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73화 (374/388)

373. 킹스게이트 전투 (4)

페르난데스는 그 나름대로 최악의 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는 짧은 순간 자연 마력을 억지로 끌어모아 아벨에게 불어넣고, 아벨의 몸속 마력을 원거리에서 조작해 카운터 스펠을 쳐야 했다.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마력 회로로는 엄두도 내기 힘든 고급 술식이었다. 애초에 전생의 테크닉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그런 기술을 연달아 펼치고서도 페이른의 마법사들과 마법전을 벌여야 했으니 마력 회로가 견디지 못해 과열되었다.

고작 과열된 정도로 끝났다면 좋았을 것을. 몸속을 날뛰는 마력의 잔향이 그의 내장을 진탕시키고 있었다. 창생의 관으로 새로 짜 내려간 육신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씁, 피를 흘리는 것은 또 오랜만이군.”

“괜, 괜찮으세요?”

“괜찮다마다. 별것 아니다. 가끔은 현장에서 뛰고 그래야 마법이 늘지.”

“더 느실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요.”

“키르하스. 언제나 사람은 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법이다.”

“은공, 그러실 때마다 진짜 나이 들어 보이는 것 아세요?”

“여든 노인에게 못 하는 말이 없구나. 고얀 녀석.”

페르난데스는 큭큭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애써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것은 성공했으나, 육체가 거덜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마법은커녕 전투도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백래시였다.

‘이거 그리운 감각이군.’

달가운 감각은 아니지만. 마력 부족으로 인해 띵하게 울리는 머리, 코끝에서 피가 흘러 알싸해지는 감각. 이런 탈력감은 확실히 오랜만에 겪는 감각이었다.

유물을 통해 마법을 벌이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 그는 자신의 마력 회로와 체내 마력을 통해 마법을 자아내고 있었다. 보다 섬세하고 강력한 주문이 가능해졌으나, 백래시를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육체에 마력 잔향에 의한 부담이 쌓이는 이 감각. 얼마 만이더라, 그는 잠시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전생 시절에도 환갑 이후부턴 겪은 적 없는 감각이었으니 벌써 족히 스무 해는 훌쩍 넘긴 셈이다.

“아, 시작했군.”

페르난데스는 흐릿한 눈을 꾹 누르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잠시 멎었던 페이른의 진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단 한 사람의 기사가 서 있었다. 새파랗게 타오르는 이른 아침의 태양을 등지고.

* * *

기사란 무엇인가. 비센테는 긍지 높은 데인 왕가의 말예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왕혈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기사가 되어야 한다 배웠다.

열둘이 되기 전에 양손에 징과 같은 굳은살이 박였고, 열다섯이 될 때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으며, 스물에 편력을 시작해 스물셋에 서훈을 받았다.

그렇다면 자신은 기사인가? 비센테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기사란 그저 칼을 잘 쓰는 무인에 불과한가?

-콰앙!

내디딘 한 발, 내뻗은 한 칼에 잘 무장한 병사 하나가 뒤로 튕겨져 날아간다. 비센테는 홀린 듯 대검을 휘둘러 쳤다.

“놈은 혼자다! 가라! 가!”

“궁수! 무엇들 하는가! 화살을 쏴라!”

-투두두두둥!

제아무리 강궁이라 한들 완벽하게 갖춰 입은 플레이트메일을 관통할 수는 없다. 비센테는 바이저의 틈을 노리는 화살만을 걷어 내며 다가오는 병사들을 밀치고, 베고, 내려찍었다.

피와 살점이 난무한다. 그의 검이 닿는 모든 거리 안에서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자들이 없었다.

그는 달려드는 병사들을 밀쳐내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기사란 무엇인가.

왕혈, 왕가의 후예, 그리고 원탁 기사의 일원. 기사란 그러한 의무를 짊어진 자들이라 했다. 백성들을 지키고, 약자를 수호하고, 불의를 참지 않는 이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대부분의 ‘기사’들은 제 영지와 한 마지기 밭, 그리고 소작농의 세수에 목숨을 걸며 전장으로 나선다. 더 큰 명예, 더 큰 명성, 그리고 더 큰 보상을 위해서.

