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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52화 (353/388)

352. 불멸자와 필멸자 (21)

“빠!”

“아이고! 아나! 세상에! 이 녀석, 다 컸구나!!”

파르탁은 찻잔을 쥔 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음침하게 웃거나 고압적으로 협박하던 그의 주군이 누군가를 향해 저토록 따듯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원치 않는 깨달음이었다. 파르탁은 대체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른 채, 아이를 간질이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봤나, 파르탁 블랙팽? 이 녀석이 나를 알아본다.”

“예에에……. 주군. 참으로 헌앙한 아기씨입니다.”

“하하, 그래, 그래.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이리도 똘똘한지 모르겠어.”

“예에에…….”

뭐가 되긴. 대족장이 되겠지. 파르탁은 완벽하게 표정을 관리하며 내심 투덜거렸다. 페르난데스가 건재하고 키르하스의 위명이 드높은 지금, 그 둘이 동시에 죽는다 한들 저 아이는 대족장으로 추대될 것이다.

골든투스를 비롯한 비둘기파 부족들은 이미 저 아이의 탄생과 동시에 충성을 맹세했다. 적어도 수인 전체의 절반이 저 아이의 미래에 기꺼이 복종한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저 아이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될 것이다. 뷜랑의 선제후 섭정인 제 어미를 따라서, 인간과 수인의 혈통이 섞였다는 상징이. 아마 한두 세대가 더 흐르면 이제 수인들은 제국에 편입되거나, 동등한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 사실들을 알고 싶진 않았다. 파르탁은 대체 자신이 여기에 왜 있는지 파악해야 했다. 그의 목숨줄은 페르난데스가 쥐고 있었으니.

“하온데 주군, 제가 그……. 원로 회의에 가던 길에 온지라. 그…….”

“아, 네가 없으면 회의가 진행될 턱이 없겠군. 다들 기다리고 있겠어.”

“예에, 아무래도. 하하, 그렇지요. 네. 원로회는 제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대한 자신의 쓸모를 내세워야 했다. 그는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난날의 소동으로 인해 원로회의 불안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키르하스가 여전히 살아 있고, 파르탁이 거사에 성공한 것도 아닌데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났다. 파르탁에게 찬동해 병력을 차출한 원로들 입장에선 속이 타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겁쟁이들이었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대족장을 알현할 최소한의 배포조차 없는 것들. 파르탁은 그들을 혐오하면서도, 그들의 비겁함이 기꺼웠다. 비겁한 짐승은 길들이기 쉬운 법이었다.

어쨌건, 지금 그가 건재하며 여전히 수인 연합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알려야 할 시기였다. 매파 부족들을 숙청할 것이 아니라면 키르하스의 집권을 위해 필요한 절차였다.

저 사내도 알고 있을 터인데……. 파르탁은 마른침을 삼키며 눈앞에서 아이를 흔드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그냥 평범한, 다소 젊은 아이 아빠로만 보일 지경이었다.

“저어…….”

“생각을 해 보았다. 파르탁.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이야.”

페르난데스는 파르탁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말했다.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여전히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은 채.

하지만 놀랍도록 싸늘한 목소리로. 그 괴리감에 파르탁은 움찔 떨었다.

“주군께서 부재중이시다 한들 바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반년을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한다면, 향후 다시 반년만 자리를 비워도 다른 생각을 품은 자들이 나타날까 두려워지더군.”

전혀 두렵지 않다는 목소리였다.

“예에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품는 놈이 있거든 제가 직접 그런 못된 생각이 든 머리통을 잘라 보내겠습니다, 주군. 하하…….”

“아나가 듣는데 못 하는 말이 없군. 블랙팽 원로.”

“죄송합니다!!”

은밀하게 목덜미를 파고드는 살기에 파르탁은 즉시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며 외쳤다. 찻잔이 요란하게 부딪쳤다. 아이는 그 광경을 보며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항상 말을 조심하는 것이 좋아, 파르탁. 세 치 혀에 목숨줄이 걸려 있으니까.”

