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61화 (362/388)

361. 수탐자와 수탈자 (6)

희미한 새벽, 후드를 깊게 눌러쓴 거구의 사내가 성큼성큼 길을 걷고 있었다. 주위를 훌쩍 둘러본 사내는 마을 어귀로 진입하는 초입에 잠시 멈춰 섰다.

마을 입구에서 한 사내가 쇠스랑을 어깨에 이고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후드를 눌러쓴 여행자를 보고는 입구를 가로막듯이 섰다.

“뉘쇼?”

“떠도는 몸에 정체가 무슨 소용이겠소?”

“우리 마을은 부랑자를 받지 않는데.”

“마을에 갈 일 없소.”

“이쪽 방향으로는 우리 마을 말고는 산밖에 없소. 갈 거면 다른 산을 들러 보시오.”

“성 루치오 수도원이 있지 않소?”

“……뉘시오?”

농부의 눈이 흉흉하게 변했다. 그는 천천히 쇠스랑을 내리며 품 안에 손을 넣었다. 농부의 손에 차가운 칼자루가 쥐어졌다. 그러나 여행자는 그의 경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상한 기색으로 한 걸음 앞서 걸었다.

“멈추시오.”

“너무나 해묵은 절차라 옳게 찾아온 것인지 궁금했는데 다행이로군.”

여행자가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짧게 바싹 자른 빛바랜 머리칼과 단단한 외모가 아침 햇살 아래에 드러났다. 목에 걸린 작은 로사리오까지. 베이타서스의 열쇠검 문양이 그려진 로사리오를 보자마자, 농부가 퍼뜩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형제님을 뵙습니다. 아셀란도 수사님의 토치맨, 파렌조라 합니다.”

“그간 고생이 많았겠군. 어서 일어나게. 수도원에 가고 싶군.”

“예, 형제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파렌조는 황급히 일어서며 여행자에게 길을 열었다. 둘은 잠시 말없이 길을 걷다가, 파렌조가 문득 입을 열었다.

“형제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 성함을…….”

“수사 제피스 시라다스트일세.”

“……!”

당대 디모니카들의 전설이라 불렸던 사내가 그의 곁에 있다는 사실에, 파렌조는 당혹감과 경외심을 느끼며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평범하기 짝이 없는 시골 농가였다. 이름 하나 없는 이 소규모 정착지는 여느 농가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제피스가 나타난 순간부터 길을 지나는 농민들, 빨랫감을 들고 움직이던 아낙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까지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렌조는 그런 기색에 어색하게 웃으며 제피스에게 조용히 말했다.

“불편하진 않으신지요?”

“다들 토치맨들인가 보군.”

“예, 수사 형제님을 잃은 토치맨들입니다. 지난 전투에서 많은 형제님들이 쓰러지셨으니.”

그 말에 제피스는 짧게 성호를 그었다. 이 위장 농촌의 거주민들은 모두 죽은 형제들을 모시던 토치맨들이었다. 그 수가 이토록 많은 것을 보며, 제피스는 대체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쓰러졌을지 가늠해 봤다.

수도원이 불타올랐고, 형제들을 잃었다. 이단심문청은 단지 기능을 정지한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소실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지금 남은 형제들이라 해 보아야 잘 쳐도 잔당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제피스가 짧게 탄식하고 있으니, 파렌조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수도원에 남은 형제님들께서 말씀 주시겠으나, 감히 제가 먼저 발언하자면……. 모든 형제님들이 본청 사건에 투입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형제님. 본청에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던 형제님들은 지금도 각지에 흩어져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나 제피스의 낯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본청이 소실되었으므로 당장의 임무는 상관없다 하더라도 추가적인 임무 하달과 작전 편제 따위의 기본적인 기능은 기대할 수 없었다.

각지에 흩어져서 간신히 전란을 피한 형제들이 있다 할지라도, 적지에 고립된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또, 이 임시 거점에 모여들 형제들은 얼마나 되겠는가.

알 수 없었다.

“수도원장님께선?”

“본청 소실 당시에 소천하셨습니다.”

“……막토.”

“막토 수페를라우도.”

파렌조와 제피스는 동시에 성호를 그으며 기도문을 외웠다. 그들은 곧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향하는 소로에 진입했다. 어둑하고 좁은 길을 따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낡은 봉쇄 수도원의 담쟁이 핀 외벽이 나타났다.

