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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79화 (380/388)

379. 네 죄를 사하는 것은 (3)

진홍대공 타이반의 축복은 다른 대악마들의 축복과 달리 아주 단순하다. 힘이 강해지고, 피부가 질겨지고, 성미가 더 끈질기게 변한다.

오직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파괴 행위를 일으키게 만들기 위한 권능이다. 페이자쉬가 당시 ‘끔찍한 페널티’라고 불렀던 인지능력 저하마저도 기실 축복에 가까웠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파괴만을 추구하기 위해 사고마저 마비시키는 것이었으므로.

따라서, 타이반의 권능을 일정 이상 받아들인 자들은 잔재주 따위 부리지 않는다. 우직하게, 단순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정면에 있는 모든 것들을 으스러트리고 나아가는 투우처럼—

-콰아아아앙!!

지기스문트의 몸이 그대로 지면에 틀어박히며 크레이터를 만들어 냈다. 흙먼지가 창공을 향해 치솟고, 화염이 난무했다. 방금까지 그 자리에 있던 비센테는 가까스로 몸을 빼내며 놈의 옆구리를 칼날로 훑었다.

-카칭!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비센테는 헛웃음을 치며 크게 뒤로 물러섰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어느새, 자세를 되돌린 지기스문트의 굵은 팔뚝이 떨어져 내렸다.

“이거 너무 불합리한 것 아닌가!”

비센테는 고함치며 연신 뒤로 뛰었다. 쾅, 쾅, 쾅! 단 한 순간도 멈춰 설 수 없었다. 지기스문트의 팔과 도끼가 사방을 난도질하며 휘몰아치고 있었다.

반면 페르난데스는 오직 회피에만 집중하며 지기스문트의 능력을 분석하고 있었다.

‘육체 능력 상승 폭이 9배가량이군.’

일반적인 디모니카의 성능을 고려하자면, 놈의 전력은 디모니카 세 사람분의 것에 가까웠다. 단순히 디모니카 셋의 합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디모니카의 세 배에 가까운 완력과 반응 속도를 지닌 괴물이란 뜻이었다.

타이반의 권능에 대해서, 적어도 물질 세계에서 가장 정통한 것은 그였다. 그는 날카롭게 지기스문트를 쏘아보며 발을 움직였다.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축복을 개방했고.’

대악마들이든, 천상의 대신들이든. 축복과 권능을 무제한적으로 방사할 수는 없다. 모든 불멸자들은 필멸자들에게 일정 이상의 대가를 요구하고, 그 보상을 내린다.

지기스문트가 내건 대가는 놈의 영혼과 놈이 만들어 낸 학살, 그리고 파괴에 대한 약속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놈은 페이른 전역에서 무분별한 학살을 자행했었으므로, 놈이 가진 권능의 폭을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었다.

힘과 내구성을 얻는 기본적인 축복 외에, 자카스밀이 만들어 내는 파괴의 권능. 그리고—

-딱!

[잔재주는 소용없다!!]

“그럴 것 같더라고.”

시험 삼아 쏘아 올린 불똥이 허무하게 놈의 피부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상처 거부의 부적과 같은 성물로 인한 내구성은 아니되, 기본적인 내구도가 일반적인 필멸자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것이다.

‘하, 이런 빌어먹을.’

전생 시절에 저런 종류의 하수인들을 여럿 부렸던 기억이 있다. 타이반의 권능을 쑤셔 박아서 사용하던 일회용 병정들. 일반적으로, 그런 병정들은 전쟁용 공성 병기로 활용하곤 했다. 또는 요인 암살용이라거나.

막상 그런 놈을 직접 맞상대하려니, 새삼스레 그 시절 영웅들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지금이야 이 대 일 상황이었으나, 그때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웅들은 이런 놈들을 홀로 죽이곤 했다.

더욱이, 지금 문제가 있다면—

‘사고 흐름이 끊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페르난데스의 의식 한구석은 전장 위를 날아올라 아군에게 주문을 불어넣고 있었다. 3초의 미래를 보게끔 하는 환시를. 그런 복잡한, 대연산이 필요한 주문을 가동하는 와중에 격전을 벌이려니 죽을 맛이었다.

심지어는 한 번만 공격을 허용해도 죽게 되는 상대를 두고.

“이거!”

-콰아앙!

“죽겠군!”

-쾅!!

비센테는 몸을 굴리며 소리쳤다. 페르난데스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을 뻔했다.

놈의 반사신경은 디모니카의 세 배에 달한다. 즉, 쏘아 오는 화살조차 손으로 낚아채는 초인들의 경지를 세 곱절 뛰어넘은 괴물이란 뜻이었다. 비센테는 그런 놈의 공격을 단 한 번도 허용해선 안 되는 상황에서도 투덜거릴 여력이 있다는 듯 움직였다.

