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 작전명 : 겨울나기
동부 연합의 소국, 마르됭의 항구도시 에스칼라플란체. 그 이북으로 20해리 바깥의 영해에 한 무역선이 정선해 있었다. 제국 갤리 양식의 위용 넘치는 수송선이었으나, 깃대 위엔 레바인테르의 제국기 대신 검붉은 깃발 하나가 매달려 있는 채였다.
늦은 밤, 주위의 조명이라고는 저 밤하늘의 초승달과 항구 인근에서 저 홀로 점멸하는 두 등대의 반사광뿐이었다. 제법 호젓하고 운치 있는 풍광이었다.
적어도 페르난데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아 사위가 고요하니 더욱이.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멀찍이 보이는 항구에 집중했다. 제아무리 디모니카라 하더라도 이 거리에서 항구의 상태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단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항구에서 건물이 타오르고 있었다.
“혹시 말이야, 세르너드. 네게도 양심의 가책이란 것이 있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그의 곁에 다가온 아에렌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페르난데스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아에렌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네 입장을 봐. 북부의 야만인 약탈자들을 이끌고 고국을 침탈하는 앞잡이에 불과하지 않나?”
“이미 해 본 적 있어서 별 감흥이 없군.”
“역시 나라도 팔아 본 놈이 더 잘 파는 법인가?”
거친 언사였지만 아에렌의 말 속에는 악의가 없었다. 페르난데스는 픽 웃으며 받아쳤다.
“지난번에 분명 그리 말하지 않았소? 문명인들이 예의 없는 이유는 죽을 위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금 그대도 충분히 무례한 것 같은데?”
“하하, 이래서 남부인들이란.”
아에렌은 킥킥 웃으며 그의 곁에 섰다. 밤바람을 맞은 그녀의 창백한 금발이 물감처럼 일렁였다. 그녀는 불타오르는 항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들 사이에 전설…… 민담…… 뭐 그런 것이 있었지. 저 큰 원양을 가르고 남부로 향하면 따듯하고 풍요로운 땅이 있다고. 당장 부족들이 서로 물어뜯는 통에 뭘 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 모두가 언젠가 남부 땅을 밟아 보고는 싶었어.”
“왜 민담이오? 남부로 넘어온 자가 그동안 없지 않았을 것인데?”
“롱쉽을 스무 척 띄우면 다섯 척이 원양을 넘지. 그리고 다시 남부에서 북부로 다섯 척이 항해를 시작하면 한 척도 돌아오지 못해. 스무 척에 전사가 사백여 명 정도 탑승할 수 있겠군. 한 부족이 감당하기엔 터무니없는 숫자가 아닌가?”
아에렌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능력이 보장된 정예 병력 사백 명을 성공할지도 알 수 없는 도박수에 던지기엔 북부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닫힌 부족 사회에서 인구는 곧 전략 자원이다. 농경, 사냥, 어업은 물론이고 부족 간의 전투에서도. 당장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건장한 성인 남성 사백여 명을 하나의 부족이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과거에 에리크가 북부를 통일한 이후 남부 정벌을 시작했듯이. 지금 아에렌은 북부 전역을 지배하는 왕이었으니.
“뭐, 우리야 나쁠 것 없어. 겨울을 보낼 물자들을 고향으로 가져갈 수 있으니. 이 튼튼한 배도 우리에게 준다 했고.”
“첫 약탈이 끝나면 다음 파병은 언제쯤이 될 것 같소?”
“짧게 잡아도 석 달은 걸리겠지. 열흘에서 스무 날 정도는 남부를 들쑤실 테고, 전력 항행을 해도 북부에 도착하면 다시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니.”
“겨울이 되겠군.”
“해가 바뀌기 전엔 돌아올 거야.”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이 작전이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겨울까지라. 그 정도면 충분했다.
가을 추수철의 약탈은 분명 소왕국들에 끔찍한 피해를 입힐 것이다. 항구 인근의 모든 경제 기반이 박살 나고 농경지가 무너져 내리겠지. 대체 몇 명이 기아와 추위 속에서 죽어 갈까.
