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내가 내 무덤을 팠지
“오늘 새벽에 여기에서 근무했던 분, 어디 갔어요?”
“아하. 그 무지하게 예쁜 학생? 그 학생 잠깐 대타 뛴 건데?”
“대타요?”
“원래 여기서 근무했던 친구가 오늘 갑작스럽게 아프다면서 대신 시간 맡아준 거라고 하던데?”
지혁이는 안타깝다는 탄성과 함께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쳤다.
“그럼, 다시 볼 수 있나요?”
“아니. 둘 다 관두었어요.”
편의점 점장이 갑자기 의심의 눈초리로 지혁을 쳐다 보았다.
“여기 진상고객이 있어, 그 고객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나 그랬는데. 혹시 당신?”
“나 그 진상 아닙니다.”
부인하는 지혁이의 말에 여전히 점장이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지혁은 점장의 의심을 무시하고, 알바에 대한 정보를 캐물었다.
“혹시, 전화번호 알 수 없을까요?”
“앞의 세 자리만 알려드리죠. 010. 그 밖에는 몰라.”
“그 친구에게 줄 것이 있어서 그러니까 알려주시죠?”
“그만 돌아가시죠? 함부로 남의 정보 알려 줄 수 없다는 거 알면서 왜 그래요?”
결국 지혁이는 소득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는 돌아오면서 자신의 자기의 늦잠을 탓했다.
그녀를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그는 무슨 수를 써서든, 그녀의 전화와 이름을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편의점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출근 때가 지나서인지 다행히 전철 안에 사람이 적다.
꼭두새벽부터 피 같은 피를 흘려서 피곤한 하루.
대충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웠지만, 배까지 고프다.
때마침 자리가 나서, 앉았다.
전철 안 시원한 에어콘 바람에 눈을 반즈음 감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수군거리며, 내 사진을 찍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눈을 뜨니, 맞은 편 젊어 보이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상기된 표정의 그 사내가 재빨리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렸다.
수상한데.
지금 나의 행색은 영락없이 동네 목욕탕 마실갔다가 돌아오는 복장이다.
얇은 회색 후드티, 회색 트레이닝 바지, 헤지고 낡은 운동화, 검은색 양말.
제대로 케어 못받은 머리. 화장 하나 없는 쌩얼.
뭐 볼게 있다고 이런 패션테러리스트를 찍나? 하긴, 미친 놈이니까 찍겠지.
나는 일어서서 맞은 편 그 사내에게 다가갔다. 이 인간도 나 못지않은 옷 센스를 자랑한다.
“찍었죠?”
당황하는 사내.
“아.. 그게.”
“줘 봐요. 스마트폰.”
“그냥 내 사진 본 건대.”
“쓸데없는 나르시시즘 보이지 마시고, 사진 보여 달라니까.”
“아, 아니. 사진 안 찍었다니까.”
“저기 경찰 아저씨~”
사내의 시선이 딴 곳을 향하는 틈을 타서, 나는 순식간에 그 자식의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이..이봐..”
당황하는 그 사내를 무시하고, 그의 스마트폰 사진들을 검색했다.
진짜로 그 사내는 나에게서 어떤 것도 찍지 않았다. 찍는 흉내만 냈을 뿐.
하지만 난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자식 스마트 폰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담은 적나라한 사진들, 덜렁이는 그것까지 담겨져 있는 사진들이 보였다. 이, 구역질나게 더러운 놈.
당황해서 그를 보니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날 보고 웃고 있다.
알고 보니, 이 자식, 자기 스마트폰을 보도록 날 유도한 거다.
그리고 지금 나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다. 이 변태 자식.
―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상황을 관찰하는 주위의 시선들이 느껴진다.
주위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 새끼 변태다라고 소리쳐야 하나.
주먹질을 해야 하나.
그런데, 그가 억지로 보여 준 것도 아니고, 내가 억지로 뺏어 본 거다.
그의 사진기에는 자기 나체 사진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내가 사과해야 할 사안인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의 웃음이 더 사악해진다.
“이제 그만 내 꺼 돌려주고 사과하시죠?”
난 아무 말 못하고 그를 째려볼 뿐이다. 내 손에서 자기 스마트 폰을 가져가며 그 놈이 아무도 안 들리게 말했다.
“어때, 죽이지?”
나도 모르게 그를 머리로 박아 버렸다.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그의 ‘억’하는 소리가 들렀다.
그의 코에서 코피가 흘리는 걸 봤다. 그리고는 전철이 다음 역에서 섰을 때 그냥 내려버렸다.
“휴우~ 미친 새끼. 야 이 ******야. 띠리리리같은 *야.”
떠나가는 전철의 뒷 꼬랑지에 욕을 해 봐도 이 불쾌한 기분이 쉬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이 기분은 고아로서 경험했던 부정적인 감정하고는 또 다른 것.
나는 좀 전의 기억을 없애려고 애꿎은 머리카락들을 못 살게 굴며, 머리를 북북 긁어댔다.
아무래도 오늘의 불쾌한 기억은 날카로운 술잔에 깊게 베인 것처럼 오래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머리라도 좀 개운하라고 미용실을 갖다 와야겠다.
“이 머리를 자르실려구요?”
미용실 직원이 허리까지 찰랑이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진다.
“네. 잘라주세요. 과감하게. 단발로.”
아까 미친 놈에게 당한 기분을 풀고 싶었다.
“지금까지 기르신 게 아까우신데..”
“기른 거 아니여요. 하루아침에 펑 하고 생겨난 거지.”
“아, 네. 어떤 스타일로?”
“스타일은 모르겠고, 단정하게. 누구 손에 잡히지 않게.”
