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불멸자와 필멸자 (18)
파르탁의 외침 직후 장내에 고요가 가라앉았다. 사냥신의 대리인이자 수인들의 수호자, 위대한 하트테이커를 향해 내뱉기엔 너무도 불경한 언사였던 탓이다.
그러나 파르탁은 저 먼 성탑의 끝을 노려보며 껄껄 웃었다.
“아무래도 꼬리를 말고 도주한 모양이로다! 현명하기도 하지! 그래, 키르하스! 도망쳐라! 네 죽음에서 도망쳐라! 네 주인이 없는 네년이 홀로 무얼 할 수 있겠느냐!”
“블랙팽 원로, 그…… 대족장이 도주하게 두어도 괜찮습니까?”
파르탁의 웃음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전사 하나가 작게 속삭였다. 파르탁은 곧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골든투스가 비둘기파를 결집하는 시간보다 우리가 뷜랑을 장악하는 시간이 더 빠르다. 뷜랑의 물자를 중심으로 농성을 준비하며 대황야 방향으로 나아가는 교역을 끊어 놓으면 된다.”
“놈들은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더군다나 골든투스가 굳이 제국과 교역을 맺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 키르자트가 있지. 하하, 나는 놈들이 그렇게 하길 바라고 있다.”
파르탁은 음산하게 웃으며 수인 전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예언하듯 그르렁거리며 한 글자, 한 글자 무겁게 내뱉었다.
“키르자트와의 교역은 놈들에게 독이 될 게다. 제국과 키르자트는 여전히 서로에게 어금니를 드러내고 있지. 뷜랑은 인간들의 도시야. 여길 공격한 수인 잔당들이 키르자트와 연수했다는 증좌만 모인다면…….”
“50년 전쟁의 재발……! 그렇군요!”
뷜랑과 리뷔에는 대황야를 끼고 있는 영지다. 레바인테르와 키르자트 사이의 기나긴 전쟁이 종식된 이후, 전쟁 교역이 끝나며 두 영지는 빠른 속도로 침체되고 있었다.
리뷔에는 황제의 본가로 다시금 광명을 되찾았으나 뷜랑의 경우는 다르다. 뷜랑은 지난 전쟁 이후에도 성세를 유지하는 것엔 성공했지만, 제국 내전기의 파괴와 카라드스카르의 대북진을 막아 내는 과정에서의 청야 전술로 멸망 직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다시금 키르자트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수인 반군들을 처단한다는 기치하에 전황을 주도하게 된다면 뷜랑은 빠르게 재건되리라. 동방의 부가 이 도시로 흘러들 것이다.
그 모든 부, 그 모든 권력……. 그것들은 이제 파르탁의 손아귀에 들어선다. 그는 단지 대족장의 자리만을 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높은 것, 더 먼 것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대족장의 교체는 그저 과정에 불과할 뿐. 파르탁은 웃으며 세포르 성을 바라보았다.
그때, 한 줄기 섬광이 파르탁의 발치에 틀어박혔다.
-카앙!!
서늘하게 빛나는 장검 한 자루가 그의 후드를 얇게 베어내며 그의 한 치 앞에 박혔다. 얼마나 강한 힘으로 던져진 것인지, 칼자루가 팅, 하고 떨렸다.
“무, 무슨?!”
파르탁은 화들짝 놀라며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저 멀리, 굳게 닫혀 있던 세포르 성의 첨탑 창가에 실루엣이 비쳐 보였다. 누군가가 창틀을 밟고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르탁은 침을 꿀꺽 삼켰다. 키르하스 하트테이커……. 제법 먼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하늘 아래에 별처럼 박힌 청록색 눈동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검은 머리칼을 사자 갈기처럼 흩날리며, 그녀는 오연히 그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겁먹은 쥐새끼처럼 물러서는군. 파르탁 블랙팽.”
“감히!!”
“네가 직접 내게 덤벼들진 않을 테고, 네 팔을 대신할 칼들을 모두 모아 왔느냐?”
-탓!
