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72화 (373/388)

372. 킹스게이트 전투 (3)

-투우우웅!!

아벨은 거칠게 날아드는 불기둥을 날개 피막으로 막아내며 숨을 헐떡였다. 벌써 일곱 번째 주문이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리꽂힌 벼락이나 갑작스레 솟아오른 얼음 창 따위를 흐트러트리며 버티고 있었다.

버티는 것 외엔 도리가 없었다. 적의 마법 포화가 시작된 이상, 그녀에겐 마지막 선택의 여지조차 사라진 셈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성벽 위의 모든 이들은 전멸할 것이었다.

“마구스들은……!”

“모두들 전사했습니다. 전하…….”

기사가 무겁게 말을 끌었다. 후방에서 마법전을 벌이던 마구스들은 삼십여 분 전에 머리가 터지거나 입과 코에서 피를 쏟아 내며 죽었다. 마법전의 패배로 인한 백래시를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그들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 따윈 없었다. 에릭은 이 순간 결정해야 했다. 장렬한 산화와 발악 중에서. 선택의 순간은 짧았다. 저 혼자였다면 모르되, 이들 모두를 영웅 서사시의 제물로 소모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퇴각…… 퇴각한다.”

“하, 하오나…… 대체 어디로 가면 좋겠습니까……?”

“킹스게이트를 버린다. 백성들을 알트베르트 내부로 인도하라. 알트베르트로 물러난다!”

“전하, 적들의 발을 묶을 시간조차 부족합니다!”

[그 시간은 내가 벌겠다. 모두 떠나라.]

아벨은 그녀의 발밑에서 외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적들의 파상적인 공세는 이제 대대적인 병력 투사로 변해 있었다. 마법전에서 승리한 이상, 남은 것은 물리적인 정복뿐이었으므로.

당연한 소리지만, 후퇴는 전진보다 더 큰 병력 손실을 야기한다. 퇴각이라 해도 마냥 적들에게 등을 보이며 달려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추격하는 적들을 떨쳐 내며 군율을 무너트리지 않고 천천히 물러서는 것을 뜻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사기가 떨어진 부상병들을 이끌었다면 더욱이. 자칫 대열이 망가지며 마구잡이로 달려 나가기라도 하는 순간, 병사들은 더 이상 ‘병력’이 아닌 ‘패잔병’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때부터는 전투가 아니라 사냥이 된다.

문제가 있다면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은 단 한 번도 군사 훈련을 받아 본 적 없는 민병들이란 점이었다. 이들을 이끌고 어찌 퇴각을 하란 말인가.

그러니, 이제 아벨이 해야 하는 것은 마구잡이로 도주하는 패잔병들이 등 뒤를 걱정하지 않을 시간을 버는 것뿐이었다.

[페르난데스. 너무 늦는다면 인사조차 어려울 수 있겠구나.]

아벨은 쓴웃음을 지으며 달려드는 페이른의 병사들을 발톱으로 긁어 떨쳐 냈다. 이미 수많은 병사들이 성가퀴 위로 올라서려 시도했고, 이를 번번히 떨어트렸지만 저들은 도대체 포기란 것을 모르는 듯싶었다.

“용이 지쳤다!! 돌격, 돌격하라!”

[고작 이 정도로? 나는 지난 천 년간 지쳐 본 적이 없다!]

아벨의 입가에서 불길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이 경악하며 뒤로 주춤 물러서자, 적의 장수가 거칠게 외쳤다.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지 마! 마법사들이 너희를 지원하고 있다!!”

아벨은 쉽사리 불길을 토해 내지 못한 채 성을 냈다. 분노에 찬 용이 성벽 위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성벽과 같은 다리와 기둥 같은 꼬리가 사방에 휘몰아치며 병사들을 쳐내고 떨어트렸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 마침내 그녀의 몸에 닿은 병사들이 결국 창칼로 그녀를 긁어 놓는 데에 성공했다. 비늘 한 장 가르기 힘든 일격이었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처가 된다.

