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종철의 슬픔과 분노
종철은 승지가 맡긴 하드복구 노트북을 쥐고는
PC방을 부리나케 뛰어 나갔다.
택시를 잡으려고 했으나, 이날따라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발을 서성이고 있는데, 그의 폰에 또 하나의
정체불명의 메시지가 떴다.
[경찰에 신고해도, 누군가 같이 와도, 주위의 시선을 끌면 승지는 죽는다. 너만 혼자서 올 것.]
종철은입술을 꽉 깨물었다.
두 번째 메시지를 읽고 나니, 어쩌면 이 건 장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직감이
그의 온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의 시야에, 『예약』이라는 표기가 달린 택시가 비교적 느린 속도로
4차선을 주행하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는 그 택시를 잡기 위하여 그대로 차도로 뛰어 나가버렸다.
택시 운전사가 놀래서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는 종철의 바로 앞에서 섰다.
운전사는 창문을 열고, 바로 삿대질을 하였다.
“야, 임마. 너 미쳤어?”
종철은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고 한 후, 다짜고짜 그 차의 뒷문에 탔다.
운전사가 황당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너, 뭐야?”
“죄송합니다. 제 친구에게 급한 일이 있어서..”
“지금 이거 예약인거 안보여?”
“아저씨. 제 친구가 지금 안가면죽는다고요!”
종철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택시 운전사가 종철의 잔뜩 굳은 얼굴과 울 것 같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심상치 않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는 운전대를 바로 잡았다.
“그래.손님, 어디로 갈까?”
“최대한 빨리. 10분 내로 청운이라는 한정식을 가주세요.”
“다행히 내가 거길 알지. 5-6분이면 도착하니 꽉 잡아요.”
택시는 전속력으로 6분을 달려, 한정식집 청운에 도착하였다.
종철은 택시 운전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날리고는 바로 한정식집
입구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오늘은 내부 사정으로 쉽니다’란 푯말이 문에 걸려 있었다.
종철은 문을 세 개 두들기며 소리쳤으나,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문이 닫혀 있어.. 이거 어쩌지? 이거 어떻게 하지?”
시간이 없었다.
종철은 머리를 미친 듯이 긁어대고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려고 필사의 노력을 했다.
종철이 극도의 초조감으로, 자기 손톱을 물어뜯는 가운데,
그의 폰에 또 다른 메시지가 떴다.
[집행시간까지 3분.]
“씨바. 이 근처에 있으면 나와 봐. 어떤 새끼야?”
종철은 순간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주위는 조용할 뿐이었다.
여기가 서울의 한 복판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했고 한적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것은 연속된 문자 메시지 소리.
[주위의 시선을 끌지 말라했을 텐데]
[지금 들어가면 너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데, 들어가겠는가?]
[들어가겠다면 고개를 두 번 크게 끄덕여라.]
종철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주저했다.
자기의 손톱을 무는 그의 입가에 피가 묻어 나왔다.
손가락을 깨무는 와중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종철.
그의 괴로운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냥 갈까... 그냥 가도 아무도 모르겠지.’
‘이건 장난일 거야. 설마 진짜 승지가 위험하겠어?’
그러나 그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집행시간까지 2분.]
그는 결심을 굳혔다.
자신을 괴롭히는 악녀라지만, 악녀가 없는 시간은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다.
종철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으로 고개를 크게 두 번 끄덕였다.
—파팟!
전기가 튀는 소리가 들리며, 반짝이는 섬광과 함께 자물쇠가 떨어져 나갔다.
종철은 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종철은 컴컴한 홀을 지나치고 가다가,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으씨... 절라 아프잖아.. ”
[집행시간까지 1분전]
그의 신음이 채 끝나기 전에 울려오는 최후의 메시지.
종철은 순간 저 끝 룸에서 희미한 불빛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는 일어서 후다닥 그 룸을 향해 달렸다.
그의 다리가 의자들을 치고 지나가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투우사를 향해 돌진하는 거센 황소처럼 나아갔다.
—꽝!!
종철은 거칠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나타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짝 벌렸다.
완전히 벌거벗은 남자가 상반신 나체 상태로 의식 없이 축 늘어져 있던
여자의 목에 사시미를 갖다 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야수의 그것이었고,
핏빛으로 가득차서 무척이나 기괴해 보였다.
그는 혈안(血眼)을 종철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울리는 기괴한 신음소리.
―크흐흐흐~~~~~~~~~
종철은 온 몸에 가득찬 공포심으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그 남자가 자신의 손에 든 여자를 던져 버리고, 종철에게로 다가서고 있었다.
종철의 시선에 그 괴수같은 사내가 던져버린 여인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건 바로 박승지.
박승지의 하얀 가슴이, 그리고 박승지의 얼굴이 그에게 와서 꽂혔다.