페르난데스의 머리는 그 순간에도 냉정하게 계산을 마치고 있었다. 동부 연합은 네 개의 강대국과 열다섯 개의 소왕국, 그리고 그보다 많은, 작은 규모의 공국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국가에 가까운 공국의 경우, 자체적인 식량 생산 능력이 없거나 매우 빈약하다. 도시가 일개 국가로 인정받아 독립하기 위해선 농경지가 아닌 무역 거점인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니까.
동부의 무역로가 모두 동결되는 이 상황 속에서, 심지어 추수철에 근방 모든 농경지가 불탄다면 그런 소규모 공국과 소왕국들로서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페르난데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불타는 항구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절반. 동부 연합의 절반은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사이에 죽어 갈 이들이 몇이 될지는 감조차 잡을 수 없었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무고한 자들만 피를 흘리겠지.’
본디 혼란 속에서 생존하는 자들은 대개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죄를 지은 이들이다. 성경의 구절은 근본적으로 틀려먹었다. 대부분의 시련은 죄 지은 자들만을 살리니.
‘이래서야 원.’
페르난데스는 더 이상 바다를 바라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는 휘적거리며 선실로 향했다. 그와 에리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칠흑의 에리크가 전생에 남부 침공을 가했을 때에도 동부 왕국의 절반이 지도상에서 사라졌었다. 그날의 재현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목적이 무엇이 되었든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그는 어떤 정교한 톱니바퀴가 스스로 움직이며 자신을 얽매고 있다 생각했다. 어쩌면 세계엔 운명이란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에리크가 죽자, 그가 남부 침공을 재현했다.
카라드스카르를 죽이자, 그의 아비가 대카간에 즉위해 북벌을 시작했다.
100년 전쟁을 50년 이르게 끝내자, 황제가 타락해 결국 제국은 내전으로 전생과 같은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그가, 페르난데스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자, 전생엔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도 꼼짝 않던 다리안이 돌연 변절하여 세계를 무너트리기 위해 달린다.
페이른 왕실의 타락을 사전에 저지하자, 페이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타락을 조장했다.
‘하지만.’
선실의 문을 열며 페르난데스는 생각을 멈췄다. 끼이익, 바닷바람에 녹슨 경첩이 시끄러운 마찰음을 내며 밀려났다. 어두운 선실 내부에서, 그의 두 눈이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
모든 운명이 예정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라 해도. 어떤 방식으로도, 설령 저 천상의 대신들이 직접 힘을 짜내어 그 방향을 뒤틀어도 제1계의 운명을 저지할 수 없다 한들.
반드시. 그것만큼은 안 된다.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번 세계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귓가에 낡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페이자쉬가 종종 하곤 했던 농담이다.
[어떤 대마법사가 무언가가 가능하다 말한다면 그건 반드시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나 그 마법사가 무언가를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의 말은 높은 확률로 틀렸다.”
마법을 처음 배우는 자들에게 가르치는 금언이었다. 마법은 관념을 현실로 인화하는 학문이므로, 사고에 한계를 두지 말라는 의미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린 시절 배웠던 저 문장만큼 그에게 큰 위로를 주는 것은 없었다. 페르난데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선실에 앉아 몸을 길게 늘였다.
* * *
처음 들어온 보고는 정체불명의 해적들에 의한 무차별적인 항구 약탈이었다. 두 개의 항구가 전소했으며 해적들이 인근 곡창을 향해 흩어졌다고 했다.
“곡창……?”
“예, 주군. 곡창이라 합니다.”
“해적들이 곡창을 턴다고?”
명백히 기이한 일이다. 세상의 어떤 해적들이 갓 수확한 밀알 따위를 노린단 말인가? 항구엔 황금과 재물이 충분히 쌓여 있을 텐데도, 항구를 함락한 이후 곧장 흩어져서 식량을 찾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보고는, 해안선을 따라 있는 모든 마을들이 동시다발적인 약탈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농가와 무역로, 소규모 정착지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병사들은, 대체 병사들은 뭘 하고 있기에 아직까지 도적 따위가 이 나라를 들쑤시고 다닌다는 말이냐!”
“저…… 그것이……. 병력이 도착하는 족족, 하루 간격을 두고 몸을 빼낸다고 합니다.”
