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험(天險)이군.’
그 골짜기를 바라본 왕삼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워, 워! 모두 정지!”
비슷한 생각을 했음인가? 거침없기만 하던 오 군장 대적용도 고삐를 채며 행군을 멈추게 했다.
말 머리를 돌려 왕삼보에게 다가온 대적용이 뱀 본 아낙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뭔 놈의 골짜기가 이 모양으로 생겼담.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게 신기하지 않소?”
미상불 그랬다. 가파른 두 개의 절벽이 약간의 사이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게 골짜기라면, 지금 토벌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저 지형 또한 골짜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형상이 아주 괴이했다. 양쪽의 절벽이 수직을 넘는 반경사(反傾斜)를 이루고 있어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원통 모양인데, 넓다는 아래라고 해 봤자 그 폭이 십오 장을 넘지 않았다.
“구(邱) 노인을 데려 오게.”
왕삼보는 근처에 있던 수하에게 명했다. 잠시 후 얼굴이 검고 허리가 굽은 중늙은이 하나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형산 초입에서 길잡이로 고용한 약초꾼 노인이었다.
“저 골짜기의 이름이 뭐요?”
왕삼보의 물음에 구 노인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는 듯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용도굴(龍道窟)이라고 합지요.”
“굴?”
“보십시오. 꼭 동굴처럼 생기지 않았습니까.”
골짜기를 일별한 왕삼보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천장만 뚫렸을 뿐 동굴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 악룡 한 마리가 진흙탕 속을 기어갔는데, 그 흔적이 그대로 굳어서 저런 요상한 모양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용도(龍道)지요.”
따로 물은 것도 아닌데 구 노인은 지명의 유래까지 알려 주었다.
‘악룡이 아니라 용암이겠지.’
왕삼보는 구 노인의 말을 보다 논리적으로 해석했다. 주위에 널린 암석들은 칙칙한 흑회색을 띄고 있었다. 그것은 까마득한 옛날 이 일대에 용암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하기야 저 정도 규모로 흘러가는 용암이라면 악룡과 다를 바 없으리라. 왕삼보는 구 노인에게 다시 물었다.
“길이는 얼마나 되오?”
“정확히 재 보진 않았지만 사오 리는 족히 될 겁니다요.”
“사오 리라…… 돌아가는 다른 길은 없소?”
“있긴 있습니다만 저희 약초꾼들이나 다니는 비좁은 오솔길이라 이 인원이 지나기엔 적합하지 않습지요.”
“으음!”
저런 험지가 자그마치 사오 리에 걸쳐 늘어서 있다니 고약해도 아주 고약했다. 게다가 우회로마저 마땅치 않다니…….
“그냥 통과하는 수밖에 없겠군.”
곁에 있던 대적용이 씩씩하게 말했다. 왕삼보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이환이 천하에 둘도 없는 머저리가 아니라면 뭔가 수작을 부려 놓았을 겁니다.”
“혹시 아오? 천하에 둘도 없는 머저리일지.”
“오 군장님, 지금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왕삼보가 슬쩍 타박하자 대적용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진치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소?”
“그거야 그렇지만…….”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강가 놈의 근거지인 토성에 들이닥친 게 오늘 아침의 일이었소. 물론 놈들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난 뒤였지. 하지만 아궁이엔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고 솥바닥에 남은 밥은 아직 쉬지 않았단 말씀이야. 그게 무엇을 뜻하겠소? 놈들이 성을 버리고 달아난 게 얼마 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겠소? 그런 놈들이 수작을 부렸으면 얼마나 부렸을 것이며, 매복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소?”
왕삼보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견을 제시했다.
“조금 달리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강이환이 아궁이의 불씨나 밥솥의 밥을 이용해 우리로 하여금 자신들이 정신없이 달아났다고 확신하도록 유도했다면?”
“어허! 그게 바로 왕 공자의 단점이라니까. 신중한 것도 좋지만 너무 신중하면 겁쟁이 소리를 듣는다는 것도 아셔야지.”
왕삼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대적용이 저런 식으로 나온다면 더 말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문파 내에서의 서열이야 어찌 되었든 이번 출정의 주체는 호교십군의 삼군과 오군. 작전의 결정권이 두 군장에게 있음을 당연했다.