“주군의 가르침을 반드시 뼈에 새기겠습니다.”

“그래서, 원로회의 늙은 짐승들이 너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는 뜻인가? 내가 너를 붙잡아 두는 것이 그들에게 실례가 되겠나?”

“감히 그런 생각을 하는 놈이 있거든 제가 직접…….”

“말.”

“예에…… 따끔하게 일러 주겠습……니다.”

파르탁은 혼란에 휩싸였다. 그는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로 협박하는 페르난데스도, 그 협박을 듣고 있는 자기 자신도. 그리고 뭔가 중요한 지시가 있을 것 같은 자리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한 살도 안 된 아기까지도.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파르탁은 떨리는 동공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어쨌건, 내가 자리를 비운 이후의 일 말인데. 키르하스마저 자리를 비운다면 문제가 생기겠지?”

“문제랄 것이 있겠습니까? 대족장은 지난 반년간 정책다운 정책을 주도한 적 없이 그저 은거하기만 했습니다. 지금껏 이 도시와 수인들을 억누른 것은 전적으로 제가 이룩한 일입니다.”

“……네 쓸모는 잘 알겠으니 필요한 말만 하도록, 파르탁. 허면 네 말은 어린 아나를 홀로 두고 떠나도 아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 것이란 뜻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흐음…….”

페르난데스는 잠시 아이를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그제야 파르탁은 이 자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페르난데스는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쓸모가 있으니 살려는 주었는데, 이제와 떠나려니 아이의 안전에 대한 후환이 두려운 것이다. 두렵다? 아니, 그걸 두렵다 표현하긴 어려웠다.

거슬린다. 그 정도의 단어가 적합했다. 파르탁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가 떨리는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보았을 때, 페르난데스도 어느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눈치가 빠르군.”

“살려…… 주십시오, 주군. 진정코…… 진정코 저는…….”

“나는 널 잘 안다, 파르탁. 네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일들을.”

“저는…… 아닙니다. 주군.”

“나도 네가 그 정도로 멍청하다 생각하진 않아. 감히 아나를 건드린다면…… 만신전의 대신과 저 나락의 심연조차도 네 영혼을 구원해 주지 못할 게다.”

단순한 협박이나 과장이 아니었다. 파르탁은 이 사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그걸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사내가 평범한 표정으로—

‘신도 악마도 결국 죽더군.’

하고 말한다 한들, 그 말을 이 사내가 했다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둘 모두 죽여 본 사람일 테니까. 페르난데스가 그리 저속하게 자신의 업적을 전시하진 않겠으나, 파르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제 자식의 일과 엮인다면 그 어떤 냉정한 사람이라도 때때로 지극히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곤 한다. 파르탁은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억눌렀다.

“살고 싶나 보군.”

“예, 주군.”

“나는 널 알고 있다, 파르탁. 네가 똑똑하다는 것, 그리고 네 야망이 강렬하고 네가 삶에 집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러니, 네게 또다시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면 다시금 나를 배신할 수 있으리란 것도 알아.”

“아닙…….”

“아니라고 하지 말게, 파르탁. 진실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것이 기꺼워. 네 말대로, 나는 꼭두각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대륙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꼭두각시가 아니라 책략가들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의 명령을 해석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책사들이 필요했다.

말레디카의 중견진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계획과 이상을 품고 그에게 충의를 맹세했다. 페르난데스는 대단히 관대한 지배자에 속했다. 자신의 목적에만 충실한다면 개개인의 관심사엔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젠 아니었다. 파르탁의 목적은 언제나 야망이었고, 그의 목적에 가장 상충되는 존재가 이 아이일 것이므로. 페르난데스는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탁, 탁. 그 소리가 단두대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처럼 들려서, 파르탁은 목을 움츠리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나는 귀르로 떠날 것이다, 파르탁. 키르하스는 이 일에 반드시 필요하니 함께하겠으나, 길이 험하니 아이를 데려갈 수는 없지. 귀르 이후엔 동부 연합으로, 그다음엔 글쎄…… 적어도 황야로 돌아오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예, 주군.”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아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 아이에게 티끌만 한 생채기라도 생긴다면 나는 누굴 탓해야 할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아주, 아주 어리석은 생각을 할 것 같아.”