아군의 군사 정보가 완전히 넘어가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약탈품이 얼마나 남아 있든, 이 신원 미상의 도적들은 아군 병력이 도착하기 직전에 몸을 빼 도망쳤다.
황충이 몰아닥치는 것처럼, 북해 해안 인근의 모든 농경지가 붕괴되고 있었다. 루미논 공국의 공왕은 머리를 감싸 쥐며 한탄했다. 겨울이 목전인 지금, 그들은 때아닌 노략질에 무너지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데인과 페이른의 신경전에 야심만만하게 한 자리를 차지할 작정이었다. 두 강대국의 전쟁은 잘만 하면 주위의 소왕국들을 집어삼킬 수도 있을 기회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도적들과 결탁했을 내부의 첩자를 의심하며 겨울을 대비해야 했다.
“지원을 요청해라. 어서……!”
“어디로…… 파발을 어디로 보내길 바라십니까?”
“어디든!! 그 누가 되었든! 페이른, 데인, 바라스, 마르됭! 사절을 모두 보내고, 병력이 안 되거든 구휼 식재라도 얻어 와라! 어떤 대가를 치르든!”
공왕은 버럭 소리치며 말했다. 시종장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물러서고, 곧 그의 성에서 수 명의 기수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공왕의 어전에 한 급사가 들이닥쳤다. 마르됭의 사절이었다. 앞서 보낸 지원 요청에 대한 답신이리라 생각했던 공왕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을 듣게 됐다.
“공왕 전하, 아국은 현재 정체 모를 불한당들에게 피습받고 있습니다. 동부의 오랜 전통을 따라, 전하의 정병들을 지원하여 주신다면 아국의 군왕께서 전하께 이 일에 대해…….”
사절의 말을 들으며 공왕은 미치광이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사절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한바탕 놀음판에 잘못 끼어들어간 팻감이었구나……!”
* * *
-콰앙!
“페르난데스!!”
선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아벨이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성큼 다가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알아챘군. 페르난데스는 쓰게 웃으며 뒤를 돌았다.
“프레이야. 3번조를 4-B 구역으로 퇴각시킨 이후 잠시 쉬시오.”
“여신은 죽을 것 같다…….”
지도 앞에서 정좌하고 앉아 명상하던 프레이야는 그제야 축 늘어지며 꿍얼거렸다. 그녀는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테이블 옆의 소파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페르난데스가 다시 몸을 돌리자, 분노에 찬 아벨이 빠르게 다가와 외쳤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데인을 도와 페이른을 공격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더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그런 것이오.”
“이게 무슨……! 이 땅을 무분별하게 약탈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이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겠느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굶주리겠느냐!”
아벨은 배신감에 파르르 떨며 외쳤다. 언젠간 다가올 일이었어도, 그녀의 분노를 마주하자 가슴 한켠이 아파 오는 것 같았다. 페르난데스는 테이블에 앉으며 찻잔에 따듯한 차를 따라냈다.
“한 잔 들겠소?”
“대답 먼저 하거라!”
“하지 않는다면?”
“……뭐?”
“약탈을 하지 않는다면 뭐가 달라지오? 데인을 도와? 지금 데인의 본대는 이미 페이른 국경을 넘어 진군하고 있고, 페이른의 병력은 잘게 분산되어 데인의 항구와 해안선에 흩어지고 있소. 우리가 그 뒤를 치려 한다면 그들보다 먼저 도달할 수 있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일까. 페르난데스는 단언할 수 있었다. 거리다. 작게는 창칼이 닿는 거리. 기마가 돌격할 수 있는 거리. 화살이 유의미한 충격을 주는 거리. 또는—
병력이 진군하는 거리. 진군한 병력을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거리. 그리고 단위의 의미에서 거리란 곧 시간이었다. 페이른에게 선수를 빼앗긴 지금, 제국의 북부항에서 출항해 동부의 끝자락까지 닿아야 했던 페르난데스에겐 그 거리가 부족했다.
뒤를 쫓아 보아야 볼 수 있는 것은 폐허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페르난데스는 앉은 자리에서 전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산개한 병력을 정밀하게 조율할 수 있는 곡예가 가능했다.
