. 제국의 선제후 섭정위를 받은 키르하스가 암살을 당한다면 제국 황실은 그 즉시 매파 원로와 반군들을 제국의 공적으로 취급할 것이다.

제국은 뷜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키르하스를 존중하고 있을 뿐.

그리고 역사상, 제국의 적성국으로 낙인찍히고 내전까지 일어난 상황에서 모든 사태를 수습한 인물은 키르하스 하트테이커, 그녀뿐이었다.

“칼을 든 사내가 이리 많으면서 고작 계집 하나에 겁을 집어먹는 꼴이라니. 쯧쯧.”

“개소리하지 마시오. 대족장을 합법적으로 끌어내리려 한다면 결투를 벌여야 할 것이오. 아니면 원로 회의를 거치거나. 그대가 원로 회의에서 대족장에게 반기를 들 수는 있소?”

“원로 회의에 대족장이 참석하지 않은 지가 반년이 되었는데, 그게 어렵겠나?”

“매파 원로들만 앉은 그 회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오. 수인 호족의 모든 씨족들이 모여든 자리에서 그녀에게 대적할 수 있냐는 뜻이오!”

뷜랑의 점거를 통해 제국을 향한 진출 야욕을 보이는 매파와는 달리, 전통주의자들이라 부를 수 있는 비둘기파 씨족들은 지금 황야의 너른 평원에서 떠돌고 있다. 이들은 매파 씨족들처럼 단단히 결집한 세력은 아니었지만, 저들 모두가 하나로 규합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그런 자들이 집결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족장을 정치적으로 탄핵할 방도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파르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절차는 그 계집의 장례 이후에 일어나도 늦지 않지. 그년이 살아 있으면 모르되, 죽은 이후에도 그년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할 이들이 얼마나 되겠나?”

“대체 어떻게 죽이겠다는 거요?”

“네가 말했잖나. 결투로 해야 한다고.”

“당신이 칼을 쥐고 나서겠다고? 그 키르하스 하트테이커를 상대로?”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지. 네가 갈 것이다. 아니, 누구라도 상관없고.”

파르탁의 말에 장내가 흉흉해졌다. 저건 지금 죽으란 뜻이 아닌가. 수인 전사들 사이에 은밀히 돌던 의심이 점점 더 현실성을 띠어 가고 있었다.

키르하스에게 반발하는 자들이 모여들면 파르탁에 의해 숙청당했다는 의심이.

“우릴 규합해 단번에 처리하려는 속셈이었군!”

“뭐? 으하하하! 순진하고 아둔한 것들.”

그러나 파르탁은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사내가 움찔 떨자, 파르탁은 친근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그럴 속셈이었다면 이 자리에 혼자 왔을까? 어차피 너희가 아니더라도 이 일을 할 자들이 지금 뷜랑에는 썩어 넘치지. 너희가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머저리들. 내가 너희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거지.”

곧, 어깨를 짚은 손에서 녹색 불꽃이 타닥이며 튀었다. 사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파르탁의 손아귀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사내의 핏줄을 타고 격류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끄으윽……?! 끄아아아악!!!”

사내의 비명이 주점을 휘몰아쳤다. 불꽃이 더 크게, 점점 더 강렬하게 타올라 사내를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파르탁은 그 불길 안에 손을 집어넣은 채, 사내의 어깨를 꽉 움켜쥐고 잇몸이 드러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받아들여라! 이 힘을 받아들여라. 네 바람을 외쳐라, 네 욕망을 드러내라. 얻으리라, 얻게 될 것이다! 꼬마야. 대가는 오직 하나, 네 전부뿐이다!”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울러 퍼졌다. 사내의 비명은 이제 힘없는 그르렁거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영혼마저 불사르는 마력이 장내를 음산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 힘, 그의 침묵은 이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물질 세계에서 추방당하기 직전까지 남아 있던 대악마의 자취. 물질 세계의 현현을 위해 진신의 힘을 끌고 왔던 대악마가, 제 하수인들의 몰락과 함께 봉인될 때 흘린 마지막 힘의 파편.

전투로 탈진한 키르하스, 사라진 페르난데스, 도주하는 악마들을 추격하던 제국과 수인, 그리고 엘프의 함대. 그들 중 누구도 이 힘을 눈치채지도, 경계하지도 않았다.

어리석은 것들. 아둔한 자들. 저들 중 흑마법사가 없었다는 것이 그에겐 더없이 크나큰 기회가 되었다. 악마에 대한 이해가 일 푼도 없던 저 머저리들 덕이다.

파르탁은 페르난데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에게 진심으로 충성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 힘을 남겨 준 것은 그가 지금껏 해 온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겠는가? 이 힘을 얻을 지위까지 그를 끌어올린 존재가 페르난데스, 그놈이 아니던가?