비늘과 비늘 틈에 화살과 창칼이 박힌다. 아벨은 저릿한 고통에 오히려 분개하며 날뛰었다. 그러는 와중, 그녀는 씁쓸하게 되뇌었다.

‘페르난데스, 나는 네 말을 끝내 따르지 못하겠구나.’

애초에 이 전술에서 그녀 또한 킹스게이트의 함락을 인지하고 있었다. 페르난데스의 전술은 알트베르트 공성전에서부터 본격적인 시동을 건다 해도 좋았으니.

그는 아벨에게 단 한 가지 부탁을 했을 뿐이다. 킹스게이트에 첫 번째 마법 포격이 떨어질 때까지만 버틴 뒤에 물러나라고. 그러나 아벨은 벌써 수십 가지의 각기 다른 마법을 몸으로 막아 내며 버텨 내고 있었다.

마지막 민병이 부상 입은 제 전우를 어깨에 들쳐 업고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성벽 뒤에 펼쳐진 초원에는 알트베르트로 향하는 긴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저 피난민의 마지막, 그 최후미의 한 사람까지 알트베르트 외성 성벽 안으로 들어서고 마침내 성문이 굳게 봉인될 때까지. 그때까진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구나.’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얼음 창을 바라보았다. 이미 근육에 힘이 빠질 정도로 오랜 시간 싸운 탓에, 그녀에겐 더 이상 피하거나 막아 낼 기운이 없었다.

반나절을 훌쩍 넘긴 시간이다. 장장 여덟 시간가량, 거의 그녀 홀로 성벽 위를 지켜 내며 물경 수천여 명의 병력을 물리친 끝이다. 이 자리에 있는 용이 그녀가 아니라 천상룡 칼라드펠린이라 할지라도 대단한 위업이라 평했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슬프게 눈매를 떨며 고개를 늘어트렸다. 얼음 창이 날아드는 모습이 느릿하게 보였다. 거의 지척까지, 그녀가 숨을 쉬면 닿을 정도로 지근거리까지.

-콰드드드득!

[음……?!]

그리고 마치 방아에 갈려 나가는 것처럼, 얼음 창이 돌연 허공에서 박살 나며 사방에 비산했다. 그녀의 발치에서 칼을 휘두르던 병사들은 송곳 같은 얼음 조각에 뒤덮여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녀의 몸속에 새로운 기운이 밀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건…….

[페르난데스, 보고 있었구나!]

마력으로 이어진 검은 사슬이 그녀에게부터 저 산자락 어딘가로 늘어진 것이 느껴졌다. 인퍼머르, 그녀가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그와 맺었던 복종의 맹약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어쩌면 육신의 물리적인 거리까지 관통하고 저 어딘가에 있을 그에게 닿아 있었다.

지금까지 이 계약은 그녀가 그에게 마력을 공급하는 용도로만 사용되곤 했다. 대마법을 사용할 때, 청동옥좌의 마력 회로로 턱없이 부족하던 공급량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샘물처럼 차오르는 마력이 그녀의 혈류를 타고 흐르며 그녀의 낡은 심장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식어 가던 몸에 활력이 돌았다. 지옥 마력과는 그 결이 다른, 자연체에 한없이 가까운 마력이 그녀의 핏줄 안을 튀어 다녔다.

우드득, 성가퀴를 잡은 발톱에 힘이 들어갔다.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성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붙잡은 성가퀴가 으스러지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도망쳐어어!”

“물러서지 마라! 놈의 마지막 발악이다!!”

상반된 두 외침이 적진 사이에 휘몰아쳤다. 허공을 수놓는 마법들이 배가 되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때로는 벼락이, 때로는 화염이, 때때로 얼음이. 상상할 수 있을 모든 공격 주문들이 그녀를 속박하기 위해 뛰었다.

그러나 닿지 않는다.

-쾅! 콰드드득! 으직!

튕겨 나가고, 바스러지고, 흩어진다. 하나의 마법이 완성되는 순간, 섬전처럼 그녀의 몸에서 튀어 나간 마력 한 줄기가 정확히 완성된 마법의 핵심 구절을 으깨어 버렸다.

