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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이상한 삼단논법 (12/68)



〈 12화 〉이상한 삼단논법

상황을 디테일하게 정리해 보기로 했다.
 피가 난무하는 무협지  인물이 되는 꿈을 꾸었다.
거기서 꼴까딱 죽기 직전이었다.

무서워서 울었다. 깨어 보니 진짜 울었다.
울었더니, 이 남자가 앞에서 날 진지하게 걱정해준다.
걱정해준다. 걱정을..
음. 한 가지 결론이 삼단논법에 의해 도달된다.

박지혁, 그는 날 좋아한다.
이 가설이 맞는 거지?
그 가설이 맞느냐고 물어 볼까? 노우. 현 시점에서 너무 빠르다.

그럼 가설을 확실한 사실로 만들자. 사실로 만들어 버리면 내 계획이  탄력을 받는다.
이 남자 앞에서 여자여자해주면 되는거 아냐?
마음을 낚는 좋은 방법이다. 오케이.
근데 여자여자 어떻게 하는 거야?
.......

생각해 보니 방법이 허술하군.
여자가 뭔지 모르는 내가 여자여자한다고 했다. 이건 불가능.
그럼 다시 처음 논점으로.
에이 모르겠다.
복잡한 내 생각을 환기시킬 겸, 나는 그에게 인사부터 했다.

“절 죽음에서 건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그 꿈이 엿 같았거든.
얼굴이 붉어지며 지혁이가 말했다.

“뭘요. 제가 한  없는데요.”

적어도 흔들어 깨우기는 했지.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이제 팔 괜찮아요?”
“네. 덕분에.”
“우리가 병원에서 밤 샜네요. 같이.”
“그러게요.”
“아, 지금 몇 시나 되었죠?”
“새벽 5시입니다.”

5시.. 아차. 종철이? 지금 종철이가 구은성이란 사람과 같이 있다.
사내 둘이 룸에서 날밤 깠네?
지혁이와 내가 동시에 각자의 폰을 확인해보았다.
무수하게 많은 갈 곳 잃은 메시지들. 종철이가 죽어가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메시지를 날린 모양이다.
둘이 같이 LOL할 때도 보지 못했던 현란한 손놀림이 느껴지는 메시지들.

[종처리: 야, 여기 신음소리 장난 아니다. 둘이 떡하는  라이브로 도청중]
[종처리: 살려줘. 날  데려가. 눈도 못 뜨고 있단 말야.]
[종처리: 어디야? 제발 와서 날 좀 데려가줘.]
[종처리: ㅆㅂ. 너만 토끼냐?]
[종처리: ㅆㅂㅆㅂㅆㅂ]

시간이 지날수록 좀비에 물린 종철이가 좀비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갈수록 메시지의 가독성이 떨어진다.
어떡한다? 설마 은성과 종철이 뜨거운 밤을 불태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종철이 불태워지고 있던가.

“오빠를 걱정하시는가 보네요?”

지혁이가 남자인 나의 안부를 묻는다.

“아뇨. 종철이가 걱..”
“종철이요?”

살짝 저 사람의 표정이  좋아지네.

“친오빠가 종철이 오빠 안부를 물어봐서요.”

곳곳이 지뢰밭이다. 조심해야지.

“내 친구한테 종철이 잘 좀 봐달라고 전화했습니다. 지금즈음 근처 모텔에 있겠죠.”
“다행이네요.”
“오빠가 집에  도착했대요?”
“네? 네.”
“친오빠가 나쁘네. 여동생 챙기지도 않고 그냥 혼자 가고.”

그 친오빠 저와 자웅동체이십니다.
지혁이가 또 귀찮게 물어본다.

“근데, 어떻게 한서씨까지 클럽에 오게 되신 건지?”
“그게, 오빠가 클럽 구경시켜 준다고 와보라고 해서.”
“오빠가 개방적이네요.”
“네. 쓸데없이.”

내가 말 꾸며놓고 의심한다. 이런 남매가 있을 수 있나? 동생에게 클럽오라는 오빠나, 오랬다고 바로 쪼르르 달려가는 여동생이나. 고아라서 내가 아는 게 없다.

“후후후. 가만 보니, 한서씨가 오빠를 닮은 데가 있네요.”
“겉모습은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요?”
“말투나 개그 센스가 똑같습니다.”
“그.. 그렇네요. 아무래도 쌍둥이니까, 그거라도 닮아줘야죠.”

생각해 보니, 종철이에게 내게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 거짓을 알려줘야 한다. 그 놈이 이상한 소리 하면 일이  틀어지는데.

“이제 그만 나갈까요? 퇴원수속 다 밟았는데.”
“네? 네. 아, 근데 집에는 전화 안하셔도 돼요?”
“이미 알 겁니다. 오늘 엄한 데서 밤 새는 거.”
“여기가 엄한 데기는 하네요.”
“그렇죠.”

갑자기 할 말을 잃은 우리 두 사람. 음, 각자 헤어질 타이밍이군. 너무 처음부터 붙어 있어도 안 좋다.

