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미쳐버리겠어 (53/68)



〈 53화 〉미쳐버리겠어

수상한 인영은 프로카움(원형돔)의 시커먼 형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카움(원형돔)이 아무 소리 없이 걷혔다.
그때서야,  인영은 원형돔 안에 있었던 일들을 파악할  있었다.
이한얼이 중얼거리며 서 있었고, 그녀 주위에 사체 3건과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생명체 하나가 있었다.
곧, 이한얼이 부스터를 이용하여 현장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수상한 사람은 천천히 전투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그 분의 말씀대로였어. 저 여자의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거..”

그 수상한 인영의 입에서 가느다랗고 아름다운 고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은 가로등 불빛에 경국지색의 미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사람은 이한얼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생긴 여자였다.
그리고 그 여자의 손에는 한때는 에덴카스로 불리웠던 생명체의 수급(首級)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케르베르스 사체들을 염력을 이용하여 한자리로 모았고, 수급을 그 사체 덩어리에 던져넣었다.
그리고는, 흰 가루를 그 잔해들에 뿌렸다.

“파에르 에스테 네바 꾸르수바 (영원한 안식을 그대에게)”

그녀의 주문과 함께 급속도로 소멸되어가는 육신.
가루로 변한 육신들이 밤하늘의 먼지로 사라져갔다.
곧, 그녀는 조금씩 움직이는 다른 생명체로 걸음을 옮겼다.
 생명체는 괴물 같은 형상에서 이제 완연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동공이 돌아오지 않는 눈초리로 그녀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의 입과 코에서는 회색빛의 액체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넌, 지난 열흘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앞으로 다시 살인을 저지르겠지. 차라리 여기서 생을 마쳐라.”

그녀의 손에 선명한 빛이 흘러나기 시작했다.
그 선명한 빛은 예리한 칼날이 되어, 무심하게 쳐다보는 그의 목을 그대로 통과하였다.
그리고 목이 떨어진 채 쓰러지는 몸통.
 남은 사체 역시 먼지로 변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보고 드립니다. 현재, 모든 처리를  마쳤습니다. 아쉽게도, 적의 하이브위치를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레이더 방지용 트럭으로 괴물들을 이동시켰습니다. 다만, 스카우터를 처단해서, 저희 쪽 정체 역시 드러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뒤처리를 했다는 건 모두 제거했다는 말인가?>
“네. 괴물들과 스카우터의 사체를 모두 산화시켰습니다.”
<괴물들이라.. 그건 케르베르스였어. 마윈이 한국에 와서 손재주를 부렸군.>
“어떻게 할까요?”
<잘 했다. 서애. 이제 귀환하도록 하라.>

서애라고 불리우는 여자는 통신을 마치고서는 하피카움(인이어)의 전원을 껐다.
곧, 네튜카움(부스터)의 엔진소리와 함께, 그녀는 전투 현장에서 신속하게 사라졌다.
이렇게, 초등학교 운동장은 적막만이 남았고, 이곳에서의 치열한 전투의 시간들은 누구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초라한 역사가 되었을 뿐이었다.


**
경기도의 한 전원주택.
그리고 그 전원주택의 지하.
 지하에는 많은 유리관들이 있었고,  유리관 안에는 그동안 실종되었던 죄수들과 범죄자들이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
그들의 머리와 팔에는 온통 가느다랗고 좁은 튜브가 삽입되어 있는 상태.
격하게 풍겨오는 각종 약물 냄새가 기계장비들이 작동하는 소음과 섞여서, 기괴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지금  곳에 한 아리따운 여인이, 원통의 유리관 안에 박제되어 서있는 외계인의 형상과 마주보고 있었다.
그 외계인의 형상이 내는 음침한 목소리가 싸늘한 질책을 담아, 이 비밀공간에 울려퍼졌다.

“큰소리 뻥뻥 치더니 대체 넌 무엇을 한 건가? 마윈? 그따위로 밖에 못하는가?”