정신 나간 기술이다. 바늘귀를 향해 바늘을 쏘아 관통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기예다. 천문학적인 가능성을 뚫어야 비로소 납득 가능할 수준의 기교였다. 그리고 그것이.

-으지직!

지금 이 전장 위를 수놓는 수십 가지 마법에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아벨은 폭죽처럼 터지고 별똥별처럼 흩어지는 마력의 잔향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이 웃었다.

[정말 불합리한 녀석이었구나. 그대는.]

마력의 공급과 이런 대규모 마법 방해가 그에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가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페르난데스는 지금 이 순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를 최대한 감추고 있었다.

즉, 지금의 행사는 그의 작전 계획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위협 요인이었다. 아벨은 페르난데스의 편집증적인 성격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의 독단이 그를 노출시킨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도와 다오.]

‘기꺼이.’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가 나의 뒤에 있다. 그와 내가 지금 이 순간, 한 몸처럼 함께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언젠가 그를 등 위에 태우고 엘프 왕의 기함으로 비행하던 당시에, 그가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 감정이 전능감이라는 것인가. 마법사들의 시야란 말이지. 즐겁구나.

아벨은 행복하게 웃으며 크게 발을 굴렀다. 상처 입고 피가 흐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힘이 빠져 버린 그녀의 다리가 킹스게이트의 갤러리 위를 내려찍었다.

-투우우웅!

성문에 매달려 타격하던 공성추와 그 인근의 병사들이 혼비백산해 물러서는 모습이 보였다. 아벨의 입가에서 화염이 뚝뚝 떨어졌다.

“막아!! 마법사들은 대체 무엇들 하고 있는 게야! 저것을 막아라!!”

“하, 하지만……. 하지만 마법이……. 마법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놈들의 마법 전력은 전멸했다 하지 않았더냐!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게야!!”

“데인의 마구스들이 모두 전사한 것을 확인,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마법사가…… 저쪽에 지금껏 없던 마법사가…… 있습니다!”

아벨의 입가에 어린 화염을 보며 지기스문트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전투 마법사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수인을 짚으며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마력이 모일 때마다 정확히 중심절이 무너져 내린다. 귀신같은 기술이다. 일반적인 마력 간섭과는 그 궤가 다른 수준의,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마법 조예였다.

이걸 카운터 스펠이라 불러도 좋은가. 궁중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맡은 마법사조차도 고개를 저었다.

이 정체 모를 마법사가 오직 디스펠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적이라고, 그들의 주군에게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이 정도 실력을 지닌 마법사가 마법전 당시부터 참전했다면 머리가 터지거나 피를 쏟으며 죽는 것은 자신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야 하나?

용의 머리가 천천히 들렸다. 먼 거리를 넘어서, 강렬한 시선이 정확히 자신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기스문트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섬칫한 감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과 악마가 사라진 이 대지 위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존재가 그를 향해 살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포식자와 마주친 감각, 그것도. 자연법칙이 만들어 낸 가장 절대적인 포식자와 마주친 감각이었다.

용의 공포, 그 신화적인 두려움이 지기스문트의 목을 옥죄어 왔다.

-우드득!

지기스문트의 입에서 선혈이 한 줄기 흘렀다. 억지로 혀를 씹어 피를 삼키며 고통으로 공포를 덮었다. 등골이 저릿해지는 감각에 지기스문트는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는 피 묻은 입술을 밀어 올려 웃었다.

“와라, 고릿적 망령아. 네 용기를 증명해라. 마음껏 활개치고 불을 뿜어라. 그리고 네가 마침내 네 한계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그분을 향한 가장 값진 제물이 되리라.”

그의 입술을 읽은 것인지 용의 눈에 격노가 서렸다. 용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액화된 화염이 용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용의 숨결이 닿기엔 너무나 먼 거리였고, 그들의 사이엔 여전히 이만여 명의 병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좁고 긴 협로인 탓에 물리적인 거리가 그 배는 더 멀게 느껴졌다.