왕삼보가 시무룩한 기색을 짓자 대적용이 안색을 풀며 그를 달랬다.
“말이 심했다면 용서하시구려. 나 같은 무부가 무슨 말주변이 있겠소. 다 왕 공자를 위하는 마음에서 한 소리니 이해하시오.”
“아닙니다. 제가 공연한 염려를 한 걸지도 모르지요.”
그때 기치창검 살벌한 전장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연한 염려가 아닐세. 신중이란 아무리 과해도 모자람이 없는 덕목이지. 노부가 보기엔 오 군장이 오히려 성급한 것 같군.”
별불가 초당, 불로불유에 비남비녀인 이 괴인이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말 위에 몸을 실은 채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면 어찌할까요? 빈 성 하나 함락한 걸로 만족하고 회군이라도 할까요?”
대적용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빈정거렸다. 하지만 초당은 별로 불쾌해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럴 수야 있나? 노부의 말은 중용을 택하자 이걸세.”
“중용?”
초당은 허리에 꽂고 있던 곰방대를 꺼내 용도굴을 가리켰다.
“저 지세로 보아 강이환이 매복을 배설했다면 필시 골짜기 위를 이용했을 터. 노부가 몇 사람을 데리고 올라가 놈의 의도를 살펴보겠네. 절벽이 아무리 험하기로서니 원숭이 길은 나 있겠지.”
왕삼보가 반색을 하고 나섰다.
“정말 그래 주시겠습니까?”
초당은 곰방대로 왕삼보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래 줄 테니 너무 우거지상 하지 말라고. 모름지기 젊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어깨를 활짝 펼 수 있어야지.”
열두 살 아이 같은 얼굴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충고였지만 왕삼보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초 노사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누굴 데려 가시렵니까?”
“글쎄, 누가 좋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초당이 한쪽을 향해 곰방대를 까닥였다.
“어이, 삼사(三蛇)! 등산 한 번 해 볼까?”
그러자 챙이 넓은 검은 방립에 야행복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흑의를 입은 사내 셋이 앞으로 나섰다. 삼군에서 손꼽히는 강자로 알려진 삼사가 바로 이들인데, 안하무인식의 성격으로 인해 문내의 평판은 썩 좋지 못하나 유독 직속상관인 초당만은 이들을 수족처럼 신임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동향 후배들이어서라는데 과연…….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삼사를 둘러본 초당이 왕삼보를 향해 말했다.
“이 친구들을 데리고 가겠네.”
뱀의 마음과 뱀의 눈 그리고 뱀의 이빨을 지녔다는 삼사는 물론 왕삼보도 인정하는 고수였다. 그러나 셋은 너무 적었다.
“초 노사의 신공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몇 사람 더 데려가시는 편이…….”
“머릿수가 많으면 시끄럽기만 할 뿐이지. 난 이 친구들이면 됐네.”
“정 그러시다면 소생도 한 팔 거들겠습니다.”
“자네까지? 본 대는 저 성급한 오 군장이 어떻게 말아먹든 상관없다 이건가?”
초당이 눈을 깜빡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물론 대적용은 발끈 소리쳤다.
“누가 뭘 말아먹는단 말씀이시오!”
“아아! 교주께서 내리신 임무가 지엄하거늘 우리가 이런 데서 시간을 허비할 수야 있나? 어서 시작하자고.”
초당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왕삼보가 안장에서 길쭉한 죽관(竹管) 하나를 꺼내어 초당에게 건넸다.
“발연통(發煙筒)입니다. 사용법은 아시지요? 안전하다고 생각하시면 신호를 올리십시오. 곧바로 본 대를 진입시키겠습니다.”
초당은 건네받은 죽관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감동 받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물건까지 챙겨 오다니 과연 준비성이 철저하군. 자네 같은 청년 덕분에 우리 무양문의 앞날은 창창할 걸세.”
“과분한 말씀을…….”
“입 발린 말로 듣지 말고 몸 보중하라고. 자네 같은 청년이 잘못되는 날엔 무양문으로선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으니까.”
