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영혼을 판 악마와의 만남
검은 색 벤츠 승용차가 파티 하우스의 정문에 들어섰다.
그 검은 색 벤츠를 운전하는 사람은 하비천.
하비천은 차의 룸미러를 통해서 뒷좌석에서 선잠에 빠져있는 박광혁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하비천의 감각을 거스르는 날카로운 전파.
하비천은 한쪽 이마를 찡그렸다.
―이건, 메씨카움(특수렌즈)과 하피카움(인이어)이 발산하는 고유 시그널 아닌가? 아군 측의 기기가 보내는 시그널이 아냐.
이것은 암살자의 것이다...
하비천의 머리 속에는 두 가지 선택 사항이 떠올랐다.
이 신호를 추척하여 적과 교전할 것인가..
아니면 적의 추격 전파를 파훼시키는 강력한 반전자기복사(reflective electromagnetic radiation)를 작동시켜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던가.
고민의 순간은 짧지 않았다.
하비천은 즉시 기어 근처의 콘솔 박스를 열고, 그 안의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강력한 고주파가 짧고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발산되었고, 그 소리에 박광혁은 잠을 깼다.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파티 하우스 정문 앞이라서, 잠시 브레이크를 세 개 밟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이제 일어나야지.”
차는 주차장에 서서히 들어서고 있었다.
“차희석과 박지혁, 둘다 파티장에 있는가?”
“네. 그런 듯 싶습니다.”
박광혁은 문득 창밖으로 한 커플이 사랑싸움을 하는 듯한 장면을 쳐다보았다.
“재미있는 그림이군. 잠깐. 저 남자는?”
“박지혁입니다.”
박지혁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박광혁의 입가는 비웃음으로 쪼개어졌다.
“그럼 옆의 여자는?”
“전에 사진으로 보내드렸던 이한얼입니다.”
“아, 그 매혹적인 여자..”
그는 그 사진 속의 얼굴을 자신의 기억에서 바로 꺼내놓았다.
보자마자 바로 뇌리에 각인된 그 절대 미모의 여자.
과연 저 여자는 지혁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일까?
보고된 바에 의하면, 지혁은 점점 더 저 여자에게 깊이 빠져들고 있다고 했지.
예전 송혜정을 망가뜨렸을 때처럼, 저 여자를 범한다면?
박지혁은 완전히 미쳐 버리겠군.
박광혁은 즐거운 상상에 빠지며,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차는 빈 주차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도착했습니다.”
“늦지 않게 왔군. 수고했어, 하비서.”
하비천이 박광혁이 앉아 있는 좌석의 문을 열었다.
“내리십시오.”
“후후.. 하비서. 난 언제나 당신의 운전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니깐.”
“과찬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새로운 세상, 그것 좀 운송해주었으면 하는데.”
박광혁이 언급한 새로운 세상, 그것은 바로 강력한 환각제이며 최음제였다.
그것을 복용하는 자는 단기간의 기억이 사라지며, 정욕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인데.
“그녀에게 쓰시겠습니까?”
“당연히. 이한얼이라고 했나? 그녀와 따로 만날 기회를 주선해 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 둘은 이한얼과 박지혁이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으로 서서히 다가섰다.
그 인기척을 느낀 이한얼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낯빛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박..광..혁?”
그녀의 뒤에 있던 박지혁의 안색도 급격히 어두워졌다.
박지혁 앞에 선 박광혁이 이죽이는 웃음으로 동생을 맞이하였다.
“허허.. 여기서 동생을 만나게 되다니, 참 반갑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박광혁이 자신의 손가락으로 지혁의 입술을 가리켰다.
지혁이 애써 말을 내뱉었다.
“요즘 밤을 새서 부르텄습니다.”
“부르텄다... 후후. 누구에게 맞아서 그런 건 아니길 바란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요즘 여자들은 애정표현을 그렇게 하나 보지요?”
“..........”
“인사를 안 하시니 제가 먼저 인사를 드리지요. 반갑습니다. 전 박광혁입니다.”
잠시 우물쭈물하던 이한얼이 바로 안면 표정을 부드럽게 고치고, 씩씩하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이한얼입니다. 제가 좀 과격한 여자입니다.”
박광혁은 그녀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씩씩하시고 발랄하시군요.”
“상대에 따라서는 악랄해 지기도 한답니다.”
박광혁은 그녀의 자신만만함에 흥미가 동했다.
―정복욕을 샘솟게 만드는 여자군.
박광혁은 그녀에게 불타오르는 정욕의 눈빛을 보냈고, 이한얼은 똑 부러지게 그 눈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로 상대에게 기를 꺾이지 않겠다는 결기를 온 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박광혁은 일종의 눈싸움을 그녀와 하다가, 결국 그 눈싸움의 대상을 비서에게로 넘겼다.
