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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불길한 꿈 (11/68)



〈 11화 〉불길한 꿈

지혁과 나는 뽕쟁이를 피해 클럽을 뛰어서 나와 버렸다.
내 옆에 박지혁이 헉헉 거리며 나를 따라 뛰어왔다. 뭐야? 이 녀석.
체력이 바닥이잖아.
하긴, 나도 헤프가 준 알약 때문에 가뿐하게 뛴 거다.
정말 헤프가  알약은 만병통치약이었다.
피로회복제, 강장제, 항우울제, 게다가 술까지 깨는 기능까지.
 이제, 컨디션도 되찾았으니 다시 들어가서 그 뽕쟁이를 뽕 뽑을 때까지 열라 패버릴까?

“잠깐만.. 헉 헉.”

이 사람이 정말 죽을 듯이 가뿐 숨을 쉰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붙잡고자 마지막 숨을 들이쉬는 환자처럼, 고통의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고통이 느껴질 만 하네.


“잠깐만요. 당신 어깨에 피가?”
“네.  놈이 찌른 겁니다. 괜찮습니다.”


빨리 가서 소독해야 하는데.

“병원으로 가요.”
“병원으로 가기 전에 제가 구한 사람의 이름  압시다.”
“전 제가 구한 사람의 이름은 알아요. 박지혁씨.”
“나는 모르는데요?”
“그럼 당신이 구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이러깁니까?”
“아니, 지금  시점에서 제 이름 아는  뭐가 중요해요?”
“그러니까 저를 살리려면 이름을 알려주세요.”

이것 봐라? 꽤 고집 센 사나이군. 자기 목숨을 걸고 판돈을 거네? 아니지. 죽지는 않을 정도다. 어깨 정도 다치는 거야  일도 아니지. 그럼 판돈 걸만 하네.

“알고 싶어요?”
“전화번호까지 주시면.”
“우리 몇 번 봤죠?”
“저번에 딱 한번.”
“한번 본 걸로 이러시면 좀 그렇지 않나?”
“그 한번으로 당신은 제 이름을 압니다.”


그러네.

“지금 말장난 할 상황 아니니까, 병원 가세요.”
“혼자 가게 할 거면, 다시  클럽으로 돌아갈 겁니다.”
“미쳤어요?”
“칼 한번 더 맞고 뻗어버리죠. 뭐. 누구 때문에 칼 맞고 뒤지는 거지.”

뭐, 이런 논리가 다 있어?  자식, 뽕잽이한테 칼을 혀에 맞은 모양이다.
아니 혀에 칼을 맞은 모양이다.
칼에 혀를 맞은 건가?
나도 두뇌회전이 엉망진창일세.

하긴, 내가 같이 못 갈 이유가 없다.
좋은 기회잖아.
박지혁과 더 친해질.
사실 이건 내 계획은 아니었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지.
뽕쟁이 만나는 것도 오늘  계획에는 없었다.


“좋아요. 같이 가요.”


지혁이가 잠시 걷는가 싶더니 픽 쓰러진다.
왜이래? 이사람.
사람들이 시선이 우리에게로 모여든다.
이 사람이 탄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누구씨, 제가  걸을 수가 없네요.”
“왜, 다리에 이상 있어요?”
“글쎄요. 도저히 걸을 수가 없네요.”


어쩔 수 없지. 그럼. 내가 힘 좀 쓰는 수밖에.

“제가 부축해 드릴 게요. 저한테 기대세요.”
“누구씨, 감사합니다.”
“굳이, 누구씨라고 안불러도 되거든요? 그것도 크게.”
“누구씨, 죄송합니다.”
“죄송할  아니거든요.”
“누구씨..”
“그만 하라구요. 쫌.”

확 팽개쳐 버릴까보다.
보아하니, 표정에 웃음기 도는 것으로 보아 이 자식 즐기고 있다.
거기다가  가까이 붙으려고 작정한 느낌이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제 이름이 박지혁인  어떻게 아셨어요?”

 자식이 물었다.
그럼 진작에 알고 있었지.
네가 내 밥인데.
그러나 밥을 밥이라고 할 수 없는 홍길동의 심정을 가지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한돌이 내 쌍둥이 친오빠예요.”