초당은 곰방대로 왕삼보의 어깨를 또 한 번 두드린 뒤 삼사를 거느리고 용도굴 쪽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쳇! 잘되라고 하는 소린지 잘못되라고 하는 소린지……. 하여간 속내를 알 수 없는 노인네라니까.”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대적용이 투덜거렸다.
여범이 자리 잡은 곳은 그의 커다란 덩치도 간단히 가려 줄 만큼 움푹 들어간 바위틈이었다. 주위엔 작은 관솔까지 우거져 바로 앞까지 다가와도 발견하기 어려운 곳인데, 심지어 그 위치가 까마득한 벼랑 위였으니 이 어찌 훌륭한 초소가 아닐 수 있으랴.
반면 여범의 입장에선 시야가 아주 좋았다. 관솔 사이로 고개만 내밀면 용도굴 초입을 훤히 굽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여범이 그러고 있었다.
“젠장! 무슨 낌새라도 챘나? 마귀 놈들이 왜 저러고 있지?”
여범의 오른손엔 작은 활과 화살이 들려 있었다. 화살의 촉 부위엔 피육을 상하게 하는 쇠붙이 대신 둥그스름한 피리가 달려 있었다. 신호를 올리는 데 사용하는 향전(響箭)이 바로 이것이었다. 여범의 손등에 지렁이처럼 돋아 있는 힘줄은 당장이라도 향전을 올리고 싶은 그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데, 그 손등을 날씬하게 생긴 손 하나가 살그머니 움켜잡았다.
“여 사형, 침착하세요. 요 며칠 거듭된 승리로 놈들의 기세는 절정에 올랐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반드시 들어올 겁니다.”
이렇게 여범을 달래는 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눈빛이 맑은 청년이었다. 이름은 유종도(劉宗度), 여범과 함께 이 천연의 초소로 파견되어 척후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 곡 입구로 다가왔던 네 놈의 종적이 의심스럽습니다.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은 걸 보면 골짜기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영 찾을 수가 없군요. 혹시 이 위로 올라온 것은 아닐까요?”
유종도가 심히 우려된다는 듯이 말하자 여범은 코웃음을 쳤다.
“올라오려면 올라오라지. 이 여 나리께서 한 주먹에 피 떡을 만들어 줄 테니까.”
“사형도 참! 그러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게 밝혀지지 않습니까?”
“알아, 안다고! 그렇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 얘기지.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눈을 피해 이 위로 올라오기란 불가능한 일이야. 우리가 이곳을 택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은가? 아마도 저 아래 어딘가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테니 염려 말라고.”
잠시 생각하던 유종도는 여범의 말이 옳음을 인정했다.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각을 십분 감안하여 자신이 직접 선택한 초소였다. 이곳에서의 감시를 피해 위로 올라올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날짐승이 분명했다.
“하긴 그렇군요.”
“자네도 긴장했나 보군. 침착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네인 것 같은데?”
여범이 조금 풀린 표정으로 우쭐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의 대화를 낱낱이 엿듣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여범은 절대로 우쭐대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여범 등이 은신한 천연의 초소로부터 이 장쯤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수직이 넘는 경사 탓에 발붙일 자리를 찾을 수 없는 벼랑인데, 그 위태로운 곳에 박쥐처럼 붙어 있는 대단한 사람들은 바로 초당과 삼사였다.
초당과 삼사는 매달려 있는 방법이 약간 달랐다. 삼사가 두 손과 두 발에 끼운 갈퀴 같은 강조(鋼爪)에 의지해 매달려 있다면, 초당은 오로지 열 손가락의 힘만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힘들어하는 쪽은 오히려 삼사였으니, 초당이 수련한 마단동자공의 기특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초당은 삼사를 돌아보더니 눈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감시가 있으니 주의하라는 뜻이었다. 그 뜻을 알아차린 삼사는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 속에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았고, 그들은 결국 초소의 사각만을 타고 벼랑 위로 오르는 데 성공했다.
고양이처럼 기척 없는 몸놀림으로 초소를 빙 돌아간 초당과 삼사는, 초소에서 제법 멀찍이 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지 뭐야. 진리란 놈은 험한 길에 떨어져 있다더니만, 편한 길 마다한 보람이 있었어.”
