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보이지 않는 위협속의 광기
친구로부터 술벼락을 맞는 것은 그리 좋은 추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마음 속으로 의지해 왔던 절친에게서 술을 입술이 아닌 얼굴로 받았을 때,
그 기분은 사람 발에 밟혀지는 여름 낙엽처럼 더러웠다.
종철이와 함께 했던 과거의 파편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지면서, 나는 종철이에 대한 원망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예전의 난 널 이 손으로 구했는데, 현재의 넌 날 이 술로 구타하다니.
마음이 좀 쓰리다, 개새야!
참을 걸 그랬다.
여자가 되도 주먹이 먼저 나가는 그 버릇은 전혀 바뀌지가 않았다.
술을 온 얼굴로 먹은 후 펀치를 날렸고 종철이는 코피 한 방울과 함께 쓰러졌다.
난 씩씩거리고 식당 밖으로 나와, 지금 이렇게 지하철 역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다.
세면대에 가서, 더러워진 기분을 씻었다.
어쩌다 처음 한 서툰 기초화장이 술로 다 엉망이 되었고, 머리카락 사이로 시큼한 알콜 냄새가 풍겨왔다.
아, 알고 보니 내가 한 턱을 낸다고 해놓고서는 그냥 와버렸다.
나보다 종철이의 기분이 더 엿 같을 지도 모르겠다.
전철을 타고 가는데 앞에서 자리가 났다.
하루 종일 서있는 알바를 하여, 다리가 아프지만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왜 앉지 않았을까?
그때, 난 놀랍게도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갑작스럽게 터진 감정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 나 지금 슬퍼, 울 것 같아, 이제 울 거야, 이런 방식의 전개는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한 모금 떨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폭풍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나는 대체 왜 울어 버린 것일까? 솔직히 알토당토한 야망을 품었던 내가 한심해서?
아니면, 내 유일했던 죽마고우마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서?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내가 울어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감정은 예전에 없었던 거 같은데, 이게 혹시 여자사람이 되어가는 하나의 관문인 것일까?
아, 괜히 감정이 울적해지고 배가 뻐근해진다.
그럼 내가 운 것이 달거리 때문에 그런 것인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은 참으로 빨리 오는군.
내가 원하는 것들은 항상 느려터지고.
오늘은 여러모로 아프다. 집에 가서 잠이나 펑펑 자야지.
서울의 한강을 바라보이는 60층짜리 거대한 건물,
태양광이 반사하는 스카시 재질의 SH라는 거대한 사명(社名),
이 건물에서 가장 풍광이 좋다는 40층에 위치한 경영기획실,
그 곳에는 20대 후반에 지나지 않는 새파란 젊은이가 한강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는 기밀한 상황 판단과 다수의 투자실적으로 경영인 3세 중 드물게 20대의 나이로 경영기획실장의 자리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디스플레이 사업 부분에서 후행주자인 MATT를 공격적으로 합병하는,
소위 적대적인 M&A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잘 나가던 그에게 선물투자에서의 손실은 뼈아픈 실책으로 남았다.
따지고 보면 무리한 M&A로 인한 자금 압박을 나름대로 돌파해 보고자 한 것인데,
악성채무화된 차입금으로 인하여 재무구조를 더 악화시킨 부의 레버리지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마음이 급할 만한데, 박광혁은 이외로 편안해 보였다.
오히려, 무엇인가 즐거운 거리가 생겼다는 듯 자신의 특유한 웃음 소리를 보이기까지 하였다.
“하비서, 방수혁 과장은 왔나?”
박광혁 실장 옆, 칼같이 각 잡힌 양복을 입고 서 있는 사내가 응답했다.
“네. 도착했답니다.”
“방수혁 과장을 위한 파티는 준비가 다 되었겠지?”
“물론입니다. 충분히 즐기셔도 뒤탈이 없게 잘 준비하였습니다.”
박광현은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하비서를 믿음직하게 바라보았다.
“좋아요, 들어오라고 하시죠.”
곧, 문이 열리고 허리가 다소 굽고 키가 작은 중년의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각종 풍파를 겪어서 피곤에 쩌든 50대의 얼굴에 약간의 두려움과 이마의 굻은 주름살을 섞는다면 바로 이 사내가 될 것이다.
“네. 박광현 경영실장님, 부르셨습니까?”
“어서 여기 소파에 앉으세요. 방과장님.”
방과장이 소파에 앉자마자, 하비서가 문가 쪽에 무엇인가를 떨어뜨리더니 중얼중얼 거렸다.
그때, 소리와 시각을 막는 빛의 장막이 순간적으로 쳐진 것을 하비서 외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박광현 경영실장님.”
방과장은 박광현 실장을 말할 때는 그의 직함과 함께 풀 네임으로 이야기해야 함을 익히 알고 있었다.
“방과장, 전에 아일랜드 유전 개발과 관련, 그쪽 국유회사와 우리 간 MOU 맺는 일에 관여하신 적이 있으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그럼 실은 아일랜드 유전이 실제로 WTI(서부텍사스중질유)나 브렌트유에 비하여 황이 2% 이상된 고유황유임도 알 것이고.”
