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83화 (384/388)

383. 전조 (2)

순례 기사단들의 야영지는 군영이라기보단 수도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보급 물자와 병장기, 군마들이 정리되어 있는 풍광은 분명 규율 잡힌 군대의 것에 가까웠으나, 조용한 종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를 제외하면 어떤 소음도 없다는 점에서 더욱이.

페르난데스는 그 기묘한 괴리감 사이를 거닐며 앞서 걷는 기사의 뒤를 따랐다. 이따금씩 페르난데스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는 기사들이 보였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정체를 묻거나 저지하거나, 또는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만신전 교회들은 공식적으로 사적인 무력 집단의 사역을 금기시한다. 각 교회에서 개별적으로 집법관의 역할을 갖춘 신전 기사 몇몇 정도는 육성하고 있었으나, 집단의 힘을 가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집단화된 무력은 세속 왕가의 정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의회 선언 이래 오백여 년이 흐른 지금, 만신전 교회는 외부에 투사해야 하는 전력을 모두 베이타서스 교회에 일임했다.

그 결과, 베이타서스 교회는 두 개의 전투 집단을 보유하게 된다. 이단과 흑마법사, 또는 악마들에 대응하기 위한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과—

‘국가 단위의 거대 집단의 배교, 또는 교회를 향한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성 요한 순례기사단.’

얼핏 보기엔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두 집단의 차별점을, 페르난데스는 이 자리에서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단심문청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단 하나의 의혹조차 남지 않게 될 때까지 파헤친다. 굳이 표현하자면 승냥이나 하이에나처럼, 이단의 악취가 풍기는 모든 사건들을 게걸스럽게 포식하며 물어뜯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 순례기사단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가장 원론적인 사제들의 자세를 유지한 고대의 신관들처럼. 모든 일은 오직 주의 뜻대로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따라서 묻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표현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직 주의 말씀을 수행하는 자동 인형처럼 동작하는, 신앙심의 기계들이었다.

‘공식적인 파견 사유는 수도원 파괴에 대한 응징이었나?’

그것이 가장 가능성 높은 일이긴 했으나, 이단심문청의 기능 정지 이후 페이른 왕실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자면 수도원 파괴는 페이른 왕국의 소행이 아니었다. 놈들의 정보를 믿을 수야 없겠으나, 귀족 사회의 기본은 명분과 체면이었으며 왕가의 공식 발표를 증거 없이 무시할 수는 없었다.

즉, 베이타서스 교회는 수도원을 향한 공격이 ‘정체 불명의 사교도 집단’의 소행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규명하고, 그 뒤에야 이들을 파견할 수 있었다.

‘지기스문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선수를 쳤지.’

지금 생각해도 타이반을 숭배하기엔 머리가 너무 잘 굴러가는 놈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놈의 무력을 과대평가하진 않았으나, 놈의 전략이 가진 기민함은 충분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 여겼다.

베이타서스 교회와 만신전, 그리고 제국과 다른 왕가들이 개입할 수 없는 완벽한 판을 짜 두고 누구보다 빠르게 작전을 수립한 것이다. 선수를 빼앗긴 페르난데스로서는 악수를 두어서라도 판을 뒤집을 수밖에 없도록.

페르난데스는 씁쓸하게 입을 꾹 다물고는 걸음을 옮겼다. 앞서 걷던 기사가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의 앞엔 야영지 모닥불 근처에서 솥에 감자를 깎아 넣는 사제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추기경님.”

신경질적인 인상의 노인이 감자 깎던 칼을 내려놓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곧 허허 하고 웃으며 자리를 두드렸다.

“목이 아프군. 노인에게 계속 올려다보게 할 텐가?”

칼리오치니 추기경. 몇 해 전, 페르난데스의 시성 자문회에서 그에게 적대적인 역할을 맡았던 꼿꼿한 영감이었다.

그의 적개심 없는 농담에 페르난데스는 털털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추기경은 다시 시선을 돌려 감자를 조각 내 솥에 던져 넣었다.

“의외인가?”

“성하께오서 이 일에 얼마나 많은 심력을 쏟으셨는지 알게 되었으니, 의외랄 것은 없지요.”

“여전히 말은 잘하는구만. 허허.”