단단한 목조 대문의 문간에 서서, 파렌조는 작은 종을 두 번 울렸다. 곧 문의 격창이 스르륵 열리며 한 사내의 눈이 그 안에서 나타났다.

“파렌조? 어쩐 일인가?”

“예, 형제님. 외부에서 수사가 찾아와 안내했습니다.”

“……수사? 누가…… 세상에!!”

-드르륵, 탁!

격창이 거칠게 닫히고, 곧 입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입구 안에서 텁석부리에 긴 흉터가 남아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버럭 뛰어나왔다.

그는 제피스에게 빠르게 달려와 그를 꽉 끌어안았다. 제피스는 그의 등을 두어 번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형제여!”

“테오도리코 형제. 살아 있었군.”

“예, 형제님! 세상에, 살아 계셨군요!”

이 날카로운 인상의 헤레티카는 눈물을 글썽이며 떨어져 나갔다. 그는 제피스의 어깨를 꽉 쥐고 고개를 숙였다.

“형제님의 복귀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주께서 보우하사, 가장 필요할 때에 가장 필요한 이를 인도하셨습니다.”

“내 발걸음이 적잖게 늦어 본청의 소식을 뒤에야 들었네. 고생이 많았어. 미안하네.”

“아닙니다, 형제님. 아닙니다…….”

“지금 수도원엔 누가 남아 있는가? 지금 본청을 이끌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

“마르코 형제님과 파비아노 형제님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테오도리코의 안내를 따라 제피스는 낡은 수도원 내부로 들어섰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제피스는 수도원의 심처에서 파비아노와 마르코를 만날 수 있었다. 파비아노는 그 큰 몸 전신에 붕대를 둘둘 감고 있었고, 마르코는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차고 있었다.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선 제피스와 테오도리코를 바라보며 잠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제피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반갑네. 형제들.”

“형!!”

마르코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파비아노가 벌떡 일어서며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제여!!”

“오, 주여. 내 청각을 보우하소서.”

“세상에!! 형제여!! 살아 있었습니까!!”

“다행히. 나보다 더 큰 환란을 겪었을 터인데 내가 먼저 소천해서야 되겠는가? 부상을 입었나?”

“주께서 이 쓸모없는 몸이 아직 필요하시지 않으셨나 봅니다! 아직 멀쩡합니다!”

“멀쩡하긴, 파비아노 형제. 사흘 내내 앓기만 했던 사람이.”

마르코는 아직도 쩌렁쩌렁 울리는 머리를 휘휘 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테이블 위에 차를 한잔 따라 내며 말했다.

“쌓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형제님. 복귀를 환영합니다. 앉으시지요.”

“마르코 형제. 그 눈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대가로 본청 터에 두고 왔습니다.”

“마르코 형제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가 살아 돌아오진 못했을 겁니다. 제피스 형제님.”

마르코는 씁쓸하게 웃으며 안대를 슬쩍 젖혔다. 안대 아래의 피부가 검은 광석처럼 변해 있었다. 제피스는 침중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마력 타락이로군. 얼마나 남았지?”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오 년은 더 살 수 있겠지요.”

“환속할 생각은 없나?”

“하하, 주의 평강이 이 땅에 아직인데 제 한 몸을 안온히 하겠다 환속한다면 이는 배교입니다, 형제여. 물질 세계의 생과 사가 어찌 저의 소관이겠습니까.”

“고맙네.”

오 년 남은 삶이라. 기실 모든 이단심문관들은 시한부 인생이나 다를 바 없으니 마르코 또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제피스는 씁쓸하게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이단심문관들은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인세에 더없는 악의로 가득한 세상이며, 그들은 어쩌면 세상의 끝이 될지도 모를 지옥의 권세를 직접 몸으로 막아 세우는 방파제가 되어야 했다.

그러니 편히 침상 위에서 천수를 다하고 눈을 감는 이단심문관 따윈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이단심문관들은 시한부 인생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옥 마력에 의한 타락. 그것으로 인해 선고받은 수명은 결코 신념이나 사상 따위와 비교할 수 없다. 살아 숨 쉬는 매순간에 타락과 배교의 유혹에 저항해야 할 테니.