가족 사기단 발족이요!


“네?”
“한서. 그게 제 이름입니다.”


**

지혁이는 그 빌런과 싸우고 도망쳐 나오는 도중에 발을 삐었다.
아직까지 이름을 모르는 폰 속의 그녀에 맞춰 뛰려니 무척 힘이 들었지만, 지혁의 얼굴에는 웃음이 슬 피어났다.
그녀가 냉큼 자기 손을 붙잡고 같이 뛰어준 것이다.
부드럽고 따스한 손으로 온기를 그에게 전해주며 같이 뛰어 준 것이다.
깍지를 끼어볼까 고민하던 그는 발목과 어깨의 통증에 그만 자리에 멈춰 버렸다. 더 이상 뛰는 것은 무리였다.
그가 숨을 헉헉 거리며 자신의 발목을 원망스럽게 본다.
그것을 걱정스럽게 본 그녀가 지혁이를 부축해 주겠노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부축을 받아 자신의 차까지 걸어갔다.


이제야 그녀의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도 누추한 복장. 후드티에 청바지. 그리고 어떤 화장도 하지 않은 맑고 깨끗한 얼굴. 그리고 그녀에게 풍겨오는 체리 샴푸향.
 냄새, 어떤 녀석이 풍겼을 때는 악취였는데, 이 여자에게로 오니 매일 맡고 싶은 향기가 된다.


그 향수의 주인공이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한서. 한돌의 쌍둥이 동생.
전혀 닮지 않는  사람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미스터리에 지혁은 세상의 불가사리를 떠올렸다.
그러나 여튼 좋았다.
그녀의 이름을 알았고, 그녀의 가족 중 한명을 알았다.
무엇을 안다는 게 행복하다는 걸, 그는 오늘 처음 안 것 같았다.
한돌, 이외로 그에게 쓸모가 많은 인간이었다. 한서로 인하여 쓸모에 가치까지 더했다.
한돌, 친해질 가치가 있는 인간이 된 것이다.




병원 응급실. 생각보다  많은 치료와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근육부위 손상이 없는 단순 자상이었으나, 칼이 좀 깊게 들어간 모양이었다.
환부를 소득하고, 부분마취 뒤에 상처부위를 봉합하는 수술이 시간이 걸렸다.
간단한 수술 후, 상처부위를 붕대로 감고서, 수술실을 나온 지혁이는 수술실 밖에서 의자에 누워 있는 한서를 발견했다.
좀 전에 환자 보호자명 적을 때 한서라고 적고 지혁 이름 옆에 ‘두 번째 보는 인간’이라고 적어서 저절로 웃음을 자아냈던 여자.
그리고 지금은, 지혁이가 한서를 바라보고 있고, 한서는 꿈속을 해매고 있다.

지혁이는 조용히 한서 옆에 가서 앉았다.
새끈새끈 잠을 자는 모습. 머리카락 한 올이 내려와 그녀의 입가를 간질이고 있고, 그녀의 숨소리에 맞추어 머리카락은 가늘게 춤추고 있었다.

“잘 자요. 사랑스런 아가씨.”


한서가 잠시 움찔 거리더니, 계속 잠을 이어간다.
지혁이는 그녀의 입가에서 익숙한 양주 냄새가 나는 것을 알고 빙그레 웃었다.
자기 오빠에게 술 한잔 얻어 먹은 모양이다.


나는 흑  기운이 창렬하게 빛나는 적과 맹렬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가망 없는 전투.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지쳐가고 적은 더욱 강대해 갔다.
적이 든 쌍 창의 끝에서 서린 창기(槍氣)의 기운이 구형에서 아래위 10자(6미터)로 길게 뻗어 나갔다.
그리고 적이 창을 쥐고서 벌쩍 튀어 둠의 천장을 밟으며 전속력으로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히 나의 위쪽에서 태양혈을 겨냥하고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입을 떼었다.


