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화목한 종철의 집 (44/68)



〈 44화 〉화목한 종철의 집

온 공간을 채우는 피비린내.
그대로 의식불명의 상태로 쓰러져 있는 사내.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집기.

SH그룹 경영기획실에 도착한 하비천의 눈에 맨 처음 잡힌 광경이었다.
하비천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광혁에게 다가가서, 그의 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그가 메씨카움을 키자, 경고등이 눈앞에서 깜박이면서 일련의 메시지가 연속해서 눈앞에 떴다.

[환자의 상태 위중. 외력에 의한 개방성 두부외상 소견. 외력 원인. 싸이킥 에너지]
[싸이킥 에너지의 미세한 잔재 인식. 0.3 밀리터스 발견]

‘위험하군.’

그는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와중에서도, 싸늘한 미소를 띠었다.

‘결국, 그녀였던가..’

암살자의 정체를 파악한 하비천.
하지만, 암살자에 대한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가 위중한 탓에, 하비천은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광혁의 코와 입으로부터 검붉은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하비천은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금고로부터 그의 특수의료기기를 꺼냈다.
하비천은 텔레스코프 메씨카움(광학용 전자 렌즈)을 켜고, 그의 손에 의학용 반지를 꼈다.
서브마이크론 메티컬 로봇이 그의 손에서 튀어나왔고,
그 먼지 입자만한 크기의 로봇이 벌레같이 움직이더니,
광혁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곧, 하비천은 반지를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짧은 주문.

“블래부안(치료 시작)”

그 주문과 동시에, 의학용 반지로부터 백색  치료 광선이 방출되었고,
그 빛이 박광혁의 얼굴을 감쌌다.

대략 30분즈음이 지난 시각.
박광혁의 머리에 난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고, 환자의 혈색도 점차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초미세용 의료 로봇이 터진 뇌 혈관을 성공적으로 복구하고 있다는 사인인 것이다.

하비천은 박광혁의 치료에 전념한 때문인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말의 짜증이 담겨있는 그의 차가운 말투는 그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그대로 대변하였다.

“이 자식의 정욕 때문에, 두뇌 정화 작업이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일을 망칠 뻔 했군. 박광혁이 오늘 일을 절대로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지?”

하비천은 중요한 원칙 하나를 되새기고 있었다.
그렌바움의 뇌와 융합할 숙주의 뇌는 절대로 두려움의 감정을 갖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
그렌바움의 강력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약한 감정을 모두 삭제해야 한다는 원칙.
하비천은 그 원칙에 따라, 박광혁의 뇌에서 오늘 암살자에게 두둘겨 맞았던 순간을 모두 지우고, 대신 왜곡된 기억을 주입하기로 하였다.

박광혁에 대한 조치가 끝나자, 하비천은 다시 암살자에게로 생각을 돌렸다.
놀랍게도, 그는 여기서의 일을 그렌바움에 보고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이한얼, 그녀가 암살자일 가능성이 크다니.. 후후.. 재미있는 게임이 되겠군.
헤프, 그대는 정말 대단한 과학자시오.
결국 나를 이리 만들었던 것에 그치지 않고, 암살자를 양성하는  성공하다니..’

이외로 그는 헤프 박사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었다.

‘헤프 박사. 오늘 일을 불문에 부치는 건, 당신이 나를 만든 수고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시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스몰스몰 올라오는 그렌바움에 대한 반감.

‘나는 그렌바움, 너의 목각인형이 아니다. 후후후.
너와 헤프는 열심히 싸우고, 난 거기서 이득을 취할 뿐.
네 놈한테 온전히 충성을 바칠 바보는 아닌 거지.’

하비천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떠날 채비를 하였다.
박광혁이 깨어날 시간이가까운 데다가, 더 지체하다가는 VIP 영접시간에 늦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미치광이 과학자 마윈을 중국에서 소환하다니. 어지간히 그렌바움이 급했군.’