그렇다면 기사란 계급인가? 귀족과 평민을 가름하는 그 형체 없는 잣대의 이름이던가.

“아니.”

아니다. 어떤 기사는 나는 순간부터 기사로 태어나고, 또 어떤 기사들은 병졸에서 기사로 거듭난다. 더 강한 무골을 타고난 자는 손쉽게, 그렇지 않은 이들은 힘겹게. 그는 살아가며 다종다양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한 기사들을 만나 왔다.

빈자들 사이에서 기사가 나오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루하루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이들이 평생 검기를 단련한 무인들과 같은 선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분명 천부적인 재능과 운, 그리고 노력이 있어야 하리라.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에 그의 머나먼 조상, 데인은 전쟁 난민 고아였고, 기사들의 으뜸인 원탁 의회에조차 평민과 천출이 없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기사는 다만 계급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사란 무엇인가. 칼을 든 무부? 살인을 업으로 삼은 학살자? 강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강철과 같은 차디찬 피를 가지게 된 냉혈한들인가?

“아니다!”

-콰앙!

데인은 병사들의 목을 쳐 날리며, 그들의 뜨거운 핏줄기가 가을 새벽의 차가운 공기에 식어 몸 위로 쏟아지는 것을 맞았다. 그는 양 떼 한가운데에 들어선 사자처럼 싸우고 있었다.

그의 칼날이 번뜩이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것들이 박살 났다. 방패도, 들어올린 창칼도, 갑옷도 어김없이.

정점에 도달한 검사의 몸엔 마력이 담긴다. 데인의 망토 자락이 바람의 결과 상관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마력이, 그 눈에 보이지도 않는 희미한 기운이 휘몰아친다.

저 범위 안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 페이른의 병사들은 눈앞의 존재를 같은 인간이라 믿기 어려웠다.

-콰드드드득!!

비센테의 칼날이 협로의 길 한복판을 모로 그었다. 얇은 칼날이 스쳤음에도 갈퀴가 헤집어 놓은 밭처럼 깊은 고랑이 생겼다. 비센테는 숨을 헐떡이며, 쇠가 으스러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희 모두를 막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투구의 바이저 아래, 작은 틈 사이의 어둠 속에서 새파란 살의가 빛났다.

“정확히 서른 명. 이 선을 가장 먼저 밟는 서른 명은 반드시 죽이겠다.”

병사들은 그 지독한 살기에 걸음을 멈췄다. 사위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비센테는 헐떡이며 칼을 바닥에 박고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몇이나 죽였을까. 스물은 넘었고 쉰은 아직 되지 못했다. 칼날이 슬슬 무겁고 갑옷이 거치적거린다. 몸에 쏟아진 피가 굳어 바스러지는 기분이 끔찍했다. 땀이 갑주 아래를 온통 적셔 머리가 달뜬다.

그 순간에도, 비센테는 생각하고 있었다. 기사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칼 든 사내를 기사로 만드는가.

그는 허리를 펴고 자세를 정돈했다. 단단한 지면과 드높은 하늘 사이에서 칼 한 자루를 쥔 채로 꼿꼿이 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칼을 쥔 사내가 있고.’

겁에 질린 적군과 자신이 그어 놓은 고랑,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백성들이 있다.

‘적군과 백성 사이에 내가 있군.’

대저 기사란 무엇인가.

생과 사가 얽히는 이 치열한 전장 위에서, 제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져 적들의 한 시간, 반나절, 또는 한나절. 그 짧은 시간이나마 벌기 위해 투쟁하는 지금 이 순간.

비센테는 자신의 서른 남짓한 삶을 관통하는 그 질문에 마침내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사란, 경계를 나누는 자다.

적과 아군. 비겁자와 피해자, 불의와 정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그 지표가 되는 자들.

기사란 그 아슬한 선. 도덕과 율법이라 불리는 그 희미한 선 위에서 타인에게 외치는 자들이다.

내가 맞선 이 간극이 곧 대의다.