그 대가로, 놈의 자식은 살아남으리라. 녀석의 자손을 죽이진 않을 것이다. 계집이라 했던가? 블랙팽의 혈통을 잇게 한다면 이제 그의 핏줄은 하트테이커의 황금 혈통을 이은 영원한 대족장으로 남으리라.

이제 대황야는 나의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 시대는 나의 것이다. 파르탁은 킬킬거리며 손을 거두었다.

“크르륵…….”

불길이 사그라들고, 반쯤 타들어 간 수인 사내가 거품 끓는 소리를 냈다. 파르탁은 싸늘하게 그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을 굽혔다. 짧은 수인이 맺히고, 검은 쇠사슬이 나타나 사내의 목에 걸렸다.

“일어서라.”

“끄륵…….”

수인 사내는 꼭두각시처럼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두 눈이 붉게 타오르고, 타들어 간 귀가 뿔처럼 솟아 있었다. 어금니가 두 뼘은 길게 자라나고, 거뭇하게 탄 털 아래로 짐승의 근육이 자라나고 있었다.

대악마의 힘. 그 진신을 이용한 ‘세례’다. 저 먼 땅의 이단심문관이란 자들이 이런 세례를 받는다고 했다. 신의 힘을 직접 핏줄에 흘려 넣는 과격한 세례를. 그를 모방해 만들어 낸 존재다. 당연히, 일개 필멸자의 힘으로는 막을 수조차 없으리라.

“원로님!!”

-쾅쾅쾅!!

그때, 누군가가 주점의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파르탁은 인상을 찌푸리며 턱짓했다. 그의 존재감에 압도된 수인들이 홀린 듯 문을 열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수인 하나가 헐떡이며 달려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큰일……. 큰일입니다!”

“두 번 묻지 않겠다.”

“이단심문관입니다!!”

수인 사내는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경비 초소에 심어 둔 녀석이 방금 들고 온 첩보입니다! 이단심문관이 서문을 넘어 세포르 성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뭐?”

음…… 뭐?

이단심문관?

파르탁은 잠시 멍하니 수인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니, 대체 왜? 뭘 하지도 않았는데? 아니, 뭘 하긴 했다. 악마의 힘을 사역했으니까. 근데 그건 방금 일어난 일이 아닌가.

이단심문관들이 무슨 초능력자들도 아니고, 지금 이 시점에 여기에 왜 온단 말인가? 혼란에 빠져 있던 파르탁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그 때문에 온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세포르 성으로 향하고 있다고?”

“예, 원로님! 로브를 뒤집어쓴 사제 셋이 곧장 세포르 성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지금 성엔 누가 있지?”

“하트시커즈 녀석들이 지키고 있지요!”

키르하스의 친위대들이다. 광신에 가까운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머저리들. 놈들에겐 파르탁의 간자들이 숨어들 수 없었다.

파르탁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라리 잘되었다. 문명 사회의 이단심문관들은 결코 수인들의 전통에 개입할 수 없다.

문명 사회 놈들이 입회하는 앞에서 대족장을 꺾으면 제국도, 수인 원로들도 감히 반발하지 못하리라. 파르탁은 빠르게 냉정을 되찾으며 씩 웃었다.

“운이 좋군.”

“운……이 좋다고요? 원로님?”

“놈들이 보는 앞에서 그 계집을 죽인다면 그건 더 이상 암살이 아니지. 전통대로 해결할 방도가 아니겠느냐?”

대악마의 힘을 내려 세례를 했다 한들, 정확한 감식을 거치지 않는 이상 현장에서 이를 눈치챌 방법이 없다. 흑마법사들은 그 누구보다 정체를 감추는 것에 익숙한 자들이므로.

파르탁은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다들 세포르 성으로 향하지. 거사를 시작하자.”

오늘, 수인들의 주인이 바뀐다. 이제 블랙팽의 혈육은 황금 혈통으로 남으리라. 천운마저 그의 편이란 생각에, 파르탁은 어금니를 드러내며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 * *

“왜 그러느냐?”

한창 성으로 향하던 도중, 페르난데스는 말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벨이 그의 곁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짚었다.

곧, 페르난데스는 픽 웃음을 터트렸다.

“제법 깜찍한 수를 썼군.”

“누가 말이냐……?”

“악마의 냄새가 나오.”

많은 이들이 단지 소문으로 취급하는 것이지만, 디모니카는 본능적으로 악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뷜랑 시에서 악마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으며.

이 냄새는 그가 아는 것 중 하나였다. 잊을 수도 없는 냄새—

죽기 직전에 맡았던 지독한 공포의 사향내. 야수의 비린내였다.

“다시 길들이는 맛이 있겠어.”

페르난데스는 툴툴 웃으며 말을 이끌었다. 세포르 성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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