프레이야와 피엘. 이 둘의 힘이 있다면 페르난데스의 전장은 단순한 야전지휘관의 것을 뛰어넘은 시야를 갖을 수 있었다.
“우리가 데인을 지키려 한다면, 우리의 본대가 데인의 외곽에 도달했을 때 이미 알트베르트가 함락될 것이오. 우리가 페이른을 치려 한다면 우리의 본대가 페이른의 국경을 밟았을 때 원탁 기사들이 이미 페이른 전역을 점령할 것이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 약탈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냐? 이미 두 나라가 서로의 왕국을 잃고 무너진 다음이란 뜻이거늘!”
“이 전쟁은 두 왕국의 멸망으로 끝이 아니오. 페이른과 데인. 그 두 왕들은 각자 왕국의 멸망을 상정하고 움직이고 있으니.”
“……뭐?”
페이른의 국왕, 지기스문트는 본국을 포기하고 데인을 공격했다. 그의 심산 아래에는 알트베르트의 함락과 함께 주위 소왕국들을 대동하여 고립된 데인의 본대를 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데인의 국왕, 비센테는 본국의 방어 병력을 최소한으로 남긴 채 원정을 나섰다. 그 또한 이 전쟁이 겨울 전에 끝을 맺길 바랐고, 페이른의 완전한 항복 이후에 주위 소왕국들을 동원하여 국경을 재편할 계획을 갖추고 있었다.
서로의 의도가 무엇이든, 서로의 공격은 각자의 심장을 향해 이미 뻗어 나갔다. 두 왕국의 멸망은 페이른의 선수에서부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그렇다면 한발 늦게 시작한 페르난데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단 하나뿐이었다. 두 왕의 다음 계획을 막아 내는 것. 즉, 소왕국들의 개입과 동부 연합의 재편을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개입 전까지 세속 왕가의 군주들은 선을 밟고 있었소. 데인이냐, 페이른이냐. 두 왕국 중 하나가 반드시 멸망할 이 전쟁에서 어떤 이윤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젠 아니오. 우리의 약탈로 군주들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목적만 남았소.”
겨울을 버티는 것.
“이제 세속 왕가는 적어도 세 달간 전쟁을 지속할 능력을 잃었소.”
“그렇다면 오히려 큰일이 아니냐?! 데인이 멸망하고, 페이른 또한 멸망한다면. 거기에 소왕국들이 굶주리고 백성들이 기아에 죽어 간다면……. 동부 연합은 끝이다. 이미 지옥 마력이 퍼지고, 악마 추종자들이 암약하는 이 시기에 국가 행정이 무너진다면 뒤가 없다!”
“페이른과 데인이 붕괴하는 것, 소왕국들이 그 아귀다툼에 한 발씩 걸치는 것. 거기까지가 지기스문트의 계획이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그렇다면 그다음 수는 무엇이 되어야 할 것 같소?”
페르난데스는 당황한 아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국의 곡창은 제국 전역에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고도, 대외 무역에 걸칠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하오.”
“뭐……?”
제국의 힘은 단기전에 있지 않다. 제국의 진정한 힘은 완벽에 가까운 보급망과 끝 모를 자본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청야 전술은 국가의 기반을 완전히 박살 내는 최악의 전략에 속한다. 그러나 뷜랑은 철저한 청야 전술 이후에 다시 최소한의 행정망을 확보하는 데 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선제후령은 어지간한 왕국만큼 광활한 영토였다. 그 정도 규모의 영지가 폐허가 되었음에도 지금 뷜랑은 다시 재건되고 있었다.
그것이 제국의 힘이다. 종말의 순간에도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던 제국의 힘. 막대한 인구, 그 인구를 모두 먹여 살릴 수 있는 생산력,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행정망.
“아벨, 그대의 생각보다 더 적은 수가 굶주릴 것이고. 그보다 더 적은 수가 아사할 것이오. 내가 그대를 믿는 것의 절반만큼.”
페르난데스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녀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조차도 너무 많다면 절반의 절반. 그 반만이라도 날 믿어 주시겠소?”
아벨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우웩!!”
그 광경을 바라보던 프레이야가 소파 위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페르난데스는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