마윈이라는 여인이  하나 깜박이지 않고 조소의 웃음을 보였다.
마치 지나가는 개가 짖는 소리로 치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그렌바움,  당신의 손님이지, 부하가 아니예여. 그따위로 말씀 하시면, 싸가지가 없으시죠.”
“지금 장난할 때인가?”
“나, 지금 심각하다니깐! 내가 장난으로 보여여?”
“.........”
“그렌바움. 당신이 하르슈텐트의 약점을 쥐고 있어서 그를 그리 잡고 흔들 수 있겠지만,  다르지여.  지금 중국으로 가버릴까요?”

갑자기 조용해진 그렌바움의 반응으로 보아, 마윈이 기선을 제압한 모양새였다.

“당신이나 나나 다 현재는 카테고리2에 불과하져. 카테고리7에 도달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한 거고, 당신은 적합한 육체가 필요한 거고. 같이 기다리는 사람끼리, 아니지, 같은 감마족들끼리 서로 다투지 말자구여.”
“좋다. 마윈. 당신에 대한 질책은 당분간은 미뤄두지. 이번 전투로 뭐 알아내는 것이 있는가?”
“암살자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실패했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았지여.”
“그게 뭔가?”
“암살자에 동조자가 있어여.”

그렌바움이 다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마윈 역시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그 동조자의 카테고리를  수 없는가?”
“정확히는 모르죠.. 다만, 전투현장에서 잡힌 그녀의 수치를 보아, 카테고리 3 수준?”
“흐음...”
“걱정하지 말아여. 기껏해야 헤프의 실패한 실험체일테니.”

마윈이 확신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헤프박사가 수행하는 연구의 취약점을 너무도  알고 있었고,
그녀의 기억에 그 실험체는 오래 잔존하기 어려운 불나방 같은 것이었다.
마윈과 헤프는 각기 서로 다른 학풍을 구축한 라이벌과 같은 존재.
서로를 너무  알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그 실험체의 존재는 마윈으로써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변수였다.

“마윈, 다음 계획은 무엇이지?”
“수확이 더 필요한데, 암살자가 저리 버티고 있는 이상은 불가능해여. 암살자의 제거로 초점을 맞추어야죠. 다행스럽게도, 시간은 우리 편이져. 양산될 우리측 바퀠라의 카테고리가 점차 높아질 것이고, 적은 점점 힘들어질 거니까..”
“다음 바퀠라는 언제 준비되겠나?”
“훗.. 일주일 후면 됩니다. 이번에는 꽤 볼 만할 거여요.”
“그래봐야 카테고리2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마윈은 한심하다는 눈치로 그렌바움이 들어가 있는 원통의 유리관을 쳐다보았다.

“때로는 인간의 육체보다 인간의 정신을 공격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거두는 법이죠. 전투에 지면 어때? 전쟁에서 이기면 되지. 결국 계속된 전투는 암살자의 정신을 무너지게 만들 거여요. 난 암살자를 미치게 만들어 버릴 여러 요리법들을 선보이면 되는 것이고. 호홋.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참 재미있을 것 같네..”
“흠...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마윈! 그대는 내 육체가 수확되어 올 때까지 잘 지켜다오.”
“걱정 말아요. 적의 레이더로부터 숨어 다니는 것은 나의 전문이니까.”
“내가 수확된 육체와 두뇌만 차지하면, 그때부터 그 년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테니..”

그렌바움이 분노로 목소리를 떨었다.
마윈은 그 분노가 자칫하면 자신한테 올 수 있음을 직감했다.
마윈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당신이 알아서 하세여. 난 중국으로 돌아갈 겁니다아.”
“흥.. 그렇게 하던지.”
“단, 제가 여기 와서 고생하는데 선물 하나는 주셔야져.”
“선물? 무엇을 원하나?”
“하르슈텐트.”
“.........”
“어차피  일이 끝나면, 당신한테는 쓸모없는 물건이잖아?”

