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 전조 (6)
베르길리오는 숙련된 헤레티카다.
그는 원정 파견으로 이단 탐문을 하던 도중 수도원의 파괴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숙련된 헤레티카가 피아 구분이 어려운 외지에서 택할 선택은 많지 않다. 그는 잠복하기로 했다. 본청 파괴에 대응하는 오래된 프로토콜이 있기야 했으나, 그것이 아직 살아 있는 라인일지도 판단할 수 없었던 탓이다.
어쨌건, 이 노련한 헤레티카는 그 순간에도 작전을 멈추지 않았다. 본청이 소실되었고 어떤 종류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도, 이단 정화 업무를 지속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그는 지금 작전 지역의 마을회관에서 술과 고기를 대접받고 있었다.
“음…….”
베르길리오는 자신이 왜 이런 상태가 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의 냉철한 머리로도 상황의 흐름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자신이 이단심문관이라는 정보를 누출한 적 따윈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본청이 파괴되었다면 이단심문관을 적대하는 대규모 조직, 또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의미였으니, 정체를 누설해선 안 될 일이다.
그러니 이자들은 자신을 방랑 용병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마을을 구한 방랑 용병.
“모험가님! 이건 좀 어떠세요? 입맛에 맞으시나요?”
“아…… 예. 감사합니다.”
“이것도 좀 드셔 보세요!”
“어어…… 예.”
그는 사람의 연속된 실종과 맑은 강가에서 돌연 들끓는 검은 거머리에 대한 신고가 접수된 이후 파견된 조사관이었으며, 강의 상류를 추적하던 과정에서 이단 정황을 포착했었다.
마을 외곽의 한 야산에 둥지를 튼 마녀가 연금술을 수련하기 위해 산 사람을 납치해 실험을 하고 있던 것이다. 악마 사건이 아니었으므로, 베르길리오는 직접 마녀를 찾아가 타격하는 것에 성공했다.
[마녀! 피고의 죄악에 대한 형벌로, 만신전은 사형을 언도한다!!]
[잠깐, 잠깐만!! 나, 난 억울……!]
선고는 빠르고 집행은 날렵했다. 세인트메탈 장검이 마녀의 목을 치고, 약품과 시험 도구들을 모조리 폐기하기까지 한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생존자들이었는데, 연금술은 비교적 이단 오염 위험도가 떨어지는 학문이라 심판 대상이 아니었다.
[구원자님!!]
[구원자님!!!]
그렇게 생존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산을 내려가니, 마을 어귀에서 촌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그를 얼싸안고 마을회관으로 납치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잔칫상이 펼쳐져 있었다. 베르길리오는 어색하게 웃으며 건네주는 고기를 받아먹었다.
고기 요리는 두툼하고 투박하게 잘려 별 볼 일 없는 산채와 함께 구워 나와 잡내가 심했다. 식감이 일반적인 소나 돼지와 퍽 달랐다. 그는 질겅이는 고기를 꿀꺽 삼키고는 입가를 닦았다.
“고기가 특이하군요?”
“아, 네. 그보다 이것도 같이 드셔 보세요!”
마을 아낙은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이것저것 권해 왔다. 노련한 헤레티카 특유의 본능이었을까. 베르길리오는 내색 없이 음식을 받으며 재빨리 입을 헹궜다.
헤레티카들의 훈련 과정 중엔 독소의 맛에 대한 것이 있다. 신경독은 음독 순간 혀끝이 저려 오고, 생물독에선 신 맛이 나며 연금독은 종류에 따라 엷은 생 아몬드 맛이 나곤 한다. 수십 가지의 독소가 그의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긴장한 것과는 달리 아낙이 건넨 음식은 그저 묽은 스튜에 불과했다. 너무 예민했던 것인가. 베르길리오는 고개를 갸웃하며 고기를 씹었다.
근육 결이 툭툭 끊기는 느낌. 익숙하지 않은 특이한 식감과 잡내. 그저 관리를 잘못한 부위의 고기인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언제나 의심하라.’
렐리기오사 헤레티카의 성소 한가운데에 박힌 그 문장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베르길리오는 세심하게 고기를 씹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숙달된 헤레티카의 머릿속에서 파편화된 정보들이 퍼즐처럼 펼쳐졌다. 그는 남몰래 주위를 둘러보며 내색하지 않고 물을 마셨다.
