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그것이 없다
나는 공부를 잘했다. 싸움도 잘했다. 누구한테도 지고 싶지 않는 승부근성도 지녔다.
그러나 난 돈이 없었다. 키 작고 못생겼다. 백도 없었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 비루한 고아에게 든든한 배경이 있을 리가 없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날 괄시하고, 멸시의 눈으로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저명한 사회지도층이 되어서, 나 같은 고아들도 떳떳이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이겠다고.
반드시 떵떵거리며 살 거라고.
난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한국 최고의 한국대에 지원했고, 당연히 수능시험을 잘 봤다.
하지만 떨어졌고, 대신 전액 장학금으로 경기도 지역의 한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 수준에 만족할 수 없었다.
편입을 생각했고, 한국대 경영학과를 목표로 삼았다.
왜 한필 한국대 경영학과냐고? 그건, 내 중학교 시절부터 죽마고우였던 종철이와의 술자리에서 우연하게 결정된 것이다.
공부를 겁나게 잘했던 종철이도 한국대 경영학과 재학 중인데, 떠벌리기 좋아하는 그 녀석 때문에 내게 중요한 목표 한 가지가 생겨 버렸다.
“내가 우리 과 비밀 하나 이야기 해줄까?”
나와 같이 못생기기 이를 데 없는 종철이가 신나게 말할 채비를 한다.
“시덥지 않는 이야기 하려면 고기나 쳐 먹어.”
종철이를 잘 알고 있는 내가 고기를 종철이 입에 쑤셔 넣는다.
“새꺄. 잘 들어봐. 우리 과에서 나만 어떻게 안 사실이라니깐.”
“뭔데?”
“우리 과에 나랑 친한 2년 선배 있거든.”
신기하다. 내성적인 종철이에게 나 말고 친한 사람이 있다니?
“왜 그 선배가 연예인이냐?”
“아니. 생긴 건 겁나 못생겼는데.”
“그럼 그게 뭐?”
“그 선배의 배경이 죽여주거든.”
“배경이 별로면 내가 널 죽여주지.”
내가 주먹을 쥐어 보이자, 살짝 겁을 먹어 보이는 표정을 짓는 종철이.
“그 선배가 말야, 우리나라 굴지의 SH그룹 둘째 아들인거야.”
SH그룹이라 엄청난데? 나는 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떤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 말해봐.”
“그 선배가 대학교 합격하자마자 군대 갔다 와서, 1학년부터 나랑 같이 수업 들었거든. 그 형이 나름 재미있어서 가까이 지냈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던 거지. 하루는, 내가 형이 부탁한 일을 하나 한 게 있는데, 와, 고맙다면서 돈을 천만원을 주는 거 있지?”
천만원? 내가 잘못 들었나?
“와, 신발, 오진다. 어마어마한데.”
“그때부터 내가 이상하다 싶어서 그 형을 잘 관찰했거든. 그러다가 그 선배가 누구랑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그 자리에서 본인이 SH그룹 둘째 자제라는 걸 말하더라구.”
“와, 학과에서 다른 사람은 알어?”
“아니. 나만 아는 사실. 그 형이 재벌 집 아들이란 걸 티를 내지 않았거든. 근데 같이 다니니까, 좀 보여. 뭔가 특이한 것들이.”
다행이군. 이 사실은 나와 너만 알아야 한다, 종철아.
“그 선배 이름이 뭐냐?”
“박지혁. 이름은 멋있다. 외모가 안 따라주어서 그렇지.”
나는 그때 생각했다. 세상은 배경이 중요하고, 그 배경이 쇠심줄 같이 튼튼하다면 남들보다 훨씬 더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그전까지 막연하게 난 한국대학교로 편입하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다.
더 구체적으로 꿈을 크게 가져서 한국대학교 경영학과에 반드시 들어가겠다고.
그리고 반드시 그 선배와 인맥을 쌓아, 내 인생의 디딤돌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나는 그 뒤로부터 박지혁이라는 사람을 파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SH그룹 가족사에 대하여 조사하였고, 흥신소에 돈을 써가며 박지혁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정보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편입시험 합격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고, 박지혁을 어떻게 요리할까 계획까지 다 세워두었는데, 그것이 다 허사가 되다니.
나는 물속에서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도 내가 품었던 꿈을 놓지 않았었다. 세상을 내 품안에 넣어 보겠다는 거대한 야심을.
