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참으로 괴상한 놈
알바 5번째 날, 이번에는 그가 웬일로 양복을 입고 왔다.
뭔가 미친놈에서 미소년으로 변한 느낌이 없지 않으나, 내 눈에는 여전히 싸이코였다.
첫 등장부터 반말을 해댄다.
“나 왔다.”
하긴, 이 시간에 매번 오지. 빙구같은 웃음을 지으며 등장한다.
그리곤, 바로 계산대에 오더니 담배를 눈으로 흝는다.
“뭘 드릴까요?”
“어라? 웬 존댓말?”
“적어도 댁보다는 내가 수준이 높아야 될 거 같아서요.”
그냥 씩 웃는다. 이 녀석.
“말보르 골드...”
그가 선호하는 담배를 알기에 말보르 골드를 꺼냈다.
“..말고 라면 살거야.”
내 수고를 허공에 날리며, 그는 요상한 춤사위로 몸을 움직이며 라면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선반으로 갔다.
그가 라면 하나를 끄집어 내더니 계산대로 와 5만원을 내민다.
“거스름돈. 그 중에 만원은 백원짜리로.”
이 새끼, 또 이런다. 나는 한숨을 쉬고 말보로 레드를 손에 쥐는 대로 꺼냈다.
“어차피 사실 거면, 거스름돈으로 말보로 레드 가져가세요.”
“왜? 난 오늘 담배 안 사.”
“이왕 사실 거, 니코틴과 타르가 제일 센 놈으로 추천해 드린 거여요. 좋은 거 사셔서 조그만 사셔야지.”
“일찍 죽으라고?”
바로 그거지. 역시 이 녀석은 눈치가 빠르다.
“설마요. 솔직히 말하면 이게 마진이 제일 남아요. 우리 말고 소비자한테. 우리 입장에서는 거진 마진이 없으니, 댁에게 좋은 거죠.”
“싫어. 거스름돈.”
진짜, 이게. 라면 봉지 하나에 5만원을 내어 놓고 만원 지폐 3개와 백원짜리 100개, 천원지폐 9개가 없어졌다.
손톱에 돈 독 오르도록 거스름돈을 계산한 후 그의 손에 퉁명하게 올려두었다.
“자, 이거 알아서 가져가세요.”
“뭐야? 이거 들고 가기 어렵잖아.”
“댁이 자초한 일이니까.”
내 구겨진 얼굴을 한번 보더니, 그가 말을 건다.
“왜 이리, 화났어? 잔뜩 열 받은 표정인데?”
“아뇨. 화나긴요. 잔뜩 배불러요. 요즘 제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상판때기 덕분이죠.”
“뭐?”
“매일 질근질근 씹어 먹고 있으니까.”
“나?”
그래 너다. 새꺄.
“흐흐. 날 너무 사모하지마.”
“개돌았구나, 너!”
“돈 계산하느냐고 수고했다. 만 원짜리 너 가져.”
그리고는 그 새끼, 지폐만을 가져가 버린 후 바로 편의점을 뜀박질하며 나가버렸다.
이게 진짜 사람을 놀리나.
화가 끝까지 나 꼭지 돌은 나는 편의점 소금을 내 돈으로 사다가 길거리에 뿌려버렸다.
그래도 소금을 산 탓에 훌쭉해진 동전의 무게는 충분히 주머니에 넣고 갈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내는 9번째 날까지 정해진 시간에 매번 왔다.
그리고 와서는 반말과 기행으로 나의 속을 긁다가 사라졌다.
이 인간은 날 골리는 재미로 이곳 편의점을 방문함에 틀림없다.
어서 내가 그만둬야지, 저 녀석을 볼 때마다 골치가 아프다.
마지막 열흘 째, 나는 오늘마저 박지혁이 이 편의점에 나오지 않으면 알바를 그만 둘 것이다.
야간수당을 좀 벌어놔서 완전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혁이, 이눔아는 왜 코빼기도 안보여?”
애초 내 계획은 여기서 지혁을 만나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고 인간관계를 다져나가는 것인데, 그 계획을 포기해야겠군.
박지혁에 대한 개인적 정보를 더 알아보고자 흥신소에 투자한 돈도 머릿속에 생각났다.
“뭐, 학교에서 어떻게든 구워 삶아 봐야겠군.”
나한테 박지혁은 정말 탐스러운 먹이감이었다.
헤프가 지시한 임무만 완료해도 20억대의 돈이 들어오지만, 좀 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어를 낚아야 했다.
그 대어가 바로 재벌집 아들 지혁인데, 역시 대어를 낚기는 쉽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오늘 한 가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것은, 셀리카움을 8시간 연속으로 쓰게 되면 정말로 내 몸이 견딜 수 있을지의 여부이다.
셀리카움의 최대 사용 가능시간이 나한테 정확히 얼마나 될까?
헤프 박사가 8시간 이상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기는 했으나, 나는 내심 정확한 가능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것을 시험해 볼 것이다.
“근데 그 미친 싸이코는 안오네?”
매번 밤 11시 30분정도 즈음해서 오던 그 고객은 오늘은 오지 않았다. 속을 끓이기도 했지만, 나름 재미있는 놈이었다. 생각해 보니 악의는 없어 보였다. 다만, 사람을 골려 먹는 것을 좋아할 뿐.
