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난 너의 비밀을 알고 있다
나의 이야기가 다 끝났을 때, 웃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종철은 완전히 넋 나간 표정이며, 은성은 ‘저 새끼 뭐야’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 볼 뿐이다.
단지, 한 사람. 지혁만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얼굴 표정으로 날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난 내가 만든 이솝우화 한 편을 이야기했고, 아무도 웃지 않는‘웃긴’이야기가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러니까, 뭐야, 욕심이 뒤룩뒤룩한 사악한 두꺼비형이 맹꽁이 동생을 괴롭혀서, 맹꽁이는 황소개구리를 찾아갔고, 황소개구리는 지렁이를 렌트해줬고, 맹꽁이는 그 지렁이들에게 독을 살살 발라서 두꺼비 사는 곳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두꺼비는 지렁이를 먹다가 서서히 죽어갔다? 이게 웬 개소리야?”
"그..그러게요.은성이 형님. 그래도 재미있지 않았나요?"
상황을 파악하고 어색하게 웃는 종철.
나는 이 상황에서 박지혁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거들 뿐, 박지혁이 메인 아닌가?
내 이야기 자체는 웃기지 않는다.
개구리 세 마리가 벌이는 비극적 현실이 웃길 뿐.
박지혁이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차가운 온도를 자신의 목소리에 담아 말한다.
“한돌이라고 했나?”
“네. 형님.”
일단은 형님이라고 하자. 과감하게 내질러 보는 것이지.
“왜 이런 개소리를 지껄였지?”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형님에게는 웃길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요.”
지혁은 섬뜩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손바닥으로 얼굴 맞아 봤나?”
대화를 하는 당사자들만 빼놓고 다들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날 때리실렵니까?”
“나한테 귀싸대기 한 대 맞은 후 발을 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으면, 같이 놀게 해 주지.”
“어이, 지혁, 기분 나쁜 건 이해하겠는데, 저 딴 새끼 그냥 보내버려.”
“가만있어! 새꺄. 한돌, 너 『저 딴 새끼』가 될래 아님 맞고 같이 놀래?”
“전 맞을 짓 안했는데요?”
“네가 알겠지. 네가 맞는 이유.”
그 이유, 알고 있다.
그래, 이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고도 했는데, 이건 살 정도도 아니다.
다행히도, 상대방은 나에게 성공의 기회를 주고 있다.
“알겠습니다. 한번 맞아 보겠습니다.”
“입 꽉 다물어.”
각오했다. 주먹 쥐고 다리에 힘을 잔뜩 주었다.
쫘악~~~~~~~~~
그가 풀스윙으로 내 얼굴에 싸다구를 작렬했다.
별이 보였다.
상체가 살짝 휘청거렸다.
그러나, 난 두 발로 애써 바닥을 지탱하고 서있었다.
볼이 엄청 빨개졌을 것이다.
이 자식, 미녀의 뺨을 때렸다.
“이건 나를 희롱한 죄다. 다시 지금처럼 나대거나 지금 일 떠벌리고 다니면, 널 죽여버릴 것이다.”
“죽일 순 없을 겁니다. 제 도박은 이 거 하나면 족하니까요.”
“도박이라, 참 재밌네. 한 대 맞고도 저리 뻣뻣하니 웃기는 녀석이야.”
지혁은 갑자기 껄껄껄 웃어버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의 비극같은 인생에서 희극을 봤고, 그에게 그 희극을 깨우쳐 주었을 따름이다.
그나저나, 이제야 볼이 절라 아프네.
어떻하냐, 이거. 볼이 엄청 부을 거 같은데.
지혁과 은성이 잠깐 화장실로 같이 간 동안, 종철이가 쪼르르 내게 가까이 앉아 물었다.
이 녀석이 가까이 오니 매우 불안해 진다.
“너 무슨 짓 한거야? 그 형한테.”
“내가 그 새끼한테 무슨 짓 당한 거거든.”
“너, 네 뺨 괜찮으냐?”
그가 내 뺨을 만지려 해서, 그의 손목을 찰싹 쳤다. 지금은 절대 스킨쉽하면 안되지.
