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사라진 삶 (1/68)



〈 1화 〉사라진 삶

용산 전자 매장의 한 가계.
컴퓨터 조립하는 걸 좋아했던 나한테는  맞는 직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점원으로 취직한지 한 달이 딱 지났을까?
실제로 나보다 3살 연상이지만, 15살 많아 보이는 얼굴에 개기름이 가득한 주인 형씨가 언제나 그렇듯 나를 불렀지.
화가 잔뜩  목소리에 반말.

“야!”
“호!”
“호? 이 새끼가! 지금 등산해?”

형씨, 반응 참 재밌다. 내가  맛에 남을 골려 먹는다.

“그러게 왜 야라고 하세요? 형씨 반말에 나름대로 신경써서 답한 겁니다.”
“형씨? 너 자꾸 사람 속 긁을 거야?”
“형에다 존칭 ‘씨’를 붙인 거라구요. 높임말인데  그래요?”

내가 생각해도 어거지지만, 우겨본다.

“이게  손재주가 있다고 오냐오냐 해줬더니 기어오르는 구먼.”
“평소엔 걸어 올라갑니다.”

내심 불안했지만, 평소와 같이 나름 말대꾸를 하였다.
저 형씨가 나를 불만어린 눈초리로 자주 보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나를 깐 적은 없었다.

“뭐 좋아. 너 이러는 거 하루 이틀 아니니 내가 참지. 너, 상계동 고객 리젠 파이브(데스크탑 브랜드명), 네가 조립했지?”
“네, 그런데요? 뭐가 잘못 되었어요?”
“조립이 엉망으로 되어서 왔다고 손님이 콤플레인하잖아. 이거 어쩔 거야?”
“그럴 리가요? 제가 다 부품 확인하고 완벽히 처리했는데? 혹시?”

저 주인이 평소에  하던 짓이 떠오른다.

“그래픽카드랑 마더보드 B품 쓰셨죠?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잖아요. 그럼 안된다고.”
“이게, 어디서 누구한테 덮어 씌어?”

형씨의 말투가 급격히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 내 말이 맞을 것이다.

“전 주어진 부품 가지고 했을 뿐입니다.”
“이 새끼가 끝까지. 어쨌든 너 이번에 손실 난 거, 이번  월급에서 제한다.”

이 자식은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뭐라고요? 쥐꼬리만한 월급인데 거기서 쥐를 잡수시겠다?”
“손님과 나한테 정식으로 사과하면 월급 10%만 깎아주지.”

내 기를 확 죽이려는 수작이구나. 이게 정말 누굴 다 죽어가는 지렁이로 아나.

“그러시겠다?”
“그래, 임마, 그렇게 하겠다.”
“내가요, 지금 죄송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네요. 대신에요..”

나는 장비가방에서 망치를 꺼내 들고 왔다.
순간, 형씨가 잔뜩 긴장한 채로 소리쳤다.

“야. 이 새꺄. 너 뭐할려고?”
“이거 할려구요.”

난 조립 중이던 컴퓨터 부품이고 마더보드고 망치로 두들겨 박살을 내버렸다.
컴퓨터를   대 망가뜨리고 나서야 망치질을 멈췄다.
그동안 십년 먹은 체중이 확 가시는 기분이었다.
주인이 멍하니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아, 이제 정말 죄송해지네요. 제 월급 백프로 까시면 되겠네. 이제.”
“너...너. 경찰에 신고할거야.”
“그러시던가. 그럼 그동안 메인보드 가지고 손님에게 사기 친 거 다 불어버리면 되죠.”

형씨가 주먹을 쥐고 다가왔다. 꼴에 날 팬다고?

“와, 형씨, 주먹 쥔 손에 새끼줄 돋는  봐. 부들부들 하시네? 나한테 죽빵 맞을까봐 겁나죠?”
“너, 이 새끼 가만히 두지 않겠어!”
“너.. 너 거리지 말고 내 이름 부르라고. 새꺄. 나 돌이야. 또라이라고.”