공기가 떨린다. 화살과 마법이 그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적장들의 독려와 외침, 고함과 아우성이 귓가에 울렸다. 죽음이 다가온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나 기사란 선 위에 홀로 오롯이 서서, 만민을 향해 본을 보이는 자들이므로.

언제나 기사가 되고자 했던 소년, 그 소년이 나고 자라 된 이 왕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칼날을 곧게 들어 적들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학살하고, 무고한 자들의 핏물로 제 악업을 쌓아 올린 저 잔학무도한 자들을 향해서, 대의를 위해서.

“오라, 나는 알트베르트의 비센테. 기사다.”

신분과 연령, 계급과 국가. 그 모든 것들을 넘어서. 한 사람의 기사로서, 비센테는 칼을 들어 적들을 향해 달렸다.

* * *

지기스문트는 이 망국의 왕이 죽음을 맞이하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볼 예정이었다. 마법이 포화되어 쏟아지는 저 자리에, 설령 용이라 할지라도 무사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가 준비되어 있었다.

“제법 호방하지 않은가?”

“걸물은 걸물이로군요.”

장수들은 비센테의 분전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상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며, 심지어 적이라 할지라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백성들을 위해 희생하는 귀족은 분명 숭고하지만, 저자의 분투는 고작 그런 숭고함으로 규정할 수 없었다.

저자는 자신의 투쟁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희망이 있노라고. 적들은 단 한 사람의 사내조차도 쉽사리 넘기지 못하는 비겁자들이며, 데인은 결코 이들에게 굽히지 않으리라고.

희망의 표상이 되어 산화하겠다. 망국의 왕은 자신의 백성과 아들에게 투쟁을 외치고 있었다. 그 본이 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며. 그것은 가장 높은 지도자들만이 보일 수 있는 솔선수범이라 할 법했다.

희생이 아니라, 희망이 된다. 같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 무게의 격이 다르다.

장수들은 비센테에게 달려드는 죽음을 바라보며 조용히 묵념했다.

그러나 그 순간—

-콰아아아앙!!

마법이 사라졌다. 후방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함께. 지휘부의 모든 이들은 퍼뜩 놀라 뒤를 돌았다. 그들이 위치한 이곳에서 크게 멀지 않은 위치였다.

“무슨 소란이냐!”

“전하!! 후방에 적군의 기습입니다!”

“적군……? 대체 무슨 적군이 있단 말이냐? 데인의 본대는 해산했다 하지 않았더냐? 혹 그들이 뒤늦게 합류한 것인가?”

“아닙니다!! 전하, 데인의 군기가 아니옵니다!!”

터 오르는 동녘을 마주하며 협로의 입구로 다가오는 군기가 보였다. 붉은 역십자 열쇠검의 문양. 햇살 아래 새하얗게 타오르는 금속광이 능선 너머를 물들이며—

“베이타서스…… 교황청……!”

군기를 확인한 지기스문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늘 위에서 새파란 빛무리가 내리꽂히며, 다시금 폭음이 울려 퍼졌다.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전투 마법사 분대의 머리 위로 빛의 폭격이 쏟아졌다.

* * *

페르난데스 또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선, 비센테의 격전이 한창 진행될 그때에, 갑작스레 하늘 위로 얽히는 마력 매듭을 인지한 것이다.

그는 다가오는 군대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들은 이 자리에 있어선 안 되었다.

“하하…… 이런. 교황……!”

성 요한 순례기사단. 베이타서스 교회의 두 무력 집단 중 하나. 만신전 소속 구호기사단의 주축이자, 만신전 교회의 가장 강력한 무력 집단. 전투 수행 사제 천오백, 신전 기사 천, 그리고 수행 기사 이천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원정군이 전역의 후방에 갑작스레 돌출했다.

저들은 이 자리에 있어선 안 됐다. 적어도 페이른의 지기스문트가 확고한 악마 숭배 행각을 벌인 이후에, 명백한 이단 행위가 증명된 뒤에 참전해야 했다.