“저, 한서씨...”
“네? 아 이제 헤어질 시간인거죠. 그만 가볼께요.”
“아뇨. 그게 아니고 국밥 먹으러 갈까요?”
“네?”
“같이 밤을 지새운 기념으로다가. 여기 병원 지하에서.”

그래, 어떤 의미를 내세우든 배는 고프다. 먹으러 가자.

“아사 직전에서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해주시고.

“하하하.. 그런가요?”
“그런거죠.”
“한서씨!”
“왜요, 누구씨?”
“그거 알아요? 한서씨가 한 말들,  설렙니다. 저한테.”

그의 말에 대답 없이 방긋 웃었다. 그리고  웃음에 보조개가 함께 있었을 것이다.


공짜로 먹는 새벽밥.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국밥의 소리와 냄새에 나는 완전히 무장해체했다.
열심히 국밥을 말아 허겁지겁먹는 나를 흐믓하게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때 편의점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 생각나요?”
“네?.. 네.”
“그 친구한테 제가  신세 좀 졌죠.”
“네. 그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이상한데 웃긴 사람이 있다고.”
“하하. 그 한서씨 친구도 정말 재미있는 분이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장난  쳤습니다.”

 장난, 정말 진절머리가 났었다.

“지혁씨, 그런 장난 함부로 치지 마세요. 당하시는 분은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앞으로 자제하겠습니다. 한서씨가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럼 이제 떡밥을 던질 시간이다.

“제 친구, 지금 편입공부하고 있어요. 한국대학교 경영학과를 가고 싶다나?”
“아, 거기는 제가 다니는 곳인데?”
“와, 그래요? 마침  됐다. 사실 그 친구가 되게 똑똑한 애인데 아깝게 수능시험을 못봐서.”
“똑똑하다? 그런 거 같아요.  분 말할 때 똘망똘망 하시더라구요.”
“만약 걔가 경영학과로 편입하면, 옆에 두고 봐보세요.”

약간 부담스러운 듯한 표정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걔랑 소개팅 연결 시켜 주려는 게 아니구요, 기업 경영 전략 쪽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은 친구라구요.”
“아.. 네..”

이 사람의 반응이 떨떠름하다. 그럼  이상 이야기하면 일을 망친다. 오늘은 이 정도까지.

“혹시 한서씨 그 친구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한얼입니다. 그냥 잘 기억해주세요.”


**

지혁은 이한얼이 꿈속을 헤메는 동안 병원에서 은성이와 통화했다.
자기 후배 종철이를 우선은 모텔로 데려다 재워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또.

“거기 화장실에  맞은 새끼 하나 있을 거야.”
<그게 뭐?>
“근처 CCTV 확인해서 그 새끼 얼굴 찾아내.”
<무슨 일 있었어?>

지혁은 그의 면전에서 칼을 휘두르던 녀석의 얼굴을 기억하였다.
 잔인한 미소는 당분간 기억에 오래 남을  싶었다.

“그 새끼 출입시켰던 애들  잘라내고.”
<왜그래?>
“그 녀석이 화장실에서 나와 싸우다가 내 어깨에 칼질했다.”
<뭐라고?  미친 새끼가 돌았군.>
“철저히 갚아줘야지.  새끼 때문에 내가 죽을 뻔 했는데.”
<그 새끼 잡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잡으면 어떻게 할까?>
“전문가에 연락해서 본때를 보여줘. 죽이진 말고.”
<알았어. 내가 그거 전문이니까.>

은성이는 이런 어둠의 일을 잘 처리하는 친구다.
그래서 내가 옆에 두고 있는 것이지.

“근데 그 종철이랑 같이  애 말야. 한돌.”
<어,  똘아이>
“혹시 못 봤어?”
<그 똘아이 새끼, 화장실로 쳐나가고서는 그 뒤로 다시 안보이던데?>
“그래? 알았다.”

돌아이 녀석은 중간에 집을 간 모양이군.
잘해 주려고 했더니만.

<참, 근데 말야. 나 천사 봤다.>
“뭐?”
<네가 없는 사이에 그 천사가 룸에 강림하여 무엇을 찾더라고.>
“음.. 어떻게 생겼는데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냐?”
<정면으로 한번 시선을 마주쳤는데, 와, 이 세상 사람인가 싶더라. 옷은 대충 걸쳤는데, 얼굴에서 빛이 나. 차마 말을 못하겠어.>
“그녀가 혹시..”

지혁은 개운치 않는 뒷맛을 느끼며 전화를 끊었다.
여자의 외모에 대해 냉철하던 구은성이 이 정도로 말한다면, 그건 이미 누군가에게 마음을 뺏겼다는 이야기다.
혹시 그 대상이 지금 병원에서 자고 있는 한서라면 이건 간과할  없는 문제이다.

어쩐다? 지혁은 한서를 깨워서, 은성과 만난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이제야, 혜정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났는데, 둘 사이에 또다른 변수가 생기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다.
한돌이 한서의 친오빠라고 했었지.
한돌을 곁에 두며 한서와의 관계를 더 단단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지혁의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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