키르하스가 창틀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녀는 날래게 벽과 벽을 차고 넘으며 속도를 조절하고는, 그대로 관문 바로 앞에 착지했다. 그 높이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바닥을 밟았을 때, 친위대들이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보다 작은 소음만 들렸다.
검은 머리칼이 폭포처럼 일렁였다. 그 사이로 육상 맹수 같은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파르탁을 향해 말했다.
“규칙은 네가 정해라. 한 번씩 돌아가며 죽을 것인지, 한 번에 죽을 것인지.”
“네년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혀로 싸울 것이 아니라면 먼저 죽을 자를 보내라. 그 칼을 넘는 순간부터 시작으로 하겠다.”
키르하스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바로 뒤에 선 친위대의 허리춤에서 칼을 잡고 뽑았다. 그녀는 친위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성문을 봉쇄하고 성내 대로에서 아성 관문까지 이어지는 모든 가도를 막아라. 쥐새끼 단 한 마리도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예, 대족장!!”
친위대는 즉시 기립하며 소리쳤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짧게 두드리고 뒤를 돌았다. 파르탁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이년이 제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는구나. 오냐, 내 너의 청대로 해 주마. 다만 명심해야 할 게다. 네 주인은 더 이상 널 지켜 줄 수 없다. 지켜봐 줄 수는 있겠지! 네년이 놈의 곁으로 가게 될 테니. 그리고 네년의 딸은…….”
“파르탁 블랙팽.”
칼날이 서 있다 착각될 만큼 싸늘한 목소리가 파르탁의 말을 잘랐다.
“네 죽음이 짧고 평온하길 바란다면, 닥쳐.”
오싹, 소름이 돋았다. 파르탁은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 물러서며 키르하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전사들 또한 그 순간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이거나 꼬리를 말았다.
덩치가 크고 잘 무장된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파르탁은 지금 이 순간 사자 우리 속으로 발가벗겨진 채 던져진 감각을 느꼈다. 이 자리의 모든 전사들이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파르탁은 곧 고개를 흔들고는 손을 꿈틀거렸다. 빠르게 수인이 맺히고, 가장 선두에 선 전사의 몸에 암청색 불꽃이 타닥였다.
“크르르륵!!”
“가라! 저 계집을 죽여라!”
키르하스의 말대로 모두가 동시에 뛰어들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그들은 도전자에서 반군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방식으로 키르하스를 죽일 수는 있겠으나, 수인들을 지배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 자리엔 전사들이 많았다. 쓸 수 있는 팻감이 넘쳐흘렀다. 하나로 안 된다면 두 번째, 둘로 부족하다면 세 번째 전사를 내보낼 작정이었다.
대족장은 이런 결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럴 생각이었다면 굳이 가도를 봉쇄하진 않았으리라. 저 오만한 계집은 정말 혼자 이 모든 사내들을 대적하겠다 선언한 것이다.
충분할 것이다.
충분해야 한다. 파르탁은 초조하게 중얼거리며 그의 첫번째 전사가 뛰어나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 * *
반절 이상 야성에 잡아먹힌 전사가 네발로 뛰어오르듯 달려와 키르하스의 상반신을 거칠게 긁었다. 자세와 기세, 그 모든 것이 엉성했으나 강맹한 일격이다.
-후우우웅!!!
질 나쁜 철검이 허공을 할퀴며 와락 달려들었다. 아무리 어설픈 공격이라 할지라도 힘과 속력이 따라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인간의 피륙은 만인을 가리지 않고 강철보다 무르니까.
그러나 필사의 일격이라 할지라도 닿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 없다.
-카앙!!
키르하스가 서 있던 돌바닥에서 불똥이 튀었다. 전사는 한순간 대족장의 위치를 놓쳤다. 그르륵? 거품 낀 목이 의문을 담아 울렸다.
-스칵!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름 모를 전사는 끝까지 제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시야가 빙글 돈다 싶더니, 곧장 돌바닥에 틀어박혔다. 전사의 머리가 바닥에 데굴 구르며, 천천히 허물어지는 자신의 몸뚱이를 바라보았다.