하나, 이 마을은 평범한 농촌이다.
둘, 최근 페이른-데인 전쟁으로 황폐화된 마을 중 하나이며, 재건 사업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빈곤하다.
셋, 이 마을 외곽의 마녀에겐 사교도나 이단의 정황이 없었다. 인체 실험으로 인해 사형된 것일 뿐.
넷, 이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고기는 크게 세 종류다. 개, 소, 돼지 등의 축산물, 닭, 꿩 등의 가금류, 근처 강의 어류.
다섯, 이 테이블 위의 고기는 근육 결이 거칠고 크기가 작지 않다. 잡내가 나고 단단한 것이 육상 동물이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끝에, 베르길리오는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천천히 소매 안에 손을 집어넣어 로사리오를 붙잡았다.
깊은 한숨과 함께 역겨움이 치솟았다. 목을 타고 흘러 내려간 것들을 모조리 토해 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는 테이블 옆에 세워 둔 장검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주 베이타서스의 앞에 너희의 죄를 고하라.”
“……예?”
마을 촌민들은 당혹감에 멈칫거렸다. 겉보기엔 누구보다 순박하고 성실한, 어디에서나 볼 법한 비루한 농민들이었다.
무릇 악은 이렇게 선량한 이웃의 가면을 쓰고 움직인다. 이단심문청의 가르침대로, 베르길리오는 장검을 뽑아 천천히 테이블 위에 얹었다.
서늘한 검광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그 서슬 퍼런 협박에 촌민들은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이게 대체 무슨…… 대체…… 왜, 왜 그러십니까. 모험가님!”
“꺄아아아악!”
촌민들이 소리치고 주춤거렸다. 젊은 청년들은 명백히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부지깽이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촌장이 재빨리 손짓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진짜 칼부림이 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무술을 익힌 용병이라면 장검 한 자루로도 수십 명의 촌민은 도륙하고도 남았다.
“말, 말로 하시지요. 저희 대접이 무언가 미흡한 부분이 있으셨다거나…… 사, 사례를 바라신다면…….”
“나는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의 이단심문관이다. 감히 세속의 금품과 영화로 나를 매수할 수 있으리라 여기지 말라. 이 테이블 위의 고기. 인육이냐?”
“예……?”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닫고 촌장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것이 심증을 더해 주었다. 베르길리오는 역겨움을 참으며 칼을 높게 들어 올렸다. 제아무리 굶주렸다 한들, 사람 살을 요리해 행인에게 내어주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 여기고 넘길 수 없는 악행이었다.
그 순간, 촌장이 황급하게 말을 꺼냈다.
“오, 오, 오해십니다요!! 그건 소고기입니다요!”
“내가 그 정도로 어리석다 여겼느냐?”
“소, 소는 맞습니다요! 그…… 그것이…….”
촌민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거렸다. 베르길리오가 칼날을 번뜩이자, 촌장이 대경실색하여 넙죽 바닥에 엎드렸다.
“소는 맞습니다만!! 살, 살려 주십시오, 사제님!! 소는 소인데 최근에 상태가 좀 이상한……. 소입니다요!”
“병든 짐승의 고기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고기의 결 자체가 다른 종류의 짐승이렷다. 정녕 이것을 소라 부르느냐?”
어쩌면 이 마을 주민들은 여행객들을 소라 부르며 도축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베르길리오는 그 끔찍함에 덜덜 떨면서도 칼날을 세워 처형을 준비했다.
촌장이 벌떡 일어서서 다급하게 외쳤다.
“직, 직접 보시지요! 사제님께서 보신다면 쉬이 납득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요! 최, 최근 짐승들의 상태가 이상하여 살펴보니 뒷산의 마녀가 이상한 약물을 풀어 그런 것이 아니었겠습니까요! 그, 그 마녀가 죽었으니 이제 가축들도 멀쩡해질 것이고……. 이 힘든 때에 가축을 폐사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개중 제일 멀쩡한 놈으로다가 잡아다 드린 것인데…….”
촌장은 횡설수설하며 떠들어 댔다.
베르길리오는 잠시 칼날을 눕히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마을 주민을 몰살시켜야 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므로, 쉬이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는 촌장의 말대로 소의 상태를 보고 집행하기로 했다. 직접 근거지를 보여 주겠다 말한 이상, 더 큰 이단 조직의 흔적을 찾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베르길리오는 엉겁결에 마을 어귀의 축사까지 안내를 받았다.