‘여력이 남아……?’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하며 생각했다. 사고가 끊겨서 생각을 깊게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디모니카 셋의 합공을 받고도 한 푼 어림의 여유가 있다는 것인가?’

그건…… 전생 시절 전성기의 영웅들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비센테가 후다닥 거리를 벌리며 헐떡이고는 외쳤다.

“알베르트 경!! 아까 같은 주문 뭐 더 없나?! 이놈을 쓰러트릴 방법 말이야!”

“주문이 무슨!!”

-콰앙!

“마법 주머니인 줄 아십니까!”

“아니었나!!”

페르난데스는 휘몰아치는 공세를 간신히 회피하며 외쳤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지기스문트의 이마에 핏대가 우드득 솟아올랐다.

[이노오오옴!!! 파리 같은 것들이!!]

모든 공격을 피해 내며 환담을 나누는 꼴이 영 마뜩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지기스문트의 입가에 검은 잿가루 같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페르난데스가 재빨리 달려가 헐떡이는 비센테의 가슴을 걷어차고 뒤로 뛰었다.

“컥!”

“피하십시오!!”

방금까지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긴 화염 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거의 아벨의 것에 가까운 수준의 고열이 훅하고 휘몰아치며 대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비센테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젠 하다하다 불도 뿜어? 이러고도 인간이라 부르겠는가?”

“두 번째 축복이군요. 숨결이라. 귀찮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약점이 정말 없나?”

“맞지 않고, 많이 때려야 합니다. 일단 저 도끼를— 이런!”

-콰앙!

어느새 숨결의 여파에서 자세를 정돈한 지기스문트가 황소처럼 뛰어들어 도끼를 내려찍었다. 바싹 마른 대지가 형편없이 으스러지며 돌가루가 튀었다. 페르난데스는 뒤로 두 바퀴 굴러 몸을 튕기며 외쳤다.

“손에서 떨어트려야 합니다!”

“말이 쉽지, 제기랄!”

다시 공방이 이어졌다. 약점을 노려 칼을 휘두르고, 맥없이 피부를 그으며 튕겨 나가고, 떨어지는 팔과 도끼, 이따금씩은 이마나 무릎 따위를 피하는 공방이.

일 초를 반으로 나누고, 다시 그 절반을 반으로 나누어 한없이 찰나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세 합 이상의 공격을 피해 내며 한 합의 일격을 박아 넣는 것의 연속이었다.

짧은 호흡조차 내뱉기 어려운 회피 속에서, 페르난데스는 애써 끊어지는 사고를 더듬으려 애썼다. 그 어떤 순간에도 반드시 돌파구가 있기 마련이다. 경험에 따르면—

‘이런 타입은 골치 아픈데…….’

마법을 사용했다면 모르되, 순수 격투로만 붙어야 하는 주제에 공격에 맞설 수도 없는 상대. 전생에서야 원한다면 멀찍이서 곤죽을 만들었던 녀석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는 양팔 없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슬슬 비센테가 지쳐 가는 것이 보였다. 기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버텨 낸 것, 이렇게 싸울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이미 수십 번 탈진해도 모자랄 격전을 치른 이후의 일이었다.

그 순간—

-삐이이익!!

창공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던 그의 사역마 곁에 매 한 마리가 나타났다.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하며, 지기스문트의 뒤 저편, 비스듬한 언덕의 사면을 바라보았다.

-후우웅!! 콰직!

대기를 찢어발기는 소음과 함께 지기스문트의 머리가 퍽, 하고 기울어졌다. 놈의 움직임이 한순간 멎었다.

놈의 머리 뒤에 굵은 손도끼 한 자루가 틀어박혀 있었다. 북부 양식의 투박하지만 견고한 도끼날이 단단하게 놈의 머리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더럽게 튼튼하군! 머리를 터트릴 작정으로 던졌는데 말이야!”

“아에렌!!”

“아, 그렇게 반갑게 소리치지 말라고. 하하, 반하기라도 했나?”

“은공!!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면을 타고 아에렌과 키르하스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붉게 타오르는 지기스문트의 안광을 보며 움찔 굳었다.

“저게 페이른 국왕인가요?”

“한때는.”

“그럼 좋군! 남부는 이제 지긋지긋해. 빨리 해치우자고!”

[누가 누굴 해치운다고?!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정신을 차린 지기스문트가 노호성을 터트리며 뒤통수에 박힌 도끼를 집어 들어 강하게 던져 냈다. 놈의 머리에서 핏물처럼 화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도끼는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정확히 아에렌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아에렌이 방패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자마자, 페르난데스가 퍼뜩 놀라 소리쳤다.

“막지 마시오! 피해야 하오!!”

-터엉!