신경질적인 인상과는 달리, 추기경은 어디서나 볼 법한 푸근한 할아범처럼 말을 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오히려 경계를 놓지 않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 교회에서라도 ‘악의 대변인’이라는 직무는 반드시 필요하다. 집단의 의견이 반드시 선을 위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으니, 그런 사태를 미연에 대비하기 위해 악을 대변하는 직무를 맡은 자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번 시대에서, 베이타서스 교황청의 악의 대변인이 눈앞의 노인이었다. 교회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 교황에게 언제나 반대해야 하는 지독한 업무. 어떤 신망도, 어떤 명예도 없는. 개인이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인한 직책을 수십 년째 이어 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설령 선의를 위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런 종류의 혹독함은 세월 속에서 천천히 사람의 본성을 비틀어 놓는다. 저 노인의 도덕이 정의롭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나, 결코 마음씨 좋은 동네 영감처럼 푸근한 성미를 가질 수는 없다.

“이 노구를 찾은 이유는, 만신전 교회의 정황을 떠 보고자 함이겠지. 놀라운 직관이네. 그처럼 멀리 생각할 수 있는 자들이 달리 누가 있겠나. 얼마나 되겠나.”

역시.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예측이 적확했음에 쓴웃음을 지으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추기경은 여전히 아무런 내색 없이 솥을 휘휘 젓고 있었다.

야전식 특유의 잡탕죽이 부글부글 끓으며 고소한 냄새가 났다. 밀반죽이 걸쭉하게 피어오르는 솥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노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가 대단히 영민하고 냉철하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 나이대에 맞지 않는 수준의 사고 능력. 이에 대해선 베오른 형제와 교황 성하 모두가 동의하셨지. 베오른 형제는 이를 주의 안배라 여겼고, 성하께선 예언 능력이라 생각하셨지만, 나는 다르네.”

베오른은 페르난데스의 영민함을 신의 축복이라 여겼다. 저 또래의 청년들 대부분은 페르난데스가 보인 복잡한 사고의 편린이나마 좇기 어려울 터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반면 교황은 페르난데스에게 예언 능력이 있다 여겼다. 일반적으로 시기와 장소에 걸맞지 않은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 외에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칼리오치니 추기경은. 모든 의견에 대해 먼저 부정하고 추후에 그 근거를 찾아야 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온 이 늙은 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일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깨달을 수 없는 지식을 이미 알고 있으며,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고 있고, 그 나이대에 보일 수 없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교황은 현명했다. 예언이 아니라면 설명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칼리오치니는 우선 교황의 의견에 반대하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이 예언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면 다른 결론이 있을까.

“예언 능력을 가진 이들이 살며 남겼던 자료들을 취합하면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네. 이 세계가 언젠간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것. 세간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만신전 교회에서는 그날이 그리 멀지 않다고 여기지.”

물질 세계라 불리는 이 세상은 얇은 얼음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멸망에 달하는 조건은 너무나 많고, 이를 피할 방법은 극히 적으며, 멸망을 바라는 자들의 암약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어느 날, 어떤 사교도들이 끝내 지옥 관문을 개방하는 것에 성공했다 치자. 그 끔찍한 이단 사건이 한발 늦게 접수되고, 대응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지옥은 너무나도 쉽게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 단 하나의 악마조차도 수백, 수천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 지옥 마력은 단 한 줌만으로도 마을 하나 이상의 영토를 오염시키며, 그 오염된 땅에서 흘러나온 대기는 주위에 역병처럼 전염된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천 년간 교회는 온갖 수단을 강행했다. 마을을 통째로 불태우고, 도시를 무너트리고, 인파 사이에 숨은 단 하나의 이단을 잡아들이기 위해 수많은 선인들을 장대에 걸었다.

필요한 희생이었다. 인류는 우연에 가까운 기적 속에서 지금의 성세를 구가한 것이었으니. 천상 전쟁 이전의 정주 종족들이 모조리 물러난 이후에, 무주지를 차지하고 자리를 편 것이 우리 인간들이었으니.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닌 힘과 기적은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다. 그 어떤 집단들보다도, 교회는 이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종말이 언제라도 자신들의 곁에 들이닥칠 수 있다 여겼다.

다만 그것이 오늘은, 그리고 적어도 내일은 아니길 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불길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지며 살아갈 뿐.

“시간이 갈수록 악마 추종자들이 늘어난다네. 어떤 노력을 들이든, 이단들은 여전히 지하수로와 그림자 뒤에 숨어들지. 악마 사건은 우리가 잠시 눈을 돌리는 매 순간마다 발호하고 있고, 이를 타격하기 위해 수많은 인명이 소모되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겠는가.”