“만지지마. 남자끼리 남사스럽게.”
“뭐. 나도 만지고 싶진 않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야?”
“형제간 투자에 대해서 비꼬아서 이야기 한거야.”
“뭐?”
“그 이상은 안돼. 아까 못 들었어? 남에게 떠벌리면 나 죽인다고 하잖아.”
“우쒸. 우리가 남인가?”
“난 죽기 싫다.”
나는 베팅이 성공했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쉬었다.
―그랬군. 지혁이 녀석이 자기 형에게 선물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악성채무 가능성이 높은 외갓집 자금을 자연스럽게 끌어 쓰도록 해서 레버리지 수준을 높여 버린 후, 결정적 순간에 자금을 회수해 버린 것이라는 추측이 맞았어.
지혁은 로얄 살루트 38년산 위스키를 주문했다.
지혁은 다시 예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되찾은 듯 했다.
친구들이라고 우리를 불러주는 것을 보면 마음이 풀렸다는 것이겠지.
“어이, 친구들. 오늘부터 패거리에 낀 걸 축하하는 의미로 한잔씩들 하자구.”
구은성이라는 놈이 옆에서 잔뜩 못 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쪼려 본다.
뭐, 어쩔 거야, 나도 이제 한패인데.
내가 애초에 세운 계획과는 살짝 틀어졌지만, 정공법을 택한 것이 주효했다.
후후.
가만. 다 좋은데, 내가 술을 못하네? 38년산이라고?
여기서 이렇게 저 독한 술을 먹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저 술을 먹다간 뻗을 텐데.
시간을 보니 밤 10시. 셀리카움을 해제해야만 하는 시간까지 2시간 남았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술을 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랬다가는 다 된 밥에 왕건이 넣기 아닌가?
“똘, 이리 와서 술 한잔 받아. 코가 삐뚫어 지게 놀아보자고.”
저 자식, 귀싸대기 갈길 땐 언제고? 그에게 쪼르르 달려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잔을 내민다.
“술 받거라.”
“네, 형님.”
콸콸콸콸~~. 양주잔에 철철 흘러내리는 술.
재빨리 잔 밖으로 흘러내리는 양주를 혀로 닦아냈다.
벌써, 혀끝이 찡하다.
“우리 세계에 들어오려면 이 한 병은 다 마셔야해.”
그리고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그래야 너 같은 새끼, 술상무라도 쓸 수 있지.”
나 감사해야 되는 걸까? 여전히 그의 목소리가 차게 느껴진다.
“근데, 똘이, 너 향수 쓰냐? 냄새 맡으니 거기가 똘똘해지는데?”
저 새끼가 뭐래? 여튼, 지금은 잘 보여야 할 때.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술을 받아 마셨다.
헤프 박사가 준 약을 먹으면 얼추 어떻게 되겠지 생각하며.
지혁이 자꾸 술을 권한다.
한잔, 두잔, 세잔.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너무 쉽게 돈다고 생각하면서, 종철이와 껴안고서는 뭐라고 했던 거 같다.
그렇게 지껄이다가, 노래부르다가, 애교질 하다가 그냥 쓰러져 버린 것 같았다.
박지혁은 서슬퍼런 눈빛으로 술로 떡이 되어 쓰러져 자고 있는 한돌과 서종철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박지혁, 저 두 새끼들을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까?”
“우리가 노는 자리에 저 둘은 너무 격식이 떨어지지 않아? 특히 저 한돌 자식, 마음에 안든다니까.”
박지혁의 머리 속에서는 이솝우화를 이야기할 때 자신을 깔보는 듯한 한돌의 말투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에게 한 대 맞고 나서 건넸던 저 돌이 자식의 시건방진 시선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전쟁터에서 가치가 있는 병사는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는 법이지. 설사 그게 총알받이라도.”
“그럼?”
“잘 쓰고 버려야지. 특히 저 한돌이란 건방진 자식.”
“흐흐흐.. 그런 생각이었나?”