페르난데스의 손가락이 툭, 하고 테이블을 쳤다.

“아이가 밥을 먹다 체를 한다? 파르탁. 아이가 길을 걷다 넘어져 무릎이 쓸린다? 파르탁.”

툭, 테이블을 두드릴 때마다 파르탁의 이름이 나왔다. 툭. 툭.

“자다가 굴러서 바닥에 떨어져도. 심지어 그저 웃다가 실수로 혀를 깨물어도 말이야. 파르탁. 난 네 이름을 부를 것만 같더군. 파르탁 블랙팽.”

“제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기씨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말 이상의 무게를 가져야 할 거야. 어떤 수를 쓰더라도, 얼마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나는 반드시 너를 찾아내어 그 죗값을 잴 테니까.”

페르난데스의 시선이 파르탁을 스쳤다가, 다시 아나에게 닿았다. 아이는 삼엄한 분위기에 놀랐는지 눈을 도록도록 굴리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페르난데스는 다시 크게 미소 지으며 아이를 어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곧장 꺄륵거리며 웃음을 터트리고는 팔을 마구 휘저었다.

“이제 가 보게. 원로 회의에 네 건재함을 알리고 네가 여전히 이 연합의 이인자로 군림하고 있다 천명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가 영원할 것이라 말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해도 좋아. 일인지하, 네 머리 위에 누가 있는지 잊지 않는다면.”

-쿵!!

“그리하겠습니다!”

파르탁은 곧장 머리를 테이블에 박고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떴다. 아이의 맑은 웃음소리를 등지고, 파르탁은 아직까지 잘게 떨리는 손을 애써 감췄다.

괴물. 대족장의 진심이 담긴 검격을 막아서고, 동시에 단순한 손짓으로 그의 마법을 박살 내는 괴물. 단신으로 대악마를 격살했으며 이제 와 물질 세계 전역의 유력자들과 긴밀한 친교를 다져 놓은 괴물.

어찌 저런 존재가 자신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단 말인가. 어찌……. 파르탁은 비참함을 추스르며 생각했다.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괴물의 등 위에 탄 이상, 적어도 그 괴물의 어금니가 자신을 향할 리가 없으니까. 괴물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정도의 공포를 지닌 채 그를 바라볼 것이었다. 그건, 나쁘지 않았다.

* * *

“폐하, 트레뮐레 궁중백 에버리즈 리스 드 라 트레뮐레가 알현을 청합니다!”

“들라 하라.”

르네는 온갖 상소문과 보고서들이 쌓인 탁상을 대충 쓸어 자리를 만들며 말했다. 시종 하나가 급히 다가와 빈자리에 찻잔을 올렸다. 르네는 손을 휘저어 시종을 만류했다.

“두어라. 나는 손이 없더냐?”

“폐, 폐하.”

“하지 말래두. 너는 가서 다과거리를 가져오거라. 선제후에게 면은 서야 할 것이 아니냐.”

비록 트레뮐레 백작가가 카르벨리에 황가와 같은 배를 탄 입장이기야 했으나 굳이 약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르네의 말에 시종은 고개를 꾸벅이며 빠르게 물러섰다.

황실의 재정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팔텐노이아 인근의 구휼조차도 국고를 넘어, 황실의 사금고를 털어야 할 정도로. 세 차례의 전란, 그중 두 번은 제국 내륙을 휩쓴 전란이 장장 오십여 년을 넘겼다. 제국이 유지되는 것 자체가 기적이란 뜻이었다.

르네는 본을 보이기로 했다. 사치품이라 분류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물품들을 처분한 것이다. 다과, 고급 식자재, 귀금속과 가구, 예전으로 소비될 수많은 기타 비용들까지.

