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그에게 당하다. (39/68)



〈 39화 〉그에게 당하다.

“자, 이제 식사도 다 끝났으니 사무실에 들어갈 시간이  되었군요.
사무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케 한잔을 간단히 하고 갈까요?”
“사케라면?”
“따뜻한 정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술을 데운 건데, 여기 사케가 일품이라 한잔만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술을 마시기에는 별로 좋은 자리도, 좋은 상대도 아니다.
어떻게 거절을 할까 고민해 보았다.
싫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상대의 낯빛이 지나치게 안 좋아 보인다.
뭐, 흔히들 하는 표현으로 거절을 해 보았다.

“아직  일이 남아서 술은 좀..”
“제 성의를 생각해주셔서 한 잔만 하시면 어떨까요? 도수도 그리 높지 않고, 뒷맛도 개운하며 쓴 맛과 단 맛이 조화롭습니다.”

결국 광혁의 요청에  이겨 사케 한잔을 들이마셨다.
따뜻하게 데워서 나  술이 참으로 부드러웠다.
이 술의 향내가 일품이라고 할까.
맛도 있고 깔끔하고.
광혁의 말대로  맛과 단 맛이 잘 어울려졌다.
꽤, 매력적인 맛이라고 생각하며 한 잔을 더 마셨다.

“어떻게, 식사가 입맛에 맞으셨는지 모르겠군요.”
“제 입맛에는 잘 맞았습니다.”
“원하신다면, 앞으로 제가 이런 자리를 많이 마련토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오늘 자리로 충분합니다. 더 먹어봐야 살만 찔 뿐이죠.”

그의 표현에 놀라서,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건 제가 되겠군요. 이한얼씨와의 만남을 오늘 이 자리로 끝낼 수 없습니다.”

이 사람, 좀 세 개 나오네.
당혹한 마음에 화제를 급하게 돌렸다.

“광혁씨, 이제  선물을 보러 갈까요?”

 작자가 잠시 시간을 체크하였다.
그리고는 씩 웃었다.

“이만, 일어날 시간이긴 하군요. 자 가볼까요?”

SH그룹 경영기획실 사무실에서는 은은한 커피향과 서류냄새가 섞여서 나고 있었다.
박광혁의 꽤 넓은 책상위에는, 생각보다 적은 양의 서류가 한쪽에  정리되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두 대의 24인치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지금 내가 앉은 탁자위에는 노란색 서류 봉투가 놓여 있었고,
박광혁이 직접  쟈스민차가 그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내 자리 앞에 위치해 있었다.

단 둘이 남은 사무실, 박광혁 실장이 아무말 없이 볼펜을 탁탁 탁자위에 두들겼다.
두들기는 소리의 공명음이 유달리 크다고 생각되는 순간, 노곤함이 슬며시 내게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살짝 쏟아지는 노곤함을 털어내고자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모습을 잠잠히 지켜보던 박광혁이 입을 열었다.

“그 노란색 봉투를 열어 보시지요.”
“이게 당신이 말하는 그 선물?”
“꽤 매력적인 정보일 겁니다.”

박광혁이 내 맞은 편에 다리를 꼬고 앉으며 말했다.

―쓰윽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의심했다.
 서류는 그가 애초 말한 대로, 박광혁을 옭아맬 수 있는 증거.
지혁이 그렇게 찾아내기를 원했던 ‘박광혁이 유용했다는 102억의 행방처’였던 것이다.
돈의 액수가 틀릴지언정, 사용처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서류를 보며,
나도 모르게 양 손을 조금씩 떨었다.

―이것이야 말로 스모킹건이야.

메씨카움(전자렌즈)을 이용해 지금 내 손 안에 든 서류를 모두 찍어내고 있는 그 순간,
머릿속에 띵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음 속에 갑작스럽게 든 지극히 불길한 예감.

―그가 이걸 순순히 내게 보여준 까닭은??

서류를 보던  눈을 서서히 올려 박광혁 그를 쳐다보았다.
먹잇감을 노려보는 눈빛과 달리 입가에 지은 야비한 웃음.

박광혁이라는 작자가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눈이 피곤한지, 양쪽 중지로 자신의 눈을 눌러댔다.
그리고 다시 안경을 쓰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1조 이상의 값어치를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급격하게 피곤함을 느껴서인지,  작자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개인비서로서 당신을 고용하고 싶군요. 연봉은 1억2천만원. 그 이상도 배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또 하품이 나온다.

“저는 최고의 금액으로이한얼씨를 사고 있는 겁니다.”
“그.. 그 말은 지혁씨를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는...”
“후후.. 이 업계에서 흔히 있는 인력 스카우트죠.”