지금 정국은 단순히 국가와 국가의 분쟁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페이른은 교회를 전면으로 규탄하고 나섰지만, 그것이 교회의 무력 개입을 용인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교회는 세속 왕가의 분쟁에 개입해선 안 된다. 그건 오히려 교회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모든 세속 왕가들은 이 날 이후로 교회가 언제든 그들에게 월권적인 내정간섭을 할 수 있다는 압박감을 떨치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이 순간, 페르난데스는 그 모든 조건들을 뛰어넘는 어떤 운명을 느꼈다.

“내가 어리석었다. 키르하스.”

“예……? 예?”

“하하, 내가 어리석었어.”

정치적인 이유 탓에 안 된다. 전략적인 이유로 인해 어렵다. 현실적인 문제가 어떻다. 이런 잡다한 변명들을 늘어놓으며 그는 자신의 정체를 그림자 속에 감추고 흉계를 꾸미는 일을 반복했다.

적어도 이 전쟁의 모든 국면에서, 그는 단 한 차례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맞는 자리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탓도 있었다.

그러나, 어리석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 굳이 자신의 시야와 선택지를 모두 한정시키고, 흑마법사의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있었는가?

영웅을 죽이고, 군주를 이용하고, 병사들을 꼭두각시 삼아 이윤을 취한다? 그렇게 얻을 수 있는 이윤이 그리 대단한 것이었던가? 페르난데스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키르하스는 그런 페르난데스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가 돌아온 이후 처음 보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한참 동안 웃다가 키르하스의 머리칼을 거칠게 헤집었다.

“너를 보기 부끄럽구나. 자기 자신에게 매몰된 것은 오히려 나였을지도 모르겠어.”

“은공……?”

“하하, 페이자쉬. 내가 한 방 먹었어.”

페이자쉬와 영혼을 합친 이후, 그는 더 이상 과거의 페르난데스와 동일한 인물이라 하기 어려웠다. 과거의 기억뿐만 아니라 성향과 성미까지 모두 이어받은 지금. 그는 점점 더 페이자쉬에 가까운 인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과거의 자신과 연속성을 갖게 되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방법 따윈 없다. 모든 선택이 당연해 보일 뿐이었으니. 페르난데스는 크게 웃으며 허리를 쭉 폈다.

마력 회로 한 줌. 과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힘. 고작 이것 하나를 취하고자 그토록 많은 것들을 포기하려 했단 말인가?

카라드스카르와의 일전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마주하며 당당히 허리를 펴고 맞서던 그가, 고작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단 이유로 몸을 사렸단 말인가?

지금껏 최악의 순간이 없던 적이 있던가?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순간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했으며, 그 선택들을 쌓아 올려 언제나 승리를 쟁취해 왔다. 그런데 지금, 모든 전황이 불리하고 이미 반전을 보이기엔 너무 늦었다는 핑계로 정국을 방치했단 말인가?

이건 페르난데스의 방식이 아니었다. 늙은 흑마법사, 노회한 과거의 망령이 했을 법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 삶의 지향점이 아니다.

그는 다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늙은 아비가 아니다. 그 아들이 살아갈 미래, 소박하지만 충실한, 행복한 가정을 선물하겠다는 맹세를 위해 이 지옥 같은 세상 전체를 구해 내겠다 다짐한 사내였다.

“베이타서스. 이번만큼은 인정하마. 네가 옳았다. 내 방식을 고집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군.”

그의 영혼을 갈라놓아 페이자쉬와 그를 별개의 인물로 살아가게끔 한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그저 과거의 악행을 마주하며 살아가라는 교훈에 불과할 리가 없지 않은가!

베이타서스는 알고 있던 것이다. 페이자쉬의 방식은 그 근본이 뒤틀려 있었음을. 그리고 이제, 페르난데스 또한 그 사실을 깨달았다.

“가자, 키르하스. 왕을 구하자.”

“예……? 하지만 은공, 비센테 왕의 죽음이 데인의 희망을 지펴 올릴 것이라고…….”

“우리가 그 희망이 되겠다. 굳이 죽음을 희망이라 포장할 필요가 있겠어?”

늙은 흑마법사의 방식을 걷어 내자, 남은 것은 성자의 방식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그 순간 가슴이 터져 나가는 듯한 해방감을 느끼며 말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두 필의 기마가 분투하는 왕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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