과연 놈이 이 도발에 넘어올까? 지기스문트는 오히려 기대하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알트베르트를 함락시키고 저기 모든 인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보다 용 한 마리의 목숨이 더 값어치 있는 제물이 되리라.

그러나 용은 곧 고개를 내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 정녕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래. 내 언제나 그랬듯, 너를 따르겠다.]

용은 낮게 속삭이고는 고개를 내린 채 그대로 화염을 토해 냈다. 순식간에 킹스게이트 인근의 모든 지역이 화염에 덮여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하, 또 시간을 벌겠다?”

입구를 무너트린다 한들 여기에 있는 장정이 이만여 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후방에서 뒤늦게 합류한 병력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불길이 걷히고 입구를 정리하는 것은 한나절이면 족했으며, 알트베르트 외성을 지키기엔 적들의 병력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죽음을 유예시키는 겁쟁이들. 가장 용맹하고 찬란하게 부서질 때를 놓친 패배자들. 지기스문트는 흥얼거리며 자리에 앉아 와인을 기울였다.

* * *

킹스게이트는 엄밀히 말해서 알트베르트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이 아니다. 대규모 인원이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하게 닦인 길이라 한다면 옳았으나.

한두 사람의 소규모 집단이 통과할 수 있는 산로와 협로는 얼마든지 있다. 사냥꾼들이 다니는 길이나 산지기들을 위한 통로가 그렇다. 전쟁에 사용하기엔 터무니없이 험하고 거칠었으나, 개인이 이용하기엔 충분한 길이다.

그리고 데인의 왕가는 당연하게도, 그러한 길목에 능통하기 마련이었다. 어떤 귀족도 제 영지의 개인적인 도주로 하나쯤은 준비하기 마련이니.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알트베르트의 성하 평원에 도달한 한 무리가 곧장 킹스게이트의 뒤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하, 저희는…….”

“그래, 가서 에릭을 도와라. 경들은 짐에게 이미 과할 정도로 충실했노라.”

“왕가에 영광을.”

“영원한 영광을.”

두 사람이 알트베르트로 말머리를 돌리자, 이 자리에 남은 것은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말을 몰아 용의 발치로 다가갔다.

용은 이미 멀찍이서 다가오는 그를 눈치채고 있었다. 사내는 말안장에서 뛰어내려 용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일국의 왕이자 기사들의 모범이 어찌 삿되게 무릎을 꿇는가?]

용이 장난스레 말을 걸자, 사내는 고개를 들어 용의 눈을 바라보고는 호쾌하게 웃었다.

“이게 제 마지막 예의가 될 터인데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대모님. 일찍이 데인 대왕의 최후를 지켜보셨던 당신께서 보시기에, 제가 부족함 없는 기사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그 아이의 죽음을 내 직접 보지는 못했다만…….]

용은 잔잔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여 기사와 눈을 마주쳤다.

[너는 단 한 순간도 네 조상들에게 부족한 적 없는 기사였다.]

기사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에 찬 투구를 들어올려 눌러썼다. 그는 칼을 뽑아 들고 검신에 입술을 맞추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자리는 제가 지킬 테니, 제 아들과 백성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킹스게이트 전투 이튿날, 페이른의 군대가 무너진 성벽의 잔해를 걷어 내고 마침내 다시 진군을 개시했을 때.

그들은 한 기사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망국의 왕은 왕성을 배경 삼아 칼을 뻗어 올렸다. 이른 아침, 햇살이 검신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 * *

처음부터 끝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던 페르난데스는 조용히 눈을 감고 속삭였다.

“왕이여, 왕이여. 편히 잠드소서.”

삼 년 전. 데인에게 직접 서훈을 받던 시절로 돌아간 심정으로.

* * *

“음…… 이를 어쩐다.”

그리고 그때. 프레이야는 가부좌를 튼 채 난감하게 웃고 있었다. 급한 손님이 찾아온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페르난데스의 목 언저리에 꽃을 마구잡이로 피워 올리고는 있었지만, 별 대답이 없었다.

“어…… 음…… 여신은 할 만큼 했다!”

프레이야는 툴툴거리고는 시종이 가져다준 과자를 들어 오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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