지금도, 마르코는 지옥의 환청과 환시를 보고 들으리라. 제피스는 저런 마법사들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 마법사들 대부분은 그의 손에 죽어야 했다. 저 상태가 된 모든 마법사들은 그 끝에 배교를 선택한 탓이다.

“하하, 형제여. 그렇게 바라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주께서 저를 부르신다면 그때 형제님의 손으로 저를 소천시켜 주십시오. ……꼭.”

“반드시 그리하겠네.”

“이제 수도원의 상황과 수도원장님의 유언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복귀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형제님.”

제피스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앞에 짧게 휘갈겨 쓰인 보고서가 밀려 들어왔다. 마르코는 보고서를 건네고는 의자에 기대앉았다.

“본청의 기능이 정지되어 간이로 만들어 낸 보고서입니다. 교황청에 전달해야 좋겠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교황 성하께 연락이 닿을 방법이 없더군요.”

페이른의 광범위한 추적 탓에 지금 이단심문청의 생존자들은 이 수도원에 숨어 있어야 했다. 이 장소는 본청의 기능 정지 및 붕괴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고대의 요새 수도원 중 하나였다.

이 수도원을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 없었을 텐데, 마르코가 때마침 본청 함락 당시 생존자들을 지휘하고 있었던 것이 천운에 가까웠다. 실제로, 본청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수많은 형제들이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고립되어 있을 것이다.

* * *

[주의, 해당 문건은 1급 기밀 인가 등급을 지님.]

[해당 문건의 비허가 열람은 기밀 취급 전차에 따라 처리될 수 있음.]

[긴급 보고 : 본청 소실.]

사건 개요 :

1. 페이른을 중심으로 동부 지역 전역에서 각지 봉쇄 수도원에 대한 약탈과 방화가 관측됨.

2. 봉쇄 수도원의 접근성상 관측된 보고는 수도원의 완전 유실 시점 이후였음.

3. 본청은 해당 사건을 대규모 이단 사건의 전초로 파악, 본청 내에 유동 가능한 모든 요원을 전국 각지로 파견.

4. 첫 보고 및 정보 수급보다 더 광활한 지역이 소실된 것을 확인.

5. 최고 심도의 상황 조사에 돌입. 기용 가능한 토치맨 전원을 파견.

6. 외부에 병력이 누수된 시점에서 본청을 향한 급습이 시작됨.

7. 본청이 소실되고 대유물전의 봉인 유물이 해방되어 대규모 악마 사태가 시작됨.

8. 외부의 인력을 급히 소집하여 3급 렐리기오사 디모니카 파비아노와 2급 렐리기오사 엔마기카 마르코의 본청 확보 작전이 시작됨.

9. 작전 수행 도중 드래곤스파인 산맥의 지옥 관문 개방 정황을 파악함.

* * *

여기까지 읽은 뒤, 제피스는 잠시 눈가를 꾹 눌렀다. 지옥 관문……?

“지옥 관문이 개방되었다고?”

“예, 형제님. 지금 페이른 동북부의 마력 오염은 지옥 관문 개방의 여파였습니다.”

“주여, 맙소사.”

* * *

본청이 불타던 날, 파비아노가 직접 이끈 결사대는 드래곤스파인 산맥 전역에 흩어진 악마들을 토벌하며 진군했다. 베이타서스의 성전 군기가 스스로 나부끼며 지옥의 타락과 오염, 그리고 악마의 존재를 지워 준 덕이었다.

비교적 타락에 취약한 헤레티카와 엔마기카들조차 악마들의 마수에서 온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 단순히 악마의 유물들이 폭발한 것뿐만 아니라—

“쿨럭! 제기랄. 형제님! 관문이 열린 것 같습니다!”

“관문이 열려? 본청에 봉인된 유물 중에 그런 것이 있던가?”

“아뇨! 하지만 이 마력…… 이 정도의 지옥 마력이 한 장소에 농밀하게 뭉쳐 있다면, 소환된 악마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간이 관문 정도는 개문할 수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엔마기카 형제 하나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파비아노를 바라보았다. 물론 당연하게도 퇴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퇴각이 아니라 전술 목표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관문이 개방되었다면 그 어떤 수단을 다하더라도 반드시 봉인하거나 파괴해야 했다. 물질 세계에 열린 지옥 관문은 최악의 경우 물질계 전체를 박살 낼 수도 있었으니까.