종철은 순간, 공포심을 눌러내는 또다른 강력한 에너지가 그의 몸에
흘러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극한의 분노.
그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것.
종철은 온 몸을 바르르 떨며 그 괴수같은 사내를 향해 울부짖으며 몸을 날렸다.
—야이,, 개새끼야아아~~~~~~~~~
―따아아앙..
종철이의욕설과 함께 어디선가 들려오는 조용한 총소리.
그리고 사시미를 떨어뜨리는 괴한.
그리고 괴한의 얼굴에 정확하게 박히는 종철의 주먹.
괴한은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고,
종철은 의자를 들고, 쓰러져 있는 그의 머리를 힘껏 가격했다.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고, 괴한은 정신을 잃은 듯
아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사내의 상태를 확인한 종철은 바로 승지에게로 다가왔다.
승지의 하얀 가슴에 그 괴한의 것으로 보이는 타액이 번질번질 묻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깨물리고 멍든 상처가 희미하게 보였다.
다행이면 다행이라고 할까..
그녀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무슨 끔찍한 꿈을 꾸고 있는 양, 그녀의 입에서
가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가녀린 상체가 오돌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슴 아프게 보고 있던 종철.
그녀의 기절한 얼굴 위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종철은 승지를 보며,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종철은 그렇게 울면서, 구석 한 켠에 나동그라져 있는 그녀의 속옷과
겉옷을 찾아다가 조심스럽게 입혔다.
다시 들려오는 연속된 문자 메시지 소리.
종철은 습기가 가득 찬 눈으로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승지는 이 남자를 만난 이후에 겪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승지를 지키고 싶거든 여기서 본 일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라. 승지를 괴로움 속에서 죽게 만들고 싶으면, 그리 해도 상관은 없지만.]
종철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자기 소매로 닦았다.
그리고 승지를 자기 등에 업었다.
한손에는 승지가 맡긴 노트북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승지의 엉덩이를 받쳐 들면서 터벅터벅 한정식 집을 나서고 있었다.
**
종철이 승지를 업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영 하나가 쓱 나타나더니, 조용히 쓰러져 있는 괴수 같은 사내의 옆에 섰다.
그의 정체는 하비천.
하비천은 승지를 업고 나간 종철이 쪽을 바라보며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 냉철하기 이를 데없는 그에 걸맞지 않는 한숨이었다.
‘승지를 살려서 보냈던 것이 옳았던 것인가?’
하비천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차희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차희석!
그의 두뇌와 육체는 카테고리 5이상의 바퀠라를 위해 쓰여질 것이었다.
바로 인간 학살자로 명명된 전투형 감마 전사인 휴터대관을 위하여 사용될 육체.
카테고리 5이상의 바퀠라에 적합하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이 숙주가 마지막 관문인 살해를 시행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비천은 그 마지막 관문을 자신의 손으로 막아버렸다.
“할 수 없지. 재수 없는 그렌바움에게 주는 하나의 선물이라고 봐야겠군.”
그는 천천히 차희석에게로 다가섰다.
“일어나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차희석.
그의 눈에 동공이 사라진 상태였다.
“너는 실패했다. 그러니 이제 처벌만이 남았을 뿐.”
“말..말씀하십시오.”
“오늘이 지구인으로써의 마지막 삶이다.”
“네..네.”
오늘이 삶의 마지막이라는 소리에도 아무 감흥을 보이지 않는 희석.
하비천 역시 그를 아무 감정 없이 바라 볼 뿐이었다.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말고, 자살하러 가는 것처럼, 조용히 아지트로 이동한다.”
“네...”
“너는 거기서 감마족을 위한 영광의 제물로 쓰일 것이다.”
“영광의 제물.. 감..감사합니다.”
차희석은 스스로 일어나 저벅저벅 걸어 갔다.
차의석의 모습은 마치 죽음의 손아귀에 기꺼이 들어가길 원하는 불나방과 같았다.
하비천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천천히 한정식 식당을 나온 하비천은 문득 박광혁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박광혁은 오늘 제대로 쾌락을 맛보았을런가? 설마 그 바보가 실패하진 않았겠지. 만약 그 놈이 오늘 실패한다면, 또다른 선물을 준비해야 할텐데..”
하비천은 웬일인지 박광혁에 문제가 생겼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의 머릿속에 이한얼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한얼이... ”
그는 자신의 세운 가정이 터무니없다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그러들지 않는 꺼림칙함.
그는 그 꺼림칙함에 자신을 굴복시켰다.
“모든 일에는 확인이 필요하겠지? 만약 오늘 광혁이가 실패했다면, 그가 죽이고 싶은 인물을 제거하는 수밖에.”
그는 결심이 서자, 바로 SH그룹의 경영기획실을 향하여 바삐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