그렌바움은 답변을 미루고 있었다.
차마 그것을 쉽게 양도할 수 없다는 의지가 그에게서 보였다.
하르슈텐트의 인간 수확 능력은 어떤 누구도 따라   없었기에, 그렌바움의 소중한 자원이었던 것.
그렌바움은 차마 그의 능력을 다른 이에게 양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윈은 그렌바움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차갑게 웃었다.

‘후후. 그렌바움, 넌 어차피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거야! 결국 헤프는 그 존재를 소환시킬 거고 넌  존재에게 죽을 것이니까. 너 죽기 전에, 하르슈텐트나 나한테 주면 돼. 크크크’

**

“하아.....”

샤워기에서 나오는 온수에 내 온몸을 맡기고,
나는 아무 의식 없이 서 있었다.
뜨거운 물이 지속적으로 나를 할퀴며,
내 살이 발갛게 변해감에도,
나는 머리를  수그리고만 있었다.

헤프박사는 피로 물들인 내 얼굴을 보며,
나를 위로한답시고 여러 가지 말들을 꺼냈었다.
그들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죽었을 뿐이라고..
나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은 모두 범죄자들이라고..

그런데, 그들의 육신에 내가 칼을 찔러 넣었을 
그 촉감과 소리가 잊혀 지지 않는다.
뇌수가 터지고,
머리가 날라가고...
뼈가 깨지고...
아무리 물에 몸을 깨끗이 씻어도 그 순간의 기억들은 더욱더
생생하게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갈 뿐이었다.

“나, 살인한 거 아냐.. 그냥 내가 살기 위해서 죽인거야..”

몇 번을 중얼거리며 내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했지만, 그건 의미 없는 말장난이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살인한 것이지...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인간들을 이렇게 죽여야 해..
그래 난 결국 살인마가 되는 거다....
내가 애초에 헤프 박사에게 속아서 인간을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헤프.. 그 새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이 나를 속박하기 시작하였고,
나의 감정도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헤프, 이 새끼가 날 속였어..

살인에 대한 고통이 결국 헤프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연구실에 내려가서 그를 흠씬 두들겨 팰까?
내가 지금 이렇게 트라우마로 힘들고 있는데,
 속인 그 새끼는 지금도 조롱하고 있겠지..

나는 결국 샤워하는 도중에 나와 버렸다.
 몸에서 뜨거운 김이 발산되고 있는 와중에도,
어떤 옷도 걸치지 않고,
헤프가 있는 지하실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정말 눈에 아무것도 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분노의 대상만 눈에 선할 뿐이었다.

“헤프, 이 새끼.. 나와~~”

내 머리에 급격하게 솟구치는 감정의 격동으로,
누구한테 내 감정을 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상태였고,
따라서 나는 미쳤다. 완벽하게.

바로 눈앞에 헤프가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절규하며 소리쳤다.

“시발,   속였냐고? 카테고리 2이하면 살릴 수 있다며.. 왜? 왜?”

헤프가 아무 말 없이 날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이... 씨발... 이게 당신이 바란 거야? 내가 당신의 소모품이 되는 거? 네가 바란 게 이거냐고? 진짜 이거야?”
“이한얼,  감정상태가 매우 불안하다. 감정을 다스려라.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넌 죽는다.”
“그래,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 아무 것도 못하겠는데, 내가 뭘 어떻게....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내 의식을 뛰어 넘는 감정의 격랑에 결국 난 항복해버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흐려졌고,
내 절규는 습기를 더해서, 더욱 처절하게 느껴졌다.

“나, 못해 먹겠어. 헤프,  좀 어떻게 해줘!!  앞에서 사람이 분해되었어.. 머리가 날라가고, 살점이 뜯어졌어... 이...이런 살인의 기억이 날 죽이고 있다고.. 나, 나 좀 살려줘. 헤프.”

나는  말을 마지막으로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음을 느꼈다.
몸이 휘청휘청 하더니, 어지러움을 표현할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바닥에 쓰러져 버렸고,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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