그 앞으로 키르하스의 다리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녀는 칼날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 내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다음.”
그 누구도 감히 그녀의 앞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 * *
“대단하구나……!”
아벨은 한순간이지만 그녀의 움직임을 놓쳤다. 실전이라면, 만일 키르하스의 검이 아벨을 향했다면 어땠을까. 오랜 검사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물론 검격이 단지 육안으로 좇는 것은 아니다. 기세, 본능, 육감을 모두 사용해 일격, 일격에 사활을 내거는 착수에 가깝다. 그러나 용의 시력을 한순간이나마 흐트렸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감탄에 페르난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은 아니었군.”
“본디 지킬 것이 많은 아이니 더욱 그리했겠지.”
그녀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벨은 묵묵히 싸움을 지켜보는 페르난데스를 힐끗거리며 생각했다.
미안해하는 것인가? 아니면 후회하고 있을까.
그는 그 구김살 없던 밝은 아이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아가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비록 그를 타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페르난데스는 세 번째 도전자마저 일격에 처리하는 키르하스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네가 자랑스럽다. 이런 감상을 품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저 위대한 대영웅을 미리 거두어 그의 입맛에 맞게 육성했다. 그녀가 본디 얻어야 했을 영광도, 그녀가 살며 겪었을 고난과 역경까지도, 그 모든 것들을 그가 직접 조율하고 제공했다.
비수로 사용하기 위해서. 처음엔 단지 그 생각뿐이었으나, 이제 그는 더 이상 키르하스를 단지 쓰기 좋은 버림패로 여길 수 없었다. 저 찬란히 빛나는 영혼은 비록 그가 만들어 낸 보석이었으나, 이제 스스로 타오르는 불길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못내 자랑스러워, 페르난데스는 그저 웃으며 싸움을 지켜보았다.
* * *
-키이이잉!
일곱 개의 수급이 바닥을 굴렀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섣불리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키르하스는 잘게 떨리며 검명을 토해 내는 칼날을 도사리고는 정면을 노려보았다.
파르탁은 어금니를 짓씹으며 뒤로 물러섰다. 괴물. 반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라지만, 전사가 감을 잃기엔 충분한 시간이 아니던가. 사치와 향락, 그리고 은거 기간 동안 저 계집이 칼을 잡는 모습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건만!
파르탁은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남몰래 수인을 맺었다. 빠르게 세 수의 수인이 그의 손을 타고 흘렀다.
-파직!
전사들의 동공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결속이 완전해지며 그의 전사들은 이성을 잃은 꼭두각시가 되었다. 이자들 모두가 죽는다 하더라도 괜찮다. 저 계집만 잡을 수 있다면.
아직 평온한 안색이었지만 인간인 이상 체력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휘둘렀다.
-그르륵!!
전사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친위대가 동시에 칼을 뽑아 올렸다.
“이건 결투가 아니다! 파르탁, 감히 신성한 전통을 먹칠하다니!”
“물러서라.”
“대족장!”
“이건 결투가 아니다.”
달려드는 전사들을 향해 한 걸음 더 앞으로. 키르하스는 칼날을 빙글 돌리며 자세를 낮췄다. 그래, 이건 결투가 아니다. 들개들이 몰려든다 한들 사자를 잡을 수 있을까.
이건 도살이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곧 다시 떴다. 이젠 거의 짐승처럼 달려드는 전사들의 틈 사이로 푸른 실선이 밝게 빛나며 이어지고 있었다.
익숙한 감각. 승리를 향한 길이다.
-스캉!
사냥꾼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걸려들었군!”
파르탁은 그 모습을 보며 손을 얽었다. 소모품들을 밀어 넣으면서도 그는 진심으로 저것들이 대족장을 죽일 수 있으리라 믿진 못했다. 그러니 다음 계획, 그리고 그것이 실패한다면 또 다른 암수가 있다.
그는 제법 긴 시간 페르난데스를 섬겼다. 그의 방식을 익혔다. 어떤 완벽한 계획이라 할지라도 실패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의 대처에 달려 있다.