일정에 쫓긴 하비천은 곧 경영기획실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 있었던 모든 순간들을 삭제하면서,
경영기획실에서의 자신의 흔적마저도 말끔히 지워버렸던 것이다.

**

종철의 어머니, 주여사는 지금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아침에 아무  없이 혼자 나갔던 아들놈의 새끼가
밤에 떡이 된 여자를 업고, 둘이 되어 들어온 것이다.

“야 이눔의 새꺄. 너?”
“네. 어머니. 말씀 안하셔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말해봐. 이게 대체  일인지?”
“그것보다 후들 거리는  팔을 봐서, 얘부터 좀 내려놓으면 안 될까요?”

땀이 범벅이 된 채로, 파르르 떨려오는 종아리의 경련을 애써 참는 아들의 고통을 그냥 잠자코 두고  어머니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고생하는 아들을 차마  수 없었던 주여사가 후들거리는 종철이 팔에 강력한 마사지를 선사해준다.

―찰싹~~~

종철의 팔에 통증이 후끈후끈 올라온다.

“왜 때렷!”
“솔직히 말해, 너 사고 친거야?”
“아니라고요. 제발 좀, 얘 침대에 눕히자고요.”

주여사에게 사정사정하는 종철이의 표정이 유독 불쌍해 보였다.

“그럼 누나 침대에 눕혀.”
“누나 없지?”
“있다. 이새끼야.”

씩씩하게 이층에서 걸어 내려오는 종철의 누나. 서지혜양.
사근사근하고 자상한 말투로 공대 존예로 통한다.
단지 공대에서만.

“미..미안한데.누나가오늘 내 방에서 자면 안 될까?”
“내가 그 짐승의 소굴은 왜 가는데?”
“얘를 그 짐승의 소굴에 재울 수는 없잖아?”
“나는?”
“너는 이미 시장 바닥에서 나랑 같이 굴렀잖아. 뭘. 새삼스럽게.”
“저새끼, 말 하는 싸가지 좀 보소?”

오누이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교통정리를 하였다.

“야, 지혜 네가 양보해라. 이왕 오신 손님인데, 짐승 털갈이 하는 곳에서 재울 수 없잖아.”
“털..털갈이? 엄마~~ 나  새끼 방에서 못자!”
“너는  안하는 줄 알아? 머리털이나 거시기 털이나 같은 털이지.”

종철과 지혜는 동시에 엄마를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종철은 진심 그의 등에서 자고 있는 승지가 깨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종철은 부리나케 누나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침대에 승지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아직까지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고, 다만 그녀의 입 꼬리가 부르르 떨렸다.
종철은 그렇게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의 자는 모습에 수상함을 느꼈다.

“야!”
“....”
“너 깼지?”
“.....”
“깼으면 일어나봐~”
“........”
“야,  들었지, 털?”
“....”
“아직 자나?”
“....”

종철은 고개를 갸웃갸웃 하면서 그녀를 놔두고 누나 방을나왔다.
그리고 거실에 대기 중인 어머니와 누나의 따사로운눈빛을 받아들여야 했다.

“쟤는 누구냐?”

어머니가 먼저 화두를 꺼냈다.

“쟤가 새로 사귄 여자친구?”
“전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처음으로 사귄』 이겠죠.”
“지금 이 어미랑 말장난 하자는 거여?”
“저 새끼 정신못 차렸어. 혼내줘.”

옆에서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하는데..
종철이한테는 누나가 시누이 같았다.
살짝 누나를 야려보고, 종철은 어머니의 질문에 답변하였다.

“아뇨. 그냥 어쩌다 아는 친구..”
“어쩌다 아는 친구를 그렇게 업고 데려와?”
“뭐, 그렇게 됐어요.”
“너희들 술 먹은 거야?”

종철은 어머니의 질문에 마땅히 둘러댈 말이 없었다.
승지가 내 등에 업혀 오게 된 이유를 꾸며대고자 고심하고 있었는데..