단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이 시대 한 달에 일어날 사건들은, 그 시절 한 해에 접수되는 보고보다 많았다.

당연히 그보다 더 오랜 과거엔, 그리고 그보다 더 고대의 기록에서는 한 해의 보고가 지금의 일주일보다 적었다. 이단심문청은 저 먼 옛날, 대황야의 뭄토가 발호할 때부터 이어져 온 오랜 집단이었지만, 지금처럼 큰 규모를 갖게 된 것은 오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만신전 교회는 종말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머지않았다.

그리고 칼리오치니는 페르난데스의 행적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교황의 생각이 틀렸다면.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 청년이 예언자가 아니라면?

“종말의 순간을 보았나?”

“……!”

논리의 비약과 망상에 가까운 억측, 그것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설명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칼리오치니는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 교황의 의견에 반대한 후, 그 근거를 찾아내는 것.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페르난데스가 예언자가 아니며, 미래를 알고 있는 이유와 그 나이보다 조숙하고 현명한 이유가……. 미래에서 온 것이라면 가능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 따윈 모른다.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한 세기 안에 이 세계가 끝장난다는 소리겠군. 아닌가?”

페르난데스는 이 시대의 상황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단지 역사서를 뒤적이고 알 수 있을 것 이상으로. 그 의미는, 페르난데스가 이미 이 세계를 살아왔다는 것을 뜻하지 않겠는가.

칼리오치니는 자신의 추론에 소름 끼치는 감각을 느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모든 아귀가 맞는다. 이 시대에 밝혀지지도 않았던 정보를 이미 알고 있으며, 각지에 숨어든 이단 종파들을 사전에 뿌리 뽑고 심지어 대악마를 격살한다는 것이.

모든 대악마들은 알려지지 않은 곳에 봉인되어 있었다. 격살이 확실시된 대황야의 뭄토와 북부의 사다르켈리사는 물론이고 적어도 재봉인된 것으로 보이는 다른 두 개체들 또한.

미래인이 교회조차 알지 못했던 그들의 위치와 상황을 명확히 알고 있다는 의미는, 달리 말해 머지않은 미래에 그들이 풀려났었음을 뜻한다.

신성을 품은 고대의 악마들이 자유로이 풀려나 물질 세계를 배회하는 상황이란, 보다 간결히 표현하자면 ‘종말’이다. 그리고 페르난데스가 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면 그는 종말을 마주하고 돌아온 것이다.

칼리오치니는 피로한, 그리고 수척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복잡한 시선 속에서 깊은 공포와 절망이 묻어나고 있었다.

“대답해 주게.”

“그 생각이 옳습니다.”

“주여…….”

칼리오치니는 성호를 그으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베오른 형제가 그리워지는군. 그 형제의 의견이 가장 옳았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페르난데스의 존재는 주의 축복이다. 그것이 베오른이 살아생전 페르난데스에 대해 남긴 마지막 결론이었다. 예언 능력을 활용해 세속 왕가들 사이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했던 교황과는 달리, 베오른은 마지막 순간까지 페르난데스를 믿고 있었다.

교황의 판단은 분명 현명하고 냉철한 것이었지만, 페르난데스가 베이타서스의 힘에 의해 과거로 회귀했다면 이는 정녕코, 그 존재 자체가 신의 축복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자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그의 존재가 신의 힘으로도 종말을 막아 낼 수 없었다는 뜻이었으니. 종말 앞에서 과거로의 도피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의미니까.

“우리 모두가 그 형제님을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

페르난데스의 말에 칼리오치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질박한 나무 그릇에 죽을 덜어 주었다. 페르난데스는 이를 건네받으며 건배하듯 그릇을 들었다.

“우리 중 가장 밝게 빛나던 이가 전당으로 향하니, 이는—”

“전당의 등대 되게 하심이라.”

“막토.”

“막토 수페를라우도.”

두 사람은 한 차례 그릇을 마주하고 조용히 식사를 이어 나갔다. 죽은 자를 위한 묵념은, 언제나 그랬듯이 길지 않았다.

이제 현실을 바라보아야 할 시간이었다. 두 사제의 대화가, 순례 기사단들의 고요 속에서 나지막이 울렸다.

만신전 교회의 미래와 이 세계의 종말과 세속 왕가의 정세에 대한 논의가. 종말에 대한 묵시는 그저 은유로만 남아야 한다고 믿는 두 사제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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