 망치를 살짝 들어 올리며 쓰윽 웃었다.
이럴   이름이 좋다.
반말을 지껄이며 망치든 똘아이, 내가 무섭겠지.
형씨가 어여쁘신 아미(蛾眉)의 주름살을 살짝 풀더니, 주먹 쥔 손을 편다.
아깝다. 한 방 내주고 더블로 갚아주는 건데.

“나가. 넌 해고야.”
“좋습니다. 좋아. 나가지 뭐. 이런 개양아치가 운영하는 곳에 있어봐야 성질만 버리지.”
“뭐야?”
“잘 사슈! 내 것은 알아서  챙겨 갑니다.”

지금 나온 그래픽 카드  비싼 축에 속한 지포스 RTX 3090 박스를 집고서는 가계를 나가 버렸다.
사장이 달려 나오다가 내 망치 쥔 손을 들어 보이니 우두커니  있었다.
그래 그렇게 가만히 계세요.


그래픽 카드 새 박스를 품에 꼭 껴안고 8월의 더위가 가득한 거리를 걸어갔다.
내  달 일한 댓가 지포스 RTX 3090 그래픽 카드.
이걸로 웬만한 3D게임은  나게 즐길  있는데다가, 가상화폐 채굴로 그래픽 카드가 품절이니, 비싼 값에 팔 수 있겠지.
하하.

요즘 나온 PS 5랑 라면 좀 사야겠다. 라면?
라면하니 갑자기 배고파졌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정오를 지난 시각.
주머니를 뒤져봤다.
천 원짜리  개랑 백 원짜리 10개. 이걸로 먹을  있는 게... 없다.
내가 거주하는 고시원까지 갈 수 있는 버스요금까지 생각하면, 한 끼로 사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갑자기 그때 내가 살았던 보육원 근처 허름한 중국집이 생각났다.
머리 새하얀 할배가 운영하던 가계였는데, 거기가 참 저렴했었지.
아마 4천원이면 짜장면 한 그릇 먹을  있을 것이다.
왜 한필 그곳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지금 살고 있는 고시원까지 30-40분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겠지.

여기서 1시간 거리인 머리 새하얀 할배가 운영하는 중국집을 가기 위하여, 버스를 탔다.
백 원짜리  열 개를 넣으니, 버스 운전사가 눈을 부라린다.
모를  알았는데, 눈썰미가 좋네.

“삼백원 더.”

이 아저씨, 목소리 까신다.

“이거 팔아야 할까요?”

그래픽 카드 박스를 내밀었다.
운전사 아저씨 귀찮아하더니, 그냥 타라 한다.
오케이. 좋았어.
그 중국집 가게 짜장면이 4천원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
제발 내 기억속의 그 가격이기를.

짜장면  가격이 아니었다.
5천원.
가계의 집기니 내부 인테리어는 후진 채로 그대로 인데, 가격만 올랐다.
이제 기댈 것은 예전 주인 할배의 자애로운 인정 뿐.
할배를 찾으니, 머리가 살짝 벗겨질랑 말랑한 4-50대 중년의 아재가 주방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 할아버지 어디 가셨어요?”
“좋은 데 가셨는데요.”
“아직 활동하실 연세인데 양로원을 가셨나?”
“좋은데 가셨다니까요.”

망했다. 어떻게든 단가 4천원에 짜장면을 맞춰야겠다.

“짜장면에 콩을 빼면 얼마일까요?”
“5천원이요.”
“제가 돼지고기를 싫어하는데 돼지고기 빼면요?”
“5천원이요.”
“그냥 주세요.”
“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다.
앞에 중국집 정문 앞에 ‘배달할 사람 급구’ 표시를 봤기 때문이다.
다른 곳은 배달의 종족, 뭐 이런 것으로 배달을 시킨다는데, 여기는 아직도 배달할 사람을 따로 쓰는가 보다.
여기서 일해 보고 싶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러면 서비스로 짜장면  그릇 무료로 줄지 모르겠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짜장면이 나왔다.
지포스 RTX 3090 그래픽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나는 순식간에 짜장면을 해치웠다.
곱빼기를 시켰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저 지포스 RTX 3090 그래픽 카드는 담보로 잡혀야겠지.