“안녕하세요..”

이층에서 내려오는 승지의 고운 목소리가 들렀다.
다소 헬쑥한 표정에 담긴 어색한 미소.
어색한 미소를 입가를 띠우고서는 사뿐히 층계를 내려오는 승지를 보며,
주여사와 종철의 누나, 지혜는 얼굴에 놀라운 빚을 감추지 못했다.

“죄..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승지의 등장에, 주여사가 아들의 추궁을 멈췄다.

“어.. 어서 와요. 우리 집이 누추한데 잘 왔어요.”
“아..네.”
“잠자리가 불편하진 않았고?”

종철이가 옆에서 ‘내 등자리였겠지’라고 중얼거린다.
지혜가 옆에서 ‘쟤, 1분 누웠다 나온 건데?’라고 맞받아서중얼거린다.

“아뇨. 어머님. 편안했습니다.”

지혜의 ‘어머님’이란 말에 주여사가 살짝 미소를 머금는다.
그녀의 ‘편안하단’ 말에 종철이가 쓱 웃는다.
그녀의 살살 거리는말투에 지혜가 어처구니없어 한다.

“저녁식사는 했어요?”
“안 먹었어. 둘 다!”

주여사의 질문을 끊어 버리고 종철은 자기가 답변하였다.

“뭐야? 아들. 저 아가씨를 굶게 만든 거야?”
“그렇게 됐어. 배고파. 밥 주세요.”

옆에서 동생을 꼬려보던 지혜가 일어섰다.

“엄마, 됐어! 내가 동생하고, 동생 여친 밥 챙겨주지.”
“아니다. 지혜야. 이런 역사적인 날에는 내가 상차림을 해야지.”

모녀가 같이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승지는 낮설은 편안함을 느꼈다.
승지는 종철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종철은 다가오는 승지 옆에 붙어서 조용히 말했다.

“승지야, 괜찮아?”
“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그렇지만, 나름 견딜만 해.”
“다행이다.”
“내가 차희석... 음.. 여튼 어떤 개새끼를 보고 놀라서 정신을 잃었어.”

승지는 희석을 만나는 이후부터의 일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녀는 그것이 단순히 자신이 기절해서 생긴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냥 어떤 남자가  지키고 있었더라고.”
“누구?.. 혹시 하비천?”
“그가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바쁜 일이 있다고 너를 나한테 맡기고 갔어.”

종철은 의문의 사내가 알려준 대로, 승지에게 그동안의 일을 꾸며 말하고 있었다.

“하비천, 이 개자식.”

자기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해 버린 승지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

“하비천?”

종철은 자신을 공격했던 사내를 하비천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다시 입에 놀려봤자,
승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종철은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집 좋지? 어디  데가 마땅치 않아서, 너를 집에 데리고 온 거야.”
“응... 고마워. 종철아”

승지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 표정으로 입으로 대충 의례적인 감사의 표현을 했다.
종철은 승지의 씩씩 거리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예전 그 씩씩한 모습으로 되돌아 왔기 때문에.

종철은 곧 의문의 사내를 생각하였다.
그는 분명히 승지가 10시간은 꼬박 자고 일어날 것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집에 데려온 건대, 이렇게 일찍 승지가 깰 줄은 몰랐다.
밖에서 더 있다가 들어올 것을 그랬나?
이러다가 아버지라도 오시면...
종철은 그렇게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있다가,
문득 집에 어르신 한분이 부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머니, 오늘도 아버지 안 들어오시나?”
“요즘 네 아빠가 사건이 많이 터져서 오늘도 집에  오시는 거 같은데. 실종 사건이  터져서..”

종철의 아버지는 강력계 형사였다.
종철은 오늘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손바닥을 조우할 수 없음을 매우 아쉬워하며,
승지를 보고 활짝 웃었다.

“우리, 살았다. 승지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