“하비천, 이리 와서 인사하시지요.”
하비천 비서가 이한얼의 눈 앞에 섰다.
“제 이름은 하비천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이한얼이 그 말을 듣고 움찔하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이 그녀에게 뭔가 불안한 예감을 안겨 주는 듯싶었다.
그녀가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번에는 하비천을 몰아 붙였다.
“하비천씨께서는 박광혁의 그림자 같은 존재신가 보네요?”
“그림자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냥 수행원일 뿐이지요.”
“후후후.. 그림자같이 저한테 오셨잖아요? 예전에!”
이한얼이 예전 하비천과 마주쳤던 일을 기억해냈다.
그때, 그녀는 그 앞에서 마스크를 떨어뜨렸고, 하비천이 그녀의 마스크를 대신 주워 주었다.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하비천에게 이한얼이 추가로 말을 건넨다.
“저한테 궁금한 게 있다면 당당하게 저한테 직접 오세요. 제가 다 알려 드릴께요. 주인을 닮아 그림자같이 오지 마시고.”
“박지혁 도련님이 엄연히 대기업 회장의 자제 분이신인데, 어느 분을 사귀는가는 저희 가문에 있어 중요한 일입니다.
박덕성 회장님께서 따로 제게 도련님 주변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사항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비천은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원래 이렇군요. 상대방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네들 하고 싶은 거 하는 거.
후후후. 알았어요.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엿 같은 거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수위가 넘나드는 이한얼의 공격에, 박광혁은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는 듯 했고, 하비천은 여전히 냉랭했다.
박지혁은 여전히 박광혁을 증오의 눈초리로 쬐려 보고 있었다.
박광혁은 두통으로 지끈지끈 아픈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르면서, 박지혁에게 말을 걸었다.
“지혁아, 승지 말이다. 오빠로서 관리를 잘 하거라.”
“승지는 신경 쓰지 마세요.”
“후후, 이거 부탁인 줄 아는 모양인데..”
박광혁이 잠시 말을 끊더니, 지혁에게 순간적으로 살기를 보였다.
“마지막 경고다. 승지와 너에 대한.”
“..........”
그는 하비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비천, 그만 갑시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하비천.
박광혁은 이한얼의 옆을 지나면서, 그녀를 날카롭게 훑어보았다.
“이한얼씨. 제가 그림자라는 당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조만간, 당신을 만날 기회를 꼭 마련토록 하지요.”
“그 자리, 기대하겠습니다.”
이한얼의 답변에 싸늘한 미소로 답하는 박광혁.
그렇게 박광혁과 하비천은 박지혁과 이한얼을 지나쳐갔다.
박지혁과 이한얼을 뒤로 하고, 박광혁과 하비천은 차희석을 만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하비천이 슬쩍 말을 꺼냈다.
“어찌시겠습니까?”
“그 여자, 내가 가져야겠어.”
“이한얼 말입니까?”
“저 년이 날 홀딱 반하게 만든단 말야. 그 년의 몸과 마음을 철저히 밟아주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그의 눈에는 강한 정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광혁은 자신의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의 아랫도리를 슬쩍 만졌다.
“그보다 먼저 시급히 하실 일이 있으십니다.”
“박지혁과 박승지?”
“네..”
“박지혁, 제거 가능하나? 조심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동생의 살인을 꺼내보는 박광혁.
하비천이 살짝 제지한다.
“아직은 안 됩니다. 지금 제거하면 뒷말이 나옵니다.”
“그럼 승지를 먼저 손봐야겠군.”
“어떻게 손을 보시겠습니까?”
“차희석. 그 자식을 통해야지. 그 자식도 승지가 해커라는 걸 나한테 숨기긴 했는데.. 한 번은 더 기회를 줘봐야 하지 않겠나?”
박광혁이 오늘 차희석을 만나는 이유를 밝혔다.
하비천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나의 충실한 종이 되려면 승지를 그에게 넘겨줘야겠지?”
“그렇습니다만.”
“후후후. 좋은 방법이 있지. 내가 혜정에게 했던 방식, 있지 않은가?”
박광혁은 그의 입가에 야비한 미소를 띠었다.
“그럼 희석에게 그 방법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박광혁은 하늘을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 기회에 내게 반항하는 년놈들에게 값비싼 교훈을 톡톡히 줘야 하겠어.”
“그렇게 하시지요.”
“나중엔 NW도 박살낸다. 송준수. 그 새끼도 갈아버려야지.”
그렇게 그들의 대화는 은밀하게 끝이 났다.
파티하우스에 어둠은 더욱더 짙어만 갔고, 클래식 음악 소리만 파티하우스를 쓸쓸히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