“아저씨 계산이요.”
“네. 5천원입니다.”
“아, 여기 배달할 사람 아직도 뽑나요?”
“왜 배달해보시게?”

아재가 나를 띠겁게 본다.
필시 체구가 작은 나를 무시하는 거다.

“제가 배달 경력이 좀 되는데.. 경력직은 얼마 주나요?”
“월급으로 250만원인데..”

음. 괜찮다. 저정도면.
하지만 쉽게 오케이 할 수는 없지.

“에? 좀 짜네. 혹시 초짜는 얼마?”
“어, 초짜는 월급으로 250만원이요.”
”똑같잖아요.“
“할꺼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짜장면을 다 먹은 지금  시점에서는.

“어. 전문가 입장에서 제가 시식하러 왔거든요. 과연 여기 중국음식 배달시켜 성공할 집인가?”
“뭐라고요?”
“성공하시겠어요. 인정. 인정. 제가 사장님의 성공에 일조하겠습니다.”
“아, 그래서 배달 알바 하시겠다는 거요 뭐요?”

이 주인아저씨가 심드렁하게 반응을 한다.
짜장면 공짜로 주겠다는 말이 그리 어려운지, 끝내 입을 다물었다.
하아. 이 아저씨 이외로  수에 안 넘어가네?

“아, 시식을 해보니 좀 단맛이 강한데, 그걸 좀 살짝 줄이시면..”
“짜장면 값 5천원이요.”

사장이 무전취식하려는 내 의도를 눈치 챘는지 손을 내민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시식까지 해 드렸는데..”
“5천원.”
“사람뽑는 것 까지 도와드렸잖아요.”
“5천원.”

결국 수중에 든 4천원을 탁탁 털었다.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죠? 천원은 인건소개비 수수료로 생각하세요.”

어이가 없던 사장.
그래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고, 나보고 따라오라고 하더니 밖에 세워둔 스쿠터 같은 오토바이를 보여주었다.
녹이 슬어 낡아 보였다.

“이걸 모시면 됩니다.”
“정말 제가 모시게 생겼네요.”

결국 어쩌다가 중국집에서 오토바이를 몰면서 배달을 했다.
생각보다 월급을 많이 주는 것 같아서 오케이했는데, 젠장, 이 중국집 열흘 후에 망했다.
억울해서 사장에게 항의했다.

“이럴 거면 사람을 왜 뽑았어요?”
“이 허름한 곳에 뭘 믿고 지원했대?”

이런 적반하장을 봤나?

“좋아요. 열흘어치 일한  돈 주세요.”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해라. 젊어서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보겠냐?”

니미. 귀신 시나라까먹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사장님, 이쁜 초등학생 따님 있으시죠?”
“그건 왜?”
“그 따님이 사장님 살린 거여요. 평생 업고 사세요.”

따님만 없었으면, 내 주먹으로 당신 죽었어.

“혼자 잘 먹고  살아라. 전  떼이고 빠이빠이 갑니다.”

밖에 서 있는 오토바이 고물은  열흘 치 일한 몫으로 가져가야지.
근데 그때 배달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전화를 받았다.
여기 중국집 사장 놀려먹고 나가리라.

“여보세요. 중국집 짜장의 왕국입니다. 손님들 덕분에 폭삭 망했습니다.”
“여보셔? 거 배달되쥬? 짜장 둘, 탕수육  자 좀 부탁혀.”

아씨. 한필이면 귀가 어두운 욕쟁이 노씨 할배시다.
여기서 엄청 멀리 사시는 분이 왜 짜장의 왕국을 애용하는지 모르겠다.

“여보세요. 할아버지. 여기 망했다니까요. 주방장이 똥손이라 망했다고요.  데 알아보세요.”

“망할 놈의 새끼 같으니라고. 내가 먹고 싶다는데 뭔 지랄이여?”

-이 할배가 진짜.

 날 한필이면 억수로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근데 이런 태풍 오는 날, 이 할배가 배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화를  참았다.