간간이 찾는 딸기 정도가 그녀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사치품이었다. 그녀는 유리그릇에 담겨 나온, 잘 손질된 딸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공녀였을 시절에도 이보다는 잘 먹고 잘 쉬었다.’

아버지가 유독 그리워지는 나날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열리는 문을 바라보았다. 에버리즈가 쾌활한 얼굴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즐거운 모양이군, 트레뮐레 궁중백?”

“와. 딸기네요, 폐하?”

“짐의 것이다. 건들지 말도록.”

“쩨쩨하긴. 르네, 귀르에서 납부하는 세금만 치면 제국 딸기 농가 전체를 구매하고도 남을 텐데.”

“그 돈은 백성들의 허기를 구매하는 데 탕진했다. 빚쟁이들이 많아서 난처하던 차였지. 이건 내 사금고로 산 것이니 엄밀히 따지자면 내 딸기야.”

르네는 에버리즈의 손을 찰싹 치며 말했다. 에버리즈는 실실 웃고는 그녀의 맞은편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진짜 기쁜 소식이 하나 있고, 좀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있고……. 음. 그리고 네가 들으면 화낼 소식이 하나 있는데. 뭐부터 듣고 싶어?”

“짜증나게 굴면 다음부터는 서면 보고로 대신할 거야.”

“너 오늘따라 좀 까칠하구나? 좋아. 일단 좋은 소식부터 들려줄게. 르네 필리파, 놀라지 말고 들어. 일단 잔 내려놓고.”

“뭔데, 빨리 말해. 시간 없어.”

“나도 없어. 세르너드 공이 살아 있어.”

“…….”

딸기 그릇으로 향하던 르네의 손이 우뚝 멈췄다. 에버리즈가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는 정도의 어감으로 말을 꺼낸 탓이다. 그녀는 혼란에 빠져 잠시 손을 허우적거렸다.

“다시 말해 봐.”

“폐하, 국서께서 생환하셨나이다. 만신전이 보우하사, 신 트레뮐레가 직접 국서를 알현하고 복귀하였나이다.”

“페르난데스 세르너드가…… 살아 있다고?”

“그렇다니까? 아주 멀쩡하더라고.”

“그런데 왜 너 혼자 왔어?”

르네의 두 눈이 매섭게 떨리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다, 고작 그런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이미 그의 장례까지 주관한 이후였다.

농담이 아니다. 충분히 울었고, 충분히 애도했고, 힘겹게 이겨 냈다. 사랑하는 이들은 언제나 그녀보다 먼저 떠났으니, 그녀는 사별의 고통에 퍽 익숙한 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살아 있다고? 그리고 그 소식을 이제야 전했다고? 반년이 지난 지금에야?

“딸을 만나러 간다 하더라.”

-쨍그랑!

에버리즈의 말에 르네는 그릇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녀의 손이 분노로 바들바들 떨렸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아들, 아들이라면서!”

“어……? 딸이 맞는데? 하트테이커 대족장과의 사이에서 딸이 있다더라고. 아이언사이드도 미처 몰랐지 뭐야. 대족장이 뷜랑을 차지한 이후로 정보 확보가 어렵기도 했고, 그쪽 원로 중에 수완가 하나가 있어서 위험하기도 했고…… 인력도 부족했고.”

“트레뮐레 궁중백.”

“응?”

“불타는 성채 기사단에 출정 준비를 알려라. 이는 짐의 명령이다. 뷜랑을 치겠다!”

르네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치자 에버리즈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한참 끅끅거리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폐하. 국서께오서 곧 귀르로 내방한다 하였으니.”

“팔텐노이아가 아니라 귀르로? 어째서?”

“글쎄요? 항구를 열고 무역선들을 준비하라 하더이다. 이제 국서께선 해양 무역에도 관심이 생기셨나 봅니다? ……어? 르네? 어디 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르네는 망토를 두르며 일어서서 알현실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시종들이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르며 문을 열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는 버럭 소리쳤다.

“귀르로!”

제 3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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