* * *
축사는 마치 엄중한 감금 시설처럼 꾸며져 있었다. 언제든 축사의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도록 두꺼운 나무 판자가 문가 곁에 놓여 있었고, 축사 너머에서까지 느껴질 정도로 짙은 피비린내가 흐르고 있었다.
그 광경에 베르길리오의 눈이 매서워졌다.
점점 더 의혹이 사실로 불거지고 있었다. 저 문이 열리고 진실이 드러난다면,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곁에 선 촌장의 목을 치고 말 것이었다.
문 안에 있는 존재가 그들의 기척을 느낀 모양이었다. 곧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웅얼거리는 소리가 축사 안에서 터져 나왔다.
“끄어어억!!! 끄웨에에엑!!”
“그러다, 그러다, 그러다, 그러다, 그러다…….”
“가륵, 그르륵, 그럭!”
생리적 혐오감마저 느껴지는 끔찍한 비명이었다.
베르길리오는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바싹 주며 촌장을 노려보았다. 촌장은 창백한 얼굴로 덜덜 떨며 주춤거렸다.
“가축들 상태가 좀…… 좀 이상해졌습니다요…….”
촌장의 시선이 축사 안에 못 박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단심문관을 눈앞에 두고 그를 겁내는 자들의 경우, 심문관의 손에 쥐인 무구나 목에 걸린 로사리오 따위를 바라보며 공포를 드러내곤 한다.
즉, 이자는 저 축사 내부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베르길리오는 짧게 혀를 차고, 축사의 문을 거칠게 걷어차 열었다.
“걁……그억……. 극?”
“끄웨에에엑!!”
썩은 피의 악취가 뜨겁게 달아오른 바람과 함께 풍겼다. 분변과 시체, 그리고 부패한 사료 따위가 짐승의 노린내에 섞여서 끓어 넘치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축사 내부를 비췄다.
그곳엔 짐승이 있었다. 가축이 아닌, ‘짐승’들이…….
“주여…….”
베르길리오는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굳었다. 축사 내부에서 울부짖는 짐승들이 고개를 뒤틀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돼지, 소, 아마도 개…….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붉게 타들어 간 눈과 달아오른, 부푼 피부를 바닥과 벽에 문지르면서.
어떤 놈은 두 발로 서서, 또 어떤 놈은 시체에 고개를 파묻고 게걸스럽게 씹어 먹으면서, 어떤 놈에겐 다리가 여럿 더 달려 꿈지럭거리고, 어떤 놈은 머리가 둘 달려 서로를 물어 뜯고 있었다.
가축의 모습을 한 짐승들이 사람의 말로 웅얼거리고, 비명을 지르고, 웃고 울며 뒤엉켜 있었다. 여전히 그 본디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어설프고 흉한 형체를 갖춘 채로.
어떤 악마의 조화일까. 그가 오늘 죽인 그 마녀의 소행이었을까. 이런 종류의 합성 키메라 실험을 한다는 이교도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 자리엔 그런 고도의 실험을 할 기구들 따윈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이런 것들이 나타나곤 했습니다요. 저, 저희는 그저 그것이 마녀의 소행이라고만……. 그, 그 마녀란 작자는 본디 이 마을에 정착한 약재상이었는데…….”
베르길리오는 우리 속의 짐승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씹었다.
숙련된 이단심문관 특유의 감각이 저릿하게 울리고 있었다. 예감이나 직감이라 해도 좋았다.
어떤 종류의, 불가해한 이단의 존재가. 결코 이 무지렁이 촌민들은 아닌, 보다 더 은밀하고 지독한 악의를 품은 존재가 있다.
베르길리오가 그 마을을 불태우고 길을 떠나 다른 이단심문관들과 접촉했을 때, 그는 그가 겪은 사건이 같은 시기, 연락이 닿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부 연합의 남부 끄트머리, 거친 수풀이 우거진 남부 불모지에서부터 징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이것들…… 너희가 만든 것이냐?”
[저희는 아닙니다……. 주인님. 다른 녀석들이 끼어들었군요. 어찌할까요?]
“이건 내 계획에 없었는데.”
이단 상황을 조작하던 페르난데스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팔다리가 달린 돼지의 목을 잘라 내며 중얼거렸다.
“이놈들이 이 시기에 왜 나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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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1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