“내가 저 자식 속을 모를 줄 알았나? 일획천금을 노리고 쓸데없이 오버액션하는 그런 부류들의 속셈을.”
“후후 역시 지혁, 너 머리 좋다니까.”
구은성이 엄지손가락을 지혁이에게 턱 내민다.
지혁이는 자기에게 아부를 일삼는 이 친구가 세삼 부담스러워졌다.
“자, 지혁씨. 그럼, 우리 여자들이나 꼬셔볼까?”
“난 별로. 너나 꼬셔봐라.”
“흐흐.. 여자를 보면 너도 놀랄 걸.”
“누군데?”
지혁은 은성이가 사고를 칠까봐 걱정되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삼촌이 연애기획사 하잖아. 거기 눈에 띄는 애가 있어서, 불러왔지.”
“이 새끼가. 야.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했잖아. 나중에 말썽되는 짓 하지 말라고.”
“걱정마. 이미 다 비밀엄수를 위한 사전계약서에 동의했어. 지 입으로 말하면 지가 죽는거지.”
“너 혼자 해, 새꺄.”
“어허.. 이 쟈식, 아직도 혜정이 때문에 그렇냐?”
은성이 입에서 혜정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지혁의 안색이 급변하였다.
혜정,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
“맞네. 송혜정. 그 싸가지가 뭐가 좋다고.”
“몰라, 새꺄. 너 혼자 즐겨.”
지혁은 그대로 룸을 나가 버렸다. 담배라도 하나 피며 시원한 바람을 쐴 요량이었다.
“쟈식, 그럼, 나 혼자 즐긴다. 나중에 뭐라 하지 마,”
나는 정신을 잃고 자고 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며 깼다.
이건 술을 먹고 토할 때 느끼는 그런 울렁거림이 아니었다.
아차. 셀리카움.
나는 내 몸에 가득한 술기운을 애써 누르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안 떠지는 눈을 게슴츠레 떠서 확인하니 시간이 이미 새벽 12시를 갓 넘었다.
내 옆에 종철이가 고주망태가 되어 자빠져서 자고 있고, 옆에서 여성의 교태 어린 목소리도 들렸지만, 내 신경은 오직 화장실로 뛰쳐 가는 것이었다.
―더 있다가 피까지 토하겠어.
술로 떡이 된 몸이 제대로 가누어지지 않았다.
화장실, 화장실. 남자 화장실이 어디더라.
비틀비틀 거리며 애써 찾아간 화장실 입구.
거기에서 누군가를 스친 것 같았고, 죄송합니다라고 했던 것도 같고.
바로, 대변 변기 문을 걸어 잠그고 변기를 붙잡고 쓰러졌다.
그리고 내 의식 속에서 애써 정신줄 잡고 있던 말, ‘셀리뷰(셀리카움 해체)’를 나직이 외쳤다.
나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속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개워내기 시작했다.
-우욱~우욱~~욱
그렇게 개워내기를 10분 정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후들거리며 일어섰다.
그래도 매일 운동한 보람이 있어서, 이정도로 버티는 구나.
나는 대변 변기 문을 열고, 화장대앞에 섰다.
그리고 차가운 물로 얼굴과 손을 닦았다.
아직 온전하지 못한 정신 상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헤 웃었다.
거울 속 나는 검은 흑발의 가발을 뒤집어쓰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 생얼굴을 나한테 보여주고 있다.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눈부신 미모.
나한테는 너무나 과한 외모. 그리고 빨갛게 부어오른 왼쪽 뺨.
헤벌레 웃으며 스스로에게 하는 말.
“야, 너 여러 사람 잡겠다.”
그리고 걸죽한 남자 목소리.
응? 걸죽한? 아차차. 음성 변조기.
음성 변조기가 주머니에 없었다.
이런. 변조기 찾으러 룸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정신은 바쁜데, 발걸음이 따라가 주지 않았다.
허겁지겁 비틀거리며 걷다가, 눈앞에 어떤 단단한 물체와 부딪쳤다.
제법 세게 부딪쳐서 별을 또 보았다.
정신거리고 나를 막은 물체를 쳐다보았다.
웅? 당신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