지옥 관문은 단순히 지옥으로 향하는 문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옥과 천상은 관념의 영역이었으므로, 관문이 열린 순간부터 그 인근의 물질계는 관념화되어 부서지기 시작한다.

지옥 마력의 오염은 어떤 역병이나 공해처럼 지반을 더럽힌다는 뜻이 아니다. 지옥의 힘을 품은 마력이 점차 세계를 살라 먹으며 그 인근을 관념화시키기 시작한다는 의미였다. 지옥의 것에 가깝도록, 지옥의 것이 되도록.

그것이 번지고 번져 끝내 충분한 힘이 모인다면 붕괴가 시작된다. 기나긴 교회의 역사상 그런 적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결과 한 지역이 황무지가 되었다.

뭄토의 승천, 그 당시 대제국을 건설했던 아시트 문명은 지표면이 모두 지반 아래로 쓸려 내려가며 대황야가 되었다. 당대의 국가와 영웅들이 총력을 다해 놈을 봉인하고 관문을 박살 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대황야는 그 이후로 기나긴 세월 황무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의미다. 관문이 개방된다는 것은. 파비아노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침묵에 잠겼다.

‘본청을 포기하고 관문을 파괴한다…….’

그것이 이성적인 결정이다. 본청은 어차피 소실되었다고 보아야 했으니. 이단심문청의 폐허를 확인하고 그 위에 쌓인 형제들의 시체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관문을 파괴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경우, 살아 있을지도 모를 형제들을 포기해야 한다.’

어찌해야 하는가. 파비아노는 입술을 씹으며 신음했다.

임무냐, 형제냐.

임무냐, 본청이냐.

의무인가, 고향인가.

“병력을 나눈다.”

“형제님!! 그래선 안 됩니다!!”

“병력을! 나눈다!! 소수의, 살아 돌아갈 생각을 포기한 자들만 나를 따르라! 세르지오!!”

“예, 형제님!”

“형제는 이 군기를 들고 관문으로 향하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관문을 파괴하고 전선을 이탈하라!”

파비아노는 선두에서 악마를 으스러트리던 디모니카에게 군기를 던졌다. 세르지오 형제가 당혹감 속에서도 군기를 낚아채 잠시 경외감 넘치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성유물의 권역을 벗어난다면…….”

“나는 형제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본청의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우리의 다음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진정한 적은 누구인지!”

파비아노는 목에서 로사리오를 뜯어내 주먹 위에 둘둘 감았다. 그는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형제들에게 외쳤다.

“그러니, 반드시 죽을 자리를 향해 함께 거닐 형제들만 나를 따르라! 순교는 형제들의 의무가 아니며, 진창 속의 생존은 더 큰 선을 위한 잠시의 굴욕일 뿐이니. 다른 형제들은 반드시 살아남아 이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형제여, 내가 따르지.”

“마르코 형제님. 다른 형제들에겐 형제님의 지혜가 필요할 겁니다.”

“나는 충분히 오래 살았네. 새 세상은 새 청년들이 이끌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형제는 전령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지 않나?”

모두가 죽을 자리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생존한 다른 형제들에게 본청의 사태를 전달해야 했다. 그러나 파비아노는 전령 마법을 사용할 줄 몰랐다.

그가 침묵하자 마르코가 껄껄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게. 형제, 그대의 죽을 자리는 이곳이 아닐 것이니. 아직 이 세계엔 우리가 필요할 테니까, 주께서는 우리의 앞길을 보우하실 것이네.”

“형제님.”

“설령 죽는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마르코는 눈을 찡긋거리며 유쾌하게 웃었다.

“형제는 혼자 죽지 않을 것이라네.”

“……가로되, 우리의 삶은 등대라.”

“또한 우리의 죽음은 세상의 반석 되리라.”

“막토.”

“막토 수페를라우도, 형제여. 앞장서게.”

파비아노는 굳게 고개를 끄덕이고 소수의 인원만을 대동한 채 등을 돌렸다.

세르지오는 잠시 그들의 등을 바라보다가 성호를 한 차례 긋고는 뒤를 돌아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이단심문관들은 파비아노를 향해 성호를 그으며 세르지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단을, 악마를, 그리고 마녀를 불태우리라!!”

분노와 결의에 찬 이단심문관들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악마를 뚫고 숲길을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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