“여기 짱개집 망했어요. 짜파게티 드세요.”
“뭐라고 씨부렁거리는겨? 어여 갖다줘. 여기 짜장 둘, 탕수육 中자”

그래, 여기 중국집 맛집으로 소문났다.
맛집의 비결? 간단해. 주인아재에게 술만 먹이면 돼.
짜짱면 주인이 술에 취해 흥얼흥얼 거리면서 국산 미원과 사카린을 국자로 퍼 넣거든.
죽이지, 사카린 맛이.
그리고 죽겠지, 사람이 맛가서.

“국자에 미원 하나 가득 넣으시고 짜파게티에 뿌려 드세요. 그럼 여기랑 맛이 똑같아요.”

그때 날 죽이려는 듯 바라보던 사장이 조용히 내 앞에 돈 5만원을 내어 놓았다.

“단골이다. 이 돈 가지고 단골 집까지 배달해. 마지막 배달이다.”

돈 5만원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저 돈이라도 받아야지.

“지금까지 내가 말해드린 대로 잡수시면 오래 못 살아요. 저희 중국집 몸에 좋은 MSG 씁니다. 미원과는 차원이 달라요. 지금 배달 갑니다.”

사장은 곧 주방에 들어가서 이 중국집 이름으로는 마지막 자장면을 뽑아내고 있었다.

“내 아무리 악질사장이라도, 단골집에게는 최선을 다해 요리한다. 이게 내 신조야.”
“MSG를 최선을 다해 뿌리신 거겠지. 그럼 뭐해요. 단골이든 아니든 맛이  똑같으니.”
“저 놈이?”
“그리고 지금 비 억수로 오거든요. 이 5만원은 그동안의 제 수고비일거구, 배달은 사장님이 가세요.”
“지금 만드는 요리 단골집에 건네주고 받는 돈 네 꺼 해라.”

오케이.

“탕수육 가격이 언제적 23000원이야? 가격 올려야 수지타산이 맞지. 짜장은 폐업 기념으로 럭셔리하게 파는 한정판이니까 하나에 만원씩. 총 45,000 받겠습니다.”

사장이 뭐라고 하든, 철가방에 중국음식을 실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
다시는 짜장면 집 간판도 쳐다보지 않겠다고 각오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할 곳으로 떠났다.
참,  오토바이도 내가 가져갈 거다.
고물이지만 팔아먹으면, 부품 값이라도 받겠지.


중국집은 서울 근교 중소도시에 위치해 있는데, 조그만 나가면 논과 밭이 있고 강이 흐르는 시골이었다.
비가 엄청나게 와서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고, 길은 완전 질척거렸다.

“와, 이런 썩을. 그냥 5만원 받고 나와 버릴 걸.”

억수로 쏟아지는 빗물에 오토바이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서, 나는 후회를 했다.

어떻게든 오토바이를 천천히 끌고 가는데, 조그만 소형 트럭 한 대가 거센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트럭위에서 위태롭게 트럭을 붙잡고 앉아있는 나이 드신 분의 결사적인 비명을 들었다.
다행히 그 트럭이 내가 지나가야 할 다리에 부딪쳐 잠시 멈추었다. 나는 그냥 가려고 했다.
저 할아비의 생명을 구하려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

-젠장. 오늘따라 왜 이리 할배들이 내 발목을 잡는 거야.’

그런데, 살려달라는 그 할배의 애절한 눈빛을 난 보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그 간절한 눈빛.
나도 모르게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다리 쪽으로 뛰어갔다.
저 분이 돈이 많은 재벌집 할배이기를 바라면서,  할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 사람은 체구가 여읜 할아버지라서, 손이 제대로 닿기만 한다면 어렵지만 다리 위로 끌어 올릴 수 있을  같았다.
하지만 거리가 여의치 않아서,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직접 다리에서 트럭으로 내려온 다음 할아버지를 다리 위로 끌어 올렸다.
그런데, 그 할배가 팔꿈치로 나의 명치를 친  같았다. 그리고 난 발이 그대로 미끄러져 버렸다.

“아.. 씨... 난 죽어서는... 아.. 아악. 연애도 못했단 말야..”

그리고는 물에 휩싸인 채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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