예카세트의 마력을 품은 핏물이 이미 바닥을 흠뻑 적시고 있다. 악마화가 진행되는 전사들이 죽어 넘어지며 파편화된 마력을 대기 중에 흩뿌렸다.
-파지직!
그 사이로 암청색 전류가 흐른다. 파르탁의 손끝을 따라 튕기고, 부딪치고, 꺾이며. 대기 중의 마력이 점점이 이어지고 공간을 유리시켰다.
그 가운데엔 양떼 한가운데의 늑대처럼 날뛰는 대족장이 있다. 키르하스는 반쯤 검에 홀린 듯 휘몰아치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이 그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물감처럼 흘렀다.
칼날이 횃불 아래에 번쩍일 때마다 하나씩 전사들의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 저 속도라면 이십 분이 지나기 전에 그의 꼭두각시 절반이 도륙당할 것이다.
그 정도라면 충분하다. 파르탁의 주문이 점점 더 농밀해지는 마력 속을 부유했다.
‘됐다!’
-따악!
손가락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꿈틀거리며 튕겼다. 동시에 키르하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수십 겹의 주문이 그녀의 양팔과 다리를 옭았다.
체사르의 혈속박. 키르하스와 같은 전사를 묶어 두기 위해 준비한 강력한 옛 주문이다. 파르탁은 주문이 완벽히 틀어박힌 것을 느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블랙팽! 결투에 사술을 사용하다니!!”
“왜? 너희의 대족장이 말하지 않았더냐? 이 이상부터는 결투가 아니라 도살이라고?”
파르탁은 이죽거리며 사슬에 얽힌 키르하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곁에 선 전사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들어 그녀의 목젖 위에 겨누었다.
“결투를 빙자해 백성을 도륙한 미치광이 대족장을 끌어내리고, 원로회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새 연합을 구축하겠소. 이제 쉬시오, 대족장.”
파르탁은 입술을 핥으며 칼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는 키르하스의 청록색 눈동자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어라 대답을 해 보시오. 애원해도 좋고, 간청해도 좋소, 대족장. 내 마음이 약해지거든 그대를 살려 줄 수도 있거든.”
“……은공?”
키르하스의 눈은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어깨 너머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야수처럼 날뛰던 그녀는, 충격으로 크게 흔들리는 눈으로 하염없이 저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수작이지? 파르탁은 내려치려던 칼을 잠시 느슨하게 쥐고 뒤로 물러섰다. 그의 본능이 갑작스레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뻣뻣하게 굳은 채 감히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익숙한, 너무나 익숙한 기척이 그의 뒤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수인의 각도가 어설프구나, 파르탁. 다음에 같은 주문을 사용할 땐 중심절을 구성할 내각을 10도 우측으로 기울여 맺거라. 맺고 끊는 타이밍도 아쉽고.”
-파앙!
목소리와 함께 키르하스의 양팔을 묶고 있던 사슬이 터져 나갔다.
“보아라. 이리 쉽게 해주되지 않느냐.”
“설마…… 커흑!!”
-차르륵!
파르탁은 갑작스런 인력에 무릎을 꿇으며 기침을 토했다. 어느새 그의 목에 검은 사슬이 걸려 있었다. 지배의 사슬, 이 주문을 그에게 걸었던 존재는 물질 세계에 단 한 사람뿐이었다.
“주……군……?!”
파르탁은 바닥을 짚고 덜덜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은 사슬이 가도의 저 너머로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 끝에서, 사슬을 한 손에 움켜쥐고 천천히 다가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그럴 리가 없다. 살아 있을 리가…….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오늘이란 말인가!
“운 좋은 녀석. 네가 거사에 성공했다면 네 쓸모가 다했겠으나…….”
저벅, 걸음이 다가올 때마다 파르탁은 더 깊숙이 몸을 낮추었다. 턱이 덜덜 떨리며 벌어진 입술 사이로 걸쭉한 침이 흘렀다.
“아직 내게 너는 쓸모가 있다.”
페르난데스는 무릎 꿇은 파르탁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