그러나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도끼가 방패에 박혔다. 방패에 굵은 실금이 쩍하고 이어지며 바스라지기 시작했지만, 방패의 틀 자체는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페르난데스와 비센테, 그리고 지기스문트마저 잠시 멈칫거렸다.

“아! 빨리 말하지! 막았는데!”

“막……았어?”

“막았다고……?”

어떻게……? 자카스밀의 본체로 타격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막힌 것인가? 아니, 피해의 범위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자카스밀은 저 축복의 영매에 가깝다. 자카스밀로부터 받아낸 타이반의 권능은 놈의 육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어야 했다.

페르난데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기스문트의 발밑을 바라보았다. 대지가 놈의 권능에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스스로 으스러지고 있었다. 놈의 능력은 멀쩡했다. 하지만 어떻게 막을 수 있었단 말인가?

“하하, 선조들께서 이 몸을 굽어 살피신다! 이 마귀야!”

“베이타서스……! 그렇군!!”

그제야 페르난데스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기스문트는 지금 군왕급 악마에 가까운 육체 성능을 가지고, 타이반의 권능을 받은 존재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자면, 필멸자의 육신으로 준신에 가까운 축복을 받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아에렌은 베이타서스의 딸들 중 하나였다! 베이타서스가 첫 번째로 빚어낸 고대의 천사. 만신전의 대리인이자 희망의 표상. 그녀 또한—

‘필멸의 육신에 준신의 영성이 이어진 상태!’

그러니 그녀의 도끼가 지기스문트의 머리를 타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투 능력을 제외하고 단지 영성과 권능으로만 따졌을 때. 저 둘은 상성 관계에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에렌, 전황은 어떻소?”

“갑자기 그걸 묻는다고? 얼추 정리되어 가고 있다!”

“좋아. 잠시만 자리를 맡아 주시오!”

“뭐? 야! 잠깐!”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뒤로 튕겨 나듯 물러서며 소리쳤다.

“지기스문트! 저 여자가 네가 찾던 존재다! 네 주인의 대적자, 대천사다!”

“아니, 날 그렇게 띄워 준다고 무슨—! 꺅! 야!! 이 자식아!!”

지기스문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며 달려 나갔다. 페르난데스는 그제야 깊은숨을 몰아쉬며 비센테의 곁에 섰다.

“지금 자네 대단히 쓰레기 같은 것 아는가?”

“전하, 혹 선대 왕…… 데인 대왕의 검예를 이으셨습니까?”

“뭐……?”

페르난데스는 거친 호흡을 다스리며 당황한 비센테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무위가 설명되기 어렵다. 전생 시절 비센테는 이 시점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변한 역사에서, 온전히 왕위를 계승한 비센테가 과연 어느 수준까지 올라와 있을까.

당시 거인 학살자라 불렸던 위대한 기사왕 다인의 검술. 페르난데스가 다인의 묘실에서 그의 영혼을 받아들이며 영혼에 각인했던 그 검예가 과연 이 시대, 이 혈통에도 남아 있을 것인가.

페르난데스의 물음에 비센테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당년 대왕께서 거인을 참하실 때 사용했던 그 기예 또한 이어받으셨습니까?”

“할 수는 있네. 시간이 좀 필요하기야 하지만.”

“이제부터 합을 맞추겠습니다.”

페르난데스는 비센테의 말을 듣자마자 손가락을 들어 올려 딱, 하고 부딪쳤다. 그의 머리 한쪽을 차지하던 시야가 퍽하는 소리를 내며 암전되었다.

주문이 올올이 끊기는 것이 느껴졌다. 마력 회로가 느슨하게 풀어지며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전장에 내려앉았던 그의 주문들, 아군 병사들을 위해 가동하던 연산 기능이 천천히 꺼졌다.

달뜬 머리가 식어 가는 감각이 생경했다. 전투의 고양감으로 사라졌던 감각 기관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청각과 촉각, 그리고 방향감각까지.

우득하고 목을 한차례 풀고는,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저 멀리에서 당황하며 애써 싸움을 이어 가는 아에렌과 키르하스의 모습이 보였다.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으나 어쩐지 자꾸 웃음이 흘렀다.

아에렌과 키르하스와 같은 전생의 대영웅들과 발을 맞추어 타이반의 하수인을 거꾸러트리려는 자신이 너무도 자가당착적이라.

“전하. 한 번에 가겠습니다.”

“어딜 치면 되겠나?”

“왼팔을 맡으십시오. 놈의 오른팔. 도끼는 제가 거두겠습니다.”

저 성유물을 타인의 손에 함부로 넘길 수는 없다. 어떤 부작용이 따를지 모르는 탓이다. 페르난데스는 마지막으로 그것까지 고려한 이후, 비센테와 함께 지기스문트를 향해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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