눈이 떠졌다. 흐릿해지던 사물이 점점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한 50대 정도로 보이는 각진 사각턱에 콧수염이 인상적인 한 남자가 나를 뚫어지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자세히 보니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여기는?”
“이제 시각마저도 돌아왔군. 괜찮은가?”
“아, 흰 가운 입은 거 보니 의사선생님이시구나. 네. 아픈 데는 없는 거 같습니다.”
“의사라.. 글쎄다.’
“저, 산 거죠?”
“아니.”
그럼 난 지금 의사가 아니라 저승사자를 보고 있는 것인가?
“그럼, 저 죽은 거?”
“아니.”
“그럼 뭐야? 제가 세상을 떠도는 혼령과 같은 존재인가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악령?”
“원래 몸은 죽었고, 새로운 몸은 산거다.”
마음이 쿵쾅거린다.
“지금 시 써요? 대체 당신 누구야?”
“나를 소개하지. 난 헤프라고 하는 가미로마스트미라, 지구인 용어로 감마족이라 하지. 정확히는 현재 지구인의 두뇌를 거의 잠식하고 있는 외계인이라고 할까?”
“외계인??”
내가 아는 외계인 형상은 ET와 같이 기괴하게 생긴 건데, 지금 눈앞의 이 인물은 영락없이 지구인이다.
“그럼 사람의 탈을 쓴 외계인?”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 더 정확히는 사람의 두뇌에 감마인의 기억을 주입한 거라고 하면 맞겠군.”
“아씨. 절라 어렵잖아. 뭔 소리야아~”
순간 나는 입을 제외하고는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왜 이래요?”
“내가 너를 물 속에서 건져 두뇌이식한 지 열흘이 지났다. 오늘 눈을 떴고 입으로만 말할 뿐, 아직 다른 장기 기관은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지. 3일 후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네? 두뇌이식?”
“자네의 두뇌는 현재 다른 사람의 육체에 이식되어 있는 상태일세. 자네 육체의 기능은 이미 많이 망가졌기 때문에 자네의 두뇌를 적출한 후, 그 두뇌를 이 새로운 육체에 옮겨 담은 것일세.”
차마 믿겨지지 않을 이야기가 이 헤프라는 사람, 아니 외계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거짓말. 지금도 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데...”
“음성변조하는 거야 쉬운 거지. 나한테는. 여기 속담으로 식은 죽 먹기.”
“증거를 보여 주세요. 두뇌이식 되었다는.”
그의 말이 구라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증거를 달라했다.
“충격 받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빌어먹을. 죽음도 이미 맛봤는데 그게 문제입니까?”
“뭐, 그럼 새로운 자신을 감상하게.”
박사가 무엇을 만졌는지, 갑자기 ‘탁’ 소리가 났고, 4D 홀로그램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뭐지? 이 엄청난 화질로 저 외계인이 무엇을 보여 주려나 하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와우. 나는 천장위에 비친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홀로그램 영상에서는 백옥같은 피부의, 외모가 절정에 이른 아리따운 아가씨가 발가벗고 축 늘어져 누워 있었다.
대략 170정도의 키에 모두가 혹할 몸의 라인.
저리 아름다운 여인을 현실에서 잘 본적은 없는 것 같은데 누구지?
내가 아는 여배우인가? 메구리, 아오이소라, 카에데카렌? 품번이 어떻게 되더라?
내가 알기로 저런 눈부시게 이쁜 외모의 배우는 없었는데. 가슴만 보여줘도 탱큐인데 이 화면은 모자이크 없이 전부 다 보여준다.
내가 평소에 보고 싶은 게 맞기는 한데, 정말 이 자리에서 이렇게 볼 줄은 몰랐다.
아참, 내가 여기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지.
“이봐요, 외계인. 야한 영상 공유해 줘서 감사하긴 한데, 날 보여 달라구요.”
“너다.”
“네?”
저 영감탱이가 뭐라고 하는겨?
“너라구. 저 4D 거울에 비친 사람이.”
“설마.”
박사가 무엇을 눌렀는지 어디선가 삑 소리가 났다.
“너의 표준 미달의 외모를 저리 이쁘게 바꾸어 놓았는데 감사의 마음이 들지 않는가?”
“아니 박사님, 변태세요? 왜 저게 접니까? 저게.. 저게.. 아 물론 끝내주네요. 아니 그게 아니고.. 내 목소리? 내 목소리는 왜 또 이럽니까? 옴마야. 왜 나를 성별전환을 시켜버린 거여요?”