“네? 무슨?”
“별거 아닙니다. 확인할 게 있어서.”
“음.. 그건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실장님.”
방수혁 과장은 무의식중에 몸을 사려야 할 때임을 알았다.
이건,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서 습득된 동물적인 감각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요? 의외입니다. 당사자께서 그걸 모르시다니. 참으로 프로페셔널 하지 않으시군요.”
“아? 네.. 죄송합니다. 그 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미 끝난 일을 알아보긴요. 됐습니다. 근데 하나는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WTI나 두바이유와 같은 저유황유를 저희가 개발한다고 소문나면 높은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가 수익을 얻기 전에 아일랜드 원유에 대한 정보가 밖으로 샜더라구요.”
"......"
방과장은 바짝 긴장했다.
이 박광혁 실장이 정보를 누설할 혐의를 자기에게 뒤짚어 씌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탓이었다.
“쥐새끼가 있는 것 같습니다. SH그룹과 날 엿먹이려는.”
“설..설마,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하하. 제가 설마 의심 같은 걸 하는 사람으로 보입니까?”
“저는 절대로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줄.”
방수혁 과장이 하얗게 얼굴이 질렸다.
“나는 무엇을 묻기 위해서 당신을 오게 한 것이 아닙니다.”
“저.. 절대.. 제가”
박광현 실장이 방과장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행동에 따른 댓가를 드리기 위해서이죠.”
갑자기 하비서가 방수혁 과장의 정수리를 세 개 내리쳤고, 방수혁 과장은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방수혁 과장이 의식을 찾았을 때에는 그의 몸이 하비천 비서에 의하여 결박을 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끔직하게도 그의 아랫도리가 다 벗겨져 있었으며, 그리고 자신의 주요한 부위로 하얀 거즈가 덮여 있었다.
그의 자그마한 물건이 거즈 사이를 뚫고 외롭게 솟아있는 모습은 기괴하기보다는 뭔가 서글퍼 보였다.
방수혁 과장은 지금 이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부터 쥐새끼를 처단하겠습니다.”
박광혁 실장이 외과용 수술 세트를 방수혁 과장이 보는 앞에 꺼냈다.
방수혁 과장은 어리둥절하다가 저 수술세트의 의미를 깨닫고서는 놀라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마취약을 준비를 못 해서, 어쩐다? 할 수 없군요. 암적 부위를 그냥 떼어내는 수 밖에.”
“왜 이러십니까, 실장님. 실장님, 제발.”
“이게 좋겠군.”
박광혁이 방과장의 말을 무시하고, 길고 날카로운 메스 하나를 꺼내 그의 눈앞에 보였다.
박광혁은 결사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가만있어요. 가만. 움직이면 더 아퍼.”
그가 길고 날카로운 수술용 메스를 그의 귀두 끝 요도구의 벌어진 틈 사이로 넣었다.
방수혁 과장은 두려움과 공포로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그의 목과 입을 막는 하비서의 강한 압박으로 죽어가는 신음만 낼 수 밖에 없었다.
—음~~으~~음.
사각사각.
수술용 메스가 금속음을 내면서, 방수혁 과장의 귀두 끝이 선혈과 함께 잘라지고 있었다.
붉은 피가 그의 중요한 곳을 모두 채우면서, 방수혁 과장은 고통 속에서 감전된 육체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좋아요. 더 떨어 봅시다. 고통에 찬 인간의 모습만큼 좋은 예술작품이 없거든.”
광혁은 메스 한쪽 칼날을 더 깊이 요도구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서서히 왼쪽으로 돌린다.
―으.. 으아... 아아..
“듣기 좋은 소리야. 이번에는 이쪽은 어떨까?”
다시 오른쪽으로 메스를 격렬하게 돌리니, 자지러지는 방과장의 고통이 광혁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
방과장은 격렬한 고통에 온 몸을 움직이려 하고 있으나 그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방수혁 과장의 턱과 팔을 붙잡고 있던 비서가 짧게 말했다.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시시하게.”
“물리적인 고통은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입을 봉해야 할 때입니다.”
고통으로 넋이 나가 있는 방수혁 과정을 보고 입맛을 다지던 광혁은 결국 비서의 말에 타협하기로 하였다.
광혁이 신호를 하자 하비서가 캡슐을 꺼내 방수혁 과장의 입에 집어 넣었다.
“당신, 이걸 삼켜도 죽고 뱉어도 죽는다.”
“으...으...”
“살고 싶으면 입에 물어.”
캡슐이 서서히 녹으면서, 정체모를 녹색의 액체가 그의 입가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과장은 좀 전까지 자기를 괴롭혔던 고통이 사라져 가고 의식이 다소 몽롱해 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거 봐, 방과장. 이거.”
광혁은 방과장의 뺨을 쳤다.
방과장이 흐릿해 가는 의식을 부여잡으며 그의 눈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딸 사진이었다. 자신을 향해 방긋이 웃고 있는 고등학생 딸.