“이름이 구은성이라고 했던가?”
알바 첫날 그는 구은성의 이름이 찍혀진 신분증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놈의 새끼가 요 근처에서 출몰하는 것으로 보아, 꽤나 이름 있는 부자집에 살고 있으리라.
알아두면 좋겠지만, 그 유별난 성격으로 인해 별로 가깝게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람 열 받게 하는 저 성격을 고쳐주기 위해서라도 한번은 손은 봐줘야 할 것 같았다.
알바 마지막 날에도, 손님은 별로 없었다.
나는 손님이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헤프에게 배웠던 싸이킥 에너지 활용법을 연습해 보았다.
그리고 한 번도 셀리카움을 해제하지 않고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략 7시간이 갓 지나면서부터, 속이 울렁거리며 세상이 핑 돌기 시작하였다.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증세가 더 뚜렷하게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셀리카움을 운용한지 8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증세는 심해졌다.
가슴이 서서히 꽉 조이는 통증이 느껴지면서, 눈이 빠질 것 같은 편두통 증세가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증상이 강하게 오는데. 조그만 더 참아보자. 조그만 더.”
거의 정확히 8시간을 채웠을 그 때, 나는 내 코에서 뭔가 물컹한 물질이 나옴을 감지하면서, 도저히 서 있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손등으로 닦으니 빨간 피가 묻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속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더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왈칵 뱉어 버리고 말았다.
그 뱉어 버린 것이 빨간 피라는 것을 보는 순간, 겁이 나버린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조그만 더 있으면 난 정신을 잃고 죽을 것만 같았다.
결국 다급하게 외쳤다.
“셀리뷰(초정밀전자막 해체)”
그리고 그 때,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한 사람의 기척을 느끼며 의식의 끈을 잠시 놓아버렸다.
박지혁은 어제 자신의 망나니 친구인 구은성과 클럽에서 거의 밤새다 시피 춤추며 놀다가, 거의 문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클럽을 나섰다.
꽤 술을 먹었지만, 추한 꼴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정신줄을 챙기며 걸었다.
박지혁의 발이 살짝 꼬였으나, 정기사는 재빨리 그를 부축하며 차에 태웠다. 정기사는 그의 상태가 생각보다는 괜찮은 것을 보고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기사는 전화로 어딘가로 전화를 하였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이제 집으로 가겠습니다.”
그는 허리를 굽히여 정중하게 전화를 받고 있었고, 지혁은 그 모습을 눈이 풀린 상태로 지켜보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운전석에 앉은 정기사를 보며, 지혁은 헤벌레 웃었다.
“우리, 황여사께서 아직도 안 잔대?”
“네. 사모님께서 요즘 잠을 통 못 주무십니다.”
정기사는 지혁을 살짝 흝어보면서 말했다. 아마 지혁이 너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다.
“아씨, 조용히 들어가려고 했는데 글렀군.”
지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박덕성 회장이 해외에 출장 가서 없는 틈을 타서 간만에 허리띠 풀고 신나게 놀까 했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이 걸려 제대로 못 논 것이 아쉬웠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건 단순히 어머니에 대한 효심 때문이 아니었다.
교활하고, 잔인한 첫째 형이 내가 늦게까지 클럽에서 놀다 온 것을 알면 이걸 구실삼아 나를 어떻게 핍박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 첫째형이 예정된 날짜보다 빠르게 오늘 중으로 귀국한다고 했을까.
어쨌든, 의술의 힘으로 훨씬 잘 생겨진 얼굴을 가지고,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맘대로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의미 없는 유희가 그와 어머니를 생존케 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그는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다.
지혁을 실은 차는 조용한 서울 도로를 부지런히 달려 평창동 자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창동 자택에 거의 도달할 때 쯤, 그는 문득 자신의 입에서 알콜향이 너무 진하게 난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어머니가 병적으로 싫어하는 이 알콜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담배 한 가치와 껌이 직효임을 알고 있었다.
“정기사, 나 좀 편의점에 세워줘요. 담배와 껌 좀 사게.”
“아? 네. 그럼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거기 재밌는 놀이거리가 있어서, 제가 사오죠.”
지혁은 못생긴 여자 알바생의 당황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슥 웃었다.
자기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그녀를 놀려 줄 대사를 중얼거렸다.
차가 편의점 앞에 섰다. 지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차 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편의점 계산대를 보니, 있어야 할 점원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뭐 상관없어. 기다리면 오겠지. 오늘은 어떻게 놀린다?”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편의점 안에 들어간 순간, 지혁은 뭔가 비릿한 피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계산대 앞에 고개를 숙이고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에 파묻혀 있어서 여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붉은 액체가 그녀의 입가와 코에서 흘러내리는 듯 보였다.
어제까지 보던 낯이 익던 그 여자 점원이 아닌 듯 싶었다.
“이보세요. 괜찮아요?”
지혁은 재빨리 계산대로 들어가 그 여자를 안았다.
왼손으로 그녀의 등을 바치고, 그녀의 의식을 깨우고자 오른 손으로 얼굴을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얼굴을 가리던 머리카락 몇 올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그녀의 백옥같이 흰 얼굴이 그의 눈에 확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확 뜨자, 지혁은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