띠바. 내 귀에 들려오는 소프라노의 향연. 비로소 난 확실히 깨달았다.
나와 관계된 모든 신체가 변했다.
이 순간, 당황하고 경악했는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도 몰랐다.
아직 얼굴 근육을 제외한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내 눈으로 직접 내 몸을 볼 수는 없었고, 대신 천장에 비친 4D 거울로 측 늘어져 있는 여인네의 몸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 쉽게 가는 길로 가시면 되지 이 어려운 것을 해내세요? 두뇌이식에 성별전환까지.이게 말이 된다고 보세요? 난 남자라고요. 진짜! 여자가 된다고는 생각도 못했단 말입니다.”
“솔직히 다른 대안은 없었네. 정신에너지는 성별로 봤을 때 여성이 더 강하고 또 교차성별이 되었을 때 에너지가 극대화된다고. 그러다 보니 여성으로 제작할 수밖에 없었고. 또 이게 유일한 프로토타입이야.”
맙소사. 하늘이시여, 나를 구하소서.
“박사님, 거짓말로 사람 속이는 짓 그만 하시고 나의 본 모습을 보여주세요. 제발.”
“네가 지금 느끼는 충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갑자기 내 입에서 거센 욕이 물밀 듯이 튀어 나왔다.
“야, 뗍끼*****야, 신발색이야. ******야, ****놈의 *******. 내 박탈된 **** 돌려 달라구.”
박사가 어떤 기계를 가져오더니 내 목소리를 담았다.
“뭐하는 거야! 아 씨..”
“너의 랭귀지는 이전에 듣도 보지도 못했던 거라.. 지금 네가 한 말 새로운 지구어로 등록 중이다. 역시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제법 창의적인 놈이구나.”
이 영감탱이가 날 놀리나?
“.... 우와아아. 진짜 이건 아니잖아아아~~”
“그렇게 싫은가?”
“우..씨. 너 같으면 좋겠냐?”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상관없지.”
나는 계속 절규하듯 욕을 퍼부어 댔다.
이전의 남성으로 되돌아가고 싶은데, 내 귀에 들리는 천장을 뚫을 듯한 하이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나를 더욱 좌절케 하였다.
결사적으로 욕을 하며 쓸데없는 힘을 쓴 끝에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왔다.
그래도 큰소리로 떠들어 대니 어느 정도 화나고 어처구니 없었던 기분은 진정 되었다.
잠잠해진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선 헤프 박사가 말을 이었다.
“너무 속상해 하지 말게나. 자네가 지금껏 살아왔던 남자의 삶이 아닌 여자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야. 너의 두뇌를 담고 있는 네 현재 육체는 20대 여성의 것이지. 특별히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빅데이타를 활용하여 한국인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얼굴형과 몸매형으로 성형 제작한 것인데.. 아주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야.”
나는 어느새 다시 존댓말로 말투를 바꿨다. 반말로 해봐야 소용이 없었거든.
“헤프박사님. 나는 20년을 남자로서 살아왔다고요. 여자로 사는 건 고통이라구요..”
“물론, 지금까지 남자로 살아왔던 삶을 하루아침에 쉽게 버릴 수는 없겠지. 그래서 내가 한가지 선물을 또 마련했지. 너의 생전 몸을 스캔하여 초정밀 홀로그램으로 떴고, 네가 원하면 그 홀로그램을 현재 육체 위에 덮어 쓸 수는 있다네. 누구도 직접 만져보지 않는 한,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니, 네가 원하는 만큼 이전 모습으로 다닐 수는 있겠지. 다행히 지금 여자의 키와 남자였을 때의 키가 비슷하니 이질감도 없을 것이고. 우린, 이걸 초정밀 보호막, 우리 언어로 셀리카움이라고 하지.”
“그게 가능하다고요?”
“자네는 이미 두뇌이식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나는 격한 감정을 가라 앉히고 생각을 해봤다.
저 헤프가 말한 초정밀 보호막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다닐 수 있다. 그렇다면..
“그걸 지금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네가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셀리카움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 있다면, 그것만 있다면..”
“단, 이 초정밀보호막은 장시간 신체위에 덮여져 있으면, 사람의 신체가 견딜 수 없으므로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연속해서 쓸 수는 없을 것일세. 그 이상을 늘려 쓰면 피를 토하고 생명이 갉아먹힌다는 말이야.”
변신에도 댓가가 따른다는 이야기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