오늘 아침도 아빠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던 자신의 소중한 아이였던 것이다.
“...아...진..아.”
“방과장, 당신 딸 참 이뻐. 그지? 근데 말야, 난 당신 딸에게도 당신 당한 거 하고 싶거든. 이 욕구를 어떻게 한다?”
방과장은 눈가의 주름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름에 맺혀진 눈물이 흘러서 자신의 입으로 떨어졌다.
“으...흐..흐”
“네가 입을 다물어 준다면, 나도 욕구를 다물지.”
“우..흐..흐”
“경찰에 신고한다? 그럼 당신 딸에 생겨날 결과를 미리 상상해 보라고. 난 참 상상만으로 즐겁거든.”
“제..제..발”
“죽지도 마. 그럼 내가 귀찮아.”
“우..우..”
“풀죽어 지내지도 말고. 사람들한테 티 나니까.”
“흑흑..”
광혁이 울고 있는 방과장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늘 참 잘했어요. 그래서 내가 상을 줄게요. 현찰을 좀 챙겨뒀으니, 웃어. 웃으라고.”
“감.. 감사합니다.”
방과장의 입과 팔에 봉해졌던 압박이 풀려졌다.
그리고 방과장은 자신의 중요한 부분이 아무 상처 없이 재생되었다는 걸 발견하고는 경악해 마지 않았다.
“놀랬지? 우리 하비서가 의사야. 감쪽같지? 그래 오늘 일은 감쪽같이 없던 거야. 네가 당한 고통만 기억하라구. 크크.”
방과장은 그대로 땅에 납죽 엎드렸다.
“정말, 오늘은 없던 일입니다. 절..절대로 기획실장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아니, 배반해도 돼. 그럼 나에겐 즐거운 일이 생기거든.”
광혁은 소름끼치는 미소를 그에게 보이고는 가라고 손짓했다.
방수혁 과장은 자신의 소중한 곳을 덜덜 떠는 시선으로 보면서 문을 닫고 퇴장하였다.
광혁은 언제나 무표정하게 서있는 하비서를 바라보았다.
“어때, 하비서? 저 정도면 딴 맘 못 먹겠지?”
“언젠가는 죽이셔야 할 겁니다.”
“지금 죽이면 오히려 후환을 남겨.”
“한번 쥐새끼는 영원한 쥐새끼입니다.”
“클클클. 한 번에 죽이면 아쉽잖아. 그래야 이 즐거운 짓 할 기회도 생기고.”
광혁을 바라보는 하비서의 눈빛에 잠시 형형한 광채가 빛났다가 사라졌다.
“저는 박광혁 실장님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박광혁은 잠시 하비서를 보며, 그와 처음에 만났던 순간을 상기하였다.
차에 갑자기 이상이 생기고, 차가 언덕에서 굴렀을 때, 박광혁은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직감하였다.
차의 연료가 새고, 그 연료에 불이 붙어 차가 폭발하기 직전, 하비천, 이 사람이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그를 구했다.
그는 그때도 당황하지 않고 예의 그 무표정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그를 차에서 꺼내다가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박광혁은 그때 그의 결단력과 침착성에 반했다.
게다가 그의 신비로운 의술능력이, 그리고 뛰어난 무술실력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하비천에게 자신의 밑에서 일할 것을 제의했고, 하비천은 단칼에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껏 그는 자신이 맡은 바를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수행하였다.
너무나 완벽한 그에게 한때 의심을 품었던 박광현은 하비천의 뒷조사를 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의심할 구석 없이 깨끗한 사람이었다.
의과대학을 나와 의사자격증이 있었고, 동시에 아마추어 격투기 선수로서 활동도 했었다.
박광혁은 결국 하비천을 전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비천과 같이 지내면서, 자신이 그동안 몰랐었던 재능을 발견했고, 그 재능을 통해 쾌락을 거두었다.
그의 재능은 타인을 극단의 고통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것. 그는 점점 그 재능에 자신을 가두기 시작하였다.
“하비서, 아까 방과장 딸보고 생각난 건데, 아무래도 오늘은 회포를 좀 풀어야 겠어.”
“그런 비슷한 이미지의 여자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아랫도리가 묵직해서 미치겠거든. 그럼 하비서만 믿지.”
하비천 비서는 미리 박광혁의 기호에 맞는 여자들의 리스트를 뽑아놓고 있었다.
"참, 박지혁 주위를 캐 보라고 하신 거, 아직 특이사항은 없습니다만.."
"없습니다만?"
"박지혁이 뭔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생긴 거 같습니다. 확실하지 않아서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흠... 그거 흥미롭겠군. 더 탐문해서 알려줘요. 그럼 이따가 봅시다."
하비천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기획실장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자마자,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짙은 녹색의 음영이 드리워지더니, 그의 가는 입가에 흉소(凶笑)가 머물렀다.
곧 그의 폰으로 누군가에게 다음의 내용을 보고하고 있었다.
“재림의 날을 위한 타겟 나크-20A3, 순조롭게 변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