전투훈련시간동안, 내 긴 머리채를 동아줄처럼 잡고 두들겨 패던 헤프를 생각했다.
“아, 그럼 태슬컷으로 해드릴까요? 일자컷으로 해서.”
“네. 주지승 만들어도 상관없으니까. 짧게.”
“호호. 손님은 유머가 넘치시네요.”
“그렇죠? 제 주둥아리가 접신했어요. 입에 귀신 살거든요.”
“네?”
“시나락까먹는 소리 하고 있죠.”
“호호호.. 진짜 재밌다.”
여기서 그쳤어야 했는데, 이쁜 직원이 웃어주니 주체가 안됐다.
“머리숱 없는 사람 오면 무슨 음악 틀어주며 머리 깎아줘요?”
“네? 그거야, 뭐..”
“반야경 트세요.”
“호호호..”
때마침 탈모가 심한 분께서 옆에서 머리를 하고 계시다가 날 쪼려 봤다. 죄송합니다.
“근데, 손님은 진짜 연예인 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 손님처럼 이쁘신 분을 못 봤어요. 게다가 센스도 남다르시고. 진짜 인기 많으시겠다.”
점원이 내 머리를 매만지다가 감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인기 많으신 분께서 맨날 뒤지게 맞고 다닙니다.
나는 오늘 있을 훈련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손님, 헤어 컷 하고 나서 저희 미용실 모델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요.”
진심인가? 모델로 첫 데뷔하는 날이 되겠군.
“그럼, 컷 공짜로 해주시나요?”
“공짜는 아니고 50% 디씨? 아니지, 볼륨매직까지 해서 50프로 디씨해 드릴께.”
“매직은 오늘 새벽에 부렸고. 그냥 컷 반값 할인받을께요.”
한 달에 한번 피 흘렸다고 그 싸이코에게 뻥 쳤지.
“볼륨매직 50프로 할인 하면 엄청 큰 건데?”
“울 집 대장이 눈을 부라리고 기다려요. 이따 한따꺼리 할 일이 있어서.”
나도 여기서 편하게 머리 손질 받고 싶다. 제길.
“대신, 집안의 가보로 제 사진 잘 간직하세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한 나의 짧아진 머리를 본 헤프.
어김없이 감정를 배제하고 말한다.
“잘 깎았군. 그렇지 않아도 라테카움을 착용하려면 단발이 좋지.”
“라테카움이요?”
“전자가발로 불리우는 이동형 펄스 레이저 장치. 아울러 싸이킥 에너지 증폭기이며 안정 장치로 전투에서 사용되는 핵심적인 장비이다.”
“그럼 제가 알아서 잘 깎은 거네요?”
“잘 했다.”
이외로 고개를 끄덕이며 영혼 없는 칭찬까지 하는 헤프. 갑자기 불안하다.
“다음 주부터 시작하려는 2단계 훈련을 오늘부터 시작한다. 라테카움을 머리에 쓰고 본격적으로 하드하게.”
쓰벌, 내 무덤을 내가 팠다. 아까 왜 긴 머리를 깎느냐는 점원의 항변을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난 천장을 뚫어 버리는 소프라노의 곡소리를 내며 훈련에 참여하였다. 확실히 알겠다. 내 주둥아리엔 귀신이 살아있다. 귀신이 곡할 소리. 젠장.
편입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루의 반은 편입공부, 나머지 시간은 전투훈련, 이런 스케쥴이 계속 반복되었다.
집밖을 나가는 게 귀찮은 나는 매일 시켜먹었고, 일과가 끝나면 그냥 퍼질러 잠을 자는 게 일상의 반복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전투 훈련 속에서 나는 점점 튼튼해져 갔다.
처음 훈련이 시작할 때는 욕으로 시작했지만, 훈련이 끝나는 시간에는 성취감이 몰려들어왔다.
아직 본격적인 실전 전투를 하지 못해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나의 능력이 성장하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보니, 그 뿌듯함은 장난 아니었다.
물론, 매서운 헤프의 손속도 장난 아니었다.
메치고 들어 치고, 칼빵 맞고 총 맞고.
게임의 엑스트라로 출연하여, 칼빵이나 총알맞고 뒤지는 어느 이름 모를 좀비의 애틋한 심정이 매일매일 느껴진다고 할까.
일상의 모든 과업으로부터 해방되는 휴식의 날.
전에 종철이 자식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는데 이날 보기로 하였다.
6개월 전 보고 간만에 보는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사귀어왔던 어찌 보면 유일한 친구.
그 친구와 난 쌍으로 묶여서 죳밥커플, 혹은 이끼류로 불렸다.
둘 다 170정도의 자그마한 키에 볼품없는 외모로
연애 한번 못해봤던 모태 솔로인 거지.
항상 이 친구를 만날 때는 오랜 추억을 공유해서인지 맘이 편하다.
그리고 요즈음 이 친구를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또 하나가 늘었다.
박지혁. 그 인간에 대한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
외출 준비를 하는데 마땅한 옷이 없었다.
우선 셀리카움(초정밀보호막)으로 온 전신을 덮어 쓸 것이라서, 치마는 당연히 입을 수는 없었고(그리고 치마는 당연히 있지도 않았고), '
대충 인터넷으로 산 후드티에 골반이 큰 여성용 청바지를 끼워 입은 후, 옷 위에 셀리카움 조각들을 달아두었다.
그리고는‘셀리카움’ 주문을 외쳐서 예전 한돌이었던 모습으로 변신하고 그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8시간안에 이 친구랑 만나서 놀고, 정보를 다 얻어야 할 텐데 시작이 촉박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