초당이 환한 웃음으로 말하자 삼사 중 제일 맏이인 사심(蛇心)이 시큰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며 대꾸했다.
“강이환이란 자, 이 지형을 그냥 버려 두지 않는 것을 보면 바보는 아닌 모양입니다.”
“바보면 큰일이지. 일일이 가르쳐야 하거든.”
이렇게 중얼거린 초당은 삼사 중 둘째인 사안(蛇眼)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 이 물건 어떻게 쓰는지 아는가?”
사안은 초당이 내민 물건을 일별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잘됐군. 당최 요즘 물건엔 어두워서 말이야. 가지고 있다가 적당할 때 터뜨리게. 너무 일찍 터뜨리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초당은 그 물건을 사안에게 던졌다. 사안이 조심스레 받은 그 물건의 정체는 왕삼보로부터 받은 발연통이었다.
할 일을 마쳤다 여긴 것일까? 초당은 앙증맞은 팔을 치켜들어 기지개를 한 번 켠 뒤 삼사의 셋째 사아(蛇牙)를 향해 말했다.
“어이, 멍청히 서 있지 말고 괜찮은 그늘이나 찾아보라고.”
“예?”
사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초당은 끌끌 혀를 찼다.
“둔한 친구 같으니라고. 아무리 싸움 구경이 좋다지만 땡볕 아래에서 할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싸움 구경이라고 했다.
초당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어? 저게 뭐지?”
누군가의 목소리에 강이환은 시선을 곡구 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파란 연기 한 가닥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발연통의 연기! 누가 터뜨렸을까?”
놀란 외침을 내뱉는 사람은 용봉단의 두 호법 중 하나인 곽달(郭達)이었다. 두 자루 창으로 운남 지방을 주름잡아 쌍창진남천(雙槍鎭南天)이란 별호를 얻은 그는, 강이환의 부친이자 형산검문의 전대 문주인 강귀봉(姜貴鳳)에겐 혈육처럼 가까운 지기였다.
비명에 간 친구의 원수를 갚지 못해 삼십여 년의 세월을 비분 속에 보내다가 그 아들이 강호에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곧바로 말년을 의탁한 곽달. 정파인들은 그를 두고 협의도의 귀감이라 칭송해 마지않았다.
“아군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강이환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척후로 파견된 수하들은 발연통이 아니라 향전을 가져갔다. 적아가 선명한 국면에서 아군이 아니라면 곧 적군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무양문 마귀들의 소행이겠군.”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살기가 치밀어 오르는 듯 곽달은 등에 메고 있던 두 자루 단창을 기세 좋게 뽑았다. 눈썹까지 허옇게 센 나이였지만 저렇게 자세를 잡으니 이십 대 청년 못지않은 호기가 넘쳐흘렀다.
그 호기에 자극된 것일까? 여기저기에서 병기 뽑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철갑을 두른 것처럼 굳은 얼굴들.
“흥분하긴 이릅니다. 놈들이 곡구를 통과했다면 여 사제가 신호를 보냈을 겁니다.”
강이환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쐐애앳!
쇳소리처럼 날카로운 파공성이 곡구 쪽에서 솟구쳐 올랐다. 마침내 향전이 올라간 것이다.
강이환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쐐애앳!
향전 소리들 들은 강이환이 느낀 것이 결전을 앞둔 긴장이라면, 왕삼보가 느낀 것은 위기의식에 가까운 의혹이었다.
“향전 소리가 아닙니까?”
왕삼보는 자신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해 악을 써야만 했다. 질주하는 마상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이렇듯 어려웠다.
“매복이 있었나? 빌어먹을! 초 노사는 대체 뭐 하는 거야?”
대적용도 고래고래 악을 썼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기호지세! 빨리 통과하는 편이 낫겠소!”
“그렇게 하지요!”
이번만큼은 대적용의 의견이 옳았다. 곡구를 통과한 게 벌써 한참 전인데 말 머리를 돌린다는 건 오히려 위험했다.
“전군(全軍) 전속력으로!”
대적용의 구령이 울려 퍼지자 토벌대의 전진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두두두두!
구름처럼 피어나는 황진 속에서 우렁찬 말발굽 소리가 마치 살아 있는 용처럼 용도굴 골짜기를 따라 치달렸다.