머리가 먹먹해져 왔다.
개인비서로서 고용하겠다는 것도, 그리고 연봉액수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바로 좀 전에 신사와 같이 행동했던 그의 태도가 돌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 당황하던 나를 보며 광혁이 의미 모를 웃음을 짓는다.

“한가지 더, 나는 당신에게 내 여자로서 최고의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망치로 내 머리를 강타당하는 충격을 느꼈다.
나의 여자라는 표현에서 광혁의  야비한 웃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

머리가 무거워지며,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은 상태로 말만 더듬었다.
급격하게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졸음이 몰려오면서 가슴이 벌렁거리며 뛰기 시작하였다.
그때, 내가 지금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님을 깨달았다.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한테  먹인거죠?”
“후후. 시알리스와 요힘비 성분이 같이 있는 빔(vim) 액체형이라고 사람들이 말하곤 하지요.
사케와 함께 마셨으니 훨씬 더 당신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도 풀게  줄 겁니다.
푹 주무실  있도록 쟈스민 차에 졸피뎀 성분도 같이 넣었으니 자고 일어나시면 한결마음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그럼 술에 탄게...”
“흥분제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게다가 일시적 기억장애를 일으켜 지금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박광혁의 계획은 이것이었다.
선물로 나를 꼬셔내고,
기억장애를 일으키는 약을 먹여 서류를 본 나의 기억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몸에 힘을 전혀 줄 수가 없다.
생각도.. 제대로  수 없다.
이러면.. 이런 상황이라면.
게다가... 생각하기 끔찍한...
시발.

“이 미친.. 새끼.”
“후후.. 맞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미친거죠,.”

광혁이가 씨익 웃으며 나한테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몰려오는 잠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소리쳤다.

“신고할 거야... 가까이 오지마..”

내 머릿속에서는 위기경보등이 끊임없이 발동되고 있었다.
그는 나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나한테 밀착시켰다.
그가 내 귓불을 혀로 건드리기 시작하며 귀솟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뱀의 혀가  몸을 감싸는 이루 말할  없는 불쾌함과 소름끼침으로 온 몸이 경직되었다.

“감히, 네가 나를가지고 놀았겠다? 이제부터는 널 가지고 놀아주지. 인생의 쾌락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클클클”

그가 내 브래지어 안으로 손을 슬며시 집어넣었다.
유두 끝을 간지럽게 하는 그의 손끝이 젖은 땀으로 촉촉했다.
그러다가 유두를 손끝으로 세게 쥐었다.
아픔이 느껴지며 저절로 나오는 신음.
신임소리에 묻혀나오는 비참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쌍놈의.. 새끼., 죽여 버릴 거야.”

그가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읍읍~~

“그렇게 경박하게 소리 질러서 쓰나? 이제  있으면 제발 해달라고 소리 지를 텐데.”

생각이 백지화 된다.
무엇을 해야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
철저히 약의 노예로 되어 가고 있는  자신이 두려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간질이는 손길에 차츰 올라오는 낯선 쾌락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당신을  눈에 보자마자,  당신의 능력과 정신과 육체를 모두 소유하고 싶어 졌어.
당신을  것으로 만들고 싶은 강한 욕망이 내 밑에서 생겨났지.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이 신선한 긴장감이 그동안 찌들었던 나의 영혼을 깨우게 하는군.
어때? 내 곁에 나랑 있는 것이?
당신이 그동안 못누리고 살았던 것, 다 해주지.
당신이 너무 이뻐서, 너무 이뻐서 어쩔 수가 없거든. 당신과 같은 여자는 최고의 대우를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지..”

그는귓속말을 마치고, 살짝 뒤로 몸을 젖혔다.
그와 함께  가슴을 농락하던 그의 손길도 잠시 사라졌다.
그리고는, 내가 내뱉는 가뿐 숨소리를   느껴 보려는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가지런히 나의  주변으로 갖다 대었다.

“난 강제로 하지 않아. 네가 알아서 나를 받아들이지.그리고 받아들인 이후에  제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그는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그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너.. 개새끼.. 내가 가만히.. 안.. 놔둬. 죽여버..릴..꺼야.”

나의 반응에 박광혁이 이채롭게 쳐다 보았다.

“정말 놀랍군. 당신은 대체 뭐지? 5분이 넘도록 이렇게 의식이 있다니? 지금쯤이면 기억을 읽고 쓰려져야 하는데”

내가 잠에 빠지는 순간까지 기다릴 심산인 듯, 광혁은다시 자리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의 온 몸에 위기 경보가 울리고 있었고, 나는 의식이 자꾸 끊어지려는 유혹을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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