“레피에파(쌍검 레벨6)”


나의 손에 여러 물질들이 조합하더니,  손에 길고 날카로운 쌍검이 황금빛 형태로 순식간에 나타났다.
적의 둔탁하고 무거운 쌍창의 공격 궤도를 막기 위해서는 쌍검의 짧고 빠른 연타성 공격이 효과적이리라.


―피이익, 찌르르르륵


창과 검이 정면으로 조우하면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천지를 울리고, 검은빛과 금빛이 뒤엉켰다.
 상대는 정말 어마어마한 빠르기로 그 크고 날카로운 창기를 여러 갈래로 뿜으며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초식 하나하나가 깊고 웅장하며 날카롭기 이를  없었다.
인체의 사혈을 동시에 노리는 적의 창기 하나하나가 엄청난 위협이었다.
나의 쌍검에서도 적의 창기에 필적하는 검기를 뽑아내어 방어를 하고 있으나, 적의 내려치는 힘이 대단하여 계속 뒤로 밀리고 있는 형세였다.
순식간에 20합을 주고 받았을까..,

그러나 힘의 차이는 압도적. 적은 카테고리 7의 엘리트이고 나는 카테고리 6 등급인 것을.
나의 힘은 빠르게 소멸되어 갔고, 내 손에 소환되었던 쌍검도 그 빛을 잃어 갔다.
그 순간, 매섭게 몰아오던 창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거대한 원형의 에너지파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쿠우우웅웅


그 에너지파의 충돌로 나를 감싸던 셀리카움(보호막)이 완전히 파훼되었다.
그리고,  손에서 사라진 무기.
그리고  옷을 완전히 저미는 검은 피의 웅덩이.
그리고 그대로 쓰러진 나.
내가 할 수 있는 극한대의 싸이킥 에너지를 뽑았고, 그 부작용으로 나의 몸은 견딜 수 없이 부서져갔다. 무기를  수 있는 힘이 없다.
이제는 순순히 나의 운명을 적에게 맡겨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그 흑막으로 뒤덮인 적이  앞으로 다가왔다.


“감마족의 암살자여, 할 말이 있는가?”
“난 이미 죽을 자. 깨끗하게 소멸할 뿐이오.”

그 적이 내 앞으로 와서 조용히 지껄인다.


“혼자 가는 죽음의 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일세.”
“뭐라고?”


갑자기 그의 손에서 커다란 왜곡의 공간이 생기더니, 그 공간으로부터 생명 없는 육체 하나를 끄집어 낸다.

“이 자를 잘 알고 있겠지?”
“!”

결코 내 앞에서 죽어서는 안 될 사람. 그가 내 앞에서 육신으로 누워있다.

“왜.. 왜,,  사람까지? 왜, 죄없는  사람까지?”
“감마족의 명예를 더럽힌 죄 값으로 이것으로 충분하지 못하지.”
“이.. 나쁜 새끼.”
“아직 끝나지 않았네.  보시게.”

그가 기쁜 나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운다. 저 주문은...

—파에르 에스테 네바 꾸르수바 (영원한 안식을 그대에게)

그의 주문이 끝나고 나서,  앞의 육체는 다리부터 서서히 먼지로 사라져갔다.
육체의 파편이 먼지로 되어 허공을 날라 다니고 있었고, 나는 멍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 그렇게 사라지는 마음.

“한서씨. 괜찮아요?”
어디선가 나를 다급하게 깨우는 목소리. 눈을 떴다.
아,  얼굴이 맞닿았던 곳이 축축하다. 이럴 수가.
내가 울다니. 바보같이.


“왜그래요? 한서씨. 괜찮아요?”


사색이 되어 나를 바라보는 지혁의 얼굴이 보인다.
난 급하게 내 눈을 만져 보았다. 습기가 느껴진다.
나, 울었던 거야? 왜?

“제가  울었을까요?"

멍하게 지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거야 슬픈 꿈을 꾸었으니까요.”
“이게 나의 미래일까요?”


의미 없는 중얼거림. 그리고 거기에 답하는 지혁이의 음성.

“아뇨. 한서씨가 어떤 꿈을 꾸셨는지 모르지만, 그 미래는 아닐 겁니다.”

나는 지혁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절 죽음에서 건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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